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 가기

[ 라이프 ] [김지수의 인터스텔라]

"항암치료, 환자가 죽어간다...암세포, 머리 찾아야" 종양 권위자의 양심 선언

by조선비즈

"환자 잡는 항암치료… 이득보다 고통 더 커"

‘퍼스트셀’ 출간한 라자 박사 "암, 꽁무니 추적 멈춰라"

"첫 세포 찾으면 희망 있어...암치료 패러다임 바꿔야"

"소변으로 여러 암 조기 추적하는 검사 상용화 앞둬"

"의학은 사회적인 과학… 의사 공감이 약물만큼 중요"

"치료 포기하는 순간… 의사는 환자 고통 줄여줘야"



조선비즈

세계적인 종양 전문의이자 과학자인 아즈라 라자(Azra Raza) 박사, 컬럼비아대 의대 교수. 암의 첫 세포를 찾아 소멸시키면 암 환자들을 해방시킬 수 있다는 내용을 담은 ‘퍼스트셀'을 출간했다.

‘우리는 모두 미래의 암 환자’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섬뜩한 기분이 든다. 1년에 한 번 정기 검진을 받을 때면 조마조마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믿을만한 치료법은 조기발견뿐. 빨리 발견되면 살고 늦게 발견되면 죽는 것이 종양계의 진리다. 발병 이후 잠시 활력을 보이다가도 전이가 일어나, 순식간에 앙상한 몸으로 세상을 뜨는 지인들을 숱하게 보았다.


암 환자가 겪는 시한부의 삶은 삶이라기보다는 형벌에 가까웠다. 도려내고(수술), 독을 주입하고(화학요법), 태우는(방사선 요법) 치료법은 5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생명을 갉아먹는 것이 암인지 치료법인지 분간 못할 정도로 환자가 극심한 고통을 겪으면, 가족은 더 나은 임상과 약물을 찾아 인터넷을 헤맨다.


세계적인 종양 전문의이자 과학자인 아즈라 라자 박사는 암 연구가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마지막이 아니라 처음을 찾는 방식으로. 끝없이 변이를 일으키며 몸속을 헤집고 돌아다니는 마지막 암세포를 제거하려는 노력 대신 암의 첫 세포를 찾아 박멸해야 한다는 것. 일명 퍼스트셀(first cell) 이론이다.


생성된 암세포는 통제하기 어려우니 암세포의 출현 자체를 막는 쪽으로 접근법을 바꾸자는 라자 박사의 주장은, 그러나 이미 암세포 제거 위주 치료 흐름에 올라탄 기존 의료계의 관행에 격렬하게 부딪히고 있다. 진행 중인 신약 프로젝트를 중단하면 돈과 권력이 끊어지기 때문.


현재 미국 국립암연구소 예산의 70%가 동물·조직배양 세포를 이용하는 연구에 쓰인다. 첫 번째 암세포의 ‘흔적’을 발견하기 위한 퍼스트셀 연구에는 5.7%만 배정됐다. 의료기득권층의 패권주의로 환자들은 ‘기약 없는’ 신약의 포로가 되고, ‘예방이 치료보다 낫다’라는 진리는 힘을 잃고 있다고 라자 박사는 울분을 터뜨린다.


그러나 ‘(암의)끝을 시작하기 위해 시작을 끝내야 한다'는 그의 선언은 매우 강렬하다. 라자 박사는 동료 종양학자였던 남편 하비를 2002년 림프종으로 잃었으며, 최근 하비를 비롯해 세상을 뜬 7명의 암 환자를 목차로 기술한 책 ‘퍼스트셀'을 출간했다. 이윤에 따라 움직이는 세계에서 환자의 고통을 먼저 생각하는 종양 전문가의 문제작이자 양심선언이다.


뉴욕 컬럼비아대 의대 교수이자, 급성백혈병 분야 세계적 권위자인 아즈라 라자 박사를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아즈라 라자는 진지한 질문을 받게 되어 매우 기쁘다며 한국 독자들을 위해 밀도 높은 답변을 보내왔다.



