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속으로 들어가는 길, 퇴계의 말이 참말이구나

[여행]by 아시아경제

경북 3대 오지로 떠나는 봉화 35번 국도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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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번 국도에서 마주한 그림같은 풍경. 까마득한 벼랑 아래로 낙동강이 크게 휘돌아 흘러가고 그 옆으로 구불구불 길이 이이지고 있다. 안개라도 피어오르는 날이면 무릉도원이 따로 없다.

낙동강을 따라 경북 3대 오지(奧地)로 불리는 봉화로 갑니다. 오지는 산간 내륙의 깊은 산중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시간의 속도에서 벗어나 자연의 속도로 살고 있는 곳이기도 하지요. 안동, 봉화를 지나 태백으로 가는 국도 35호선이 이번 여정입니다. 봉화구간은 능선 너머 능선이 첩첩이 겹쳐지는 날것 그대로의 자연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길을 지나면 산새들만이 재잘대고 끊어질 듯 이어지는 낙동강의 물소리가 길동무를 해줍니다. 안동의 도산서원과 봉화의 청량산을 오갔던 퇴계 이황선생은 이 길을 '그림 속으로 들어가는 길'이라고 했습니다. 산은 깊고, 길은 거칠지만 그곳은 범접하기 힘든 아름다운 풍경을 품고 있습니다. 달리다 굽이굽이 고도가 조금씩 높아지는 모습을 보면 이미 그림 속으로 들어섰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뿐인가요. 세계적인 여행정보 안내서인 '미슐랭 그린가이드'에선 청량산을 끼고 안동으로 향하는 이 길에 별점 하나를 주기도 했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조금 완화되었다고 하지만 아직 안심하긴 이릅니다. 오늘 소개한 봉화 35번 국도를 굳이 '찾아가보라'고 권유하지 않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다만 코로나19가 종식되거나 도회지의 삶이 너무 팍팍하다고 느껴질 때, 차량을 이용해 이곳을 다녀오시길 바랍니다.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옛길을 달리거나 숨어있는 산중마을이나 오지카페에 들다보면 내 몸이 치유가 되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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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는 겹겹이 산에 둘러싸여 있다. 사방이 산에 가로막혀 예부터 오지로 꼽혀 왔다. 35번 국도는 오지마을을 비롯해 퇴계 이황이 소금강이라고도 부른 청량산으로 찾아가는 길이다. 게다가 도로 옆으로는 맑은 낙동강 물줄기가 따라 준다.


춘양역을 드라이브 들머리로 잡는다. 범바위 전망대, 신비의 도로, 낙동강시발점공원, 선유교, 청량산으로 가는 25km 길이다. 춘양역을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눈앞으로 펼쳐지는 풍경이 심상치 않다. 고도가 점점 높아지고 산들이 첩첩 이어진다. 부드럽게 굽이치던 길이 빙글빙글 지그재그로 산길을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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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범바위 전망대가 나타난다. 길 가 낭떠러지 바위 위에 호랑이 조형물이 서 있다.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낙동강의 모습은 山태극 水태극의 형상으로 휘돌아 내려가는데 웅장하다. 전망대에서 바라보이는 앞산의 형국은 '갈마음수형' 이다. 목마른 말이 내려와 물을 마시는 모습이라는 뜻이다. 까마득한 저 아래에 낙동강이 크게 물돌이를 만들며 유장하게 흘러간다. 좁고 깊은 골짜기마다 안개가 피어오르자 낙동강과 앞산이 보였다 사라졌다를 반복한다. 순간 바람이 불어오자 안개가 춤을 추듯 흐느적거리면 꼬리를 감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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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바위에는 재미난 전설이 있다. 조선 고종 때 송암 강영달이라는 사람이 한양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이곳에서 선조의 묘를 보며 멀리서 절을 올렸다. 그 때 갑자기 집채만 한 호랑이가 나타났고 그는 맨손으로 온 힘을 다해 호랑이를 잡았다고 한다. 그때부터 이곳을 '범바위'라고 부르게 되었다. 범바위 전망대를 지나면 신비의 도로다. 내리막길처럼 생겼으되 실은 오르막길이라 한다. 법전면에서 명호면으로 접근할 경우에는 오르막길처럼 보이나 사실 내리막길인 도로이다. 길가에는 잠시 쉬어가기에 좋은 정자와 화장실 주차장 시설이 마련되어 있다.


산길을 내려서면 곧 명호면 소재지다. 이곳에 '낙동강 시발점공원'이 있다. 낙동강으로 유입되는 1천634곳의 발원지 가운데 태백 황지연못에서 발원된 지류가 운곡천과 만나 낙동강 본류가 시작되는 곳이다. 두(이) 강(나리)이 만나고 두개의 나루가 있었다고 해서 '이나리강변'이라고도 부른다.


