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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이프 ]

1000그릇의 카레로 살아남은 여자, 카레머신

by브랜더쿠

호불호 갈리는 급식 메뉴 월드컵을 하면 늘 상위권을 차지하는 음식이 있다. 바로 ‘카레’다. 물과 전분을 넣고 국처럼 묽게 끓여낸 데다가 당근, 감자, 양파 등 채소가 큼직하게 들어간 ‘급식 카레’에 대한 불평을 여기저기서 쉽게 들을 수 있다. 급식 카레의 나쁜 기억 때문에 성인이 돼서도 카레는 입에도 안 댄다는 사람들도 많다.


벌써 2년째 매일매일 카레만 먹는 ‘카레머신’ 역시 그들 중 하나였다. 날 때부터 카레를 좋아했을 것만 같은 그도 오히려 ‘카레싫어’파였다고 터놓는다. 하지만 지금은 하루 한 끼는 기본이고 두 끼를 카레로 먹기 일쑤이다. 물론 평범한 노란 카레라이스를 생각하면 오산. 라자냐, 라멘, 핫도그, 떡국…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요리에 카레를 접목한다. 이를 사진으로 찍어 트위터 계정 ‘카레머신(@currymachine_)’에 올리는데 게시글이 1000여 개에 달한다. 팔로워도 2만 5000명을 돌파했다.


그녀는 어쩌다가 인도에도 없는 이 맛 타지마할*에 빠졌을까. 지난 5월 건대입구역 근처에 위치한 ‘로얄 인디안 레스토랑’에서 만나 카레를 먹으며 카레에 진심인 이유를 들어봤다. 아참, 기사에 앞서 기자가 만나 본 그의 이는 ‘흰 색’이었다. 더 이상 치아 색에 대한 질문을 사양한다는 그와 나눈 이야기를 풀어낸다.

*가수 '노라조'가 2010년 발매한 카레 찬양 노래 '카레' 가사 중 일부.

카레머신은 카레만 먹다 보면 이가 노랗지 않냐는 질문을 직접적으로 받은 횟수만 100회가 넘어간다고 말한다. 그는 이제는 치아색에 대한 논란이 종식되길 바란다고 거듭 강조했다.

카레가 제일 쉬웠어요

카레머신이 카레를 본격적으로 먹기 시작한 때는 2018년부터다. 당시 저녁에 학원을 다녔던 그는 가장 가까이에 위치한 밥집이 일식 카레집이어서 ‘어쩔 수 없이’ 방문했다고 회상한다. 그런데 머릿속에 남아있던 급식 카레와는 완전히 달랐다. 야채가 갈려 있어서 물컹한 야채의 식감이 느껴지지도 않았고 기존에 맛본 적 없던 묵직한 카레의 맛에 매료됐다. 이후 그는 본격적으로 카레 맛집 탐방에 나섰고 2019년 카레 맛집 사진을 올리는 ‘카레머신’ 계정도 개설했다.


하지만 카레머신 계정은 2년 간 팔로워 수가 40명 대에 머물렀다. 팔로워가 본격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한 것은 2021년 직접 만들어 먹은 카레 사진을 올리기 시작하면서다.

2021년 연말 카레정산이 리트윗 8000회 이상 되면서 팔로워 수도 급증했다고 설명한다. 사진 속 카레는 모두 카레머신이 직접 만들었다.

그가 카레를 만들어 먹기 시작한 것은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 때문이다. 당시 첫 자취를 시작한 그는 식비를 아끼기 위해 직접 음식을 만들어 먹으려고 했는데 요리를 잘 못해서 레토르트 식품을 찾게 됐다. 가장 쉬운 방법은 즉석 카레. 그 중에서도 주변에서 맛있다는 평이 많았던 ‘키친오브인디아’의 ‘버터치킨커리’ 제품을 처음 먹게 됐다. 의외로 향신료가 입에 잘 맞기도 하고 치즈, 소고기 등 토핑을 더하면 색다르게 먹을 수도 있었다.


이를 시작으로 다양한 레토르트 식품을 섭렵했는데 시판되는 맛의 종류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강황가루, 큐민씨드 등 향신료를 직접 사서 만들면 맛을 다양하게 낼 수 있겠다는 생각에 하나 둘 사 모으기 시작했다. 그렇게 현재까지 18가지나 모았다.

카레머신이 집에서 카레를 만들 때 사용하는 향신료와 각종 재료들. 노란색 강아지 캐릭터 '폼폼푸린' 인형은 카레머신의 사진에 빠지지 않는 시그니처다.

