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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

[여행] '겨울의 귀족' 자작나무가 있는 풍경

by아시아투데이

인제 원대리 자작나무 숲

횡성 자작나무 숲 미술관

태백 삼수령, 두문동재

경기 광주 화담숲 '자작나무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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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제 원대리 ‘속삭이는 자작나무 숲’. 탐방로가 잘 조성돼 있어 숲으로 깊숙이 들어갈 수 있다./ 한국관광공사 제공

때로는 나무 한 그루가 큰 울림을 준다.


자작나무는 ‘겨울의 귀족’이다. 눈밭에 새하얀 수피(樹皮)를 드러낸 자태가 우아하기 그지없다. 계절마다 다른 빛깔의 이파리와 하얀 몸통이 어우러지며 연출하는 컬러풀한 모습도 볼만하지만 특히 순백이 오롯이 드러나는 겨울이 하이라이트다. 이런 나무들이 모인 숲은 그래서 ‘숲의 여왕’으로 불린다. 영화 ‘닥터 지바고’(1978)에는 시베리아의 설원에 펼쳐진 자작나무 숲이 등장한다. 여러 사람의 애를 태운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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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제 원대리 ‘속삭이는 자작나무 숲’/ 한국관광공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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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제 원대리 ‘속삭이는 자작나무 숲’/ 한국관광공사 제공

자작나무는 가진 것을 아낌 없이 버린 후에 생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맞는다. 이파리, 가지를 다 떨구고 나서야 순백으로 빛난다. 하늘 향해 올곧게 뻗은 모습도 고상하다. 그런데 여기에도 수고가 따른다. 자작나무는 우듬지를 제외하고 스스로 가지를 친다. 볕을 많이 받기 위해서다. 쓸데 없는 가지를 잘라낸다. 여분의 힘으로 몸통을 밀어 올려 태양에 가까이 간다. 가지가 떨어져 나간 자리에는 검은 생채기가 남는데 이게 또 몸통을 더 하얗게 보이게 만든다. 하얀 숲은 황량한 겨울 산야에 생기를 불어 넣는다. 바람이 매서워도 풍경은 순하다. 더불어 힘을 모으면 계절도 거스를 수 있나 보다.


자작나무를 보면 그래서 ‘버리는 일’의 유용(有用)을 새삼 곱씹게 된다. 가끔은 사는 것도 이래야 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부질 없는 것은 떨어내고 내려 놓을 것은 내려 놓아야 숨통이 트이기 마련이다. 내실은 다져야 한다. 자작나무는 쓰임새가 많다. 불이 잘 붙는 껍질은 땔감으로 썼다. 불을 붙이면 ‘자작자작’ 소리가 난다고 자작나무다. 껍질은 또 한약재로 쓰였다. 껌으로 익숙한 자일리톨 성분 역시 자작나무에서 추출된다. 수액은 고로쇠(骨利水)로 마셨다. 목재는 튼실해 가구 만드는데 쓰였다. 경남 합천 해인사 팔만대장경의 목판 일부도 자작나무로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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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 삼수령 일대의 자작나무 숲. 기하학적 무늬가 아름답다. / 김성환 기자

겨울에는 자작나무를 한번쯤 알현해야 한다. 숲에 들면 삶의 무게가 조금 덜어진다. 바이러스로 꼬여버린 일상을 버틸 힘도 조금 생긴다.


어디로 갈까. 요즘은 전국에 자작나무 숲이 제법 있다. 강원도에 특히 많다. 한국전쟁 이후 늘어난 민둥산 조림을 위해 1970~90년대 자작나무가 많이 심어졌다. 이 나무들이 제법 자라서 우아한 볼거리가 됐다.


전국적으로 이름난 곳이 인제 원대봉(684m) 능선의 자작나무 숲이다. 산림청과 마을주민들이 1989년부터 1995년까지 67만 그루의 자작나무를 심어 조성했다. 이국적인 풍경이 입소문을 타면서 알음알음 찾는 이들이 늘었다. 2012년에 일부 구역이 정식으로 개방 됐는데 이게 ‘속삭이는 자작나무 숲’이다. 숲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 매력이다. 숲에 들어 숲을 느끼는 것은 멀리서 보는 것과 딴판이다. 진입로와 탐방로가 잘 정비돼 구경이 편하다. 전망대, 쉼터, 가로숲길, 인디언집, 생태연못 등 아이들, 연인들이 좋아할 만한 시설도 있다. 숲 까지 진입로도 잘 정비됐다. 들머리에서 한갓진 임도를 따라 1시간쯤 가면 숲에 닿는다. 경사가 완만하고 폭이 넉넉해 트레킹 코스로 괜찮다. 겨울에는 아이젠을 챙기는 겅시 좋다. 산불예방을 위해 15일까지 입산이 통제되니 이후에 찾아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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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90년대 강원도 일대에는 민둥산 조림을 위해 자작나무가 많이 심어졌다. 태백에도 자작나무가 많다./ 김성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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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성 ‘자작나무 숲’ 미술관 카페. 흑과 백이 강렬한 대조를 이루는 자작나무 그림이 걸려있다./ 김성환기자

태백에도 자작나무가 많다. 삼수령, 두문동재 일대가 포인트다. 삼수령은 한강, 낙동강, 오십천이 시작되는 고개다. 고개에 떨어진 빗방울이 어느 방향으로 흐르느냐에 따라 다른 이름이 붙는다. 시내에서 황지교 사거리를 지나 35번 국도변으로 자작나무 군락지가 모습을 드러낸다. 두문동재는 태백과 정선(고한읍)의 경계가 되는 고개다. 지금은 두문동재 아래로 터널이 뚫렸다. 터널 입구에서 옆으로 난 옛길을 타야 두문동재 정상에 닿는다. 차를 타고 가다보면 자작나무 숲이 보인다. 기하학적 무늬가 눈을 희롱한다.


횡성 우천면에는 ‘자작나무 숲’ 미술관이 있다. 차 한잔 마시면서 자작나무를 구경하기 좋은 곳이다. 화가였던 원종호 관장(64)이 1990년 백두산 여행길에 본 자작나무 반했다. 이듬해 1만 2000주를 지금의 미술관 자리에 심고 지금까지 가꿨다. 언젠가 만난 그는 “겨울이 되면 자작나무의 하얀 빛에 애잔한 끌림이 있다”고 했다. 이곳저곳 돌아보면 마음이 참 편안해진다. 인공의 손길이 느껴지지 않는 분위기가 매력이다. 4월 셋째주까지 화·수·목요일은 휴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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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광주 화담숲 ‘자작나무 숲’. 1000여 그루의 자작나무가 숲을 이룬다./ 김성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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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광주 화담숲 ‘자작나무 숲’. 1000여 그루의 자작나무가 숲을 이룬다/ 곤지암리조트 제공

서울서 가까운 곳은 없나. 경기도 광주의 화담숲이 있다. 1000여 그루의 자작나무가 숲을 이룬다. 강원도 여느 자작나무 숲에서 느껴지는 감성을 체험하기에 모자람이 없다. 화담숲은 정갈하게 가꿔진 생태수목원이다. 자작나무 말고도 135만5000㎡(41만평) 대지에 4000여종의 식물이 뿌리를 내리고 자란다. 하나씩 살피며 구경하다 보면 퍽퍽한 일상의 먹먹함이 조금은 풀어진다. 화담숲은 재정비를 위해 휴관 중이다. 오는 24일 재개장한다.


문 밖으로 나서기가 조심스럽다면 일단 가슴에 품는다. 눈 내리고 사는 일이 녹록해지면 찾아가 본다.


​아시아투데이 김성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