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나온 정몽규, HDC에 아시아나항공 품고 설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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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규 HDC그룹 회장이 12일 서울 용산구 아이파크몰 대회의실에서 아시아나항공 인수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관련 기자회견에서 질문할 기자를 지목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동안 너무 조용했다. HDC그룹은 아시아나항공 인수전을 놓고 극도로 말을 아껴 인수 의지를 의심받기도 했다. 하지만 정몽규 HDC그룹 회장은 아시아나항공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자 언제 그랬냐는 듯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아시아나항공 정상화와 HDC그룹의 변화를 자신했다.

 

정 회장은 12일 서울 용산 아이파크몰 9층 대회의장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김대철 HDC현대산업개발 대표이사 사장, 유병규 HDC 부사장 등 이번 인수전을 이끈 주요 임원들을 대동했다. 하지만 30분 가까이 이어진 기자들과 질의응답 동안 임원들에게 답변 기회는 한 번도 주어지지 않았다.

 

정 회장은 질문을 요청한 모든 기자들에게 질문 기회를 줬고 기자 16명의 질문에 모두 직접 대답했다. 적극적으로 인수합병에 나서는 이유에 정 회장은 “많은 사람들이 경제가 어렵다고 하는데 그럴 때가 인수합병에 가장 좋을 때”라며 “HDC현대산업개발이 앞으로 3년 동안 상당히 좋은 이익구조가 예상되는데 지금이 기업을 인수하기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고 대답했다.

 

아시아나항공이 국내 2위 항공사로 그럴싸해 보이지만 알짜자산을 많이 매각해 앞으로 경영이 어렵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정 회장은 “몸집이 가볍다는 것은 2가지 측면에서 볼 수 있다”며 “몸집이 가벼워 경쟁력에 저해가 될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더 빨리 변화에 적응할 수도 있다”고 응수했다.

 

인력 구조조정이 뒤따를 가능성을 놓고는 오히려 이번 인수합병이 일자리를 늘릴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 회장은 “인수합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경쟁력 강화인데 경쟁력이 있으면 당연히 회사가 성장을 하고 이렇게 되면 인력 구조조정보다는 여러 사람들한테 좋은 일자리를 더 많이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인력 구조조정은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정 회장의 자신감은 막대한 신주 인수자금과 꼼꼼한 실사가 뒷받침한 것으로 보인다. 정 회장은 “신주 인수에 2조 원 이상이 들어가는데 이렇게 되면 아시아나항공의 부채비율이 300% 아래로 떨어져 재무 건전성이 상당히 좋아진다”며 “아시아나항공의 나쁜 악순환을 선순환으로 바꿀 수 있다”고 자신했다.

 

시장에서는 HDC현대산업개발과 미래에셋대우 컨소시엄이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2조5천억 원가량을 써낸 것으로 알려졌다. 아시아나항공은 신주 인수대금이 많을수록 더 많은 자금이 유입돼 정상화 시기가 빨라질 수 있는데 정 회장은 인수대금의 대부분을 신주 인수에 활용하기로 한 셈이다.

 

앞으로 협상 과정에서 아시아나항공의 추가 부실이 나오면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묻는 질문에 정 회장은 “대부분 문제가 실사 과정에서 나와 앞으로 그보다 더 큰 문제가 새로 나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정 회장은 파트너인 박현주 미래에셋대우 회장을 향한 신뢰와 항공업황 회복을 향한 기대도 보였다.

 

정 회장은 “무리하면 HDC그룹 혼자서도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할 수 있겠지만 여러 인수합병을 성공적으로 이끈 박현주 회장의 안목이나 인사이트를 얻고 싶어 함께 하게 됐다”고 말했다. 박 회장과 일화도 하나 소개했는데 박 회장은 정 회장에게 “우리나라 사람의 40% 정도가 여권을 지니고 있는데 중국은 4%에 그친다. 중국의 여권 소유 비율이 10%만 되도 여행 수요가 크게 늘지 않겠느냐”며 항공업황의 미래를 밝게 봤다는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정 회장은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통해 HDC그룹이 나아갈 방향으로는 ‘모빌리티그룹’을 제시했다. 그는 “아직 명확한 개념이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HDC그룹이 항만사업을 하는 만큼 육상, 해상, 항공 등을 확장하며 모빌리티그룹으로 나아가는 방법을 좀 더 연구할 수 있을 것”이라며 “그런 점에서 아시아나항공 인수의 의미는 크다”고 말했다.

정 회장은 이번 기자간담회에서 모빌리티그룹을 새 비전으로 제시하면서도 명확한 개념을 제시하지 않았는데 아직 우선협상대상자 위치라는 점, 시장에서 여전히 이른바 ‘승자의 저주’ 가능성이 나온다는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몽규 HDC그룹 회장(가운데)이 12일 서울 용산구 아이파크몰 9층 대회의실에서 김대철 HDC현대산업개발 대표이사 사장(왼쪽), 유병규 HDC 부사장(오른쪽) 등과 함께 아시아나항공 인수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시장의 요구에 따라 새로운 비전을 내놓되 아직 불확실성이 존재하는 만큼 구체적 청사진과 관련해서는 말을 아낀 셈이다. 모빌리티그룹과 관련해 정 회장이 물류를 강조한 만큼 대한항공을 누르고 1등이 되겠다는 해석도 가능하지만 정 회장이 현대차 출신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또 다른 그림을 그리고 있을 수도 있다.

 

정 회장은 현대차를 키운 정세영 고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의 아들로 현대차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해 현대차 회장까지 지냈다. 올해는 정 회장이 1999년 현대그룹에서 현대산업개발을 들고 나온 지 20년이 되는 해다. 정 회장은 20년 동안 현대산업개발을 자산 10조 원이 넘는 대기업집단으로 키웠고 이제는 그룹의 체질을 획기적으로 바꿀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눈 앞에 두고 있다.

 

정 회장은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성장할 수 있었던 데 감사드린다”며 “많은 책임감을 느끼고 더 경영을 잘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이한재 기자

2019.11.13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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