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스타일 축구 보여준 모리야스 하지메 감독

[트렌드]by 아시아경제

독일에 2대 1로 역전승 대이변에 일본 열도 열광

2018년부터 대표팀 지휘봉 … 후반전 교체 카드 집중 투입

해외파 줄이고 세대교체 승부수 … 역전 골 만든 아사노 다쿠마 직접 발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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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모리야스 하지메 감독. 사진=연합뉴스

"축구는 경기하지 않으면 결과를 모른다. 지금까지의 세계 축구를 생각하면, 오늘의 승리는 '서프라이즈'라고 하는 것 생각하지만, 일본 축구의 레벨은 세계에 가까워지고 있다." - 모리야스 하지메 일본 대표팀 감독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아시아 국가들이 축구 강호를 연이어 격파하고 있다. 말 그대로 이변의 연속이다. 일본은 23일(이하 한국시간) 카타르 알 라얀의 할리파 인터내셔널 스타디움에서 독일과 벌인 월드컵 조별리그 E조 1차전에서 2-1 역전승을 만들어냈다.


이를 바라보는 대한민국 축구 팬들의 심경은 복잡하다. 22일 사우디아라비아는 '축구의 신' 메시가 있는 아르헨티나에 2-1 역전승을 거두며 각본없는 드라마를 써내려갔다. 일본은 '전차군단' 독일을 격파했다. 이제 전 세계 축구 팬들의 시선은 대한민국에 쏠리고 있다. 전날 경기에서 후반전 교체 출전해 대역전승에 힘을 보탠 미나미노가 경기를 마치고 한 인터뷰에서 "한국도 뭔가 특별한 일을 낼 능력이 있다"며 "이기는 것을 보고 싶다"고 한 배경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일본은 전반전 내내 독일에 밀리면서 끌려다니는 경기를 했다. 전반 45분 동안 독일은 슈팅을 12번이나 시도했다. 일본은 단 1개 밖에 시도하지 못했다. 결국 전반 32분 일카이 귄도안(맨체스터 시티)에게 페널티킥으로 선제골을 허용했다. 그렇게 독일이 무난하게 승리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사실로 굳어지는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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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오후(현지시간) 카타르 알라이얀의 할리파 인터내셔널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E조 독일과 일본 경기에서 독일 일카이 귄도안과 일본 다나카 아오가 공중볼을 다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그러나 반격이 시작됐다. 하지메 감독은 후반 10분 만에 교체 카드 3장을 사용했다. 이어 후반 28분 2명을 추가로 교체 투입하면서 교체 카드를 모두 사용했다.


먼저 교체 투입된 미토마 가오루(브라이튼), 미나미노 타쿠미(AS 모나코), 도안 리쓰(SC 프라이부르크)가 후반 29분 동점골을 합작해 냈다. 이어 후반 37분 또 교체 투입된 아사노 다쿠마(VfL 보훔)가 후방에서 날라온 롱패스를 그대로 슈팅으로 연결해 경기를 뒤집었다. 결국 하지메 감독의 작전은 '신의 한 수'가 됐다. 결과론적인 말이지만, 이 용병술을 두고 독일이 아닌 다른 국가 대표팀이라도 막아낼 수 있었을까 하는 얘기도 적잖게 나오고 있다.


앞서 하지메 감독은 경기 전 기자회견에서 "독일은 월드컵 우승국이고, 월드컵 우승은 우리의 목표이기에 독일은 우리의 롤 모델"이라면서도 "독일을 상대로 다른 어느 팀을 상대할 때와 같이 최선을 다해야 하며, 내 목표는 16강의 벽을 넘어 8강 진출"이라며 강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일본 스타일 축구 만들어냈다

올해 54세인 하지메 감독은 2018년부터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고 있다. 그는 현역시절 산프레체 히로시마의 간판 스타로 활약했다. 포지션은 수비형 미드필더였다. 최후방에 위치하며, 경기 내내 수비적인 역할을 해내는 포지션이다. 어느팀이건 최고의 테크니션들이 깔려있을 가능성이 크다. 천재적인 위치 선정이 요구되는 자리다. 은퇴할 때까지 공식전 434경기에서 48골을 기록하며 일본 사커 리그 2부 리그 준우승, J리그 1994 준우승, 일왕배 4회 준우승(1987, 1995, 1997, 1999) 등에 기여했다.


은퇴 후 8년 뒤 친정팀이었던 산프레체히로시마 감독직을 맡으며 감독 생활을 시작했다. 첫 시즌에 J리그 우승을 거두며 첫 번째 감독직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사임 전까지 세 번 우승을 거뒀으며, 2015년 FIFA 클럽 월드컵에서 3위를 이끌기도 했다. 성공적인 감독 생활을 이어간 그는 금메달이 기대됐던 도쿄올림픽에서 스페인에 패하며 4위를 거두자, 일본 국민들의 거센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다.


