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면허, 직접 따봤는데요
[최디터의 리얼드라이브]
“22번 차량, 굴절 탈선 5점 감점입니다. 22번 차량, 점수미달 실격입니다.”
탈락과 합격의 짜릿함이 장내 방송을 통해 모두에게 전달되는 공간. 면허시험을 겸하는 운전면허 학원이다. 승용차와 오토바이, 대형 면허를 취득하기 위해 다양한 나이대의 사람들이 모였다. 첫 운전대의 꿈을 안고 찾은 갓 스무살부터 ‘도전에 성별과 나이는 의미 없다’며 대형면허에 도전하는 여성 운전자까지 다양하다. 모두 각자의 이유와 목표가 있는 법이다.
지난 2019년 2종 소형 면허를 취득하면서 ‘다음은 대형면허다’라는 다짐을 했다. 여러 신변의 변화와 함께 찾아온 코로나19라는 전례 없던 상황에 3년이나 미뤄졌다. ‘늦었다 생각할 땐 진짜 늦었다’는 모 개그맨의 방송 명언을 떠올리며 바로 도전에 나섰다.
저 코스들을 직접 할 생각을 하니 아득해진다. |
대형 면허 인기의 시대
2종 소형을 취득하며 느낀 것이 있다. 자만하면 고배를 마시기 쉽다는 것이다. 돈을 들여 학원을 다니는 것은 결코 미련한 선택이 아니다.
16년전 면허 취득에 도움을 준 학원으로 전화를 걸었다. 학원마다 수강료를 ‘전화상담’으로 표시해둔 탓이다. 최근 또 값이 오른 테슬라 마냥 수강료가 싯가라는 이야기도 심심찮게 들렸기 때문에 사전 확인이 필요했다. 그렇게 확인한 가격은 62만 3천원. 이 때가 2월 말이다.
그런데 학원측에서 “당장 오늘 와서 등록하셔도 4월 말에나 수강이 가능하다”는 말을 한다. 코로나 19 직후 대형면허의 인기가 높아졌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이정도 일 줄은 몰랐다. 동시에 ‘못먹어도 GO’, ‘우물쭈물 하다 이럴 줄 알았다’와 같은 여러 명언들이 머릿속에서 요동친다. 4월이라도 도전할 요량으로 일단 학원으로 향했다.
그런데 이게 웬걸. 막상 도착해보니 ‘취소한 사람이 있어서 3월 말에 바로 가능하겠는데요?’란다. 다만 요즘 인기가 많은 시험이기 때문에 수강시간을 모두 미리 예약을 해야 한단다. 중간중간 여러 일정들이 있어 조율이 필요했지만 우선 가능한 시간을 놓치기 싫어 빠르게 예약했다.
1종 대형면허는 1종 보통 또는 2종 보통 면허를 1년 이상 소지한 경우 응시 가능하다. 수동변속기를 해본 적이 없어도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다만 1종 보통과 마찬가지로 1종 대형 역시 수동변속기로 시험을 봐야 하기 때문에 경험이 없으면 낭패보기 쉽다.
수강 과정은 두가지로 구성됐다. 학원의 재량이 아닌 도로교통법에 따른 구성으로, 학과 교육 3시간과 기능 교육 10시간을 이수해야 한다. 기능교육의 경우 하루 최대 4시간으로 제한된다. 일정을 열심히 쪼개고 옮겨 예약을 확정했다. 토요일 학과 교육 3시간 받은 후, 그 다음 주 월요일 3시간, 수요일 3시간, 목요일과 금요일은 각 2시간씩 연습한 후 바로 다음날 시험을 보기로 했다. 시험 전 필수로 받아야 하는 신체검사도 중간에 진행하기로 했다. 신체검사는 강남운전면허시험장에서 7천원.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인데, 면허 시험장과 학원에서는 좋은 차를 쓰지 않는다. 물론 일부 학원은 DN7 쏘나타나 베뉴를 쓰기도 한다. |
왼쪽 둘, 물받이 맞추고, 검지선 타고 돌고… 아니지! 뒤로 빼!