조선비즈

암에 걸린 환자는 50년 전이나 지금이나 비슷하게 사망한다.

-암 그리고 암의 괴로움은 의학자로서 당신 인생의 화두인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의사들은 왜 효과를 본 소수의 환자만 이야기하고 독성에 고통받다 죽어가는 다수의 환자에 눈을 감을까요? 왜 우리는 여전히 가혹한 치료법을 쓰며 암의 꽁무니만 쫓는 걸까요? 암 연구는 치료에서 예방으로 전략을 전면적으로 수정해야 합니다."


-현재 암 치료 연구는 어디까지 와 있습니까?


"암 치료 전망은 1970년대보다 더 나빠졌습니다. 실험적 연구는 95% 실패하고 있어요. 성공하는 5%도 수백만 달러의 비용으로 환자의 생존 기간을 고작 몇 개월 늘려줄 뿐이죠. 면역 치료, 표적 치료와 맞춤 정밀 치료는 생존 기간을 늘려 소수의 환자에게 이득을 주지만, 그에 따른 신체적, 재정적 부담이 어마어마하죠. 지난 14년간 미국에서는 절반에 가까운 암 환자가 2년 동안 평생 모은 저축을 다 썼습니다."


-어쨌든 암 사망률은 감소하지 않았나요?


"1990년부터 2015년까지 25% 감소했습니다. 그 수혜자는 주로 유방암과 대장암이며 조기 발견으로 가능했어요. 그러나 조기 발견도 진행 단계가 뚜렷한 암에만 유용합니다. 전립선암 등 예측이 안 되는 암은 조기에 발견해도 치료가 안 되는 경우가 많아요. 전이성 암 치료도 진보가 거의 없는 실정입니다."


-치료에서 기술적 진보가 없다는 것이 놀랍군요!


"사실입니다. 암 치료는 한 세기 전에 원시적인 수준이었습니다. 그동안 유전체를 편집하고, 원하는 대로 켜고 끌 수 있는 등 기술적 진보를 이뤘지만, 치료 분야는 그대로입니다. 암 생물학에 대한 지식과 환자에게 치료의 이득을 주는 지식의 간극은 믿기 어려울 정도죠.


수술과 화학요법과 방사선요법 그대로예요. 구석기 시대와 달라진 게 없습니다. 암을 치료한다면서 몸을 베어내고 독을 주입하고 태워버리는 방식 그대로! 학계에서는 암 환자가 몇 주 정도 더 생존하도록 한 일을 두고 ‘게임체인저'라고 부르기도 해요. 당황스러운 노릇입니다."


-퍼스트셀에 대해서 설명해주시죠. 근미래에 당신이 연구하는 퍼스트셀이 암에 대한 담론을 바꿀 것으로 희망하는 사람들이 많더군요.


"결론적으로 환자를 죽이는 것은 암이 아니라 뒤늦은 치료입니다. 우리는 조기에 치료해야 합니다. 마지막 암세포를 죽이려고 애쓰는 일을 그만두고, 첫 번째 세포 혹은 첫 번째 세포의 흔적을 찾아야 해요. 환자를 죽일 수도 있는 끔찍한 치료법으로 마지막 암세포를 죽이는 대신, 퍼스트셀을 찾는 방향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해요. 암의 기원을 찾아 암이 생기는 일 자체를 막는 데 자원을 집중해야 합니다."



조선비즈

암 치료의 진보는 대부분 조기 발견을 통해 이뤄졌다.

-현재의 항암치료는 개의 벼룩을 제거하기 위해 야구방망이를 휘두르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21세기 현대 의학은 왜 이런 의료 행위를 반복합니까? 의료 산업의 관행인가요? 아니면 무엇이라도 해보고 싶은, 환자와 그 가족들의 집념인가요?


