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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즈 ]

[김지수의 인터스텔라] "소비자의 눈으로 트렌드에 올라타라" 브랜드 승부사 노희영

by조선비즈

"사장의 워딩, 말단까지 전달되면 그 조직 건강해"

"식당의 진정성은 재료… 아는 맛, 고급스럽게"

"내 업의 본질은 섬김, 급이 맞는 최고 식모될 것"

"코로나 시기, 더 확장… 면역 높이는 메뉴 론칭"

"내년 봄, 잘 버틴 자의 세상 올 것"

"자기 브랜딩, 잘 하는 것에서 좋아하는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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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한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브랜드를 만든 사람이자 대한민국 국민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브랜드를 만든 사람은 바로 나 자신, 노희영이다.’ ‘노희영의 브랜딩 법칙' 책의 서문에서 이 문장을 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 세상에!


비비고부터 평양일미까지, 다시다부터 해찬들까지, 올리브영부터 CGV까지, 그간 노희영이 만들고 리뉴얼한 브랜드만 수백 개에 달한다는 건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한때 내가 먹고 마시고 즐기는 라이프 스타일의 8할이 그녀의 손을 거친 브랜드에서 이루어졌다. ‘노희영의 손바닥 안에서 놀았다'는 고백은 과장이 아니다.


놀란 이유는 그 말을 한 사람이 노희영 자신이라는 점이다. 때때로 그의 이런 직설화법에 당황한다. 그러나 노희영의 이런 천진한 자화자찬, ‘칭찬받고 싶어 하는' 어린아이 같은 열정이 라이프스타일 전반에 걸쳐 우리에게 얼마나 지독한 헌신과 혁신을 제공했는지를 알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자기애와 이타성이라는 상반된 재료가 매력적으로 비벼진 노희영이라는 그릇. 그의 불균질한 ‘똘끼'가 라이프스타일 세계에선 축복이었다. 노희영이 아니었다면 누가 15년 전에 갤러리아 백화점 지하에 전국 맛집을 불러모으고, 여의도 전경련 50층, 51층을 ‘스카이 팜' 농장으로 꾸미고, 비비고 만두를 미국 내 1위 브랜드로 만들 수 있었을까.


그가 자신의 노하우를 풀어낸 책 ‘노희영의 브랜딩 법칙'은 당대의 히트 상품이 만들어지기까지 우회할 줄 모르는 한 전문가가 대기업에서 겪어낸 생생한 야사이자, 전문적인 브랜드 백서이며, 동시에 ‘직장인에서 직업인으로'의 전환을 독려하는 일터의 기술서다.


개인의 시대, 누구나 브랜딩을 원한다.


브랜딩이란 소비자와 진정성을 갖고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노희영의 경험에 의하면 소비자가 원하는 것은 완전히 창조적인 맛이 아니다. 그 자신, 그동안 고객이 아는 맛을, 더 고급스럽고 건강한 맛으로 업그레이드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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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희영을 만났다. 자신의 라이벌은 노희영이라고 당당히 말하는 당대의 브랜드 전략가. ‘이타적 잘난 체’라는 특유의 문체를 지닌 브랜드 시대의 만능 일꾼. ‘타고난 눈과 혀로 급이 맞는 식모가 되겠다’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를.


코로나 위기의 한가운데서 찾았지만 밝고 건강한 기운은 여전했다. 인터뷰에서 가장 많이 한 말은 ‘업의 본질'과 ‘자기다움’ 그리고 ‘맛있는 건강'이었다.


-5년 전 인터뷰 했을 때 나는 당신을 ‘과욕의 승부사'라고 불렀습니다. CJ를 나오자마자 YG로 옮겨 홍대에 삼거리 푸줏간을 오픈하고, ‘농사짓는 전경련'이라는 컨셉으로 건물 50층, 51층을 리뉴얼해서 초고층 브런치 시대를 열었죠. 변화무쌍한 개척의 시대였습니다.


"장안의 호사가들은 ‘CJ 나오면 노희영은 끝났다'고들 했는데, 당시 저는 약한 모습 보이기 싫어 더 속도를 냈었죠(웃음). 인프라를 다 갖춘 대기업에서 나와 작은 규모 조직에서 일하면서 불편한 점은 있었지만 위축되지 않았어요. 위축되는 건 내 몸이 거부해요."


