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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블랙넛의 가사 폭행사건에 관한 고찰

by아트인사이트 (ART insight)

블랙넛의 가사 폭행사건에 관한 고찰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필자의 기본적인 인식과 태도를 먼저 밝히고자 한다. 나는 대한민국에 거주하는 한 명의 여성으로서 일상 속에서 많은 불편과 불쾌를 느끼고 이를 개선할 방법이 무엇일까에 대한 고민을 거듭해나가고는 있지만, 관련 공부를 열정적으로 하거나 여성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지는 않는 소극적 인간형에 속한다. 이와 더불어 아주 오랫동안 한국 힙합을 사랑해오면서 힙합씬 내부 가십거리에 많은 호기심을 가져온 여대생이기도 하다.

1. 사건의 발단과 전개

블랙넛의 가사 폭행사건에 관한 고찰

2016년 1월, 래퍼 블랙넛(BlackNut)은 자신이 속한 레이블 저스트뮤직의 단체곡 ' Indigo child '에서 '여성'래퍼 키디비(KittiB)를 겨냥한 수위 높은 발언을 개시했다. 누가 보아도 성희롱이라 할 만큼 상당히 자극적인 내용이었지만, 별다른 논란이나 비슷한 수준의 대응 없이 사건이 일단락되는 듯 했다. 당시 키디비는 TV프로그램 ' 래뻐카 '에서 "저는 털털한 편이라서 상처를 덜 받았지만 다른 여자분들이었다면 진짜 상처를 받을 수 있었다. 팬들이 고소를 하라고 해서 그런 생각을 한 적도 있다. 팬들이 (고소하라고 할 정도로) 그렇게 느꼈다는 것 자체가 너무 속상했다. 전 괜찮으니 팬들이 상처 받지 않았으면 좋겠고, 앞으로는 블랙넛이 그런 가사를 안 썼으면 좋겠다. 그거 솔직한 것이 아니다." 라 말하며 블랙넛의 ‘여성비하’적 가사를 제지하는 제스처를 취했다.

블랙넛의 가사 폭행사건에 관한 고찰

본격적인 사건은 얼마 전 발생했다. 2017년 4월 30일 저스트뮤직이 발매한 앨범 ‘우리효과’의 수록곡 ' Too Real '에 등장한 불건전한 가사가 문제였다. 뒤이어 블랙넛의 미공개 음원 속 키디비를 향한 성희롱적 가사 또한 큰 화제가 되었고, 앞선 경고에도 쏟아지는 그의 수치스러운 가사에 키디비는 법적 대응을 예고하기에 이르렀다.

블랙넛의 가사 폭행사건에 관한 고찰

많은 이들을 경악하게 한 사건은 다음과 같다. 블랙넛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한 장의 사진을 게시했다. ‘I respect for my unnie’라는 문구의 자필 ‘빽빽이’였는데, 하얀 종이 위에는 김칫물로 추정되는 빨간 액체가 한 방울 톡, 떨구어져 있었다. 평소에도 블랙넛은 일간베스트 출신이 아니냐는 ‘합리적 의심’을 받아오던 터라 이러한 SNS 활동은 해당 커뮤니티에서 여성을 비하하기 위해 자주 사용되는 용어인 김치녀를 연상시키기에 충분했다.

2. 이게 디스(diss)라고?

힙합의 대중화에 큰 공헌을 한 모 힙합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방송의 재미를 위해 디스의 개념을 자의적으로 왜곡하여 수많은 대중들에게 디스가 ‘상대 래퍼에게 욕 하기’라는 오개념을 심어주었다. 하지만 디스는 disrespect의 준말로 상대방의 허물을 공개적으로 공격해 망신을 주는 문화를 일컫는 말이지, 무차별적인 인신공격을 뜻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블랙넛의 가사 폭행사건에 관한 고찰

And I saw Meek at All-Star; he told me your ass dropped
나는 All-Star에서 네 연인 Meek을 보았는데, 그는 너의 엉덩이가 쳐졌다 말했어
He couldn’t fuck you for three months, because your ass dropped
그는 너의 쳐진 엉덩이 때문에 3달이나 관계를 가질수 없었다 말했지

비슷한 예로 꼽히는, 올 상반기 전 세계를 뜨겁게 달군 디스전을 살펴보도록 하자. 미국의 여성 래퍼 Remy Ma는 랩의 여왕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Nicki Minaj를 향해 자극적이고 강렬한 가사를 내뱉었다. 논란이 된 점은 Nicki Minaj의 신체적, 성적 문제와 더불어 연인과의 민감한 관계까지 조롱하는 도입부였다. 하지만 가사의 주된 내용은 그녀의 고스트 라이팅(대필), 소아 성애자인 오빠를 후원하는 비상식적인 태도, 그리고 그녀를 제압하겠다는 자신의 포부 등 Nicki Minaj의 부정적 행보와 관련된 것이다. 사실상 여기서 사용된 자극적인 가사는 본론에 약간의 화제성과 재미를 더해주는 조미료 역할을 하고 있다.

