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금단의 숲길, 자유를 거닐다
54년만에 개방된 북악산 남측면 탐방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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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투데이 글·사진 김성환 기자 = 최근 개방된 북악산 남측면 탐방로를 걸어봤다. 북악산은 서울시민에게 ‘가깝고도 먼 산’이었다. 청와대 뒷산인 탓에 운명이 얄궂었다. 1968년 김신조 등 북한 무장공비들이 청와대 기습을 시도한 ‘1·21 사태’ 이후 군사상 보안을 이유로 일반인 출입이 금지됐다. 2007년 4월에야 한양도성 성곽을 따라 창의문안내소에서 말바위안내소에 이르는 성곽길이 개방됐다. 2020년 11월 성곽 북측면 탐방로가 열리고 지난 6일 마침내 남측면 탐방로도 개방됐다. 북악산을 두루 훑는 일이 54년 만에 비로소 가능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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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지점인 삼청(탐방)안내소는 평일인데도 북적였다. 청바지나 트레이닝복 차림의 ‘청춘’들도 눈에 띄었다. 들머리에서 만난 정성(35)씨는 “54년 만에 개방됐다니 궁금했다”며 “청와대 뒷산이라고 해서 더 와보고 싶었다”고 했다. 정씨처럼 호기심에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다. 삼청안내소 관계자에 따르면 요즘 이곳을 통과하는 입장객만 하루 평균 평일 800~1200명, 주말 약 2500명이다. “다른 안내소로 들어와도 지금은 대부분 이리로 나가요. 통과인원 전체를 따지면 숫자가 서너 배 늘어날 겁니다.” 여기서 인식표를 받았다. 나갈 때 반납해야 한단다. 군사지역의 흔적이 완전히 지워지지는 않았다. “탐방로만 개방한 겁니다. 길을 벗어나면 안 됩니다. 사진 찍을 때도 CCTV나 초소 같은 군사시설은 피하세요. 제제를 받을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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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로는 총 세 코스였다. 이른바 ‘법흥사길’ ‘만세동방길’ ‘숙정문길’이다. 다 합친 길이는 약 3km다. 길은 모두 청운대전망대에서 만난다. 한 번에 세 코스 전체를 돌아봤다. 방향은 이렇게 잡았다. 삼청안내소→법흥사터→청운대전망대→백악곡성(곡장)→숙정문→촛대바위쉼터→청운대전망대→만세동방바위(약수터)→삼청안내소. 백악곡성은 북악산 정상이다. 일대 성곽이 굽었다고 이름 붙었다. 여정에 포함한 이유는 풍광이 장쾌해서다. 여기선 낙산(좌청룡), 남산(남주작), 인왕산(우백호), 북악산(북현무)이 에두른 옛 한양의 모습이 오롯이 눈에 들어온다. 이 산들의 능선을 따라 18.6km의 한양도성 성곽이 뻗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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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흥사길에선 법흥사터가 인기였다. 탐방로 개방 하루 전 이곳을 찾은 문재인 대통령 내외가 주춧돌(초석)에 앉아 찍은 사진이 논란이 된 후 뜻하지 않게 유명세를 치르고 있었다. 정병오(63) 문화재해설사는 원래 주춧돌 사이로 길이 나 있었다고 했다. 이 일 이후 절터 옆을 돌아가게 바뀌었다. “신라 진평왕 때 지어진 절인데 절터는 문화재는 아닙니다. 한국전쟁 때 폐허가 됐어요. 1955년부터 스님들이 다시 세우려고 했어요. 주춧돌이랑 기왓장을 쌓아 뒀는데 얼마 뒤 김신조가 넘어왔죠. 이 돌이랑 저 기왓장이 전부 60년이 넘은 겁니다. 지붕 용마루도 있어요. 저 밑에 마을에서부터 이걸 다 지고 날랐다고 생각해 봐요. 대단하죠.” 1·21사태로 여러 가지가 달라졌다. “무장공비들은 개성을 출발한지 4일 만에 여기까지 왔답니다. 깜짝 놀랄 일이죠. 이 일때문에 우리나라에 특수부대가 만들어지고 사관학교가 생기고 예비군이 창설됐어요. 이전에는 경찰이 북악산 경비를 했는데 이 일 후에 군부대가 맡았다고 합니다. 탐방로는 다 군인들이 순찰 돌던 길이에요.”