-2015년은 식도락의 황금기였고 외식 사업은 활력이 넘쳤지만, 지금은 사실 최악이 아닌가요?


"YG가 어려움을 겪으면서 소속 브랜드가 고초를 겪었어요. 그 브랜드들은 제가 다 인수했죠. 바로 이어서 코로나로 F&B 사업이 직격탄을 맞았어요. 지금 모든 식음료 비지니스업계는 경영적으로 힘들어요. 순식간에 내가 가장 잘하는 일이 가장 하지 말아야 할 사업 품목이 된 거예요. 그 상황에 저는 4개의 업장을 더 오픈했답니다. 다들 저더러 미쳤다고들 해요(웃음)."


-왜 그런 미친 짓을?


"말씀드렸듯이 저는 ‘위축된다’는 말을 싫어해요. 인정 안 해요, 위축! 스스로에 대한 로열티 비슷한 게 있어요. 꾸준한 열정이라고나 할까. CJ 있을 때도 사람들은 저더러 ‘나는 새도 떨어뜨릴 권력자'라고 했지만, 천만에! 저만 몰랐어요(웃음). 지위를 누리기보다 일 벌이는 걸, 즐겼죠.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달라진 점은 있어요."


-지난 5년간 어떤 점이 달라졌죠?


"생각을 정말 많이 했어요. CJ는 자긍심이 강한 대기업인데, 그 조직에 내가 마흔 넘어 임원으로 입사했어요. 밖에서 들어온 새엄마 같은 정체성으로 밀어붙이고 닦달을 했죠. 비비고, 올리브영, CGV 등 수많은 브랜드를 만들고 리뉴얼했는데, 요즘 보면 잘나가던 브랜드가 동력이 훅 떨어졌어요. 그렇게 열심히 만들었는데, 정작 지속가능 시스템을 못 만든 거죠. 효율과 창의성은 높았지만, 소통의 관점에서는 부족하지 않았나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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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특유의 정치 문화도 있지 않았나요? CJ 퇴사 이후 측근들이 한직에 발령 나기도 했고.


"그사이 내가 만든 R&D도 없어졌고, 여러모로 존재가 지워졌죠."


-결국은 브랜드가 지속가능하려면, 구성원의 협력이 절대적이라는 거네요.


"타산지석으로 삼고 있어요. 최근엔 더욱 사회 분위기가 변해서 더욱 투명사회로 가고 있잖아요. 지난 5년간 느낀 변화의 특이점은 SNS의 절대적 영향력이에요."


-맞아요. SNS가 마케팅의 판도를 완전히 바꿔놨죠.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노희영은 SNS에서도 호감과 비호감이 뚜렷하게 갈리는 인물입니다. 스스로 불호의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있나요?


"하하. 거침이 없고 겸손하지도 않아서겠죠. 대중은 성공한 인물이 고개를 숙이길 바라잖아요. 무릎 꿇는 모습도 보고 싶어 하고. 그런데 저는 선천적으로 무릎 꿇는 걸 못 견뎌 해요. 재벌과 연예인 가까이에서 일해 호사가들 입방아에 오르기도 좋고.


저 자신이 ‘안방 고양이' 같은 면이 있어서 사건의 중심에 있는 게 싫진 않아요. 스스로도 ‘좋아, 싫어'가 분명한 성격이라 타인의 불호에도 관대한 편이죠. 심지어 팩트가 분명한 비판은 반겨요(웃음)."


-겸손하지 않다는 평가에 대해서는?


"제가 칭찬을 좋아해요. 회사 다닐 때는 회장, 부회장의 칭찬이 내 인생의 전부였어요. 고객의 칭찬에도 목숨 거는 편이고요. 그런데 칭찬받으려면 한 일을 말해야잖아요. 결국 톤앤매너가 기승전 잘난 척으로 돼요(웃음)."


-사실 마켓오 리얼브라우니부터 비비고, 삼거리 푸줏간까지 오리온, CJ, YG를 관통하는 노희영의 브랜드 메이킹 스토리는 노희영 제국의 패밀리들은 다 아는 얘기죠. 굳이 책으로 정리한 이유는?


