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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

[조용준의 여행만리] 울긋불긋 산벚꽃, 연둣빛 신록 아래 자발적 고립

by아시아경제

전북 진안 오지여정-장막이 겹겹이 막은 듯한 첩첩산중 가막리들 죽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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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벚꽃과 신록이 조화를 이루며 봄풍경을 토해내는 가막리들 강변에서 한 캠퍼가 여유롭게 캠핑을 즐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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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막리 죽도가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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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막리 죽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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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안에서 만난 절정의 봄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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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막리 강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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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반산 아래에 봄 정취가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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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담호 호수길에 만난 유채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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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귀 메타쉐콰이어길

[아시아경제 조용준 여행전문 기자] 전북 진안은 고원마을입니다. 높은 지대에 자리하고 있어 산이 많고, 산과 산 사이를 흐르는 물은 맘껏 굽어 흐릅니다. 섬진강이 발원하고, 장수 뜬봉샘에서 시작된 금강의 최상류 물길이 지나갑니다. 이런 지리적 여건 때문에 진안은 여전히 외지인들에게 오지의 느낌을 주는 곳입니다. 전북 대표 오지마을인 무주, 진안, 장수를 앞 글자를 따서 '무진장'으로 부르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대단한 볼거리가 있는 여행목적지로 기억되지는 않지만 진안이란 지명은 몰라도 누구나 알만한 것은 있습니다. 바로 말의 귀를 닮았다는 마이산입니다. 큼직한 바위 덩어리 2개가 땅에서 솟았다기보다 누군가 하늘에서 땅으로 내리꽂아놓은 듯 기괴하고 신비롭습니다. 아쉽지만 이번 여정은 마이산으로 가지 않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거리두기에 맞춰 오지인 진안에서도 더 깊고 깊은 곳으로 갑니다. 진안읍 가막리(加幕里)에 있는 죽도(竹島)입니다. 육지 속의 섬으로 불리는 곳입니다. '물돌이 섬'이기도 합니다. 강물이 사방을 에워싸고 흐릅니다. 이곳은 조선시대 선비 1000여명이 화를 입었던 '기축옥사(己丑獄事)'의 주인공, 정여립(1546~1589)이 꿈을 키우고, 또 접어야 했던 곳입니다. 코로나19시대 정여립이 숨어들었던 죽도로 자발적 고립여정을 떠나봅니다.


가막리 죽도는 용담호 상류, 장수군 장계면과의 경계 어름에 있다. 이곳 사람들은 '육지 속의 섬'이라 부른다. 장수 쪽에서 내려오는 가막천과 무주 쪽에서 흘러드는 금강이 죽도 양 옆을 스치며 아래쪽에서 합수머리를 이룬다.


가막리는 글자 그대로 장막이 겹겹이 앞을 막은 것 같은 첩첩산중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또 대섬 동쪽에 깊은 소가 있어 모양이 가마처럼 생겼다고 해 '가매쏘'라고 한다. 이 '가매쏘'가 음이 변하여 가막리가 된 것이 아닌가 추정된다. 까마득히 먼 산골이라 해서 '가막이'라고 불렀던데서 지명이 유래되었다고 보기도 한다.


가막리 죽도 가는 길은 예나 지금이나 험하다. 장전마을 버스정류장 인근 하천 방향으로 난 길을 따라 내려선다. 이곳에서 죽도까지는 1.5km 정도다. 계곡을 건너 비포장도로는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으로 쉽게 들어갈 수 있지만 느린 걸음을 택한다. 만춘(萬春)의 계절을 어찌 차안에서 느낄 수 있겠는가.


안개가 피어오르는 아침, 반기는 가막천 물소리를 따라 길은 나선다. 산과 산이 겹겹이 포개진 곳에 감싸여 있는 죽도와 그 앞 천반산(天盤山ㆍ646.7m)의 풍경은 이맘때와 가을날 최고의 절경을 자랑한다. 울긋불긋 산벚꽃과 연둣빛 이파리를 달고 반짝이는 신록이 물감을 뿌린 듯 화려하다. 길은 유순하다. 발로 전해지는 흙길은 포근하다. 숲향을 듬뿍 머금은 바람이 얼굴을 스쳐지나간다. 짧은거리지만 봄의 느낌을 오롯이 만끽할 수 있다. 걸음은 기운차고 숲은 싱그럽다.


가막천에 바짝 붙어 물길을 따라 걷는 이 길이 어찌나 근사하던지, 함께 걷는 이들의 존재마저도 잊게 만든다. 강변길은 신록의 숲사이로 이어진다. SUV차량들이 드나들면서 낸 것이 분명한 차량 바퀴 자국이 뚜렷한데, 갈수록 길은 적요해진다. 호젓함을 넘어서 '비밀의 길' 같은 느낌이다.


30여분 걷자 깎아지른 절벽이 보이기 시작했다. 발붙일 데가 없고 손가락 하나 걸 데가 없는 바위벽으로 둘러져 있다. 지역 주민들은 그 모양이 병풍같다고 해서 병풍바위로 부르거나, 닭의 벼슬을 닮았다 하여 베슬바위라고 불렀다.