법흥사길 구간은 대체로 완만하고 평이했다. 계곡을 따라 가는 길이라 옆으로 산만 보였다. 비가 온 후 계곡에 물이 많이 흐르면 운치가 있을 것 같았다. 청운대전망대 근처에서야 경사가 급해지고 시야가 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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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곡성은 청운대전망대에서 가까웠다. 여기선 눈이 번쩍 뜨였다. 북쪽으로 북한산이 훤하게 드러났다. 보현봉과 비봉이 우뚝 솟았고 이 사이에 사모관대를 닮은 사모바위, 승가사가 자리잡았다. 승가사는 부처님의 생애가 기록된 승탑으로 유명한 사찰이다. 돌아서면 남쪽으로 광화문 일대와 남산이 눈에 들어왔다. 청운대전망대에서 보는 것 보다 훨씬 더 장쾌했다. 정 해설사는 백두대간의 지맥이 보현봉을 지나 북악산을 거쳐 경복궁으로 이어진다고 했다. “지세로 보면 경복궁 자리가 용의 머리랍니다. 청와대는 용의 목이에요. 일제가 용의 머리를 누르려고 경복궁 자리에 조선총독부를 지었잖아요. 용의 목을 조르려고 청와대 자리에 총독관사를 지었어요. 청와대 전신이 총독관사였어요.” 인왕산으로 시원하게 뻗은 한양도성 성곽도 잘 보였다.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쓴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10’의 표지에 나오는 풍경이 이겁니다. 성벽을 잘 봐요. 능선에서 북쪽으로 조금 벗어나 있잖아요. 방어를 위해서예요. 적들에겐 높고 아군에게는 낮아서 싸울 때 유리해요. 전체가 다 저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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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정문길은 횡으로 나 있어 산책하듯 걸을 수 있었다. 반면 만세동방길은 능선 서너개를 타고 이어졌다. 1.2km로 이번에 개방된 탐방로 중 가장 길었다. 산행기분이 가장 잘 드는 코스였다. 오르락내리락 하는 재미가 있었다.
만세동방길은 코스 중간에 ‘만세동방 성수남극’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큰 바위가 있어서 붙은 이름이다. 정 해설사는 “궁궐이 무탈하고 왕이 장수하기를 기원하는 의미”라고 했다. 누가, 언제 썼는지 기록은 없단다. 바위 아래에는 한 뼘 깊이의 옹달샘도 있었다. “이승만 대통령이 여기서 물을 떠다 먹었다고 합니다. 물 맛이 좋았나봐요. 지금은 마실 수 없지만.” 얘기를 듣고 보니 갈수기에도 바위 틈에서 ‘졸졸~’ 흐르는 물이 신통했다. 여기서 조금 내려가니 푸른 철창 담장이 나타났다. 청와대 외곽의 담장이다. “청와대를 보겠다고 오는 사람이 있는데 이번에 개방된 탐방로 어디서든 청와대는 안보입니다. 이게 전부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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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1시에 출발해 오후 1시에 삼청안내소로 다시 돌아왔다. 법흥사터와 만세동방 바위를 제외하면 눈길 끄는 것은 없었다. 등에 땀이 찰 정도로 힘든 여정은 아니었다. “사람 손길 안탔으니 산삼이 있겠다”며 기대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경사가 급하고 바위가 많은 데다 모래 땅이 대분이어서 기대는 접어야 할 듯하다. 간혹 꽃사슴을 봤다는 이들은 있단다. 이명박 대통령 때 한 쌍을 방사한 것이 지금은 4~5쌍으로 늘었단다. 인적 드문 첫 개방 시간(오전 7시)에 돌아다니는 것을 봤다는 사람도 나왔단다. 이렇듯 소소한 기대와 호기심에 한번은 걸어볼 만했다. 지금 싱싱한 초록이 좋다. 북악산 다른 코스와 연계해 한나절 산책하듯 걸어도 좋을 것 같았다. 청와대가 개방되면 새로운 길이 뚫릴지도 모를 일이다. 내려오다 만난 김용태(73)씨는 “청와대가 개방되면 친구들과 다시 올 계획입니다. 탐방로가 청와대로 바로 연결되면 좋겠어요. 연결 안되더라도 삼청동에서 항아리수제비 먹고 도로 따라 걸어서 갈겁니다. 청와대는 꼭 한번 들어가 봐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