"하하. 첫째는 칭찬받고 싶어서. 둘째는 후배들에게 가감 없이 ‘하우 투’를 가르쳐주고 싶어서죠. 현재를 돌파하는 방법에 대해 다양한 출구를 알려주고 싶었달까요. 생각해보면 나는 CJ에서 안정된 직장, 보장된 근무 시간에 안주하려는 사람들을 자영업자처럼 일하라고 다그쳤어요. 내부에선 ‘왜 주인도 아닌데 주인행세냐?’고 반발도 많았지만, 그렇게 조직 안에서 주체적으로 일하면 얻어 나오는 게 정말 많아요. 그 깨알같은 노하우를 전부 공개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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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희영만이 하는 것을 다룬 책 ‘노희영의 브랜딩 법칙'.

-그런데 그 많은 히트 상품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실력 말고도, 오너와 핫라인에 있었기 때문 아닌가요?


"그렇다고 제가 오너와 친분을 쌓았나요? 아니에요. 오리온 이화경 사장을 대면하는 데 1년이 걸렸어요. 이미경 부회장과는 어릴 때 친구였지만, ‘비비고'를 해보라고 나를 스카우트 한 사람은 이재현 회장이었죠. 이후에 CJ 전체의 브랜드 전략 고문이 되면서 CJ E&M의 영화 ‘광해' ‘명랑' ‘설국열차' 등의 마케팅에 관여하고 CGV를 리뉴얼했지만."


-사실 그런 전방위적인 활동은 대기업의 R&R문화에서는 특이한 행보였어요. 책에 보니 그 R&R 문화에 비판적이던데요.


"큰 조직에서 가장 싫어하는 게 경계 없음과 월권이에요. 역할과 책임, R&R에 다들 예민하죠. 그런데 나는 고문 직함을 갖고 암행어사처럼 다니며 모든 걸 간섭했으니, 칼 안 맞은 게 다행이라고나 할까요(웃음)."


-넷플릭스의 조직문화 ‘규칙 없음'이 생각나더군요. 오직 ‘넷플릭스에 유익하다면' 직원들에게 무한한 재량권을 준다,는 경영 방식 말입니다.


"앞으로는 그런 경영이 맞지 않을까요. 과거엔 중요한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어도 아래 직원은 자신이 무엇을 위해 밤을 새우는지 몰랐어요. 지금은 아니죠. 리더의 워딩이 밑단까지도 정확하게 전달돼요. 소통이 잘 되면 그 조직은 병들지 않습니다. 구성원 각자가 조직에서 자영업자 마인드로 뛸 테니까요.


유능한 CEO와 구성원이 직거래로 의사소통하면, 중간관리자들이 설 자리가 없어지죠. 그들도 하루빨리 직장인이 아니라 직업인으로 트랜스포밍 하지 않으면, 위험해져요. 어차피 웬만한 관리 회계는 프로그램이나 아웃소싱으로 해결되니, 이젠 리더도 구성원도 모두 플레이어로 뛰어야 하는 시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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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에 사업을 시작했고 40대에 대기업 임원으로 발탁돼 10년을 일하다, 다시 현장으로 나와 전방위적인 전문가로 50대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런 동선은 정구호와 닮았어요. 외식사업가 백종원과 업종은 비슷하지만, 콘텐츠의 결은 좀 다른 것 같고요.


"정구호도 나도 파슨스 출신이에요. 패션 베이스에 음식 베이스가 결합했죠. 정구호도 꼬르동 블루에서 음식을 공부했으니까. 하지만 삼성에서 나온 뒤 그분의 활동 영역은 굉장히 아트적이에요. 탤런트가 많은 사람이죠. 백종원은 내가 ‘한식대첩'에 심사위원으로 추천해서 방송에 입문했어요. 그분도 자영업자의 스승으로 잘하고 있죠. 공통점도 있지만 나와는 가는 길이 달라요."


-그분들이 군더더기를 빼고 핵심을 살리는 브랜드 정리의 달인이라면, 음식 전문가로서 노희영은 하나의 핵심을 다양한 방식으로 펼쳐 보이는 것 같습니다. 소위 ‘맛있는 건강’이라는 일관된 철학으로 뻗어 나가고 있지요?