명호면 소재지를 지나 청량산도립공원 입구로 가는 길은 강변을 따라 이어진다. 이리저리 휘지도 않고 곧게 뻗어 순탄하다. 한참동안 낙동강을 동무삼아 달리다 선유교(仙遊橋)를 만난다. 선녀가 노니는 다리다. 다리 아래로 백룡담이 깊고 벼랑옆으로 새순이 솟아난 나무들이 햇빛에 반짝인다. 선유교 아래에서 관창1교까지는 강변을 따라 '예던길'이 조성돼 있다. 세계유교선비문화공원(낙동강지구) 사업으로 조성된 걷기 길로 안동까지 이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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굽이굽이 오지마을로 드는 길에 봄이 가득 내려앉았다.

몇 개의 마을과 다리를 지나면 왼쪽으로 청량산 줄기가 시선을 압도하고 오른쪽에는 만리산이 불쑥 가깝다. 청량산으로 가는길에 꼭 한 번은 들러봐야 할 곳이 있다. 바로 관창리마을이다. 청량산 맞은편 만리산 자락을 파고든 오지마을이다. 산비탈을 타고 이어진 사과나무 과수원이 경이롭기까지 하다. 구불구불 가파른 산길을 올라 깎아지른 산중턱에 위태위태하게 마을이 들어서 있고 여기에 전망 좋은 카페가 하나 있다.


수직에 가까운 경사를 오르고, 과수원 길을 지나는 사이 도로는 차 한대 겨우 지날 만큼 좁아졌다. 맞은편에서 차라도 온다면 낭패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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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리산 중턱에 자리한 무인카페 '오렌지꽃향기 바람에 날리며' 대형창가에서 바라본 청량산

도로의 끝, 펜션 겸 카페 '오렌지 꽃향기는 바람에 날리고' 앞마당은 한국관광공사에서 지정한 '사진찍기 좋은 녹색 명소'다. 탄탄한 몸매를 자랑하는 청량산의 뒷모습이 늠름하다. 산세에 비해 가늘어 보이는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힘들게 지나온 관창마을에 봄이 가득 내려 앉아있다. 카페의 넓은 유리창은 이 풍경을 대형 액자나 스크린에 담은 것처럼 아름답게 보여준다. 창가 자리는 마을에 전해 내려오는 '왕위'터이자 행운을 가져다주는 '대박'자리로 입소문이 나 있다. 이 자리에서 찍은 사진을 SNS에 올리면 '좋아요'를 독차지 할 수 있을 정도다. 애초 카페는 펜션에 묵는 사람들을 위한 휴식공간이었다. 주인장이 자리에 있을 때는 제철에 나는 꽃차를 내놓지만 그렇지 않을 땐 무인 카페로 운영한다. 한 사람당 5,000원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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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산에서 만난 야생화

아름다운 풍경에 봄 향기 가득 담은 주인장의 꽃차를 뒤로하고 산길을 다시 내려와 청량산으로 향한다. 청량교 너머 산으로 드는 문이 보인다. 청량산의 맑은 정기가 차 안으로 스며들어오는 듯하다. 그 오른쪽 강변에 섬세하게 층진 절벽이 솟아 있다. 예부터 학이 날아와 새끼를 치고 살았다는 학소대다. 청량산은 둘레가 100리에 불과해 크다고 할 수는 없지만, 해발 800m가 넘는 12개의 바위 봉우리가 그림처럼 연결돼 소금강에 비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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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리산에서 내려다 본 35번 국도

청량산을 찾았다면 구름을 발 아래로 깔고 있는 두들마을도 가보자. 청량산을 끼고 있는 낙동강변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 잡은 오지 마을이다. 이른 아침 청량산 골짜기마다 피어오르는 안개가 마을을 촉촉하게 빨아들였다가 토해놓는 모습은 신비롭다.

여행메모

  1. 가는길 : 수도권에서 가면 영동고속도로, 중앙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북영주(풍기)IC를 나와 법전면 춘양역으로 가서 35번 국도를 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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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먹거리 : 대표 음식은 돼지숯불구이다. 참나무 숯이 아닌 솔 숯을 이용해 적당히 구운 돼지고기에 솔잎을 얹은 후 몇 차례 더 구워 솔 향을 입힌다. 봉성면 일대에 돼지숯불구이 식당이 영업 중이다. 원조약수식당에는 닭백숙과 닭불고기(사진)가 이름났다. 산머루를 발효시킨 식초와 고추장으로 입맛을 사로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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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볼거리 : 청량사를 비롯해 백두대간수목원, 춘양목군락지, 닭실마을, 청옥산자연휴양림, 워낭소리 촬영지, 분천역, 승부역 등이 있다.

봉화=글 사진 조용준 여행전문기자 jun21@

2020.04.25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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