죽도에 닿는다. 안개가 걷히고 가운데가 잘려 나간 거대한 절벽이 날카롭게 다가온다. 산줄기로 이어져 병풍바위 같던 곳을 원활한 농업용수 공급을 위해 잘라내면서 섬 아닌 섬이 됐다. 죽도를 하늘에서 보면 '강물에 떠 있는 삿갓'처럼 보이고 강물은 오메가(Ω) 모양으로 흐른다. 비가 많이 올 땐 절개된 곳으로 금강 물줄기가 흘러 죽도를 진짜 섬으로 만든다.


죽도는 산대나무가 많고 섬 앞에 천반산이 죽순처럼 솟았다 해서 붙은 이름이기도 하다. 주변의 백사장과 평평한 지대를 지역민들은 가막리들이란 이름으로 부른다. 사실 죽도라는 지명보다 가막리들이란 이름으로 더 알려져 있다.


죽도는 아픈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420년 전 기축년(1589년)에 피바람이 불었다. 조선 선비 1000여 명이 떼죽음을 당했다. 기축옥사가 바로 그것이다. 기축옥사 한가운데엔 정여립이 있다. 그는 '누구나 능력에 따라 임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것은 당시 조선 선비사회에는 벼락 치는 소리였다. 정여립은 열혈아였다. 거칠 게 없었다. 선조 임금 앞에서도 전혀 주눅 들지 않았다. 할 말이 있으면 당당하게 피력했다. 이율곡도 주저 없이 그를 '당대 천재'라고 말했다. 이런 정여립이 물증도 없는 비밀 장계에 역적으로 몰리자 죽도로 와서 관군과 싸우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자결이 아니라 자객에게 목숨을 잃었다는 얘기도 있다. 죽도 앞 천반산엔 정여립이 군사를 조련했다는 전설이 있는 산성 터가 있다. 죽도는 바로 정여립이 꿈을 키우고, 또 접어야 했던 그런 곳이다.


가막리들이 최근 방송된 1박2일에 소개되면서 오지여행과 캠핑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명소로 인기를 끌고 있다. 적막한 오지에서 새소리, 바람소리, 물소리와 함께 즐기는 고립여행은 북적이는 도심여행과는 또 다른 매력으로 코로나19시대 새로운 여행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


죽도를 찾았다면 천반산(天盤山ㆍ646.7m) 트레킹도 추천한다. 천반산은 죽도를 향해 용머리를 내밀며 엎드려 있다. 소가 엎드려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돌고래가 콧등으로 막 공을 쳐 올리려는 순간 같기도 하다.


정상에 오르기까지 금강으로 치닫는 가막천을 비롯해 구비 구비 휘돌아가는 물줄기며 마이산, 구봉산, 북두봉 등 눈이 즐겁게 한다. 천반산은 정상 부근에 넓은 벌이 형성돼 있고, 우물이 있어 정여립이 이곳에서 대동계 군사 훈련을 했다는 얘기가 전해온다. 또 능선에서 바라보는 죽도의 모습도 아름답다. 천반산은 급하지 않게 천천히 걸으면 더 좋은 산이다.


진안의 고즈넉한 봄 풍광을 즐기고 싶다면 용담호를 빼놓을 수 없다. 용담호는 금강 물을 가두는 용담댐으로 인해 만들어진 인공호수다. 봄이 내려앉은 호수는 싱그럽고 활기차게 길손을 맞는다. 용담호 주변으로 61km의 호반도로는 맑은 호수를 병풍처럼 둘러싼 길을 따라 드라이브를 즐기기 좋다. 특히 상전면 월포리 호수변에는 노란 유채꽃이 용담호를 배경으로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이 장관이다.


용담호에서 20여분 거리에 모래재도 있다. 완주군 소양면과 진안군 부귀면을 잇는 20㎞ 거리의 고갯길이다. 그 옛날 무주ㆍ장수ㆍ진안 사람들이 전주를 가기 위해 꼭 넘어야 했던 모래재는 '아름다운 길 100곳' 중 하나다. 이곳에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가 그림처럼 들어서 있다.


모래재 터널 못 미처 길게 이어진 메타세쿼이아길은 부귀면 세동리 큰터골 마을에서 원세동 마을까지 1.5㎞ 거리다. 담양 메타세쿼이아와 규모면에서 비교할 수는 없지만 여유 있게 돌아나가는 모양새가 범상치는 않다. 이국적인 메타세쿼이아 풍경이 사계절 다른 모습을 연출해 자전거 동호인이나 나들이 나온 사람들이 많다.


진안=글 사진 조용준 여행전문기자 jun21@


◇여행메모

△가는길=수도권에서 승용차를 이용해 진안 죽도로 간다면 경부고속도로와 통영대전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무주나들목에서 빠진다. 30번 국도를 따라 가다 신괴교차로에서 좌회전한 뒤 자산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아 10분쯤 가면 장전마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