"맞아요. 제 생각에 음식의 진정성은 식자재예요. 옷도 결국은 소재 싸움으로 갑니다. 궁극의 캐시미어를 찾게 되는 것처럼, 기라성 같은 셰프들을 만나보면 항상 하는 말이 ‘재료가 실력을 이긴다'예요. 2003년 유기농 레스토랑 마켓오를 할 때부터 그 철학을 고수했으니, 17년이 됐죠.


저는 오리온에서 마켓오 브랜드로 초코 브라우니 만들 때도 진짜 초콜릿을 썼어요. 좀 비싸도 건강한 과자에 대한 확신이 있었죠. 소비자들이 패밀리 레스토랑의 영혼 없는 음식에 질려 할 때도, 신선한 식자재로 직접 만든 웰빙 파머스 베니건스를 론칭해서 죽어가던 매장을 살려내기도 했고요.


그때만 해도 레스토랑에 이란인들이 콩 갈아서 만든 호머스를 내면 생소했는데, 이젠 호머스 샐러드도 많이 보여요. 여러 트렌디한 시도를 해봤지만 결국 근본이 답이에요. 건강한 식재료로 돌아온다는 거죠. 재료가 곧 실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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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몰두하는 재료는 뭐죠?


"건강기능식이에요. 지금 건강기능식품이 코로나 수혜주로 거의 10배 이상 성장을 했어요. 최고의 방역은 개인 면역이잖아요. 면역력이 강한 사람은 바이러스에 노출돼도 위험 없이 지나가요. 다이어트, 소식하는 분들도 영양 밸런스가 필요하고요. 그렇게 건강기능식을 음식으로 풀어서 얼마 전 론칭한 브랜드가 ‘퍼스트+에이드’예요.


퍼스트 에이드의 뜻이 구급약인데, 매장에서 직원은 간호사복 입고 점장은 의사 가운을 입어요. 음식은 레시피가 아니라 처방이라는 상징이죠. 건강식 메뉴와 보조식품을 결합해서 배달 중심 콘텐츠로 풀었어요. 가령 불지 않는 두부면 파스타처럼 배달에 최적화된 음식, 오곡밥 나물 도시락처럼 하루가 지나도 맛있는 음식으로 개발했죠."


노희영은 배달음식을 과학과 화학이라는 솔루션으로 접근했다. 이런 접근은 즉흥적으로 나온 것이 아니다. 건강한 식재료에 대한 30년 연구의 결과물이다.


배달과 IT와 면역을 결합한 ‘퍼스트+에이드’ 말고 그는 냉면 브랜드 평양일미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코로나 시대에 배달에 최적화된 브랜드와 배달이 안 되는 브랜드를 동시에 오픈하다니, 그 대담함이 과연 노희영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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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교에서 시작해 청담으로 확장한 평양일미.

-사실 냉면은 반드시 매장에 와서 먹어야 하는 메뉴인데요. 과거에 겨울이면 서울에서 중머릿꾼이 냉면을 날랐다고도 하지만, 기록에만 남아 있는 거고요.


"그렇죠. 메밀은 매우 예민한 식재료라 배달 안되는 게 정상이에요. 평양일미는 제가 냉면 마니아라 시작한 사업이에요. 좋아하는 걸 직업으로 삼으니 힘들어요. 즐겨 먹던 냉면이 업이 되니, 덜 먹게 되더라고요(웃음).


그런데 알고보면 제가 벌이는 일은 큰그림으로 다 연결이 돼요. 위기를 만나도 소비자의 눈으로, ‘맛있는 건강'이라는 철학에서 하나씩 풀어가요. 삼거리 푸줏간도 평양일미도 곰탕이나 만두 메뉴를 온라인에 가정간편식(HMR)으로 공급해서 대박을 쳤죠. 주위에서 다들 ‘코로나, 어떡해?’ 묻는데 답은 어차피 과거나 지금이나 건강한 식재료에 다 나와 있어요."


