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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

[여행] 호수 건너 숲길 지나 추억을 찾아...춘천 청평사

by아시아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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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평사 가는 길. 나무가 많아 눈이 내리면 하얀 눈꽃이 핀다.

사람이 그립고 사랑도 그립다. 마음이 헛헛하니 자꾸 지난날이 그리워진다. 강원도 춘천 북산면 소양호 가장자리 오봉산(779m) 아래 청평사(淸平寺)가 있다. 이 정갈한 절집을 몇 차례 찾아간 적이 있다. 그때마다 기분이 참 좋아져서 돌아오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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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평사 계곡의 백미로 꼽히는 구송폭포.

왜 그랬을까. 배(船)를 타고 가는 ‘맛’이 좋았다. 청평사는 여정이 기억에 남는 절이다. 여객선을 타고 맑은 호수를 건넌 후 계곡 옆으로 난 조붓한 숲길을 짚어가야 만난다. 그렇다고 섬(島)에 있는 절은 아니다. 뭍에 있다. 뱃길이 육로보다 빠르고 편했다. 1973년 소양(강)댐이 완공되며 호수 물길이 절 들머리까지 들어왔다. 댐 인근 소양호선착장에서 출발하면 약 15분 만에 청평사선착장에 닿는다. 육로는 느리고 불편했다. 배후령 고갯길을 넘어야 하는데 시간이 배 이상 걸렸다. 눈 내리고 도로가 얼어붙는 겨울에는 위험이 컸다. 게다가 ‘배를 타고 들어가는 절’은 여행자의 감성을 자극했다. 일상탈출의 해방감을 만끽할 수 있었다. 산과 호수가 빚는 청정한 풍광에 숨통이 트이고 정신이 맑아졌다. 배를 타고 가면서 그리운 것을 실컷 그리워할 수도 있었다. 이렇게 뱃길이 청평사 여정의 공식 루트가 됐다. 짧은 여정이 잊지 못할 여행으로 기억되는 이유다.


‘뱃길 효과’는 지금도 유효하다. 2012년에 배후령을 관통하는 터널이 뚫렸다. 육로도 빠르고 편해졌다. 그렇지만 여객선을 찾는 숫자는 꾸준하다. 오봉산·청평사 여객선 관계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여파로 이용객이 줄긴 했지만 이전까지 꽤 많았다”며 “호수가 얼지 않고 안개가 심하게 끼지 않는 이상 여객선은 겨울에도 운항한다. 눈 내리면 여객선이 자동차보다 편하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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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평사 거북바위. 거북이가 물을 바라보고 있으면 청평사가 크게 번성한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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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평사 계곡에는 나무와 바위가 많다. 눈이 내리면 몽환적인 풍경이 연출된다.

청평사선착장에서 청평사까지 약 40분쯤 걸어야 한다. 계곡을 따라가는 길이 또 마음을 순하게 만들었다. 바위와 수목이 어우러진 계곡은 계절마다 새로운 풍경을 보여준다. 봄에는 화사한 신록이 눈부시고 여름에는 짙은 녹음이 뙤약볕을 가려준다. 가을에는 화려한 단풍무리가 마음을 뒤흔들어 놓는다. 겨울 풍경도 좋다. 나무가 많은 계곡에는 눈 내리면 눈꽃이 지천으로 핀다. 풍경을 좇기 바빠 세속의 근심을 부여잡고 미간을 지푸릴 겨를이 없다.


산책하듯 쉬엄쉬엄 걷기에는 청평사까지가 딱 괜찮다. 산 좋아하는 사람들은 청평사 옆으로 난 등산로를 따라 오봉산 정상까지오르기도 한다. 정상에서는 호수와 준봉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해탈문, 적멸보궁, 관음봉을 거쳐 다시 청평사로 돌아오는 코스를 걷기도 한다. 오봉산은 높지 않지만 산세가 험하고 바위가 많아 산행을 위해서는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겨울에는 더 그렇다.


계곡의 백미는 구송폭포다. 폭포 주변에 아홉 그루의 소나무가 자라고 있다고 ‘구송(九松)’이라 이름 붙었다. 물이 떨어질 때 아홉 가지 소리가 난다고 해 ‘구성(九聲)폭포’로 불리기도 한다. 안내판은 구송폭포를 ‘삼악산 등선폭포, 문배마을 구곡폭포와 함께 춘천의 3대 폭포’로 소개한다. 폭포 양쪽으로 수직의 절벽이 병풍처럼 펼쳐지는데 물줄기와 직벽, 소나무가 어우러진 모습이 웅장하면서도 우아한 멋이 있다. 힘차게 떨어지는 물줄기가 마음을 후련하게 만든다. 청명한 폭포 소리는 또 귀를 맑게 한다. 칼바람에 물줄기가 꽁꽁 얼어붙은 모습도 그럭저럭 볼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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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평사. 가운데 보이는 문(門)이 상사뱀이 벼락을 맞았다는 전설이 전하는 ‘회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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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평사 회전문을 통해 보이는 설경이 운치가 있다.

