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소공녀'가 던지는 질문…지금 원하는 삶 살고 있나요

[컬처]by 아시아경제

집 없이 떠도는 불안한 청춘의 자기 지키기

진정 나를 위해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아시아경제

영화 '소공녀' 스틸 이미지./사진=네이버 영화

[편집자주] 당신은 그 장면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나요. 문득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오를 때가 있지 않으신지요, 이는 영화가 우리의 삶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영화는 현실에 대한 또 다른 관점을 제시합니다. 영상 속 한 장면을 꺼내 현실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을 전해드립니다. 장면·묘사 과정에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집이 없어도 생각과 취향은 있어", "사람답게 사는 게 뭔데?"


영화 '소공녀'의 주인공 미소는 담담하게 말한다. 미소의 직업은 가사도우미. 미소가 사는 작은 월세방은 변변한 살림살이 없이 작은 주황색 캐리어만 덩그러니 놓여있다. 유일한 취미는 담배를 피우거나 위스키 한 잔을 마시는 것. 가끔 남자친구 한솔과 데이트 하는 것이 그녀가 보내는 생활의 전부다.


얼마 되지도 않는 가사도우미 일당은 월세, 담뱃값, 위스키값, 약값을 빼고 나면 남는 게 없다. 그러나 그녀의 취향은 확고하다.


어쩌면 남들은 꺼릴 수 있는 직업을 택한 미소는 가사도우미 일을 하는 것에 대해 부끄러움이 없다. 집안일을 하는 것은 그녀의 장기이고 그저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택한 것뿐이다.


난방이 안되는 집에선 남자친구와 사랑을 나누기도 어렵고, 영화표를 구하기 위해 헌혈 데이트를 하는 궁핍한 삶이지만 미소는 현재 삶에 부족함을 느끼지 않는다. 돈은 없어도 퇴근 후 그녀는 여느 누구와 다름없이 단골 술집에 들러 위스키 한잔을 마시며 소소한 행복을 느낀다.


그러던 어느 날 집주인은 월세를 올리겠다고 통보하고, 해가 바뀌며 담뱃값마저 올라버린다. 담배와 위스키만큼은 절대 포기할 수 없던 미소는 '쿨하게' 집을 포기하기로 한다. 그녀는 작은 캐리어를 이끌고 새로운 안식처를 찾기 위한 여행을 시작한다.


2017년 개봉한 영화 '소공녀'는 집을 떠나게 된 미소가 대학 시절 밴드 활동을 같이했던 친구들의 집을 전전하며 겪게 되는 에피소드들을 그린 영화다. 그러나 미소는 이들이 더이상 열정 넘치던 '그때 그 사람들'이 아님을 느낀다. 꿈이라는 것은 언제 가져봤는지도 잊은 채 하루하루 견뎌내는 그들의 삶에 미소는 달걀 한 판과 특유의 온정을 안고 파고든다.


아시아경제

영화 '소공녀' 스틸 이미지./사진=네이버 영화

미소가 만나는 사람들…꿈 없는 현대인의 자화상

미소가 집을 나와 만나게 되는 친구들은 이른바 '헬조선'의 현재를 살아가며 각자 직장, 결혼, 시집살이 등 여러 현실적 문제를 겪고 있는 인물들이다.


대기업에 다니지만 과중한 업무에 시달려 링거 투혼을 하고, 빚을 내 마련한 신혼집은 월 100만원에 달하는 이자를 20년 동안이나 갚아야 한다. 결혼을 위해선 마음이 맞아서가 아니라 조건이 맞는 사람을 찾고, 가사노동을 도맡아 하면서도 남편과 시댁 식구들의 눈치를 보고 산다.


젊은 시절 품어왔던 밴드의 꿈은 뒤편으로 미뤄진 지 오래. 영화 속에 등장하는 미소의 친구들은 현재 우리의 삶을 그대로 묘사하고 있는 듯하다.


실제 많은 사람들은 현실적인 문제로 인해 자신의 꿈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지난 2017년 인크루트가 청년세대 96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87%가 어려운 사회·경제적 상황으로 꿈, 취업, 결혼 등 여러 가지를 포기하는 세대를 의미하는 'N포세대'라는 말에 공감한다고 응답했다.


이들은 자신이 포기한 것으로 꿈(12%), 취미생활(12%), 삶의 가치(12%), 연애(11%), 결혼(11%), 친구 등 인간관계(10%), 내 집 마련(10%), 희망(10%), 출산(8%) 등을 차례로 꼽았다.