-마케팅 얘기를 해보죠. 인플루언서와 스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어요. 인맥 파워라고 부러움을 사지만, 기본적으로 스타를 보는 촉이 좋은 편이지요?


"브랜딩과 마케팅에는 25~30세 여성 소비자 절대적이에요. 저는 타깃층이 좋아하는 포인트를 따라가요. 가령 브라우니는 초반에 빅뱅 콘서트장에 기프트로 푼다거나, 쁘띠첼이 나왔을 때 김수현을 신입 사원으로 내세워서 사무실 간식으로 광고를 한다거나. 미국에 비비고 진출할 때는 싸이를 모델로 썼어요. 먹을 때 접한 풍경, 감정, 촉감이 제품의 이미지에 절대적이에요. 저 자신이 드라마, 영화를 너무 좋아해서 그 부분은 자신이 있어요. 지금도 시청률, 관객 수를 매일 체크할 정도죠.


스타 마케팅도 그래요. 매장 오픈하면 ‘연예인들이 어떻게 발 벗고 찾아오냐?’ 묻는데, 평소에 저는 스타를 소중한 자산으로 아껴요. 진심으로 대한민국 국보라고 생각해요. 그들이 SOS 치면 최선을 다해 돕죠. 워낙 해결사 역할을 좋아해서, 스타가 아니라 누구에게라도 그렇게 충성스러운 편이에요. 사람에 관련된 건 다 오지랖이 기본이에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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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사람을 향한 열정이 강한 편이죠?


"그런 것 같아요. (웃으며)저한테 이상한 구세주병 같은 게 있어요. 충성심, 해결사 기질, 헌신이 결합한… 제가 ‘최고의 식모가 되고 싶다’고 했잖아요. 비슷한 맥락이에요. 기업에 있을 때는 오리온 이화경 회장, CJ의 이미경, 이재현 회장, YG의 양현석 회장에게 다 똑같이 충성했어요. 그분들 다 자기 제국의 유능한 왕이죠. 저는 그분들 식사하면 잔반 사진까지 찍어서 연구했어요.


그런데 그때나 지금이나 가장 큰 왕은 고객이에요. 소비자는 저보다 많이 알아요. 제 삶이 내내 투쟁의 역사였지만, 저는 소비자와는 절대로 안 싸워요. 고객의 입맛은 백인백색 다 다르죠. 그래도 내 고객이 짜다면 짠 거예요. 일부러 찾아와서 컨플레인 해주면 더 고마워합니다. 제 업의 본질이 그래요. 섬김이라는 베이스가 없으면 못 해요."


타고난 눈과 혀로 이룬 업적의 자부심은 하늘을 찌르는데, 그 중심에 ‘섬김’이라는 단어가 단단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노희영만의 ‘이타적 잘난 척'은, 때에 따라 덜 익으면 덜 익은 대로, 농익으면 농익은 대로 제힘을 발휘하는 것 같았다.


-감각을 타고났어도 성실성이 뒤따르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라고 했어요. 성실성 없는 감각은 어떻게 되나요?


"감각도 규율이 있어야 유지돼요. 비비고 만두 레시피를 만들 때도 방방곡곡 최고 맛집을 닳도록 찾아다녔어요. 좋은 표준을 만들려면 끊임없이 자기 생각을 의심하고 조사하고 확인해야 해요. 성실성이 없으면 불가능하죠.


감각 좋아도 잘 안되는 사람 보면, 최선을 다해 자기 기준만 고수해요. 진짜 최선은 내 감각을 상대의 만족으로 변환시키는 거예요. 항상 대중 속에서 대중이 좋아하는 것에 촉을 곤두세우고! 그게 이 업의 성실이에요."


그 자신, 도전은 좋아하지만 모험은 하지 않는다고 했다. ‘성실의 누수'를 막기 위해서다. 잘할 수 있는 일인지 철저히 조사하고 판단하고 뛰어든다. 애초에 승산 없는 싸움은 시작하지 않는다.


-맛에 대해서는 어떤 기준이 있습니까?


"맛은 타깃에 맞아야 해요. 20대는 달고 매워야, 장년들은 싱거워야 좋은 맛이라고 느껴요. 맛있냐고 누가 물으면 저는 가격부터 물어봐요. ‘맛있다, 없다’는 조건부예요. 맛있는데 가격도 싸면 식구들 데려가고 싶죠.