그러나 도시마 고조 일본축구협회장은 하지메 감독에 대한 믿음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며 그를 지지했다. 앞서 2018년 7월 고조 회장은 하지메 감독이 올림픽 대표팀 감독을 맡게 된 배경에 대해 "일본의 축구를 잘 알고 있어야 한다"라면서 "일본의 장점을 살려 일본 다움을 내는 것이 필요하다"라며 하지메 감독 선임 이유를 밝히기도 했다.


이른바 '일본 스타일' 축구는 '빠른 패스의 경기'로 정리할 수 있다. 스타 플레이어 한 명의 골 파워가 아닌 여럿이 협동해 공격을 전개해 나가는 플레이를 말한다. 이를 위해서는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조직력이 생명이다. 예컨대 해외파 선수들은 이런 유기적인 호흡을 맞추기가 어려울 수 있다. 하지메 감독이 해외파 선수들의 기용을 줄이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독일전에서 보여준 연속적인 선수 교체도 크게 보면, 개개인 선수의 교체가 아닌 교체 선수들이 한몸으로 움직여 압박하며 경기 흐름을 미세하게 조정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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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오후(현지시간) 카타르 알라이얀의 할리파 인터내셔널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E조 독일과 일본의 경기에서 2-1 승리를 거둔 일본 대표팀의 아사노 다쿠마가 경기가 끝난 뒤 기뻐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믿음은 곧 결실로 나타났다. 겸직 중인 일본 U-23 대표팀 감독으로 2018년 아시안 게임에서 일본의 16년만의 아시안 게임 은메달이자 2010년 대회 금메달 이후 8년만의 아시안 게임 메달 획득을 이끌어냈다. 이는 카타르 월드컵에서 독일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 경기가 결코 우연이 아닌 실력이었음을 입증하는 경력이기도 하다.


3년 후 자국에서 열린 2020년 하계 올림픽에서는 2012년 대회 이후 9년만에 일본의 4강 진출을 이끌기도 했다. 이어 일본의 7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을 만들어냈다. '삼바축구'하면 브라질을 떠올리듯 이제 일본 축구는 하지메 감독을 빼놓고는 설명할 방법이 없게 된 셈이다.


하지메 감독은 이번 카타르 월드컵을 앞두고 세대 교체 카드를 꺼내들었다. 2019 AFC 아시안컵에서 뛸 선수들을 철저히 본인 취임 후 평가전에서 실험한 선수 위주로 뽑았다. 더 이상 해외파 선수들에게 의지할 수 없다는 판단이 깔린 결정이었다. 그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컨디션적인 부분과 젊은 선수들로의 세대 교체를 고려했다"라고 밝힌 바 있다.


실제로 그는 벨기에 리그에서 시즌 10골째를 기록한 카마다 다이치를 뽑지 않았다. 대신 아사노 다쿠마를 발탁했고 그 배경으로 본인이 직접 독일에서 그의 플레이를 보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아사노 다쿠마는 전날 독일과의 경기에서 후반 37분에 교체 투입, 강한 오른발 슛으로 역전골을 만들어낸 바로 그 선수다. 이는 단순 선수 교체가 아닌 하지메 감독의 세대 교체가 만들어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성공적인 세대 교체에 이어 하지메 감독은 다양한 전략을 준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여러 가지 계획을 구상한 가운데 경기에 돌입했다. 잘못되었을 때의 준비도 하고 있었다. 한 점 차 승부가 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침착하게 후반에 경기 운영을 바꿔 승부를 걸 수 있는 상황을 만들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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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주요 조간 신문은 대표팀의 독일 격파 소식을 1면 톱기사로 다뤘다. 사진=연합뉴스

이를 두고 하지메 감독의 선수 경력을 접목해보면, 전방은 물론 후방을 책임지는 미드필더 포지션이 큰 역할을 한 것 아니냐는 견해도 있다. 결국 중원을 호령하며, 경기 전체를 운영했던 미드필더는 이번 월드컵 무대에서 명실상부 일본 스타일의 축구를 전 세계에 알렸다. 그의 독일전 승리 소감과 마찬가지로, 일본 축구 레벨이 세계에 가까워지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필리프 트루시에 전 일본 대표팀 감독은 "대단하다. 역사에 남을 이변"이라고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또 일본의 주요 조간 신문은 대표팀의 독일 격파 소식을 1면 톱기사로 다뤘다. 아사히는 '역사적 승리'라고 평가했다. 마이니치는 '도하의 환희'라고 보도했다.


외신도 일본 축구를 높게 평가했다. 영국 BBC는 "일본은 26%에 불과한 점유율로 독일을 꺾었다"며 "숫자만 보면 이해할 수 없는 결과지만, 후반전에는 일본이 더 좋은 경기를 했다"고 평가했다. 잉글랜드 국가대표 출신 BBC 해설자 크리스 서턴은 "후반부터 일본이 제대로 싸우기 시작했다"며 "독일은 리드를 빼앗긴 후 크게 흔들렸다"고 분석했다. 그는 "일본이 E조를 흥미롭게 만들었다"며 일본에 축하 인사를 전했다.


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2022.11.25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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