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하늘과 맞닿은 '겨울왕국'...만항재
만항재 낙엽송 숲. 눈 내린 숲은 눈꽃 화사하게 피는 ‘겨울왕국’이 된다./ 한국관광공사 제공 |
아시아투데이 김성환 기자 = 만항재(1330m)를 넘어가면 일망무제의 풍광에 가슴이 벅차도록 통쾌하다. 고산준봉이 첩첩이 펼쳐지고 파란 하늘이 손닿을 듯 가깝다. 이쯤 되면 단단한 각오로 등산을 해야 하나 덜컥 겁이 나지만 뜻밖에도 자동차가 쉬이 닿는다. 우리나라 고원 드라이브 코스의 정수로 만항재를 꼽는 사람들이 많다.
만항재는 강원도 정선, 영월, 태백의 경계를 이루는 고개다. 백두대간 주능선에 속한 함백산(1573m)의 턱밑을 가른다고 보면 된다. 그런데 정선 고한과 태백 화방재(어평재)를 연결하는 414번 지방도가 만항재를 넘는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자동차도로가 414번 지방도 만항재 구간이다. 오래전 탄광 개발이 시작될 때 석탄을 운반하기 위해서 낸 길인데 시간이 흐르며 아스팔트로 말끔하게 포장됐다. 석탄을 나르던 옛길이 요즘은 멋진 드라이브 코스로 사랑받고 있다. 사람들은 만항재를 굽이굽이 넘어가며 백두대간의 장쾌한 풍광을 눈에 담고 가슴 먹먹함도 해소한다.
함백산 능선을 넘는 414번 지방도 만항재 구간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난 자동차도로다./ 한국관광공사 제공 |
풍광도 풍광이지만 만항재는 사계절 ‘꽃구경’하기 좋다. 정상부에 ‘천상의 화원’과 ‘하늘숲 공원’이 조성돼 있다. 천상의 화원과 이 주변에는 이른 봄부터 가을까지 야생화가 지천으로 핀다. 특히 여름꽃이 화사하다. 하늘숲 공원 한편에는 낙엽송이 많다. 겨울에는 눈꽃, 서리꽃(상고대) 화사하게 피는 낙엽송 숲이 인기다. 고도가 높아서 기온이 낮고 바람이 강한 날 서리꽃은 한낮까지도 피어 있다. 낙엽송은 정선 일대에 석탄산업이 번창할 때 탄광에 쓰일 갱목을 생산하기 위해 심어진 것들이다. 곧고 빨리 자라서 갱목으로 가공하기 좋다. 사람들은 편안하게 자동차를 타고 와서 꽃과 순백의 세상을 만끽하고 간다. 다만 눈이 많이 내린 후 제설작업이 더딜 경우 도로가 통제될 수 있다.
만항재 ‘하늘숲공원’/ 한국관광공사 제공 |
함백산까지 트레킹을 하는 사람도 있다. 만항재에서 약 1시간을 걸으면 함백산 정상에 닿는다. 길이 험하지 않은 데다 경사도 심하지 않아 걷기에 무리가 없다. 오르기가 수월하지만 함백산은 우리나라에서 여섯 번째로 높다. 한라산(1950m), 지리산(1915m), 설악산(1708m), 덕유산(1614m), 계방산(1577m) 다음이다. 해돋이 명소로 유명한, 인근의 태백산(1567m)보다 높다. 비록 태백산의 명성에 가려져 있지만 백두대간 주능선에 속해 있어 산 좋아하는 이들은 그냥 지나치지 않는 함백산이다. 당연히 정상에서 본 풍광도 장쾌하다. 남쪽으로 태백산, 북쪽으로 금대봉과 매봉산, 서쪽으로 백운산, 두위봉, 장산 등 해발 1400m 이상의 고봉들이 첩첩이 늘어섰다. 꽉 막힌 일상의 답답함을 해소하는데 이만한 풍광도 없어 보인다. 맑은 날에는 동해의 해돋이도 보인다. ‘산꾼’들은 만항재에서 함백산을 거쳐 두문동재(1268m)까지 내쳐 걷는다. 4시간 남짓 걸리는 코스다. 오르락내리락하며 걷는 재미가 있어 지루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두문동재 역시 만항재와 더불어 함백산 능선을 넘는 대표적인 고개다.
정암사 수마노탑. 지붕돌 처마에 달린 풍령(風鈴)이 눈길을 끈다./ 한국관광공사 제공 |
만항재를 찾은 사람들은 고개 아래에 있는 정암사도 들른다. 신라 자장율사가 645년에 창건했다고 전하는데 마음 살피기 좋은 사찰이다. 단출하지만 분위기가 고즈넉하다. 눈 내린 후에는 더 그렇다.
정암사는 적멸궁(적멸보궁)과 수마노탑이 유명하다.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모신 법당이 적멸보궁이다. ‘삼국유사’는 이렇게 전한다.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기도를 드리다가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석가모니의 진신사리와 금란가사를 받아 돌아왔다. 이 진신사리를 나누어 봉안한 곳이 정암사를 비롯해 경남 양산의 통도사, 평창 오대산 상원사, 인제 설악산 봉정암, 영월 사자산 법흥사 등 5곳이다. 이른바 자장율사의 5대 적멸보궁 사찰이다. 진신사리가 부처이므로 적멸보궁에는 불상이 없다. 대신 적멸보궁 바깥에 사리탑을 봉안한다.
정암사 적멸궁/ 한국관광공사 제공 |
정암사에서 진신사리를 봉안한 탑으로 전하는 것이 수마노탑(국보 제332호)이다. 적멸보궁 뒤로 난 가파른 계단 길을 따라 오르면 나온다. 수마노탑은 석회암 벽돌을 하나씩 9m 높이로 차곡하게 쌓은 7층 모전석탑이다. 진신사리가 봉안된 탑 중에서 유일한 모전석탑이다. 이 가치를 인정받아 지난해 보물에서 국보로 승격했다. 수마노탑은 또 탑의 지붕돌 처마에 달린 풍령(風鈴·처마에 다는 작은 종)이 유명하다. 바람을 타고 흐르는 청아한 풍령 소리를 들으려고 정암사를 찾는 이들도 제법 있다. 수마노탑이 있는 곳에서 보는 정갈한 사찰의 모습도 운치가 있다.
나중을 위해 하나만 추가하면, 정암사 인근에 삼탄아트마인이 있다. 옛 한보광업소 삼척탄좌가 있던 자리에 들어선, 폐광 자원을 그대로 활용한 문화예술공간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임시휴관 중이지만 훗날 정암사와 함께 돌아보면 좋을 곳이다. 삼척탄좌는 1964년부터 38년간 운영되다 2001년에 폐광됐다. 옛 삼척탄좌의 자료와 기록물을 비롯해 세계 각국에서 수집한 다양한 예술 작품들을 소개한다. 특히 석탄을 캐 올리고 실어 나르던 조차장 시설이 눈길을 끈다. 수갱을 비롯해 탄차, 컨베이어, 레일, 광차 등을 볼 수 있다. 삼탄아트마인은 폐광의 특별한 분위기 때문에 많은 드라마와 영화의 배경이 됐다. 큰 인기를 얻었던 드라마 ‘태양의 후예’(2016)의 촬영지로서 전국적인 유명세를 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