그런데 식당 주인과 소비자의 예상은 항상 30% 갭이 있어요. 주인이 1만 8천 원 받고 싶으면 손님은 1만5천 원이 적당하다고 느껴요. 그 간극을 예측하고, 내가 설정한 고객이 자신이 내는 돈보다 30% 더 만족스럽게 느끼도록 설계해야, 그 맛이 먹혀요."


-멋은 어떻습니까? 당신이 만든 공간 이미지를 보면 거의 빈티지 스타일이에요. 친근한 프리미엄을 추구한다는 인상입니다.


"맞아요. 저는 과거가 또 다른 미래라고 생각해요. 역사성이 곧 미래죠. 대중들은 돌고 돌다 레트로에서 신선감을 느껴요. 마켓오 패키지에서 따뜻하고 투박한 빈티지를 처음 쓴 이후 그 믿음이 더욱 강해졌어요. 빈티지를 선호하는 건 제가 청소년기를 미국에서 보낸 영향도 있어요. 노란 연필, 리바이스 청바지, 꽃무늬 접시 등등... 역사 짧은 미국도 옛것을 지키고 존중하는데, 하물며 우리는 더 품위 있는 것들이 더 많잖아요. 한식도 그중 하나고요. 여러 부분을 ‘건강한 빈티지’로 접근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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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음료 사업은 기술 사업이 아니라 교육 사업이라고도 했는데, 그건 또 무슨 뜻인가요?


"기술은 기본이고요. 결국은 레시피를 일관되게 유지하도록 교육하는 게 관건이죠. 제 오지랖의 8할도 가르쳐주고 싶어서예요. 내 경험이 필요하면 어디든 찾아가서 나누겠다는 마음이죠. 그게 제 잘난 척이 용서받는 길이기도 하고요(웃음)."


-그렇다면 노희영 브랜드의 핵심 3가지를 얘기해주시죠.


"첫째 눈으로 모든 걸 느끼고 알 수 있게 비주얼 컨셉이 정확해야 해요. 둘째 그 이유가 궁금하도록 스토리로 전달해야 합니다. 셋째, 체험하고 체류하고 싶도록 설계해서, 고객을 붙들어둬야죠.


저는 브랜드 론칭할 때 무조건 색깔부터 먼저 떠올려요. 가령 삼거리 푸줏간은 주황색, 평양일미는 옥색이 떠오르는 식이에요. 브랜드의 첫인상은 컬러예요. 그리고 이름이 직관적이고 쉬워야 해요. ‘뚜레쥬르’같은 이름이 제일 알아듣기 어려워요. 삼거리 푸줏간, 계절 밥상, 평양 일미… 뭐 하는 곳인지 한 번에 머리에 잡혀야죠. 이어서 어떤 근본으로 자랐는지(히스토리), 함께 할 수 있는 건 뭔지(체험) 디테일이 꼬리를 물고 죽죽 나와야 해요.


올리브영이나 CGV같은 기존 공간을 리노베이션 할 때는, 한번 들어오면 못 나가도록 ‘놀 거리'를 다양하게 배치했어요. 고객의 시간을 붙잡아야 해요. 삼거리 푸줏간이나 계절밥상은 내가 먹은 식재료를 바로 그 장소에서 구경하고 살 수 있도록 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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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를 모델로 등장시켰던 계절밥상.

-한식 뷔페 계절밥상이 한때의 유행으로 끝나버린 건 아쉽더군요.


"브랜드도 사람 생명과 같아요. 예기치 않게 사고도 나고 병에도 걸려요. 계절밥상은 장터형 컨셉으로 산지의 제철 음식을 먹는다는 컨셉으로 쌈, 밥, 찬, 디저트로 구성했어요. 정제된 음식보다 식자재 그 자체를 보여주려는 컨셉으로요. 판교의 임대료가 싼 곳에서 공익사업으로 출발했어요.


