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과 몰입, 때로는 타인을 이해하는 도구로

[테크]by 베네핏

지하철 안 대부분 승객들의 손에 들려있는 스마트폰. 전부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들은 저마다 게임의 세계에 빠져있다. 사람들은 30분만 기다리면 생기는 하트 하나가 아쉬워 친구에게 SOS를 보내거나 거금을 들여 가상의 무기와 카드를 구매하기도 한다. 여기에 모바일 세상을 벗어나면 시각과 청각, 촉각을 넘나들며 압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각종 온라인 및 비디오 게임까지. 가끔은 눈을 감아도 화면이 보이고 현실에서 부는 바람마저 게임 속 상황과 구분할 수 없을 정도이다.

 

이처럼 게임은 가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게 만드는 높은 몰입도 때문에 수많은 부모님과 선생님, 심지어 각종 정부 부처 기관의 표적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게임이 지니는 고유의 몰입도는 때로 누군가를 돕고 이해할 기회가 되기도 한다.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다는 뜻을 지닌 영어 표현 ‘in other's shoes’처럼 말이다.

 

2013년 밴쿠버에서 열린 Hacking Health hackathon(해커톤, 아이디어 단계에서 시작해 마라톤을 하듯이 짧은 시간 동안 쉬지 않고 프로그래밍 과정을 거쳐 프로토타입의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경연)에서 Taylan Kadayifcioglu 와 그의 팀원들은 12시간 만에 ‘Auti-sim’이란 게임을 개발하였다. 자폐증을 뜻하는 단어 ‘Autism’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이는 자폐 아동의 입장이 되어 가상의 상황을 헤쳐나가는 시뮬레이션 게임이다. 구체적인 게임의 내용은 이렇다.

게임과 몰입,  때로는 타인을 이해하

화면 위로 펼쳐지는 아주 평범하고 평화로운 놀이터의 풍경, 플레이어는 즐거운 소리가 들리는 친구 곁으로 다가간다. 하지만 반가운 마음에 함께 놀고 싶어 다가간 그곳에서 당신을 기다리는 것은 다정한 반응이 아닌 고막을 자극하는 소음과 눈, 코, 입 그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무명의 얼굴뿐이다. 당황한 플레이어는 다른 쪽으로 방향을 돌려보려 하지만 아이들이 시끌벅적하게 놀고 있는 곳으로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상황은 점점 더 소음과 공포감은 더 심각해질 뿐이다. 흡사 좀비가 등장하는 공포영화와 같은 이 상황에서 벗어날 방법은 처음 게임을 시작한 지역으로 돌아가는 것뿐이다.

게임과 몰입,  때로는 타인을 이해하

게임 속 상황은 평소 자폐증의 종류 중 하나인 감각 과민증 환자가 생활 속에서 겪는 어려움을 묘사하고 있다. 시각적인 혼란과 청각의 왜곡으로 대표되는 감각 자극은 신경계에 과부하를 일으키고 자폐증 환자는 결국 그 괴로움을 견디지 못해 자신 안에 갇히고 마는 것이다.

 

비록 게임 자체가 자폐증 치료에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실제 게임을 접한 자폐증 환자와 그 가족 및 교사는 상당히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어려움을 무엇보다 확실하게 전하는 방법이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Auti-sim이 다루는 상황이 모든 자폐증 환자의 상황을 대변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게임 역시 아직은 데모 버전으로 놀이터에서 일어나는 상황만을 다루고 있을 뿐이다. 아직은 겨우 12시간 만에 만들어낸 데모 버전에 불과하니 말이다. 그렇기에 개발자 Taylan은 앞으로 Auti-sim에 교실, 가정 등의 상황을 추가한 확장 버전을 개발할 예정이다. 비영리로 개발 후 자폐증에 관한 치료, 교육, 변호 등의 프로그램에 게임이 유용하게 사용되길 바라고 있다. 아직 구체적인 발표 소식이 전해진 것은 아니지만, 의사소통 수단의 하나로 게임이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분명한 예라고 볼 수 있다.

 

공감의 측면에서 긍정적인 효과를 내는 게임이 하나 더 있다. ‘That Dragon, Cancer’라는 이름의 인디게임이다. 게임의 개발자 라이언 그린은 미국의 전형적인 행복한 가정을 이룬 평범한 가장이다. 마당이 딸린 작은 집, 사랑스러운 아내 그리고 올망졸망 귀엽기 그지없는 네 명의 아이들. 흠 잡을 구석이라고는 없어 보이는 이들의 일상에는 어느 날 작은 균열이 생기고 만다. 바로 암이라는 이름의 용이 등장한 것이다.