 

가사의 수위로만 따지고 보면 블랙넛과 Remy Ma가 그 정도에 있어 심각한 차이를 보이지는 않는다(전자의 가사가 더욱 불쾌하기는 하다). 그러나 블랙넛의 발언에는 명백한 목적이 없다. 둘은 이렇다 할 갈등을 빚은 적도 없고, 힙합씬의 왕좌를 두고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는 관계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저 ‘성적 대상화 된 여성’인 키디비를 희롱하고 그 내용을 대중에게 매우 당당하게 공개함으로써 얻는 일종의 자아도취나 쾌락적 허세를 위한 것일 뿐이다. 그것이 키디비가 고소를 예고한 현재에도, 그가 상황을 꽈배기마냥 비꼬며 냉장고의 반찬통을 열어 열심히 김칫물을 뿌리고 있는 이유이다.

 

블랙넛의 노래 ' 100 '의 가사만 유심히 살펴보아도 그가 여성을 얼마나 가벼운 섹스토이 정도로 여기는지 알 수 있긴 하다. 씁쓸하면서도 우스운 것은 이러한 여성혐오적인 인식과 이것이 반영된 결과물이 그를 찬양하는 많은 팬들의 유입 경로가 된다는 사실이다. 대중 앞에서 쉽게 입에 올리지 못하는, 자극적이고 성적인 이야기를 가감 없이 훅훅 뱉어내는 그의 모습은 아이러니하게 영웅적으로 비추어져 많은 남성들에게 찬양받는다. 이것이 그의 망나니 같은 행보를 부추겨 이 사단을 낳은 것은 아닌지, 참으로 슬픈 현실이 아닐 수 없다.

3. 이것은 하나의 폭력 사건

블랙넛의 가사 폭행사건에 관한 고찰

블랙넛은 키디비에게 명백한 언어폭력을 행사했으므로 이를 하나의 폭행 사태에 비유해 보겠다. 상대방이 아무런 일면식 없는 나에게 선제공격, 즉 선빵을 행사했다고 가정했을 때에 나에게는 두 가지 선택권이 있다.

첫째, 똑같이 한 방 먹이기

 

둘째, 꾹 참고 법으로 해결하기

참 간단하다. 지금은 그냥 키디비가 세 번의 폭력 사태를, 주먹을 더럽히지 않고 깔끔하게 법으로 해결하고자 한 상황일 뿐이다. 이 사건은 디스라는 억지 명분으로 포장될 수 없다. 본디 문화적인 틀 아래 이루어지는 경쟁은 그 방법 또한 정당해야 한다. 피고인은 그저 원고의 외모가 성적인 흥미를 유발한다는 이유만으로 무차별적인 언어폭력을 자행했다.

4. 힙합은 항상 왜?

이번 일로 '이게 힙합이냐?', '힙합은 왜 맨날 이러냐?', '힙합이면 성희롱이 정당화 되냐?' 이런 반응과 댓글들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 답답하고 화난다. 왜 힙합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이런 상황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어야하고, 이런 취급을 받아야하나. 예술의 범주 안에서,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 아래에 폭행이 정당화된다면 그건 문제 있다. 누군가의 장난으로 인해 괴롭고 힘든 사람이 생긴다면, 게다가 그게 힙합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면, 큰 문제다.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힙합이 그런 상황으로 더러운 문화 취급 받는 게 싫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래퍼 타이미가 페이스북을 통해 발언한 내용 중 일부로, 나 스스로 글을 마무리하면서 여러분께 전하고 싶은 말과 일맥상통하다는 생각이 들어 인용해 보았다. 힙합은 허물없이 내 의견과 감정을 전달하는 데에서 그 본질을 찾아간다. 그렇지만 이러한 솔직함이 타인의 인격을 조롱하고 폄하해서는 절대 안 될 일이다. 문화는 각각의 상대적인 특성에 따라 존중받아야 하지만 그것이 인간의 기본적인 가치를 훼손하는 정도에 이르면 누구도 그 행위를 인정하지 않는다. 블랙넛이 그저 기술적인 래핑 스킬을 구사하는 ‘래퍼인척’하는 이가 아닌, 힙합이라는 하나의 문화를 함께 향유하고 사랑할 줄 아는 이라면, 자신의 경솔했던 태도에 대한 신속한 인정과 더불어 피해자에 대한 진심어린 사과를 해 나가야 한다. 뿐만 아니라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이전까지 힙합을 필두로 내세워 도덕적 금기를 짓밟아 왔던 많은 뮤지션들의 정신적인 자각 또한 강하게 요구하는 바이다.

 

사진 출처 - Google 이미지, hiphop LE
에디터 10기 신예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