매장을 많이 낼 생각은 애초에 없었습니다. 좋은 식자재를 찾으러 다니면서 통영밥상, 제주밥상, 전주 밥상 정도를 서브 브랜드로 생각했었죠. 지역 시그니처 밥상이랄까요. 그런데 사고가 났어요. 이 시장에 올반이니, 자연별곡이니 대기업이 뛰어들면서 식자재 출혈 경쟁이 된 거예요. 함께 망했어요."


-지금은 대기업이 식음료 사업에서 점점 손을 떼는 분위기인데요.


"소프트웨어 콘텐츠는 손을 뗄 수밖에 없어요. 아웃백이 살아남은 건 점장에게 전권을 줘서예요. 아웃백, 빕스는 1년에 30~40억 매출 규모이니 중소기업 사장 정도예요. 중앙에서 컨트롤하는 구조로는 테이블에서 머리카락 하나 나와도 대응하는 데 시간이 걸려요.


컨플레인 현장에서 자율적인 서비스로 대처하면 되는데, 대기업은 절차상 그걸 못하니 작은 일도 커지죠. 100원 떼먹을까 봐 1억을 써서 지키는 구조니 안타까워요. 그래서 외식사업은 패밀리 비즈니스로, 물류는 IT로 넘어갈 수 밖에 없어요."


-기업도 지켜야 할 룰이 있듯, 브랜드도 마찬가지일 듯합니다만.


"그럼요. to do와 not to do를 분별하지 못하면 눈 깜짝할 새 망가져요. 루이비통도 프라다 천 가방 유행할 때 왜 안 하고 싶었겠어요. 참아야 해요. 오래 가고 싶다면 정체성을 지켜야죠. 햇반도 밥 그 자체가 승부수이기 때문에 김치볶음밥까지 가면 안 돼요. 자기다움을 잃지 말아야 하는 건데, 이건 사람도 마찬가지예요. 유혹이 와도 결국 나다움이 나를 지키는 힘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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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득권 싸움이 치열한 남성 중심 조직에서 ‘노희영다움'은 어떻게 지켜냈습니까?


"자리에 집착하면 못해요. 마켓오, 비비고 시작할 때 제가 오너 앞에서 그랬어요. 저한테 기회를 주면 처음부터 끝까지 다 해보고 책임도 내가 지겠다고요. 실제로 R&D에서 생산라인, 디자인, 마케팅까지 세세하게 다 했어요. 이번 책에서 그 과정에 참여했던 사람도 꼼꼼하게 다 기록했어요.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그런데 이렇게 일하는 임원이 없어요. 대기업 특성상 비난받지 않으려고 일을 크게 안 벌려요. 시너지를 내려면 다른 조직과 협업해야 하는데 그것도 두려워하죠. ‘나다움'을 지켜낸 건 제가 정치가 스타일이 아니라 혁명가 타입이어서죠(웃음)."


-조직의 파괴적 혁신은 외부에서 온 인물이 주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관성에 젖어있지 않거든요.


"그런데 그 조직 출신이 아니니, 다들 제가 일을 벌이면 내심 ‘실패했으면' 바랬죠."


-그럴 땐 어떡합니까?


"못 본 척해요. 자존심이 강한 편이라 밀려도 절대 징징대지 않았어요. 다시 싸울 힘이 생길 때까지 참죠. 그거 아세요? 노희영 경쟁력의 핵심이 참을성이에요. 저는 항상 저를 모함하는 적에게 감사해요. 30대에 레스토랑 궁, 느리게 걷기 줄줄이 히트시켰을 때도, 사람들은 노희영은 청담동 벗어나면 못할 거라고들 했어요. 저는 그런 말 들으면 더 자극돼요.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해주고 싶은 꿈이 생기죠. 제가 CJ에 갈 때 백지수표 받고 갔다고 소문났지만, 기업에 스카우트될 때는 조건 협상도 연봉 줄다리기도 안 했어요. 야망은 딱 하나였어요. 100년 동안 사랑받는 건강한 브랜드를 만들자. 그게 제 ‘가오'고, 모티베이션이었어요."


-어떤 리더였습니까?


"일하는 리더. 앉아서 지시만 하지 않았어요. 저는 지금도 평양일미에 가면 만두 빚고 그릇 치우고 캐셔 봐요. 권력은 의자에 앉아있을 때가 아니라 두 발로 뛰어다닐 때 생겨요. 지금 대표지만, 기업가보다는 계속 새로운 걸 만들고 새 판을 짜는 게 내 취향에 맞아요.