"환자와 그 가족에겐 선택지가 없습니다. 오늘 내가 암에 걸렸다면, 나도 똑같이 그 끔찍한 치료를 받게 되겠죠. 왜? 다른 선택지가 없으니까요. 정해진 횟수만큼 치료해도 반응이 없으면, 치료를 멈추고 자연의 섭리를 따르게 됩니다. 환자와 전문의 모두 불가능한 희망을 부여잡고 고통을 연장하고 싶어 하는 단계죠.


나는 지금의 환자들에게 줄 수 있는 쉬운 해결책은 갖고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내일을 위해 더 나은 선택지를 찾을 수 있다고 말하는 중입니다. 마지막 암세포를 치료하는 전략이 실패했으며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할 때라는 거죠. 꼬리가 아닌 머리를 찾아서 끝내야 합니다."


-일단 발병하면 암의 복잡성은 기술이 닿지 않는 곳에 있다,는 말에 착잡한 마음이 들었어요.


"암을 한가지 질병으로 다루는 건 아프리카 대륙을 하나의 나라로 다루는 것과 같습니다. 한 환자에게 생긴 암이라도 발병 부위와 시기에 따라 완전히 달라요. 암세포는 분열할 때마다 빠르게 성장하고 강해지고 똑똑해지며 더 위험해지는 법을 배웁니다. 분자 단위의 지성이지요.


의사들은 암의 변신을 직접 목도해요. 암세포는 단백질을 훼손하며 마구 날뛰며 전진합니다. 한 부위가 치료되면 다른 부위에 신선한 병소가 새로운 유전자형을 갖추고 생겨나죠. 기가 막히게 복잡해요. 하나의 유전적 비정상을 하나의 약으로 치료할 수 있다는 건 어리석은 오만입니다."


-암을 치료할 수 있는 신약이 개발될 거라는 기대는 어떤가요?


"동물 모델로 표준화해서 진행하는 신약 실험은, 뇌를 해부해 의식을 발견하기를 바라는 것만큼 현실성이 없습니다. 2005년 이래 승인된 약의 70%는 환자의 생존율을 개선하지 못했어요. 반면 환자들에게 실제 해를 끼친 약은 전체의 70%에 이릅니다."


-의료계는 왜 그런 실수와 착각을 반복합니까?


"암처럼 복잡한 질병을 유전적 수준에서 이해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이죠. 문제는 하나의 세포 안에서, 매 순간 상호작용하는 분자가 수도 없이 많다는 겁니다. 심지어 암세포가 하나라고 해도 신호의 비밀을 풀어낼 가능성은 없어요. 상상해보세요. 수십억 세포들이 우리 몸 안에서 새로운 종처럼 행동해요. 증상에 대처하는 약으로, 암의 거대한 복잡성을 제어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완전히 잘못된 겁니다."



조선비즈

암세포의 복잡성은 인간의 상상을 초월한다.

아즈라 라자는 1984년부터 자신이 치료하는 암 환자들의 동의를 얻은 후 해당 환자들의 DNA를 모아 연구해오고 있다. 현재는 약 6만 개의 샘플을 보유한 조직은행을 만들었다.


-시험관에 보관된 환자들의 골수 샘플을 볼 때마다 어떤 기분이 드나요?


"나는 환자들의 고통을 세세하게 기억합니다. 그들이 거기에 있어, 용기를 냅니다."


-환자에 대해 이야기해보지요. 의사로서 환자의 고통에 동참한다는 게 무슨 뜻인가요? 오마르, 앤드루, 하비 등 환자들의 이름이 책의 목차인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의사는 계속 질문해야 합니다. 환자들에게 더 나은 삶을 줄 수 없다면 더 나은 죽음을 줄 수는 없을까? 과학이 환자 입장에 서서 공감하고 보살필 수는 없는가? 모든 환자에게 적용되는 간단한 해법은 없어요. 그러나 의사는 환자를 하나의 개인으로 대우하고 관심을 기울여야 해요. 환자가 마지막 숨을 거둘 때까지."


-현실에는 환자에게서 객관적 거리를 유지하려는 냉정하고 바쁜 의사가 많습니다.


