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공놀이’에 미치는 이유

1000만 명.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 3월 발간한 ‘2021 스포츠 산업백서’에 따르면 2008년부터 팬데믹 직전인 2019년까지 국내 4대 프로스포츠(야구, 축구, 농구, 배구) 관람객 수는 매년 1000만 명 이상을 기록했다. 경기장에 직접 찾아서 스포츠를 관람하는 것이 하나의 대중문화로 자리잡은 것이다.


그런데 이들 가운데 절반이 ‘덕후’라는 사실, 알고 있는가? 한국프로스포츠협회가 지난 4월 발표한 ‘2022 프로스포츠 관람객 성향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프로스포츠 팬의 45.9%가 ‘고관여팬’으로 나타났다. 고관여팬이란 관심 있는 리그 내 지난 시즌 우승팀과 본인이 응원하는 구단의 선수를 모두 알고, 유니폼 등 굿즈를 보유한 ‘찐팬’을 뜻한다.


그들은 선수들과 함께, 때론 선수들보다도 더 격렬하게 경기를 즐긴다. 응원하는 구단과 혼연일체가 돼 공 하나에 울고 웃는다. 경기에서 질 때면 ‘탈덕’을 외치면서도 결국 다음 날이면 경기장에 앉아서 목이 터져라 응원한다. 심지어는 응원하는 스포츠와 관련한 칼럼을 쓰고 팬 계정을 운영하는 등 콘텐츠까지 직접 생산해낸다. 덕질의 가방끈만큼은 누구보다 길다고 자부하는 야구⠂축구⠂농구⠂배구 덕후 4명에게 직접 물어봤다. 대체 ‘공놀이’의 매력이 무엇인가?

뱅이

야구 덕질 17년차, “신인 선수 연봉은 내 지갑에서..”

한지용

축구 덕질 14년차, “카타르 직관을 위해 20대 청춘을 바쳤어요.”

🏀 히읗히읗

농구 덕질 3년차, “내 선수 인생샷 위해 1000만 원 플렉스.”

🏐 임진경

배구 덕질 16년차, “인생의 절반을 배구와 함께!”

*야구덕후 ‘뱅이’와 농구덕후 ‘히읗히읗’은 본인들이 운영하는 팬 SNS 채널의 필명으로 인터뷰에 참여했다.

덕질, 어디까지 해봤니?

알다시피 스포츠는 덕후가 무진장 많은 장르 중 하나다. 월드컵 시즌이면 붉은 악마가 돼서 밤새 거리 응원을 하는 사람들도 수두룩하고, 주말에 야구장을 가도 관중이 빽빽하다. 수많은 덕후들이 포진한 이 장르에서 자타공인 ‘찐’ 덕후라고 말하려면 덕력이 얼마나 돼야 하는 걸까?


덕질 경력 도합 50년인 4명의 덕후들은 덕력만큼은 어디 내놔도 꿀리지 않는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처음에는 “이 정도로 덕후라고 해도 될까”라며 머뭇댔지만 어느 순간 “이렇게까지 한 사람은 나밖에 없을 걸”이라면서 솔직하게 터놓은 그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단, 프로 스포츠 덕후들에게 있어서 경기 시즌 홈 구장에서 열리는 경기의 8할 이상을 직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에 인터뷰에서 굳이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을 미리 일러둔다.


⚾뱅이

제가 응원하는 SSG 랜더스의 경우 캠핑용품, 골프용품, 피크닉용품, 애견용품 등 정말 다양한 MD 제품이 준비되어 있어요. 저는 야구장 한 번 가면 정말 20-30만 원은 훌쩍 쓰는 것 같아요. 


그리고 새로 나온 신상품들은 꼭 가지고 있어야 해요. 야구장만 오면 눈이 돌아가는 저는 “이걸 참아? 어떻게 참아? 난 못 참아.” 라며 지갑을 열어요. 지금까지 굿즈 구입에 지불한 총 금액을 따져본다면 신인 선수 한 명 연봉은 제가 주지 않았을까 싶어요.😂

뱅이가 소장하고 있는 SSG 구단의 굿즈

제가 대학교 재학 당시 응원단 단장을 했었는데, 그 영향 때문인지 야구 경기를 볼 때 정말 열정적으로 응원을 해요. 그래서 항상 응원봉이 찌그러지거나 부서져요. 그렇게 다시 산 응원봉이 몇 갠지 셀 수 없을 정도예요. 응원봉이 부서져라 응원해서 그런지 중계방송에 자주 잡히기도 했어요.

