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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

[여행] 숲길 걷고 별 보며 '힐링'...좌구산자연휴양림

by아시아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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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구산자연휴양림의 명상구름다리. 지상에서 50m 높이에 설치된 230m 길이의 현수교다./ 김성환 기자

증평/ 아시아투데이 글·사진 김성환 기자 = 요즘 여행 패턴을 보자. 과거와 조금 달라졌다. 유명 관광지 대신 소박하지만 제대로 된 ‘힐링’을 좇는 여행자가 많아졌다. 한갓진 숲과 바닷가, 인적드문 산책길이 여행의 목적지로 부상했다. 웰니스관광도 관심대상이 됐다. 여행을 통해 힐링을 추구하는 체험관광이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 역시 2017년부터 웰니스관광지를 엄선해 육성 중이다. 지금까지 전국 51곳이 선정됐다. 충북 증평의 좌구산자연휴양림도 이 가운데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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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구산자연휴양림 명상구름다리/ 김성환 기자

좌구산자연휴양림은 낮에는 산림욕을 즐기고 밤에는 별을 보며 힐링할 수 있는 곳이다. 일단 숲 얘기를 하면, 좌구산(657m)에 조성된 휴양림이니 숲이 좋다. 숲에서 얻는 것은 참 많다. “숲을 보고 또 숲에 들면 눈(目)이 상쾌해진다. 초록색은 피로를 덜어주는 색깔이라 그렇다. 눈이 상쾌해지면 정신이 맑아지고 집중력이 높아진다. 생각이 또렷해지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숲에는 또 다양한 소리가 있다.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 같은 것이다. 음악이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어주듯 이것도 몸과 정신의 기운을 맑게 한다. 이게 ‘백색소음’이다. 게다가 피톤치드(식물이 내뿜는 항균물질)는 면역력을 키운다. 지금부터 여름까지가 피톤치드가 많이 뿜어져 나올 때다. 세로토닌이나 엔도르핀 같은 ‘행복호르몬’도 많이 나온다.” 윤기숙 증평군 산림치유사의 설명이다.


숲에서 마음이 편안해지는 이유도 있단다. ‘바이오필리아’ 때문이란다. 미국의 사회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은 인류에게는 자연에 의지하려는 유전자가 있다고 했다. 정리하면 이런 얘기다. 농경 생활 이전까지 인류는 대부분의 시간을 숲에서 수렵과 채취로 살아왔다. 이 때문에 우리 몸과 마음은 여전히 숲의 생활에 최적화된 유전적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이게 바이오필리아다. 그래서 숲에 들면 안정감과 행복감이 든단다. 숲으로 회귀하려는 욕구가 더 커진 요즘이다. 여행자는 좌구산자연휴양림에서 숲을 즐기고 명상하며 몸과 마음을 추스른다. 산 아래에서 정상까지 등산로가 잘 정비돼 있고 산허리를 따라 난 탐방로 주변의 풍경도 운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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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이 좋은 ‘좌구산 카페’/ 김성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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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구산 카페’ 마당에서 본 풍경/ 김성환 기자

좌구산자연휴양림에는 ‘숲 명상의 집’이 있다. 다양한 산림치유 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 숲을 ‘잘’ 즐기고 싶을 때 도움이 된다. 대표적인 것이 힐링명상 프로그램이다. 빛, 물, 바람, 소리 등을 이용해 건강 회복을 돕는다. 참가자들은 숲에서 요가를 하고 꽃과 나무 향을 맡으며 산책하고 명상한다. 해먹에 누워 느림을 체험하고 꽃차 시음과 족욕으로 피로도 푼다. 꽃차를 직접 덖고 공예체험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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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구산자연휴양림 자작나무숲길/ 김성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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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구산자연휴양림 숙박시설/ 김성환 기자

물론 탐방로가 잘 정비돼 있는 숲은 그냥 다녀도 좋다. 사람들은 ‘숲 명상의 집’에서 좌구산천문대까지 이어진 ‘바람소리길’ 구간을 많이 걷는단다. 계곡 따라 걷는 수변산책로도 좋고 ‘명상구름다리’ 건너 자작나무치유숲까지 이어지는 길도 분위기가 고즈넉하다. 각 탐방로는 다 연결된다. 길 잃을 걱정은 안 해도 된다. 내키는 만큼만 걸어도 충분히 숨통이 트인다.


명상구름다리는 꼭 건너본다. 좌구산자연휴양림의 랜드마크다. 지상에서 약 50m 높이에 설치된 현수교인데 길이가 230m에 이른다. 건너면 다리가 출렁거려서 재미가 있다. 허공에서 맞는 바람도 상쾌하다. 초록의 산과 들판이 펼쳐지는 전망도 가슴을 후련하게 만든다. 다리는 거북바위공원과 연결된다. ‘좌구산’은 거북이가 앉아 있는 형태라고 붙은 이름이다. 곳곳에 거북이와 토기 조형물이 많다. 공원 뒤에는 자작나무숲이 있는데 사위가 한갓져서 마음 살피기 좋다. 짜릿한 즐길거리도 있다. ‘줄타기’는 줄에 매달려 활강하는 레저시설이다. 짚라인과 비슷한데 이곳 줄타기는 다섯 차례나 환승하며 좌구산 자락을 하강한다. 길이도 1.2km나 된다. 숲에는 하룻밤 묵을 통나무집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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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구산천문대. 국내 천문대에 설치된 굴절망원경 가운데 가장 큰 것이 이곳에 있다/ 김성환 기자

