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프리츠커의 선택이 보여준 건축의 사회적 가치

[컬처]by 베네핏

지난 3월 1일,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이 2017년 수상자를 발표했다. 그 주인공은 스페인의 작은 건축사무소 RCR의 공동 대표 세 사람. 라파엘 아란다(Rafael Aranda), 카르메 피겜(Carme Pigem), 라몬 빌랄타(Ramon Vilalt)이다. 이번 프리츠커는 처음으로 세 명에게 주어졌다는 점과 지금까지 스페인 밖에서 크게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건축가를 선택했다는 점에서 동시에 주목을 받았다.

 

실제로 RCR 건축 사무소는 지금까지 한 번도 세계적으로 알려진 고층 빌딩이나 대형 쇼핑몰, 아파트 단지 등의 설계를 담당한 적이 없다. 대신 이들의 포트폴리오는 유치원과 레스토랑, 극장, 도서관 등 상대적으로 작고 소소한 건축물로 채워져 있다. 하지만 그 안에는 프리츠커를 사로잡을 만큼 매력적인 요소가 가득하다. 백문이 불여일견. 일단 작품을 먼저 살펴보자.

1. 육상트랙 (Tossols-Basil AthleticsTrack in Olot, Spain / 2000)

2017 프리츠커의 선택이 보여준 건
2017 프리츠커의 선택이 보여준 건

Images courtesy of Hisao Suzuki

도심 속 공원에 자리 잡은 이 트랙은 인위적인 공터를 찾지 않았다. 대신 자연 안에 그대로 들어갔다. 해당 건축물을 지을 때 RCR은 딜레마에 빠졌다고 한다. 널리 분포한 떡갈나무를 벨 것이냐 아니면 아무것도 바꾸지 않길 원하는 환경운동가의 손을 들어줄 것이냐. 이들은 자연을 보호하는 쪽을 택했고 덕분에 운동선수도 그들을 지켜보는 사람도 자연을 좀 더 가까이에서 만끽하게 되었다.

2. 레스토랑 (Les Cols Restaurant Marquee in Olot, Spain / 2011)

2017 프리츠커의 선택이 보여준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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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s courtesy of Hisao Suzuki

묘한 곡선이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화산 지형 특유의 움푹한 땅의 모습을 그대로 살린 레스토랑은 필요에 따라 수백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연회 장소로 변한다. RCR은 건축물이 세워지기 전 대지를 차지했던 돌을 버리는 대신 벽과 경사면, 보도에 이를 재배치했다. 또한, 가벼운 소재로 투명한 지붕을 만들어 빛이 주는 기쁨을 살렸다. 그 아래에서 식사를 하다 보면 마치 자연을 맛보는 기분이 들 것만 같다.

3. 유치원 (El Petit Comte Kindergarten in Besalu, Spain / 2010)

2017 프리츠커의 선택이 보여준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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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s courtesy of Hisao Suzuki

멀리서 보면 색연필을 본뜬 거대한 조각물이 아닌가 싶다. 가까이 들여다보면 그게 무지갯빛 튜브란 사실에 한 번 놀라고, 아이들이 생활하는 유치원이란 점에 두 번 놀라게 된다. 창의성이 자라는 것쯤이야 식은 죽 먹기일 것 같은 이곳. RCR은 어두운 복도나 모퉁이 등 음침할 수 있는 공간을 최소화하고 실내 모든 곳에서 밖을 바라볼 수 있도록 설계했다. 압권은 햇빛과 어우러져 초록, 노랑, 파랑 등의 빛깔이 실내를 물들이는 모습이다.

4. 공공용지 (La Lira Theater Public Open Space in Ripoll, Spain / 2011)

2017 프리츠커의 선택이 보여준 건
2017 프리츠커의 선택이 보여준 건

Images courtesy of Hisao Suzuki

원래 극장이 있던 자리였다. 그 의미를 간직한 채 공공장소로 재탄생한 이곳은 이제 하나의 창이 되었다. 시간의 흐름을 쉬이 알 수 있는 내후성 강철은 다소 오래된 도시 주위의 풍경과 이질감 없이 어우러지며 그사이를 통과하는 풍경에 멋스러움을 한 단계 더해준다. 강 건너편과 건축물을 이어주는 다리 역시 같은 소재로 제작되었으며 건물 지하에는 지역 주민을 위한 다목적실 등이 자리 잡고 있다.

2017 프리츠커의 선택이 보여준 건

(RCR 건축 사무소의 공동대표 세 사람) Images courtesy of Javier Lorenzo Domínguez

이외에도 RCR의 색을 담은 양조장, 박물관, 아트센터 등의 건물이 프리츠커 수상을 통해 다시 한번 조명을 받으며 회자되고 있다. 각각 종류도 모양도 다르지만, 그 안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바로 주위 환경 및 역사적, 사회적 배경과 ‘조화’를 이뤘다는 것.

 

RCR의 건축물은 높이 올라가는 것, 그저 독특한 외양을 보이는 것만이 최고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장소와의 관계, 현존하는 것과 새로운 것 사이의 관계를 가장 중요시한다.

 

프리츠커상을 주관하는 하얏트 재단 역시 이 점을 높이 산 것으로 보인다. 심사위원단은 ‘RCR은 건축물과 주변 환경이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고, 건축 재료를 선택하고 짓는 과정에서 의미 있고 지속가능한 공간을 만들어낼 수 있음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RCR의 건축물은 지역적인 동시에 세계적이라며, 시적인 아름다움을 지녔다고 평가한다.

 

세계 건축의 이러한 흐름은 우리나라 건축계에도 유효한 질문을 던진다. 과연 우리는 주위 환경과 자연, 역사적 배경 등을 고려한 건축을 지향하고 있을까?

 

건축가 승효상은 80년대 이후 조성된 건축물 중 가장 나쁜 예로 꼽히는 서울신청사, 동대문디자인파크, 예술의 전당 등이 모두 주변과 조화되지 않는 시설이라 말한다. 공공시설물이지만 이용자나 주민 등을 고려하기보다 권력자들의 야심을 드러내기 위한 건축물이라는 것이다.

2017 프리츠커의 선택이 보여준 건

Photo CC via 선우 이 / flickr.com

작고한 건축가 정기용 역시 그의 마지막 생애를 담은 영화 '말하는 건축가'에서 공간이 가진 역사적, 사회적 맥락을 모두 거세한 DDP를 크게 비난한다. 자성의 목소리는 있지만, 현실 반영은 더딘 셈이다.

 

하얏트 재단은 이미 공공연하게 프리츠커상은 ‘건축이라는 예술을 통해 인류에 지속적으로 공헌해 온 작품에 수여하는 상’이라 말했다. 이는 비단 올해뿐 아니라 지난 수상작에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는 내용으로 건축이 지니는 사회적 역할을 십분 고려한 발언이다.

 

결국, 길은 명확하다. 세계적으로 이름난 상의 수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싶다면, 의(衣), 식(食)과 함께 인간 생활의 기본을 이루는 주(住) 본래의 역할을 기억한다면 우리도 변해야 한다.

 

에디터 이은수

2017.03.31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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