특히 기억에 남는 건 2020년인데요. 당시 드라마 ‘스토브리그’가 한창 화제일 때 백승수 단장의 매력에 푹 빠졌고, 결국 ‘백승수’가 마킹된 ‘재송 드림즈’ 유니폼을 구매하고 말았어요. 한동안 그 유니폼을 야구장에 입고 다니면서 시선 몰이도 하게 됐죠.😎

그리고 야구 전문 블로그 ‘뱅 쇼’도 운영하고 있어요. 야구가 너무 좋아서 개인적인 취미 생활로 시작했어요. 2017년부터 시작했으니까 벌써 6년 정도 운영 중이네요. 프로 야구 선수의 아마추어 시절부터 경력을 상세히 기술하는 콘텐츠인 ‘그는 누구인가?’ 시리즈를 연재했죠. 일종의 KBO 리그 야구 가이드인 ‘스카우팅 리포트’도 직접 작성해서 올렸어요. 지금은 개인 사정으로 잠시 연재를 쉬고 있지만 누적 방문자 수는 5만 4천 명 정도 돼요.

뱅이는 개인 블로그 ‘뱅 쇼’를 통해 프로 야구 선수들의 경력과 일대기를 연재한다. 글뿐만 아니라 선수들의 사진, 영상 등을 함께 업로드하고 있다.

⚽ 한지용

축구 덕질하다가 꿈도 ‘스포츠 기자’로 삼았어요. 평소 축구 역사에 관심이 많아서 2022년 9월부터 올해 4월까지 국내 축구 커뮤니티 ‘에펨코리아’에 칼럼을 연재해 왔어요. 역대 월드컵의 역사처럼 축구계의 재미있는 사건 위주로 연재했죠. 올 3월 대한축구협회(KFA)의 승부 조작 가담자 기습 사면을 비판한 칼럼은 조회 수 11만 회를 기록하기도 했어요. 약 40편가량 칼럼을 연재하다 보니 출판사에서 연락이 와서 출간 논의 중이에요.

한 씨가 에펨코리아에 연재한 월드컵 칼럼. 10만 회가 넘는 조회 수를 기록하고 150개 이상의 댓글이 달리는 등 커뮤니티 내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그런데 덕업일치도 덕업일치지만 제 덕질 인생에서 ‘카타르 월드컵’을 빼놓을 수는 없죠.


고등학교 학교 시절, 스페인의 캄프 누 경기장에서 메시가 출전한 FC 바르셀로나 경기를 직관한 적이 있어요. 해외 유명 선수들의 경기를 직접 보고 나니 너무 신기하고 재미있어서 성인이 된 후 2022 카타르 월드컵도 꼭 직관하러 가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우선 월드컵 시즌과 군 휴학을 맞추기 위해 입대 시기를 조정했어요. 또래 친구들은 보통 1학년을 마치고 입대하는데 저는 2학년을 마치고 입대했죠. 그렇게 대학교 신입생 때부터 입대 직전까지 3년 내내 아르바이트해서 카타르 여행 경비 1,000만 원을 모았어요. 그만큼 월드컵에 진심이었어요. 월드컵 하나에 20대 전부를 걸었죠. 티켓팅부터 숙소 예약까지 뭐 하나 쉽지 않은 우여곡절의 연속이었지만, 정말 제 인생에서 절대 잊지 못할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습니다.

2022 카타르 월드컵 당시 대한민국 vs 포르투갈 전 경기를 앞두고 응원 중인 한 씨.

카타르 월드컵 당시, 소중한 추억을 영상으로 남기기 위해 유튜브를 시작했어요. 유튜브 촬영을 위해 유니폼을 구입하고 외국인과 길거리 인터뷰를 시도하는 등 현장의 생생함을 담기 위해 노력했죠. 아직 구독자 수는 적지만 조회 수가 많게는 5천 회 이상 나오기도 했어요. 

한 씨가 운영 중인 개인 유튜브 채널.