게임과 몰입,  때로는 타인을 이해하

그린 부부의 막내아들 조엘은 막 돌을 넘긴 무렵 말기 암 판정을 받는다. 아이로서는 견딜 수 없을 정도의 독한 항암 치료와 방사선 치료가 계속되지만, 안타깝게도 조엘은 반복해서 완치가 아닌 재발 판정을 받는다. 괴로워하는 아들의 모습을 지켜봐야 했던 라이언 그린은 조엘이 세상을 떠난다면 자신이 이대로 그를 잊는 것은 아닐까 두려웠다. 그가 선택한 방법은 바로 게임 안에 조엘의 모습을 담는 것. 누구보다 아이를 사랑하고 피를 나눈 아버지지만, 동시에 완벽한 타인이기 때문에 그의 고통을 전혀 대신해줄 수 없었던 라이언의 감정을 기반으로 게임은 진행된다.

 

‘That Dragon, Cancer’는 사실 게임이라기보다는 하나의 다큐멘터리 영화 같은 모습을 보인다. 엄마 에이미 그린이 실제 목소리로 조엘의 형들에게 그가 암이라는 용과 싸우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나래이션부터 중간중간 등장하는 라이언이 직접 쓴 시까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단순히 시한부 판정을 받은 어린 아들을 소재로 사람의 감정을 자극하는 신파극이라 말할 수만은 없다. 그 안에는 분명히 게임만이 지니는 요소 ‘선택’이 있기 때문이다.

게임과 몰입,  때로는 타인을 이해하

게임의 첫 번째 단계는 아기용 침대가 놓여있는 작은 방에서 펼쳐진다. 플레이어는 우는 조엘을 달래기 위해 방에 있는 다양한 요소를 선택할 수 있다. 주스, 장난감, 창문 등 여러 조합을 시도할 수 있지만, 절대 클릭할 수 없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그 방을 빠져나가는 문고리이다.

 

이처럼 수동적으로 상황을 지켜보는 대신 직접 선택을 내릴 수 있다는 점은 플레이어가 더욱 폭넓은 감정을 경험하게 도와준다. 라이언의 동생이자 게임의 제작을 도운 스테파니의 말에 따르면, 자신은 조엘이 아파하던 바로 그 병실에 실제로 같이 있었지만, 게임을 해보기 전까지는 라이언의 감정에 대해서 온전히 알 수 없었다고 한다. 게임을 통해 재구성된 그의 관점에서 상황을 바라봤을 때 비로소 그녀는 여전히 완벽하지는 않아도 좀 더 깊이 그를 이해할 수 있었다.

 

한편 구체적인 눈, 코, 입이 그려지지 않은 게임 속 등장인물들의 얼굴은 그린 가족을 실제로 아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그 이야기에 몰입하도록 도와주는 요소 중 하나이다. 플레이어는 저마다 자신이 아는 가족, 친구 등의 얼굴을 화면에 대입해보며 공감과 이해, 그 사이에서 자신의 감정을 깊이 헤아려보는 기회를 가진다.

데모 버전 발표 후 ‘That dragon, Cancer’는 얼마 전 킥스타터에서 크게 펀딩에 성공하며 올해 말 정식 발표를 앞두고 있다. 게임과 함께 3년여에 걸친 그들의 개발 과정은 ‘지금이라는 이름의 선물 (원제, Thank You for Playing)’이란 다큐멘터리 영화로도 만나볼 수 있으며 국내에서는 2015 EIDF, EBS 국제다큐영화제에서 소개되어 소소한 감동을 끌어낸 바 있다. 그러나 그린 부부의 사랑스러운 막내아들 조엘. 그는 결국 지난해 3월 약 4년간의 투병생활을 마친 후 하늘나라로 돌아갔다. 비록 다시 그를 만날 수는 없겠지만, 조엘의 마지막인 담긴 게임 ‘That Dragon, Cancer’는 하나의 위로가 되어 그린 가족과 수많은 플레이어들 곁에 영원히 남을 것이다.

 

새로운 디지털 세대에게 게임은 더는 가벼운 오락이 아니다. 이제 게임은 책이나 영화 같은 하나의 표현 매체로, 그 안에 담길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가상의 세계이기에 더욱 폭넓고 자유롭게 우리는 타인이 되어 볼 수도 그들을 이해할 수도 있다. 비록 그것이 완전한 방법은 아니라 할지라도 다른 사람의 신발을 신어봤다는 것만으로 우리는 서로에게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다.

 

Images capture of Taylan Kay

Images courtesy of Ryan Green

 

에디터 이은수

2015.10.30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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