분말가루나 고형카레가 아니라 직접 향신료로 요리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까? 카레머신은 카레를 끓이는 것을 김치찌개 끓이는 것에 빗대며 굉장히 간단하다고 설명한다. 한 마디로 말해 ‘재료를 전부 볶다가 끓이면 끝!’ 그가 알려준 초간단 레시피는 다음과 같다.


1. 향신료를 취향에 맞게 배합해 기름에 볶아서 향을 낸다.

2. 토마토를 믹서기에 갈아 채에 곱게 거른 후 1에 넣고 볶는다.

3. 취향에 맞게 코코넛 밀크나 생크림을 2에 넣고 끓인다.

4. 소금 등으로 간을 맞춰주면 완성.


과정은 쉽지만 만드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은 사실이다. 카레머신은 커리를 직접 만들어 보면 카레 전문점이 가격을 비싸게 책정하는 이유를 알 수 있다고 말한다. 뭉근하게 끓이면 끓일수록 향신료가 배어 나와 맛이 깊어져 최소 2시간은 들여야 맛있는 카레를 만들 수 있어서다.

그럼에도 가정집에서 맛있는 카레를 먹고 싶다면 ‘토마토’를 기억하라고 강조한다. 그는 “토마토가 카레의 전체적인 맛의 중심을 잡아주는 핵심 존재”라며 “곱게 갈은 토마토만 넣어도 맛이 확 산다”면서 적극 추천했다. 한 발 더 나아가고 싶다면 생크림이나 고수 씨앗 가루를 구비해 두는 것도 제안한다. 생크림을 넣으면 맛이 보다 부드러워지고 고수씨앗 가루는 향이 강해서 호불호가 갈릴 수는 있지만 커리 본연의 풍미를 대폭 끌어 올려준다는 설명이다.

HOW TO : 카레 맛있게 먹기

“결혼해주실래요?”

카레머신의 익명형 SNS 질문답변 서비스 ‘페잉’에는 레시피를 물어보는 질문부터 본인과 결혼해 달라, 혹은 반려동물(!)로 들여 달라는 요청까지 1700건이 넘는 질문이 등록돼 있다. 특히 그가 직접 카레 가게를 내줬으면 좋겠다고 바라는 이들이 많다. 해물 카레 칼국수, 냉 카레 라면 등 시중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메뉴들을 직접 개발해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카레머신이 겨냥하는 사람들은 이미 카레와 사랑에 빠진 사람들이 아니라 여전히 카레를 미워하는 사람들이다. 그는 본인도 카레를 싫어했던 전적이 있기 때문에 카레 초보자들이 ‘왜’ 카레를 싫어하는지 알고 있다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초심자들도 부담없이 카레를 시도해볼 수 있는 방법 몇 가지를 전한다.

(1) 다이어트식으로도 추천하는 카레 두부볶음 (2) 커리가 난과 어울리는 것처럼 카레는 빵 종류와도 잘 어울린다고 설명한다.

먼저, 한국식 카레를 먹을 때는 분말을 이용해 볶음밥을 만드는 것을 추천한다. 급식 카레의 기억 때문에 카레덮밥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카레머신은 일반적인 볶음밥 레시피에다가 마지막에 카레 가루를 첨가하면 깔끔하게 맛볼 수 있다고 전한다. 특히 건강식을 선호하는 사람들은 밥 대신 두부를 으깨서 볶다가 카레 가루를 더하면 건강한 한 끼 식사가 가능하다고 한다. 참고로 그는 ‘카레여왕’의 ‘구운마늘와 양파’ 분말이 입맛에 가장 맞았다고 추천한다.


평소 자신이 좋아하는 식재료에 카레를 곁들여보는 것도 방법이다. 그는 냉동만두, 타코야끼, 닭볶음탕 등 다양한 음식에 카레를 더하는데 향이 워낙 강하기 때문에 어떤 음식이랑도 어색하지 않다고 설명한다. 이 때문에 자취생들이 유통기한이 다 되어가는 식재료로 ‘짬처리’하기에도 좋다고 덧붙인다. 실제로 카레머신 또한 식빵을 빨리 먹기 위해 카레를 소스처럼 발라서 샌드위치를 해먹었는데 의외로 만들어 본 음식 중 제일이었다고 평가한다.