지금은 개인 유튜브뿐만 아니라 ‘축무위키’라는 유튜브 채널의 팟캐스터(Podcaster)로도 활동하고 있는데요. 축무위키는 다양한 해외 축구 팬들이 모여 운영하는 채널로 특히 EPL(English Premier League, 영국 프로축구 프리미어 리그)을 자세하게 다루는 편이에요. 축구 경기의 프리뷰 및 리뷰를 다루기도 하고 각 패널과 함께 핫한 뉴스거리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는 콘텐츠를 제작해요. 

축무위키는 1,500명 정도의 구독자를 보유한 축구 팟캐스트 채널로 다양한 축구 덕후들과 함께 운영하며 축구 덕후의 관점에서 생생한 축구 이야기를 나눈다.

🏀 히읗히읗

농구 덕질을 하면서 카메라에만 1,000만 원 넘게 썼어요. 처음부터 ‘찍덕(경기나 선수  사진을 찍는 덕후)’이 될 생각은 없었어요. 직관을 다니면서 좋아하는 선수가 최선을 다해 경기를 뛰는 모습을 두 눈으로 직접 보니까 그대로 흘려보내기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 사람의 인생에서 가장 열정적인 순간인 만큼 이를 기록으로 남겨주고 싶더라고요.

초기에 휴대폰 카메라로 찍던 시절의 사진(좌)과 최근 찍은 사진(우)을 비교하면 확연히 사진 실력에서 차이가 느껴진다. 히읗히읗은 “한 경기당 사진을 2000장 가량 찍는데 경기 끝나자마자 바로 업로드할 사진을 선정하고 보정하면 새벽 시간을 훌쩍 넘기기도 일쑤다”고 덤덤히 말했다.

그런데 사실 저는 사진 못찍기로 소문이 났거든요. 여행가도 친구들이 저한테는 절대 카메라를 안 맡기고 사진을 찍어 달란 말도 안 할 정도였어요. 그래도 좋아하는 선수만큼은 제대로 찍어주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사진 촬영하는 법을 전문적으로 배우고 포토샵으로 사진 보정하는 법도 따로 과외를 받았답니다. 


사람마다 잘 맞는 카메라가 있다는 말에 첫 카메라를 구입하기 전에 20종 가까이 대여해서 매 경기마다 다른 카메라로 찍어 보며 비교분석했어요. 이때 대여비만 100만 원 넘게 썼네요. 그렇게 잘 맞는 카메라를 파악해서 바디와 렌즈도 구입했고, 포토샵을 할 용도로 성능 좋은 노트북도 새로 사느라 총합 1,000만 원은 훨씬 더 투자했어요. 후회는 전혀 없습니다(진심). 본격적으로 사진을 찍기 시작한지 벌써 2년이 됐네요. 그런데 카메라만 2kg이 넘어서 아직까지도 경기 한번 뛰고 나면 저도 팔에 파스를 덕지덕지 붙이고 있답니다. 저도 저만의 경기를 하는 중…🏀

히읗히읗은 지난 2021년 12월부터 ‘팬스타그램(좋아하는 스타의 사진을 올리는 팬 계정)’을 운영 중이다. 그 덕분에 알게 된 싱가포르 현지인 농구 팬과 함께 올 3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FIBA 3x3 아시아컵 2023’ 경기도 직관했다.

또, 저는 허훈 선수를 좋아하는데 지난해 5월에 군대에 입대해서 D리그(한국프로농구에서 주관하는 2군 리그)에서 활동하고 있어요. D리그 경기는 보통 평일 낮에 열리는데 제가 직장인이라서 보러갈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연차를 몽땅 썼습니다. 올해 연차는 모두 D리그 보러가는 데만 썼어요. 그 덕분에 개인 휴가는 주말에만 짧게 다녀왔어요. 심지어 앞자리에서 보려고 오후 2시 경기인데 아침 7시부터 줄 서서 기다렸어요. 직장인들이라면 연차 쓴 날 아침 7시에 집밖이라는 것이 많은 것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고 계시죠?🤐


🏐 임진경

임 씨는 지난 2010년 12월부터 3년 간 배구와 관련한 스포츠 기사를 모조리 스크랩했다.