"의학은 가장 사회적인 과학이에요. 의사는 바쁜 티를 그만 내고 환자의 걱정과 기대, 선택에 대해 함께 고민해야 해요. 의학책에 손을 뻗는 대신 환자의 신체 언어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고통이라는 관점을 함께 통과해야, 무관심한 과학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조선비즈

문학과 삶, 과학과 최신 암 연구를 드라마틱하게 엮은 책 ‘퍼스트셀'.

-질병을 치료하는 것과 환자를 치유하는 일은 어떻게 다른가요?


"치명적인 병에 걸린 환자를 담당하는 종양 전문의로서, 그동안 많은 개인을 죽음으로 안내했어요. 참혹한 불치병을 겪는 동안 그들을 지켰습니다. 제가 의사로서 일관되게 도달하게 되는 시점이 있습니다. 환자에게 치료를 더 제공할 수 없는 시점이죠.


필멸 앞에서 환자들은 패배감을 맛보고 어떻게 할지 모른 채, 상실감과 무력감을 느낍니다. 청년들은 불가피함을 부정하고 저항하기도 해요. 젊은 종양 전문의를 가르칠 때 제가 하는 말이 있어요. "진실을 받아들이고, 환자의 마지막 여정을 덜 고통스럽게 만들 방법을 궁리하라." 그 상황에서 환자에게 필요한 건 치료가 아니라 치유입니다. 치료가 질병에 대한 대처라면, 치유는 환자에게 공감하는 일이죠."


-의사의 공감이 환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나요?


"공감은 아픈 사람, 고통스러운 사람, 괴로운 사람에게 절실합니다. 투여되는 약물만큼 중요합니다."


-치료가 불가능한 암 환자를 맡은 의사에게, 그 책임 범위는 어디까지입니까?


"진단부터 사망까지 암 환자의 삶의 질을 개선하고 고통과 괴로움을 줄일 책임이, 의사에게 있습니다."



조선비즈

그가 말하는 예방이란 암의 성질을 띠게 된 세포를 개시 단계에서 찾아내 박멸하는 것이다.

-오마르는 왜 그리고 어떻게 죽었습니까?


"오마르는 막 결혼했고 38살의 교수였어요. 무시무시한 독성 치료로 괴로워했지만, 효과는 거의 없었습니다. 화학 요법을 받은 오마르의 점막은 긁혔고 피가 났어요. 암 환자는 몸이 전쟁터입니다. 화학요법과 방사선은 암세포든 정상 세포든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공격합니다.


오마르는 일곱 번의 대수술로 생명을 연장했지만, 암 치료는 끔찍하게 실패 중이었어요. 그는 죽기 전까지 자신의 몸이 약탈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삶과 죽음 사이의 좁은 공간에서 희망을 품었지만, 어느 순간 항복했어요."


-앤드루는 왜 그리고 어떻게 죽었습니까?


"앤드루는 내 딸의 친구였어요. 아팠던 16개월 동안, 그는 눈이 점차 멀었고 이빨이 빠졌고 혼자 할 수 없는 일들에 분노를 터뜨리다 죽어갔어요. 의사들은 회복가능성이 없는 그를 참혹하게 치료했습니다. 마지막 넉 달 동안 담당 의사는 한 번도 앤드루를 만나러 오지 않았어요. 가능성 있는 임상실험을 애타게 검색하는 사람은 그의 누이였어요. 앤드루는 환자로서 당연히 받을 배려를 받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어머니와 누이는 그들을 돌보며 어떤 점을 가장 괴로워했습니까?


"자식이, 동생이 심한 고통을 겪는 걸 보는 일, 그 자체."


-환자 가족들은 최선의 대안을 찾아 마지막까지 매달리더군요.


"가족은 절망 속에서도 맹렬하게 조사합니다. 매체가 새로운 암 치료 전략을 과장해서 알리기 때문이죠. 그 방법이 통하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고도 그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조선비즈

림프종으로 사망한 그의 남편 하비와 딸 셰헤르자드.

-당신의 남편인 하비는 어떻게 죽었습니까?