결혼에 성공하더라도 대부분은 빚에 시달리고 있었다. 통계청이 지난 10일 발표한 '2019년 신혼부부통계 결과'에 따르면, 초혼 신혼부부 99만8000쌍 가운데 빚을 안고 결혼생활을 시작한 비율은 85.8%였다.


신혼부부들의 가계 빚은 전년(2018년) 대비 12.1% 늘어 평균 1억1208만원에 달했다. 이는 이들의 연 평균 소득인 5707만원보다 2배가량 높은 수치다.


이 같은 조사는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녹록지 않은 현실을 그대로 드러낸다. 미소의 친구들은 고단한 현시대를 살아가는 인물들을 대변하는 인물들이다.


반면, 이들 틈에서 자신이 원하는 대로의 삶을 굽히지 않는 미소는 상상의 세계에서나 있을 법한, 다소 비현실적인 인물처럼 그려진다.


영화는 사회의 요구에 숨 가쁘게 움직일 수밖에 없는 현시대의 인물과 미소라는 인물의 대비를 통해 진정한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관객들에게 던진다.


아시아경제

영화 '소공녀' 스틸 이미지./사진=네이버 영화

'소공녀'가 던지는 질문…진정 원하는 삶 살고 있나요?

미소는 아무리 힘들어도 담배와 위스키는 포기하지 않는다. 집을 버릴지언정 이 두 가지는 포기하지 않는 그녀의 취향이 누군가에겐 너무 극단적이고, 사치스럽다고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를 잃어버리는 것은 미소에겐 곧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리는 것과 같다. 미소는 이것들이 자신의 '유일한 안식처'라고 말한다.


미소가 못마땅했던 친구 정미는 "요즘 담뱃값이 많이 올랐다던데, 돈이 없으면 나 같으면 독하게 끊었겠다….", "나는 네가 염치가 없다고 생각해"라고 독설을 내뱉는다. 정미의 눈에 미소는 나이 삼십이 되도록 집도, 제대로 된 직장도 없는 철부지 떠돌이일 뿐이다.


그러나 집이 있는 그들의 삶도 결코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정미는 부자 남편과 결혼해 궁궐같은 집에 살고 있지만 남편의 눈치를 보느라 집에서도 편히 쉬지 못한다. 부인과 이별하고도 대출금 때문에 신혼집을 처분하지 못한 대용은 "집이 감옥 같다"고 말한다. 부모 집에 얹혀사는 록이는 매 순간 결혼 압박에 시달린다. 이들은 모두 사회가 정해놓은 '보편적 기준'에 특정 역할을 강요받는다. 이들에게 집은 진정한 안식처가 되어주지 못한다.


미소는 잠깐 동안 그들의 집에 머물면서 그들의 모습을 그저 지켜본다. 신세 지는 처지지만 그 안에서도 자신의 몫을 수행한다. 어질러진 집을 말끔히 청소하고, 정성 들여 한 끼 식사를 차리고, 그들의 고충을 들어주며 말동무가 되어준다. 미소에겐 집은 없지만 자신의 주변을 보듬고 세심하게 살필 줄 아는 따뜻함이 있다.


무엇보다 미소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 행복한지 누구보다 잘 안다. 그리고 이를 위해 고민 없이 직진한다. 영화는 어떤 삶을 살든 스스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 그리고 이를 시행하고 이끌어나가는 것이 진정한 삶의 가치를 찾기 위한 시작이라고 역설한다.


미소는 자신과 다른 삶을 살아가는 친구들을 비난하지 않는다. 이는 곧 영화가 현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이들에게 보내는 시선이기도 하다. 그 시선에 누군가를 향한 비난이나 질책은 없다. 그러니 누구도 그녀가 선택한 삶의 방식이 잘못됐다고 지적할 수 없을 것이다. 다만 영화는 묻고 있다. 어떤 삶을 살 것인가? 선택과 판단은 관객의 몫이다.


강주희 기자 kjh818@asiae.co.kr

2021.01.05원문링크 바로가기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 등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아시아시대를 리드하는 대한민국의 대표 경제신문을 지향합니다.
채널명
아시아경제
소개글
아시아시대를 리드하는 대한민국의 대표 경제신문을 지향합니다.

    Copyright © ZUM internet Corp.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