아마 3년 동안 빠지지 않고 신문 스크랩을 한 덕후는 저뿐일 걸요? 고등학생 시절 기숙사에 살아서 TV를 볼 수도 없었고 평일에는 스마트폰도 사용할 수 없었어요. 매일 아침마다 반에 배부되는 신문이 배구를 향한 유일한 통로였죠. (안 보면 되지 않냐고요? 어떻게 배구를 안 보고 살 수 있나요🙄)

기사를 통해 파악할 수 있는 정보들을 따로 기록해 가며 덕질하는 구단 외에도 전반적인 프로 배구 리그에 대한 이해도를 높였다.

그래서 신문을 꼬박꼬박 챙겨봤는데 스포츠면에서 배구 기사만 따로 오려서 공책에 스크랩했어요. 다행히 친구들도 제가 배덕(배구 덕후)이라는 걸 알고 있어서 오히려 친구들이 먼저, 오늘 기사 나왔다면서 보여주고는 했답니다.


처음에는 스크랩을 해도 어느 팀이 어느 팀이랑 경기를 했고, 누가 이겼다는 정도만 적었는데 이것도 하다보니 점점 발전하더라고요. 언젠가부터는 어떤 선수를 영입했고, 이 선수가 팀에서 어떤 역할을 해줄지 기대된다는 식으로 나름의 분석도 하기 시작했어요. 심지어 제가 응원하는 팀 경기를 더 재밌게 보기 위해서 다른 팀의 경기 스타일이랑 전력도 모두 분석하다 보니까 배구라는 스포츠 자체를 더 사랑하게 됐네요. 진짜 덕질 오래하신 분들은 많아도 스크랩 다 한 사람은 저밖에 없을 거라고 자부합니다...😎

임 씨는 “좋아하는 선수의 단독 인터뷰 기사가 스크랩해온 기사들 중에서도 보물 1호”라며 웃어 보였다. 특히 대한항공 점보스 소속의 한선수 선수의 열혈팬인 그는 고등학교 3학년 때, 한 선수의 결혼 소식을 듣고 수업 시간 내내 엎드려 울었다는 후문. 

✨장르는 달라도 마음은 하나


각기 다른 스포츠에 빠져서 각자 다른 방식으로 덕질을 하는 그들이지만 공통적으로 입을 모으는 질문이 있었다. “덕질하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네 명의 덕후는 모두 ‘응원하는 팀이 우승했을 때’라고 자신있게 말했다.


🏀히읗히읗 : 스포츠는 누가 뭐라하건 승패가 가장 중요해요.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라는 말도 있지만 결국 한 경기 차이로 우승이 결정되는 게 이 세계죠. 

🏐임진경 : 응원하는 구단이 V-리그 챔피언 결정전에서 우승한 날의 감정이 아직도 기억나요. 밤 12시가 넘어 집에 도착했는데 너무 들뜨고 심장이 마구 뛰어서 잠도 안 왔어요.


반대로 모두가 고개를 내저은 질문도 있었다. “탈덕하고 싶은 때가 있었나요?”


한지용 : 제 인생에서 축구를 빼놓을 수는 없어요. 탈덕하고 싶었던 순간은 맹세코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없었어요.

뱅이 : 야구 팬들은 응원하는 팀이 이기고 있을 때도 ‘왜 하필 오늘 이기고 있냐’고 욕할 정도로 매일같이 욕하기 바빠요. 항상 경기가 끝날 때면 ‘내가 이 팀을 두 번 다시 응원하면 사람이 아니다’고 욕하지만 다음 날 저녁이면 어김없이 야구장에 앉아 있답니다. 말로만 ‘탈덕’거리는 거죠.

‘너’여야만 하는 이유

몇개월치의 월급은 우습게 투자하고 심지어는 반 평생을 바쳐서 덕질을 하고 있는 이들. 그런데 세상은 넓고 덕질할 대상은 많다. 심지어 스포츠만 해도 종목이 무궁무진하다. 하고많은 세상의 재미난 것들 가운데 이들은 왜 야구, 축구, 농구, 배구에 입덕했을까?