대형 면허는 15인승 이상 승합차와 12톤 이상의 화물차와 건설기계로 분류되는 일부 트랙터 종류를 운전할 수 있지만 시험은 모두 버스로 진행한다. 연습과 시험에 사용되는 차는 모두 3대. 당연하게도 수동변속기에, ‘이게 과연 정상적으로 굴러갈까’ 싶은 오래된 모델들이다.
그래도 다행이라면 엔진의 힘이 매우 세다는 것. 모델에 따라 다르지만 작게는 6천cc, 높게는 1만 cc를 넘는 배기량을 갖고 있어 수동변속기가 익숙하지 않아도 시동이 잘 안꺼진다. 승용차와 달리 길게 올라온 기어 변속기 탓에 4단으로 출발하는 기행도 펼쳤지만 거친 숨 토해내듯 울컥거리며 앞으로 나아간다. 나름 수동변속기로 서킷 주행도 해봤는데 꼴이 말이 아니다.
서너바퀴 쯤 돌았을까, 강사가 “잘 하는 편이니 코스로 들어가보자”고 한다. 코스 역시 학원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구성은 동일하다. 이 곳의 경우 횡단보도와 오르막길, 굴절, S자, 평행주차, 철길, 방향전환(T자 주차), 가속 순서다. 중간에 돌발 상황이 추가된다.
큰 돈을 들여 학원을 수강하는 이유가 여기서 빛을 발한다. 대형 면허 탈락의 최대 지분을 갖고 있는 굴절 코스는 버스에게 앞뒤좌우 10여cm 정도의 여유 밖에 주지 않는다. S자와 방향전환 역시 감만 믿고 돌진하면 그대로 연석을 타고 오르게 된다. 그러면 면허 취득 역시 감감무소식이 된다.
면허 취득과 취재를 마치고 알았다. 굴절 쪽은 보기도 싫었는지 사진 한장 안찍었다. |
“동그란 거울보고 맞추고, 좌로 두바쿠, 오른쪽 물받이 맞추고! 너무 갔잖아! 뒤로 빼!”
사투리가 심한 강사의 호통이 거세진다. 앞바퀴가 운전석 뒤에 있고, 뒷꽁무니가 엄청나게 길며, 회전반경도 크기 때문에 한참을 헤맨다. 머드가드 같은 부분을 물받이라고 하는 통에 더 정신없다. 그래도 다른 코스는 비교적 수월 했지만 굴절코스가 난관이다. 학원과 강사에 따라 후진으로 보정하는 단계 없이 바로 돌리기도 하지만 엄두도 나지 않는다. 조금만 방심하면 바로 선을 밟아버린다. “밟았다 싶으면 아싸리 엑셀 확 밟아서 앞으로 가버려. 벽만 안박으면 끽해야 탈락이고 운 좋으면 탈선 한번으로 끝나” 란 강사의 답답함 담긴 조언이 무섭다.
진땀을 빼는 연습이 이어진다. 이러다간 재시험은 내 운명이 되겠구나 싶은 순간도 온다. 그 와중에 교육 내내 혼을 내기만 하던 강사가 따뜻한 말 한마디도 건내준다. “학원 차 서이(셋) 중에 클러치랑 검지선 예민한 차가 하나 있어. 그거만 아니면 총각은 합격 할거여” 채찍과 당근의 환장의 조화다.
결전 당일, 비 오는 날은 처음인데요
우여곡절의 10시간이 지났다. 연습을 모두 마치고 시험 접수까지 했다. 연습 내내 우중충하긴 했어도 비는 오지 않았다. 그런데 시험 당일은 아침까지 많은 비가 내린다는 예보다. 물 웅덩이가 생겨서 검지선이 안보이면 어쩌나 고민이 태산이다.
