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몸도 마음도 맑아지는 '천년의 숲'
안면도자연휴양림. 안면도 소나무는 곧고 재질이 단단하며 수형이 아름다워 고려시대부터 나라가 관리했다. 안면도자연휴양림에서 이런 소나무를 구경할 수 있다./ 김성환 기자 |
아시아투데이 글·사진 김성환 기자 = 나무 한 그루가 큰 위안이 되기도 한다. 빛깔 고운 여린 꽃잎은 비바람에 후두둑 떨어진다. 나무는 버틴다. 영겁의 세월 동안 땅속 깊이 박은 뿌리로 풍파를 견딘다. 이게 든든해서 사람들은 꽃은 눈에 담지만 나무는 가슴에 심는다. 봄날 꽃구경도 좋지만 이런 나무가 모인 숲에도 가봐야 한다. 신록(新綠)이 화사하다. 알싸한 나무향도 이제부터 짙어진다. 걷기 편한 몇 곳을 추렸다.
안면도자연휴양림 ‘스카이워크’ 산책로. 키가 큰 소나무 허리 사이를 지난다./ 김성환 기자 |
충남 태안 안면도자연휴양림
충남 태안 안면도는 오래전부터 ‘소나무 섬’이었다. 섬 전체에 소나무가 참 많았다. 나무 질도 좋았다. 몸통이 곧고 키가 크며 재질이 튼튼했다. 우산 모양의 수형도 아름답다. 바다와 인접한 안면도는 소나무 운반도 편리했다. 그래서 안면도 소나무는 고려시대부터 나라의 관리 대상이됐다. 조선시대에는 ‘왕실의 숲’으로 지정돼 일반인의 출입이 엄격히 통제됐다.
안면도는 원래 섬이 아니었다. 태안반도 남쪽 끝에서 바다로 툭 튀어나온 곶이었다. 조선시대에 뭍과 이어진 길목을 끊고 물길이 났다. 삼남 지방에서 올라오는 조세물을 한양으로 옮길 때 거리를 줄이기 위한 목적이었다. 1970년대에 연륙교(섬과 육지를 잇는 다리)가 놓이며 다시 뭍과 연결됐다. 뭍에서 떨어져 고립됐던 시간 동안 소나무는 오히려 잘 보존됐다.
이런 소나무들은 일제강점기와 해방후 개발 시기를 거치며 많이 베어졌다. 그나마 안면도자연휴양림에선 울창한 솔숲을 구경할 수 있다. 솔숲 사이로 산책로가 잘 나 있다. 특히 스카이워크가 인기다. 키가 큰 소나무 허리 사이로 놓인 ‘하늘길’ 산책로다. 이 길에서는 밑에서 올려다 보는 것과 다른 풍경을 보게된다.
함양 상림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인공림이다. 활엽수가 많아 편안한 느낌을 선사한다./ 김성환 기자 |
경남 함양 상림
숲은 사람을 보호한다. 바닷가의 방풍림은 바람을 막아주고 강변의 호안림(護岸林)은 홍수를 예방한다. 사람들은 마을 들머리에 나무를 심고 숲을 조성해 액운도 쫓는다. 이러니 사람 사는 곳에는 항상 숲이 있었다.
경남 함양군 함양읍의 상림(上林·천연기념물 제154호)은 강물의 범람을 막기 위해 조성한 호안림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인공림이다. 1100여년 전 신라시대 최고의 문장가인 최치원(857~미상)이 이곳 태수로 있을 때 읍내를 관통하는 위천(渭川)에 둑을 쌓고 인근 백운산과 지리산 일대의 활엽수를 옮겨 심었다. 이게 숲의 시작이다. 원래는 길이가 5km에 달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언젠가 홍수로 둑의 중간이 파괴되면서 숲이 상림과 하림으로 나뉘었고 지금은 상림만 남았다. ‘윗숲’이 상림이다. 길이가 2km 남짓 된다. 상림에는 참나무, 느티나무, 개서어나무 같은 활엽수가 많다. 침엽수는 청량음료처럼 산뜻한 느낌을 준다. 반면 활엽수가 많은 숲은 푸근함을 안긴다.