⚾뱅이

2007년 가을, 가족들과 거실에 모여 앉아 시청하던 9시 뉴스에서 ‘신인 김광현 활약’이라는 헤드라인이 눈에 들어왔어요. 한국시리즈라는 큰 무대에서 고작 19살밖에 되지 않던 신인이 리그에서 22승이나 거둔 특급 투수 리오스를 이겼다는 뉴스였죠. 이때부터 야구에 관심을 갖게 됐는데 특히 공 하나에 긴장하고 탄식하고 환호하는 ‘일구일생 일구일사’ 마인드에 완전히 빠져들었죠. 공 하나에 살고 공 하나에 죽는다, 멋지지 않나요?


이듬해 ‘SK와이번스’의 팬이 되면서 본격적인 야구 덕후의 삶이 시작됐어요. 놀라운 기록을 묵묵히 세워가는 ‘원 팀(One-Team)의 모습에 속절없이 반했네요.

SGG(구 SK)팀을 응원하는 뱅이는 “야구는 알면 알수록 심오한 스포츠인 것 같다”며 “공 하나하나에 달린 희비가 가슴을 울린다”고 말했다.

⚽한지용

어린 시절부터 가벼운 취미 수준으로 축구를 즐기다가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EPL) 선수들의 플레이를 처음 봤어요. 동네 축구만 하다가 진짜 프로들의 실력에 큰 충격을 받았죠. 이후 해외 축구에 본격적으로 빠졌고 2010년 박지성 선수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로 이적하면서 지금까지도 열렬한 맨유 덕질 중이에요.


축구가 가장 좋은 이유? 말로 설명할 필요도 없죠. 축구만큼 전 세계적으로 열광하는 스포츠도 없어요. 세계인을 하나로 만드는 유일한 스포츠죠. 그리고 축구는 전문 선수가 아니라도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운동이지만 동시에 ‘잘’하기는 가장 어려운 운동이에요. 축구는 오직 발로만 하는데 발은 손보다 자유자재로 다루기 어렵기 때문이죠. 그래서 직접 축구를 하면서 즐길 수 있는 재미에다가 잘하는 선수들의 플레이를 보면서 얻는 재미까지 두 배로 누릴 수 있어요.


또 축구의 멋있는 유니폼도 입덕에 한몫해요. 축구는 국가별, 구단별, 선수별로 유니폼이 정말 다양해서 덕후라면 구입을 안 할 수 없어요. 저만해도 사고 싶은 유니폼만 구매한 건데도 벌써 200만 원 이상은 훌쩍 쓴 것 같네요.

한 씨가 소장하고 있는 유니폼 모음. (왼쪽부터) 프랑스, 잉글랜드, 크로아티아 소속의 유명 축구 선수 유니폼으로 아직까지 유니폼의 태그(Tag)를 떼지 않을 정도로 소중히 보관 중이다.

🏀히읗히읗

2021년 1월 3일 (날짜도 기억나요!) 원조 농구 덕후인 고모 덕분에 저도 농구에 푹 빠졌어요. 당시 고모집에서 잠시 살고 있었는데 고모는 90년대 대학 농구 시절부터 농구 팬이었기에 매일 저녁마다 농구를 틀어 놓으셨어요. 옆에서 같이 보다가 수원 KT의 ‘허훈’ 선수가 눈에 확 들어왔어요. 180cm로 농구 선수치고는 키가 작은 편인데도 키 큰 선수들 사이에서 돌파도 잘 하고, 슛을 잘 쏘는 선수에게 적절히 패스해서 게임을 구성하는데 꼭 사령관 같은 모습에 푹 빠졌죠.

히읗히읗은 “이제 ‘연차’는 오직 평일 낮 경기를 보러 갈 때만 쓰는 것이라며 농구 덕질을 시작한 이래 개인 휴가를 위해 연차를 써본 적은 없다”고 말했다.

마침 그날 허훈 선수가 트리플 더블*에 가까운 기록을 냈어요. 실력도 좋고 경기도 손에 땀을 쥐도록 재미있게 꾸려가는 선수한테 안 반할 수가 없었죠. 그때부터 경기도 매일 챙겨보고 직관도 다니게 됐죠. 이전까지는 스포츠는 물론이고 연예인 덕질도 해본 적이 없었는데 아직까지도 신기할 따름이에요.


