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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

책과 뒹굴뒹굴 하룻밤...고민은 잠시 꺼두셔도 좋습니다

by아시아투데이

'북스테이 명소' 충북 괴산 숲속작은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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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작은책방’에서는 책이 있는 공간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북스테이를 할 수 있다. 사위가 한갓지고 마을도 예쁘다./ 김성환 기자

괴산/ 아시아투데이 글·사진 김성환 기자 = 책이 있는 공간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일이 ‘북스테이’다. 번잡한 일상을 잊고 하루 이틀 푹 쉬려는 이들에게는 북스테이도 어울린다.


충북 괴산군 칠성면 미루마을에 ‘숲속작은책방’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문을 연 ‘가정식’ 서점이자 북스테이다. 서울에서 작은 사립 도서관을 운영하던 김병록(57), 백창화(55) 부부가 이곳에 터를 잡고 북스테이를 시작한 지 올해로 10년째다. 책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미 잘 알려진 곳. 세상이 바이러스로 어수선한 요즘은 책이 아니어도 인파를 피해 알음알음으로 찾는 이들이 종종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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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작은책방 마당에는 해먹에 누워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도 있다./ 김성환 기자

왜 북스테이를 찾을까. 사위가 고요해야 책이 눈에 들어온다. 이러니 북스테이는 대체로 한갓진 곳에 자리한다. 조용한 휴식을 원하는 이들에게는 안성맞춤인 셈. 숲속작은책방은 오봉산 기슭 평온한 전원마을에 있다. 마당이 있는 2층 구조의 가정집인데 김씨 부부가 1층에서 생활하고 침대와 책꽂이가 놓인 2층 다락방 1개를 북스테이로 운영한다. 작은 시골동네라 인적이 드물고 숙박도 하루에 1팀으로 제한되니 부산스러울 이유가 줄었다.


유명세를 치른 곳이니 구경삼아 들락날락하는 사람은 없을까. ‘책방에 들어오면 책을 꼭 사는 것’을 원칙으로 내걸었더니 ‘인증샷’을 찍으려는 이들이 눈에 띄게 줄었단다. 게다가 차나 음료도 팔지 않으니 이것 때문에 오는 이들은 더더욱 없다. 오후 6시 이후에는 아예 문을 닫으니 이때부터 오롯이 북스테이를 위한 공간이 된다. 다만 마당에서 고기를 구워먹는 것은 금지다. 이곳에선 이름난 관광지 여느 펜션의 밤풍경을 떠올리면 안 된다. 마당을 거닐며 머리를 식히고 의자에 앉아 달과 별을 보며 게으름을 부리는 일은 가능하다. 마당도 정갈하다. 피노키오가 조각된 커다란 오두막과 해먹이 걸린 정자가 있다. 야트막한 나무 담장도 예쁘고 초록의 잔디도 싱그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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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작은책방 곳곳에 약 2000권의 책이 비치돼 있다./ 김성환 기자

‘책방주인’을 맞닥뜨려야 하고 바비큐 파티도 못 하는데 재미가 있을까. 다 알고 오는 사람들이란다. 이들은 외려 소통하고 교감하며 추억을 만든다. 김씨는 “책에 관한 얘기, 사는 얘기를 주고받으며 하루를 보내면 ‘패밀리’가 된다”고 했다. 이런 일도 있었다. 초등학생 쌍둥이를 데리고 온 어머니에게 아이들이 책을 너무 좋아하니 홈스쿨링하면서 책을 읽혀보라고 했는데 정말 그렇게 했단다. 이 어머니는 나중에 ‘코로나19’ 여파로 남편이 직장을 그만두게 되자 아예 경기도 용인에 책방을 개업했다. 또 엄마가 암치료를 위해 입원하자 이를 보여주지 않으려고 두 아이를 데리고 찾아와 묵었던 아빠도 있었다. 아이들이 “꼭 다시 놀러 가겠다”며 편지까지 보냈다. 돌아간 후에도 인연이 이어지는 것. 꽉 막힌 일상에선 이런 게 필요해 보인다. 얘기를 들어주는 배려, 진심이 깃든 공감과 관심이 헛헛함을 채워주는 법이다. 숲속작은책방은 수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주 5일 문을 여는데 2~3일은 방이 찬다. 바비큐 파티를 못 해도 재방문율이 높단다. 북스테이 공간에는 작은 책상과 노트가 놓여 있다. 묵었다 떠날 때에는 반드시 노트에 글을 한 편 남기는 것도 원칙이다. 다시 찾았을 때 각자의 글을 펼쳐보며 추억을 곱씹고 마음도 다잡아보자는 취지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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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작은책방 2층 다락방 공간. 아이들이 좋아하는 그림책과 팝업북, 책과 관련된 인형 등이 가득하다./ 김성환 기자