"하비는 2002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두 차례 암 발병에 용기 있게 대처했어요. 온몸의 지방과 근육이 엄청나게 손실됐고 대상포진이 나타났고 통증은 입천장과 혀를 찔렀습니다. 자신에게 최후가 다가오는 걸 알았지만 집에서 실험실 회의를 열었어요.


임종 당일, 하비는 그날 자신이 세상을 떠날 것 같다고 말했어요. 그는 몇 시간 동안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싶어 했어요. 딸을 방에 불러 노는 모습을 보고 재잘거림을 들었습니다. 의식이 있던 마지막까지 그가 보여준 평정과 행동거지는 용감했습니다."


-20년간 암을 연구했지만, 암 환자와 한 침대를 쓰고서야 이 병이 얼마나 참을 수 없이 고통스러웠는지 알게 됐다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 여행을 떠난 결정이 왜 가장 좋았습니까?


"여행은 남편이 결정한 일이었어요. 우리는 다섯 살 난 딸이 있었고 그는 딸에게 가능한 오랫동안 ‘평범한’ 삶을 주고 싶어 했죠."


-암 앞에서 희망을 품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어려운 질문이군요. 희망은 환자와 그 가족이 어찌할 수 없이 제멋대로 자라납니다. 희망은 죽기 전까지 억누를 수 없어요. 영혼과 묶여있죠. 환자들은 희망과 절망을 동시에 혹은 연속으로 대면하게 돼요. 종국에 유일한 위로는 위로될 일이 없어질 거라는 겁니다."



조선비즈

부부는 열정적인 종양 전문가로 함께 연구했다.

-무슨 말인가요?


"희망이 폐기되면 절망이 행동 양식이 됩니다. 기대할 수 없는 미래보다 현재에 관심을 기울이는 거죠. 매일매일을 살아가는 일 그 자체에. 나는 종종 젊은 의사들에게 말합니다. 치료법을 찾는 데 너무 매달리지 말라고. 환자에게 제안할 치료법이 없으면, 그들은 낙담해서 환자를 포기하는 지경에 이르러요.


치료할 때가 쉽고 치유는 더 어렵습니다. 그러나 치료를 포기하고 환자를 도와야 할 때가 옵니다. 의료에는 과학 외에도 다른 것이 존재해요. 따뜻함, 연민, 이해가 때로 의사의 칼이나 화학자의 약물보다 더 중요해요."


-박사님은 통증에 언어를, 슬픔에 언어를 주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더군요. 통증에 왜 언어가 필요합니까?


"의학계는 30%의 환자가 고작 6~8주 동안 더 오래 살게 된 상황을, 마치 암 치료에 성공한 것처럼 부풀리죠. 그건 불공평해요. 현실은 아무도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고통의 장막입니다. 나는 그 장막을 거두려고 해요. 통증이 언어로 표현되면 그 아픔의 정도와 크기를 상상할 수 있었습니다.


진실이란 그 모든 괴로운 고통 속에서 전해지죠. 고통을 목격해야 상황을 개선하려고 애를 쓸 테니까요. 환자에게도 언어는 소중해요. 통증의 언어는 나약한 인간의 품격있는 저항이자 공감을 촉구하는 도구입니다."



조선비즈

테드에서 강연 중인 라자 박사.

-희망고문을 멈추기 위해 병원과 의사는 암 환자에게 어떤 선택지를 주어야 합니까?


"쉬운 공식은 없어요. 환자마다 다른 대처가 필요하죠. 다만 의사인 우리는 그들이 그 고통스러운 여정을 겪을 때 돕는 자로 자리를 지켜야 합니다. 미래의 환자에게 더 나은 선택지를 주리라 다짐하면서요."


-미국의 차기 대통령 바이든은 가족의 연이은 죽음과 슬픔을 2개의 문장으로 버텼다고 했습니다. ‘Why me?’ ‘Why not?’... 당신은 이 두 문장 사이의 간격을 누구보다 격렬하게 느꼈을 텐데요.