상림은 함양사람들에게 고향이나 마찬가지다. 산중턱이 아니라 읍내 복판 평지에 있어 친숙했다. 숲을 보고 자랐다. “외지에 나가 있으면 가족이나 친구보다 상림이 더 보고 싶을 때가 있다”는 이들도 많단다. 산책로는 걷기가 참 좋다. 맨발로 걸어보라고 고운 흙을 깔아 놓은 구간도 곳곳에 있다. 주변에 볼거리도 많다. 역사인물공원에는 함양을 빛낸 인물들의 흉상이 있다. 숲 들머리의 ‘함화루’는 함양읍성의 남문이었다. 1932년에 현재 위치에 옮겨왔다. 오래된 누각이 숲의 운치를 더한다. 손목이 떨어져 나간 이은리 석불도 볼거리다. 함양읍 이은리 고구마 밭에 뒹굴던 것인데 옮겨 왔다. 손목의 행방을 궁금해 하는 이들이 많단다.
신령스러운 분위기의 제주 비자림/ 김성환 기자 |
제주 비자림
제주시 구좌읍의 비자림은 신령스러운 숲이다. 수령 500~800년의 비자나무 2800여 그루가 모여 숲을 이룬다. 비자나무는 바늘모양의 잎이 한자 ‘비(榧)’자를 닮았다고 붙은 이름이다. 주목과에 속한다. 주목은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을 간다는 나무다. 그만큼 더디게 자라고 죽어서도 쉬이 사라지지 않는다. 비자나무 1년에 고작 1.5cm 자란다. 그런데 다 자라면 높이가 25m에 이른다. 몸통의 둘레도 두 아름이 넘는단다.
비자림에는 아름드리 비자나무가 수두룩하다. ‘새천년 비자나무’는 수령이 820년이 넘었다. 오래된 나무 앞에 서면 장구한 세월의 무게에 경외감이 든다. 이런 나무가 모인 숲은 태고의 원시림 같다. 발을 들이면 현실에서 한발짝 벗어난 기분도 든다. 산책로에는 ‘송이’를 깔아놓은 구간도 있다. 송이는 화산쇄설물로 알칼리성의 천연 세라믹이다. 인체 신진대사 촉진, 산화방지 기능을 지녔고 새집 증후군을 없애는데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맨발로 걸어도 좋다.
비자림에는 비자나무 말고도 희귀 난과식물, 수피에 붙어 자라는 착생식물 등 다양한 식물들이 자란다. 두 나무가 붙어 자라는 비자나무 연리목도 볼거리다. 비자림은 바이러스 여파로 이용인원을 하루 1300명으로 제한하고 있다. 방문전에 확인이 필요하다.
‘천년의 숲길’로 명명된 월정사 전나무숲길/ 김성환 기자 |
강원 평창 월정사 전나무숲길
하늘 향해 쭉쭉 뻗은 옹골진 나무를 보면 숨통이 트인다. 강원도 평창 진부면 오대산 월정사 들머리에는 전나무가 늘어서 있다. 이 길이 그 유명한 ‘월정사 전나무숲길’이다. 일주문에서 금강교에 이르는 불과 1km 남짓한 이 길을 걷겠다고 멀리서 애써 찾아오는 이들이 적지 않다. 천년 고찰인 월정사가 있고 나무의 자태도 경건한 이 길에는 ‘천년의 숲길’이란 이름도 붙었다. 걸어보면 여운도 천년이 갈 것 같다. 드라마 ‘도깨비’(2016)에서 ‘김신’이 ‘고은탁’에게 사랑을 고백했던 곳도 이 길이다. 신비롭고 낭만적인 분위기란 얘기다. 지금은 울창한 숲길이 됐지만 시작은 아홉 그루의 전나무였다. 수령 500년 이상의 이 전나무들이 씨를 퍼뜨려 숲을 이뤘단다.
길이가 짧은 것은 문제가 아니다. 사람들은 정신까지 맑아지는 이 길을 왕복해서 걷거나 수십번씩 왔다갔다한다. 고즈넉한 이른아침 분위기가 좋고 순한 볕이 나무 사이를 가르는 늦은 오후의 풍경도 마음을 참 편안하게 만든다.
월정사는 신라시대 자장율사가 창건한 고찰이다. 한국전쟁 때 불타 오래된 건물이 없지만 고즈넉한 분위기가 좋다. 팔각구층석탑(국보 제48호), 석조보살좌상(보물 제139호)이 볼거리다. 걷기 좋아하는 이들은 월정사에서 상원사까지 이어진 약 8.9km의 ‘선재길’도 걷는다. 계곡 물길을 따라 가는 길인데 숲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