당연히 책에 끌려 온 사람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곳이다. 눈 돌리는 곳마다 책이 한가득이다. 마당의 오두막과 정자는 물론, 집 안의 거실, 방, 그리고 계단 등 가릴 데 없이 비치된 책이 약 2000권. 아이들이 좋아하는 그림책과 팝업북은 물론 장년층이 선호하는 테마까지 종류는 다양하다. 외국 동화책도 많다. 창가 쪽에는 부부가 좋아하고 추천하는 책이 놓여 있는데 책마다 일일이 소개 글과 감상을 적어 띠지로 둘렀다. 특히 거실은 여느 작가의 서재 같다. 김씨는 “책을 편하게 읽을 공간이 없어서 책을 잘 안읽게 된다”며 “어느 곳에서든 책을 접하고 편하게 읽을 수 있는 공간이 이곳의 콘셉트”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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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작은책방이 위치한 미루마을/ 김성환 기자

물론 숲속작은책방 안에서만 머물지는 않는다. 동네 산책을 하고 주변 여행지를 돌아보는 사람들이 많다. 여정의 베이스캠프로도 손색이 없다는 얘기다. 동네 산책은 소소한 재미가 있다. 동네가 참 예쁘다. 숲속작은책방이 있는 미루마을은 원래 교육문화를 테마로 조성된 전원마을이다. 집집마다 그림책에 나올 것처럼 파스텔톤 외벽으로 단장했다. 잔디 마당과 정성스레 가꾼 나무와 화초를 품은 정원도 갖췄다. 평온한 마을 풍경이 마음까지 편안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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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산호를 따라 조성된 ‘산막이 옛길’/ 김성환 기자

‘산막이 옛길’까지 갔다 오는 이들도 있다. 숲속작은책방에서 산막이 옛길까지 걸어서 약 20분 거리다. 산막이 옛길은 칠성면 사오랑 마을에서 산막이 마을까지 괴산호를 따라 약 4km에 걸쳐 만들어진 산책로다. 호수를 끼고 가는 길은 풍경이 수려하고 오래된 느티나무 위에 만든 ‘괴음정’, 바닥을 강화유리로 마감한 고공전망대, 연하협 구름다리 등이 볼거리도 많다. 대부분 구간이 나무덱으로 조성돼 걷기가 편하고 경사도 거의 없다. 30~40분이면 완주가 가능하다. 산 좋아하는 이들은 산책로 말고 호수를 에두른 등잔봉(450m), 천장봉(437m), 삼성봉(550m)을 잇는 능선 길을 타기도 한다. 등잔봉과 천장봉 중간에선 산막이 옛길의 상징이 된 ‘한반도 지형’도 볼 수 있다. 숲속작은책방에서는 갈론구곡(갈은구곡)도 가깝다. 자동차로 약 15분 거리에 있다. 화양구곡, 쌍곡구곡 등 괴산의 이름난 계곡에 비해 조금 덜 알려진 곳이다. 칠성면 갈론마을을 지나 2~3㎞ 계곡을 따라 거슬러 가면 강선대 등 9곳의 비경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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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 개업한 ‘청인약방’/ 김성환 기자

숲속작은책방에서 자동차로 약 10분 거리에는 ‘청인약방’도 있다. 약업사인 신종철(89) 할아버지가 1958년 ‘청인약점’으로 문을 열어 63년간 운영하다가 지난해 괴산군에 기증했다. 건물은 원래 양반집 별당채였단다. 200년 이상 된 건물을 옮겨와 지었단다. 약방 앞의 느티나무도 200년이 넘었다. 신령스러운 느티나무 아래 단출하게 자리 잡은 약방에선 곰삭은 시간의 무게가 느껴진다. 모든 것이 영화세트장 같다. 쌓인 물건들도 오래됐다. 6.25 전쟁이 발발한 1950년부터 써왔다는 일기장, 한국전쟁 당시의 포탄 껍데기를 주워다 만든 재털이, 1963년에 생산된 선풍기 등 근현대사의 추억들이 방안 구석구석 자리를 지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