"불운의 해석은 인류가 직면한 실존적 문제입니다. 암뿐만이 아니라 삶 자체가 다 그렇죠. 유일한 답은 답이 없다는 겁니다. 남편 하비를 돌보면서 고통이 가장 심했던 시기조차 우리에겐 심오한 품위가 깃든 순간이 있었어요. 진실은 이렇습니다. 삶은 예측할 수 없고 상실은 불가피하며 모든 것은 찰나적이고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것. 비극에서 의미 찾기란 인간 영혼만의 화학입니다."


-의사로서 후회되는 일이 있습니까?


"72번 더 살 수 있다면, 나는 언제나 똑같은 방식으로 정진할 거예요."


-슬플 때는 언제인가요? 기쁠 때는 언제인가요?


"내가 유용한 존재라는 느낌이 들 때 행복합니다. 무엇이든 실패에 보탬이 될 때 슬픕니다."


-당신이 여성 의학자이기에 환자들에게 더 예민하고 의학 비즈니스에서 더 청렴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리 퀴리와 레이첼 카슨이 떠올랐습니다. 과학자로서 과학저술가로서 두 사람의 인생이 당신에게 겹쳐 보이더군요. 고통을 줄이는 데 기여해야 한다는 것이 의사로서의 소명인가요?


"그렇습니다. 모든 인간의 노력은 인간의 고통을 줄이는 일에 바쳐야 합니다."


-‘죽음과 죽어감’을 쓰고 죽음에 관해 5단계를 설명한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와 나눈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어요. ‘환자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인지 전할 때 어떻게 하면 좋은지' 물었더니 ‘먼저 나서서 알려주지 마세요'라고 했다지요. 어떤 의미인가요?


"그 말은, 환자들이 알기를 원치 않는다는 뜻입니다. "당신은 석 달 동안 더 살 수 있습니다" 같은 말로 그들의 희망을 부숴야 한다고 우겨서는 안 됩니다. 환자가 알길 원한다면, 직접 물어볼 겁니다. 그때 최선을 다해 대응하면 됩니다. 진실하게, 그러면서도 환자가 진실을 수용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죠."



조선비즈

환자의 고통에 공감해야한다고 철학을 가진 아즈라 라자.

-죽어가는 자의 품격과 죽음 후의 에티켓에 관해서 이야기 해주세요.


"나는 많은 죽음을 목격했고 자연이 각자에게 어떻게 죽는지를 가르쳐주는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았어요. 인간은 죽음을 두려워하지만 결국 신속하게 궁극의 평화로 떠납니다. 이제 우리는 죽음을 그만 걱정하고 삶을 살아야 합니다."


-‘(암의)끝을 시작하기 위해 시작을 끝내야 한다’는 당신의 선언은 일반인들의 생활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습니까?


"전략을 바꾸면 됩니다. 코로나 사례를 통해 대규모 집단을 대상으로 신속하고 민감도 높은 검사가 매우 의미 있다는 걸 알아냈어요. 암 또한 공공 의료적 관점에서 검사를 진행해서 CDR(cancer detection rate, 암 발견율)을 높여야 합니다. 다행히 유전자 혁명에 힘입어 혈액이나 소변 등을 이용해 한 번에 여러 종의 암을 조기 추적할 수 있는 MCED(multi-cancer early detection) 검사 다수가 상용화를 앞두고 있어요.


나이나 흡연 이력 등을 조건으로 시행하는 지금의 선별검사는 암 환자를 효과적으로 판별하지 못해요. 현재의 선별검사를 진행하면서 MCED 검사를 추가한다면, 전체 암의 50%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최근 ‘Scientific America’에 이 내용을 담은 글을 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퍼스트셀 연구는 어디까지 와 있나요? 첫 번째 세포를 찾는 것은 언제쯤 가능할까요?


"제대로 된 자원이 지원된다면, 10년 이내에 모든 보건 의료 분야에서 완전한 변화가 일어날 겁니다. 우리는 ‘후대응’에서 ‘선대응’으로, 치료에서 예방으로 옮겨갈 것입니다. 매우 낙관적입니다!"


김지수 문화전문기자(kimjisu@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