길을 따라가면 ‘공주굴’과 ‘공주탑’(삼층석탑)도 나온다. ‘공주설화’와 관련이 있다. 조금씩 달리 전하는 설화는 결국 이뤄질 수 없었던 사랑과 해탈에 관한 얘기다. 중국 당나라 태종의 딸이 평민 청년과 사랑에 빠졌다. 이를 안 태종이 격노해 청년을 죽였다. 청년은 상사뱀으로 환생해 공주의 몸에 붙어 살았다. 절대 떨어지지 않았다. 사랑했지만 상사뱀을 달고 살 수 없었던 공주는 신라의 영험 있는 절에서 기도를 올려보라는 노승의 권유로 청평사까지 오게됐다. 이곳에 머물며 공덕을 쌓아 마침내 상사뱀을 떼어낸다. 공주에게서 떨어진 상사뱀이 공주를 찾아 경내로 들어가다가 회전문(回轉門·보물 제164호)에서 벼락을 맞아 죽는다. 공주굴은 공주가 청평사에 도착해 하룻밤 묵었다고 전하는 곳이다. 삼층석탑은 공주가 뱀이 돼 죽은 청년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며 세운 탑으로 전한다. 공주가 몸을 깨끗이 씻었다는 ‘공주탕’은 요사채 담벼락 앞 계곡에 있다.


공주설화와 회전문은 홍상수 감독의 영화 ‘생활의 발견’(2002)의 중요한 모티브가 됐다. 춘천에 간 이튿날 아침에 주인공 ‘경수’가 선배와 소양호의 통통배를 타고 청평사로 향할 때 선배가 경수에게 회전문 이야기를 들려준다.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 정서적 충격으로 다가왔던 영화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오래된 영화가 악착같이 끄집어낸 추억이 더 반갑게 느껴진다.


한갓진 산사를 거니는 일도 마음을 순하게 만들었다. 겨울 청평사에는 사람이 많지 않다. 마음 살피기도 수월해진다. 청평사는 크지 않다. 몇몇 가람이 전부다. 고려 광종 24년(973)에 백암선원으로 창건됐다가 조선시대 보우선사가 중창할 때 청평사로 이름이 바뀌었다. 고려시대에는 221칸의 가람를 갖출만큼 크게 번성했다고 전한다. 한국전쟁으로 전각 대부분이 소실되고 1970년대부터 보수를 거쳐 현재의 모습이 됐다. 상사뱀이 벼락을 맞아 죽었다는 회전문이 가장 유명한 볼거리다. 회전문은 요즘 빌딩 입구에 설치된 빙글빙글 돌아가는 그런 문이 아니다. 경전을 보관하던 회전식 경장인 윤장대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건물이다. 윤장대를 한 번 돌리면 경전을 한번 읽은 것이다. 절에 들어설 때 일주문에 이어 두 번째로 만나는 사천왕문을 대신하는 것으로 중생들에게 윤회전생을 깨우치려는 의미로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어쨌든 회전문은 조선중기 건축 양식의 변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로서 가치가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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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양호의 겨울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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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평사 가는 여객선. 호수가 얼지 않는 한 여객선은 운항한다.

마지막으로 청평사에는 오래된 것에서 느껴지는 편안함이 있었다. 소양댐이 완공되면서 유명해진 청평사는 참 오래된 관광지다. 춘천이 ‘청춘’들의 아지트로 자리매김했던 1970~80년대에 소양호와 청평사는 단연 최고의 관광지였다. 마음 뒤숭숭할 때 기차에 올라 춘천으로 향했던 이들이 많았을 거다. 이 중에는 배를 타고 소양호 물길을 따라 청평사를 찾았던 이들도 있었을 거다. 오래된 것은 시간을 거꾸로 돌려놓는 힘이 크다. 1990년대 가수 김현철의 노래 ‘춘천 가는 기차’를 들을 때 지금도 ‘심쿵’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오래된 여행지에 가서 지난날을 게워내 곱씹다 보면 일상의 생채기가 시나브로 아문다. 시간이 흐르면서 경춘선 기차가 복선전철로 바뀌고 ‘경춘국도’는 고속도로에 밀려 ‘옛길’이 됐다. 그래도 호수 건너고 계곡 길을 걸어 만났던 절집의 여운이 지금까지 남는 것은 사는 일이 여전히 녹록하지 않기 때문일 거다. 다시 생각해보면, 청평사 찾아가는 길에서는 헛헛함이 조금 덜어졌던 것 같다.


​아시아투데이 글·사진 김성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