아이들이 특히 좋아하는 것이 좌구산천문대다. 천체투영실, 전시실, 주관측실과 보조관측실 등을 갖췄다. 천체투영실에선 천장에 투영되는 밤하늘의 별자리를 본다. “우리 은하는 약 4000억개의 별로 이뤄졌고 이런 은하가 우주에 약 1000억개 이상 있다”는 설명도 듣는다. 전시실에는 단순히 보기만 하는 것이 아닌, 체험이 가능한 전시물이 많다. 투명한 유리구슬에 손을 갖다 대면 이 안에서 천둥 치듯 빛이 번쩍번쩍 난다. 이렇게 플라즈마(이온화된 기체)를 체험하는 식이다. 주관측실에는 직경 356mm의 굴절망원경이 설치됐다. 국내 천문대에 설치된 굴절망원경 가운데 가장 크다. 별은 겨울밤에 잘 보이지만 하늘에 항상 떠 있다. 게다가 약 2개월에 한 번꼴로 천체 현상이 일어난다니 언제든 찾을만하다. 26일 오후에는 개기월식(달이 지구의 그림자에 가리는 현상)이 펼쳐진다. 정확한 시간은 오후 7시 36분부터 8시 9분까지로 예상된다. 별을 보면 동경의 대상을 게워내 곱씹게 되고 마음도 차분해진다. 이것도 힐링이다.


바이러스가 느닷없이 일상으로 침투하면서 웰니스관광에 대한 관심이 부쩍 커졌다. 한국관광공사는 오는 2027년에 웰니스관광 산업 규모가 1428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한다. 좌구산자연휴양림은 아이 손 잡고, 또 연인끼리 훌쩍 다녀오기 괜찮은 웰니스관광지다. 김관미 한국관광공사 의료웰니스팀장은 “계절에 맞는 프로그램 개발을 적극 지원해 여행자에게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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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기저수지 ‘등잔길’. 저수지를 에둘러 나무 덱 탐방로가 조성됐다./ 김성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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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기저수지 ‘등잔길’. 물속에 뿌리를 내린 나무들이 운치를 더한다./ 김성환 기자

좌구산에 가면 삼기저수지와 김득신문학공원을 함께 둘러본다. 좌구산 아래 삼기저수지는 주변 마을에 농사 지을 물을 대기 위해 만든 작은 저수지다. 저수지를 에두르는 약 3km의 ‘등잔길’이 조성됐는데 나무 덱 탐방로가 잘 만들어졌고 경사가 거의 없어 걷기 편한다. 풍경도 좋다. 버드나무들이 물 속에 뿌리를 내리고 자란다. 문체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2021년 봄철 비대면관광지다. 이에 앞서 2015년에는 ‘걷기 좋은 전국 10대 명소’에도 이름을 올렸다. 옛날에 한 처녀가 과거를 보러 떠난, 사랑하는 선비를 기다리며 3년 동안 등잔불을 들고 마중나가던 길에서 ‘등잔길’이라는 이름을 따왔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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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지만 정갈한 김득신 문학공원/ 김성환 기자

등잔길 곳곳에 조선 중기의 시인인 백곡 김득신(1604~1684)의 동상이 있다. 김득신은 ‘조선의 독서왕’이다. 어릴 때 천연두를 앓아 10세가 돼서야 글공부를 시작했다. 학업 진도도 느렸다. 그러나 독서에 매진해 39세에 과거 소과에 붙었고 59세에는 문과에 합격했다. 나중에는 풍기군수를 거쳐 종2품 벼슬인 가선대부까지 올랐다. 그가 적은 ‘독수기’(讀手記·글을 읽은 횟수를 기록한 책)을 보면 1만 번 이상 읽은 책이 36권이나 등장한다. 백 번 읽어 외우지 못하면 천 번을 읽고 천 번을 읽어도 깨치지 못하면 만 번을 읽었단다. 삼기저수지에서 김득신문학공원이 가깝다. 그의 묘소와 시비가 있는 정갈한 ‘쉼터’다. 그의 묘비에는 “나보다 어리석고 둔한 사람도 없겠지만, 결국 이룸이 있었다. 모든 것은 힘쓰는 데에 달려있을 따름이다”라고 적혀있다. 읍내에는 ‘독서왕 김득신 문학관’도 있다.


증평은 여행지로서 잘 알려지지 않았다. 곽재순 증평군 관광축제팀장은 “면적이 울릉도보다 조금 크다. 그래도 대전이나 세종 등 주변 도시에서 여행자들이 많이 찾아온다”고 했다. 서울 사는 사람들이 자연을 찾아 인접한 청정 지역으로 향하는 것과 비슷한 이유일지 모를 일이다. 좌구산에는 마음이 상쾌해지는 숲이 있고 예쁜 수변 산책로와 울림을 주는 김득신의 이야기가 있다. 꽉 막힌 일상에 위로가 되는 것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