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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유악하고 의존적인 얼굴…
그래서 공감되는 얼굴

by아시아경제

영화 '사냥의 시간'·'기생충'의 최우식

아시아경제

현실도피 꿈꾸는 '사냥의 시간' 기훈과 계급상승 목말랐던 '기생충' 기우, 현대 살아가는 청년·서민과 닮아

"오늘 근본적인 계획을 세웠습니다. 돈을 아주 많이 벌어 이 집을 사겠습니다. 아버지는 그냥 계단만 올라오시면 됩니다. 그날이 올 때까지 건강하세요."

영화 '기생충'의 마지막 대사다. 기우(최우식)가 한다. 불가능한 계획이다. 그도 안다. 이미 케빈으로 위장해 욕심부리다 화를 입었다. 기우는 다혜(정지소)와 연인관계를 유지하면 혼맥으로 가족이 높은 지위도 확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민혁(박서준)이 아니었다. 계급 상승에 대한 욕심도 덜했다. 꿈을 꾸는 것만으로 만족했다.

"너 만약에 이 집이 우리 것이 된다면, 여기서 우리가 산다 치면, 어디를 네 방으로 쓰고 싶니? 이 남궁현자 선생님의 이 걸작 하우스에서 어디가 네 마음 쏙 드냐 이 말이지(기우)."

"아 몰라. 일단 살게 해줘봐. 내가 살면 고민을 해볼게(기정)."

"아니, 지금 살고 있잖아. 이렇게 거실 한복판에서 술도 잔뜩 마시면서(기택)."

"그렇죠. 이게 사는 거지. 사는 게 별거 있나(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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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우의 소박하고 덤덤한 성격은 최우식을 만나 설득력이 배가 된다. 왜소하고 깡마른 체구. 얼굴은 가냘프다 할 만큼 섬세하고 연약하다. 스스로 비리비리하다고 말할 정도다.


그동안 영화에서 그려온 배역들도 다르지 않다. 무책임한 아버지를 피해 보호시설 '그룹 홈'에서 지내는 '거인(2014)'의 영재가 대표적인 예다. 겉보기에는 신부가 되려는 모범생이지만 하루하루 눈칫밥을 먹으며 생활한다. 남몰래 후원 물품을 훔치고 거짓말로 친구를 배신하기에 이른다. 계속된 방황은 최우식의 유약한 얼굴에서 좌절로 읽힌다.


"가만히 있어도 가엾어 보이나 봐요. 부모님까지 그런 말씀을 해주시더라고요. 나름 화목한 가정에서 자랐는데…(웃음). 불쌍한 배역을 맡을 때가 편하긴 해요. 연기를 즐기면서 할 수 있을 정도로요. 아등바등 사는 모습을 그리다 보면 때로는 자유로운 느낌까지 받죠. (영화 관계자들도 그렇게 보시는지) 비슷한 성격의 배역들로 섭외 요청이 많이 들어와요. 피하지 않아요. 더 많이 왔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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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행(2016)'의 영국이나 '마녀(2018)'의 귀공자도 강인한 면이 부여됐을 뿐 본질은 같다. 야구 배트로 좀비를 물리치고 초능력으로 자윤(김다미)을 위협하지만 결국 두려움과 열등감으로 귀결된다.


'사냥의 시간'에서 연기한 기훈도 동일선상에 있다. 얼핏 보면 동네 깡패다. 노랗게 염색한 머리와 휘황찬란한 목걸이. 담배를 빠금빠금 빨면서 거칠고 속된 말을 늘어놓는다.


"한 번도 그려본 적 없는 얼굴이에요. 그래서 욕심이 났죠. 한편으로는 겁도 났어요. 자칫 잘못하면 담배 태우고 욕설을 내뱉는 모습이 어색하게 나올 수 있으니까요. 그런 분위기가 제대로 나오지 않으면 지나치게 연기를 꾸며낼 것 같았어요. 촬영하면서 여느 때보다 긴장을 많이 했죠. 윤성현 감독이 저의 어떤 면을 보고 기훈과 어울린다고 생각했는지 궁금해요."


특유의 유약하고 의존적인 얼굴이다. 기훈은 교도소에서 출소한 준석(이제훈)의 제안으로 장호(안재홍)ㆍ상수(박정민)와 함께 도박장을 습격한다. 그는 소총 탄알을 한 번도 발사하지 않는다. 정체불명의 추격자 한(박해수)에게 쫓길 때도 마찬가지. 오히려 심장을 조여오는 악몽 같은 시간에 사시나무 떨듯 부들부들 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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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훈의 경우 다른 배역들과 달리 가족사가 그려진다. 부모에게 효도하고 싶은데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처지를 전하기 위함이다. 착한 심성만으로 헤쳐나갈 수 없는 험난한 세상을 구체화한 설정이다.


기우는 부모가 위기에 놓이자 대만 밀항을 포기한다. 친구들에게 작별 인사도 고하지 않은 채 발걸음을 재촉한다. 우연히 준석과 마주치자 아무 일 없다는 듯 실쭉 웃는다.

"어디 가?"

"아, XXX야. 너 어디 있었어? 계속 찾았잖아."

"어, 나 잠이 안 와서 우리 이따가 배 탈 곳 좀 둘러봤지. 무슨 일 있어?"

"아니, 너희 배 타고 가는 거 보고 가려고 했는데, 밤 되면 집에 가기도 힘들고. 해 떨어지기 전에 가려고."

"야, 진짜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지?"

"(준석의 담배를 빼앗아 피우며)야, XX. 뭔 일은. 네 뱃멀미나 걱정해. 장호 잘 챙기고. 갈게. 곧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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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면의 핵심은 준석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아니다. 부모에 대한 걱정과 애끓는 그리움이다. 최우식은 "태연한 척 구는 모습만 친구들을 위한 행위"라고 말했다.


"시나리오에는 담배를 빼앗아 한 모금 빨아들이는 지문이 없어요. 촬영장에서 고안한 거예요. 오랜 친구에게 걱정 끼치지 않으려는 마음을 지나친 움직임으로 담고 싶었거든요. 처음 연기할 때는 헤어지는 친구들을 향한 그리움을 생각했어요. 그런데 같은 연기를 몇 차례 반복하니까 기훈이 그런 여유를 가질 이유가 없겠더라고요. 내일 아침이면 배를 타고 떠날 친구들이잖아요. 무슨 특별한 감정이 있겠나 싶었어요. 그래서 부모를 걱정하는 마음만 품고 다시 연기했죠."


'기생충'의 기우 역시 자기가 있어야 할 곳이 어디인지 뒤늦게 깨달았다. 다혜와 키스를 나누고 생일 파티가 열리는 정원을 내려다보며 "나 여기에 잘 어울려?"라고 물었다. 이렇게 자각한 뒤 수석을 들고 자기가 있어야 할 곳으로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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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훈은 결국 기우의 디스토피아식 변형에 가깝다. '기생충'에서 산수경석에 담긴 계급 상승의 꿈이 악몽으로 변한다면 '사냥의 시간'에서는 돈과 총에 실린 현실 도피의 꿈이 철저하게 가로막힌다. 아무리 "실전은 기세"라고 호방하게 외쳐도 기우와 기훈은 민혁이 될 수 없다.


최우식은 견고한 계급의 장벽 끝을 뚫어지게 응시한다. 유약하고 의존적이지만 무심하지 않은 눈빛. 여전히 할 말이 많아 보인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