*한 경기에서 득점, 어시스트, 리바운드, 가로채기, 블록 슛 5개 부문 중 3개 부문을 두 자리 수를 기록하면 인정받는 기록.


입덕 계기는 선수였지만 이제는 농구 자체에도 완전히 중독됐어요. 농구는 공격이 24초 동안만 진행돼 전개가 빠르게 이어지고 경기 시간이 1초가 채 안 남았어도 점수가 뒤집힐 수 있을 정도로 박진감 넘쳐요. 한시도 눈을 뗄 수 없고 그만큼 몰입도도 높아서 농구를 보고 있을 때는 어떤 잡념도 들지 않아요. 잠시라도 스트레스를 완전히 잊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좋게요? (경기에서 지면 스트레스가 더 쌓인다는 건 비밀…)


🏐 임진경

2010년 중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 TV 채널을 돌리다가 배구를 처음 봤어요. 룰은 물론이고 선수가 몇 명인지도 모를 정도로 쌩초보였는데 공이 진짜 빠르고 강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넋을 놓고 봤네요. 특히 스파이크를 파워풀하게 꽂을 때마다 막 짜릿하더라고요. 솔직히 당시 한선수, 문성민, 김요한 등 스타 남자배구 선수들이 잘생겼던 것도 한몫했고요(찡긋). 15살 때부터 배구를 덕질했으니까 따지고 보면 인생의 절반을 배구에 쏟았네요, 와!


보통 배구를 덕질한다고 하면 주변에서 여자 배구 좋아하냐고 많이 물어요. 여자 배구와 남자 배구는 또 다른 맛인 것 같아요. 여자 배구는 남자 배구보다 랠리가 길게 이어져서 쫄깃쫄깃하게 경기를 감상할 수 있고 남자 배구는 공격이 빠르게 이뤄지고 스파이크 등의 힘이 상대적으로 더 강력해요. 둘다 좋기는 하지만 전 속전속결, 시원시원하게 공을 때리는 것에서 쾌감이 느껴져서 남자 배구를 더 열심히 챙겨 봅니다.

2011년 1월 29일, 임 씨가 생애 처음으로 배구 경기를 직관한 날이다. 당시 고등학생 2학년이던 그는 직접 색도화지를 오려서 하드보드지에 붙인 수제 플래카드도 만들어서 응원을 갔다. 당시 경기에서 사인볼도 얻었다. 임 씨가 10여년 만에 싸이월드 사진첩을 뒤져서 꺼내온 옛 사진. 

사실 야구도 보고, 다른 스포츠들도 종종 즐기긴 하지만 여전히 최애는 배구예요. 배구는 4대 스포츠 중에 제일 신사적인 스포츠랍니다. 유일무이하게 상대팀 선수들과 직접적인 접촉이 없는 스포츠거든요. 선수들이 부상 당할 위험도 없고 혹시 모를 유혈사태를 걱정하지 않고 볼 수 있어요. 왜, 팬들은 응원하는 선수들이 다칠까봐 노심초사하잖아요. 또 배구는 공을 연속으로 두 번 터치하면 실점해요. 그만큼 혼자 잘 한다고 점수를 낼 수도 없고 팀플레이가 중요한 스포츠죠. 그래서 처음에는 선수 덕질로 시작해도 하다 보면 점점 팀 자체를 응원하게 되는 끈끈함도 배구만의 매력이죠.


‘덕계못(덕후는 계를 못탄다)’이라고 했던가? 계를 못타면 어떠한가. 누가 돈을 주는 것도 아니지만 굳건한 ‘덕심’ 하나로 열과 성을 다해 덕질하는 이들에게는 경기를 보며 얻는 희열과 기쁨이 계탄 것보다도 큰 즐거움이다. 그들은 오늘도 공 하나를 눈이 빠져라 좇으며 우승을 염원한다.🔥


에디터 조지윤 방지혜 ㅣ 사진 출처 뱅이, 한지용, 히읗히읗, 임진경

2023.10.01원문링크 바로가기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 등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브랜드로 거듭난 덕후들의 이야기
채널명
브랜더쿠
소개글
브랜드로 거듭난 덕후들의 이야기
    이런 분야는 어때요?
    ESTaid footer image

    © ESTaid Corp.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