그 과정에서 저와 함께 하는 구성원들은 얻어갈 게 많다고 봐요. 리더가 일에 몰입하면 비상한 돌파력이 생기거든요. 가령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를 마케팅할 때도, 영화에 나온 팥죽을 개봉 즉시 제품화하고 거기에 배우 이병헌 사진까지 넣은 건 대기업에서는 나오기 힘든 발상이었어요. 영화도 생물이라, 결정적인 순간엔 과감해져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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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상상력과 추진력이 집요한 당신을, 사람들은 앨리스라고 했고 마녀라고 했죠.


"앞뒤 안 가리고 매사에 몰입하니까. 과거엔 호러 버전 마녀 지금은 코믹 버전의 마녀예요."


-노희영이 보는 노희영은 어떤 사람인가요?


"일단 꼼수가 없는 사람 그리고 웃기는 사람. 또라이 기질이 있어서, 매일이 즐거운 사람이에요. 하하. 결정적으로 전 복 받은 사람이에요. 좋은 부모 만나 교육받았고, 신에게 사랑받아서 이만큼 세상에 세워졌다고 느껴요. 그래서 갚아야 한다는 강박이 있어요. 그래서 더더욱 사랑받는 리더에 머물고 싶지 않고요. 전 사람을 성장시키는 교관이 되고 싶어요."


-교관은 리더와 어떻게 다른가요?


"잔소리가 디테일 해야죠. 이 일이 사실 잔소리 비즈니스에요. 정신 차리지 않으면, 계절마다 예민하게 변하는 식재료로 맛과 간을 유지하기 힘들어요."


-사업 확장과 공간에 대한 솔루션도 계속 이어갈 건가요?


"그럼요. ‘답 없는' 공간에 대한 의뢰가 계속 들어와요. 그곳에 넣을 콘텐츠의 촉도 계속 발전시키고 있어요. 얼마 전에 오픈한 여의도 ‘히노노리’도 공간이 23평밖에 안 돼서 중앙에 주방을 넣고 핸드롤 마끼 바(bar)를 만들었어요. 애매한 공간을 뒤집으면 성공 각도가 나와요.


식음료 사업은 임대료, 인건비, 식자재가 전부인데, 여기서 줄일 수 있는 게 임대료밖에 없거든요. 저는 임대료가 비싸면 안 들어가요. 오래 비어있던 공실 전문이죠. 전경련도 DDP도 IFC몰도 다 그런 상황이었어요. 공실을 살리려면 30번 이상 그 공간을 느끼고 탐색해요. 지금 여기 이 공간도 창고였는데 다 뜯어냈어요. 항상 어떻게 반전시킬까, 투시도를 그려봐요."


-가장 애착이 갔던 브랜드가 있나요?


"역시나 비비고와 마켓오에요. 일에 미쳐서 인생 전부를 걸다시피 했으니까. 우리가 다 아는 맛을 건강하고 고급스럽게 세상에 꺼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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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어떤 상상을 합니까?


"사실 내년 3월까지 최악의 날이 올 거라고 준비하고 있어요. 절약하고 버텨야죠. 직원들에게도 부탁해요. 일단 오는 분들께 성의를 다하자. 그렇게 3월이 오면 잘 버틴 자의 세상이 오겠죠. 그중 하나가 나 일 거라고 상상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사람이든 상표든 사랑받고 오래가는 브랜드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일단 주제 파악을 잘해야죠.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못 하는 일, 잘하는 일과 좋아하는 일을 분별해야 합니다. 초보자라면 잘하는 일로 경험을 쌓은 후, 좋아하는 일로 갈아타면 브랜딩으로 연착륙할 수 있어요.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속상해할 것도 없어요. 시장을 앞서간 것이나 뒤처진 것은 실상 같은 말입니다. 가장 좋은 건 스스로 현명한 소비자가 돼서 트렌드에 올라타는 거예요. 트렌드를 읽는 게 아니라 트렌드 안에 내가 있어야 합니다."


김지수 문화전문기자(kimjisu@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