한편, 외식으로 커리 혹은 카레를 즐길 때도 더 맛있게 먹는 방법이 있다고 강조한다. 인도식 커리를 먹을 때에는 기본 플레인 난보다는 각 커리의 특성에 맞춰 맛을 배가시킬 수 있는 난을 선택하기를 추천한다. 예컨대 ‘반달루’처럼 매운 커리는 치즈난이나 허니난처럼 매움을 중화시켜 주는 난과 먹거나 ‘마크니’처럼 부드럽고 다소 밍밍하게 느껴지는 커리는 갈릭난처럼 자극적인 난과 곁들이면 맛있다고 한다.


일본식 카레는 인도식 커리의 마살라나 가람처럼 향이 강한 식재료가 없어서 토핑을 더해 먹기 좋다고 한다. 특히 밀가루로 만든 루를 베이스로 하기 때문에 같은 밀가루 음식, 그 중에서도 가라아게나 돈가스처럼 바삭거리는 식감이 살아 있는 튀김류가 잘 어울린다고 설명한다.

샨티 샨티 카레 카레야

2022년 9월 23일부터 12월 31일까지 진행한 1일 1식 카레 100일 챌린지에서 먹은 카레 사진이다. 그는 현재까지도 1일 1식은 꼭 카레로 하고 있으며 심지어 사진으로 찍지 않고 먹는 카레들도 상당하다고 고백한다.

질리지 않을까? 100번도 넘게 받은 진부한 질문이지만 그때마다 그는 단호하게 ‘질리지 않다’고 말한다. 그 비결은 매번 재료 배합을 새롭게 해서다. 똑같은 카레 라멘을 만든다고 해도 향신료의 비율은 계속 바꾼다. 카레 레시피북 출판 요청을 여러 차례 받았지만 모두 고사한 이유다. 매번 비율과 재료를 달리하기에 아직까지 완성됐다고 말할 수 있는 레시피가 없기 때문이다. 그만큼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하기에 새로운 레시피 공부에도 열심이다. 기존에 출판된 요리책을 읽거나 유튜브에서 인도, 일본 등 현지인이 공개한 레시피를 찾아서 연구한다. 


올 1월에는 일본 도쿄로 3박 4일 카레 투어도 다녀왔다. 하루에 두 끼씩 카레를 꼬박꼬박 챙겨 먹었는데 1일 1업로드를 하다 보니 당일에 먹은 걸 올리지 못하고 전날 먹은 걸 올려야 할 만큼 게시글이 밀렸다는 후문. 심지어 맛이 없었거나 플레이팅이 마음에 들지 않게 된 경우에는 업로드를 아예 하지 않을 때도 있다. 카레머신은 “트위터에서 보이는 것보다도 많이 먹는다”며 웃어보인다.


인도나 일본으로 또 카레 투어를 떠날 생각이 없냐는 질문에 “생각보다 한국 카레 전문점들의 수준이 높아서 국내 카레를 먼저 충분히 즐길 것”이라고 답한다. 실제로 만들어 먹는 만큼 카레 맛집을 찾아다니는 것도 좋아한다. 그중 최애로 꼽는 곳은 4호선 한성대입구역 인근에 위치한 ‘카레’. 2주마다 메뉴가 바뀌는 곳으로 일식, 인도식, 한국식 어느 것으로도 정의할 수 없을 만큼 독특하다고 한다.

냉라면, 유부초밥, 피자 등 다양한 요리에 카레를 접목하고 있다. 여태까지 간맞추는 데 실패한 적은 있어도 조합 자체는 실패한 적이 없다고 전한다.

카레머신은 팔로워가 40명일 때부터 쉬지 않고 꾸준히, 오직 카레에만 집중해 왔다. 그는 “급식에 나오는 카레만 먹어봤는데 이런 카레가 있는지 몰랐다는 반응을 볼 때 제일 신난다”며 “카레도 다른 음식 못지 않게 맛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 시작한 만큼 뿌듯하다”고 힘주어 말한다. SNS상에는 수많은 음식 계정이 있지만 카레 하나로도 살아 남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만큼 요즘의 하루하루가 즐겁다고 덧붙인다.


그는 어떤 카레를 제일 좋아하냐는 물음에는 언제나 ‘오늘 기준으로~’를 함께 말한다. 지난 5월 9일 기준으로 양고기와 캐슈넛 크림을 넣고 만든 ‘램 코르마’ 커리가 최고라고 답했다. 진정한 카레 박애주의자로서 모든 카레의 매력을 알리고 싶다는 그가 만들어 갈 ‘노란 카펫’이 기대된다.


에디터  조지윤|사진 출처  카레머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