다행히 시험 시간 즈음에 비가 그쳤다. 멀리서 살펴보니 물 웅덩이도 심하지 않다. 남은 난관은 예민한 차를 피하는 것과 굴절 코스를 무사히 벗어나는 것이다.
물론 희망사항처럼 잘 흘러가면 재미가 없다. 바로 그 예민한 차가 시험 차로 뽑혔다. ‘처음부터 운이 좋지 않아. 망한게 분명해’라는 저주를 속으로 삼키며 운전대를 잡았다.
저주를 내린 탓일까. 처음부터 실수가 발생했다. 오르막 코스도 가기 전, 횡단 보도 앞에서 잠깐 정차 하는 코스에서 감점이 생겼다. 예민한 차가 걸렸다는 생각 때문에 너무 멀리 차를 세웠다. 머릿속이 복잡하게 돌아간다. ‘여기서 -5점이니까 굴절에서 또 5점씩 두번 까이면 -15점. 나머지에서 실수 안하면 아슬아슬 통과다’라는 계산이다. 100점 만점 중 80점만 넘으면 되니 나머지 차분하게 하면 되겠다 싶다.
왼쪽 한번, 오른쪽 한번. 직각 회전을 두번 연달아 해야 하는 굴절 코스다. 교육 내내 귓가에 맴돌았던 강사의 사투리를 떠올리며 차분히 공략해 나간다. 전체 코스 13분 41초, 세부 코스 당 2분 내에만 통과하면 되니 급할 것은 없다. 그럼에도 오른쪽으로 꺾으며 뒷바퀴가 검지선에 살짝 걸렸다. 통과에 소요된 시간은 1분 34초. 검지선을 밟은 탓에 또다시 -5점.
이후 코스는 모두 순조로웠다. 오른쪽 왼쪽 물받이를 차례로 리듬을 타며 S자 코스도 잘 빠져나왔다. 검지선 측정에 예민해서 특히 주의하라던 주차도 어쩐 일로 한번에 됐다. 초반 오르막 경사를 무사히 빠져나온 이에게 철길은 방지턱만 못한 장애물이다. 방향전환(T자) 역시 여유롭게 빠져나왔다. 시험 컴퓨터 화면에 표시된 소요시간은 10분 15초. 가속과 변속만 잘 하면 합격이다.
너무 순탄한 코스 공략에 방심한 탓일까. 출력도, 클러치도, 모든 것이 예민한 시험차는 속도를 제대로 올려주지 못했다. 속도계는 분명 시속 30km를 가리키는데, 실제로는 시속 23km가 안나온다. 결국 속도 미달로 또다시 감점을 받았다.
뭐가 됐던 합격 표시는 기분이 좋다. 다음은 특수 견인 차례다. 언제 취득할진 장담할 수 없다. |
최종 결과는 89점. 턱걸이 합격이다. 출발선에서 대기 중이던 다른 수험자들이 축하를 건낸다. 몇번만에 합격했냐는 질문이 가장 먼저다. 그만큼 불합격률이 높다는 뜻이다. 이날 대형 시험을 본 사람은 기자를 포함해 총 8명. 그 중 합격자는 3명에 불과했다.
“근데 왜 딴거야? 버스 탈 일이 있어?“ 사실 주변에서 가장 많이 물어본 내용이다. 버스나 트럭을 탈 일이 있냐는 것이다.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먼 훗날 노후 대비로 쓰이게 될 수도 있지 않은가. 물론 당장은 상용차를 원할히 하기 위해 취득했지만 역시 알 수 없는 법이다.
총 비용.
- 학원 수강비 62만 3천원
- 면허 시험용 신체 검사 7천원(여권용 사진 2매 필요)
- 기능시험 검정료 5만 5천원
- 면허 재발급 비용 8천원(예정. 여권용 사진 1매 필요)
= 69만 3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