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풍스러운 남인도의 도시, 코치
채지형의 리틀인디아 제1화
인도에 왔습니다. 명상하러 온 것도 요가를 배우러 온 것도 아닙니다. ‘나’를 찾기 위해 훌쩍 떠난 것도 아닙니다. 의외라고 생각하시겠지만, 신혼여행을 위해 이곳에 왔답니다. 친구들 대부분은 “신혼여행을 왜 인도로?”라고 눈을 크게 뜨고 물어보더군요. 신혼여행이라면, 몰디브나 칸쿤, 발리 같은 아름다운 섬에 가서,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상태로 보내다 와야 할 텐데 왜 하필 인도냐고요.
첫 번째 이유는 결혼식장에 손잡고 들어갈 평생 친구가 가장 좋아하는 나라이기 때문이었습니다. 힌디를 배우고 손가락으로 밥을 조물조물 뭉쳐 먹을 정도로 인도를 사랑하는 친구 거든요. 두 번째는 ‘인크레더블 인디아’인 인도의 끝없는 매력 때문입니다. 암리차르에서 찬디가르로 가는 버스에서 만난 아저씨의 말이 생각나는군요. “인도에서는 200km마다 다른 문화를 만날 수 있어” 커다란 터번을 두른 시크교도 아저씨였습니다.
평생 친구가 허니문으로 가고 싶어 하는 곳, 수많은 매력이 넘쳐나는 곳, 이 정도면 이유는 충분했습니다. 위험한 길이 나타나면 손을 더 꼭 붙잡고, 아름다운 풍광을 보게 되면 눈빛을 마주하겠죠. 그런 생각으로 인도에 왔답니다.
‘인도’하면 북적거리는 열차와 요가 하는 이들만 떠오르신다면, 저와 함께 인도 여행을 떠나보시죠. ‘리틀 인디아’를 통해 인도의 소소하고 달달한 맛을 보여드릴게요.
인도에서 가장 오래된 무역항, 코치
코치항의 평화로운 풍경 |
인도 허니문의 첫 번째 여행지는 남인도에 있는 코치(Kochi)이라는 곳입니다. 인도를 여러 번 여행한 이들에게는 ‘인도 같지 않은 곳’, 인도를 처음 접한 이들에게는 ‘이곳이 인도구나’ 싶은 곳이죠. 다른 지역에 비해 깨끗하고 곳곳에서 여유로움이 묻어납니다. 그래서 ‘인도는 지저분해’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인도가 아닌 것 같아’라고 말하죠. 그런가 하면, 인도 특유의 향과 원색의 향연이 펼쳐져, ‘역시 인도’라는 생각도 든답니다.
(왼쪽) 코치항에서 갓 잡은 생선과 생선을 파는 사람들 (오른쪽) 코치항에서 맛본 게찜. 만원이 안된 가격에 싱싱한 게 요리를 맛볼 수 있다 |
인도는 북위 35도에서 5도까지 해안선이 30,00km에 달할 정도로 크고 길답니다. 북쪽과 남쪽의 차이는 그야말로 천지 차이죠. 같은 3월이지만, 지역별로 온도 차이가 수십 도씩 날 정도예요. 남인도 중에서도 코치는 케랄라 주에 속해 있습니다. 케랄라 주는 타밀나루 주와 함께 뾰족한 남인도를 차지하고 있는 주인데요, 길고 긴 서해안을 따라 환상적인 해변이 이어져 있답니다.
코치의 매력중 하나는 크고 오래된 나무들 |
동글동글 그림 문자 같은 말라이야람
그림같은 문자, 말라이야람 |
코치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저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독특한 문자였습니다. 말라이야람(Malayaram)이라는 케랄라 주에서 쓰는 문자였는데요. 인도에는 수십 가지의 언어가 있다고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직접 힌디와 다른 문자를 보니 느낌이 다르더군요. 동글동글한 모양 때문에, 글자라기보다는 그림 같았습니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본 인도영화 ‘투 스테이츠’(2 satates)가 생각나더군요. 인도 북부와 남부의 문화 차이를 재미있게 그린 영화였는데, 북부에 사는 이들이 남부에 와서 말이 안 통화는 장면이 나오거든요. 영화를 볼 때는 그런가보다 싶었는데, 막상 코치에 와서 독특한 문자를 보니 무릎이 탁 쳐지더라고요.
(왼쪽)말라이야람이 신기해 가르쳐달라고 했더니 호텔 스탭이 이름을 말라이야람으로 적어주고 있다 (오른쪽)글자를 쓰는 모습도 그림을 그리는 것 같은 말라이야람 |
역사를 품고 있는 마탄체리 궁전과 유대인 마을
코치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벽화 |
코치 여행을 즐기기 위해 포트코치로 향했습니다. 코치는 인도에서 가장 오래된 무역항으로, 로마 시대부터 향신료 무역으로 유명한 지역이었어요. 긴 시간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 중국에서 다양한 이들이 드나들었습니다. 그래서 인도에서 다양한 문화를 볼 수 있는 대표적인 곳 중 하나죠. 인도 남부 전통문화를 기반으로 향신료를 차지하려고 침입한 포르투갈과 네덜란드, 영국인들의 문화, 인도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유대인 마을까지. 자그마한 마을에 겹겹이 다른 색으로 쌓인 나이테가 이곳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준답니다.
코치에는 1503년에 세워진 성당이 있습니다. 성 프란시스 성당인데요. 코치의 아픈 역사를 품고 있는 곳이에요. 처음에는 포르투갈 수도회에서 성당으로 지었는데, 네덜란드가 들어와 개신교회로 사용되었어요. 다시 영국이 지배하면서 성공회당으로 쓰였답니다. 기구한 운명이죠. 이 성당은 바스코 다가마 때문에 많은 이들이 찾기도 해요. 바스코 다가마의 시신이 12년간 성 프란시스 성당에 묻혀 있었거든요.
마하라자가 살았던 마탄체리 궁전. 벽화를 놓치면 안된다. 내부 촬영은 금지 |
성 프란시스 성당과 함께 코치에서 꼭 들르는 곳이 마탄체리 궁전과 유대인 마을입니다. 마탄체리 궁전은 코치를 지배하던 마하라자가 살던 곳인데요. 포르투갈 상인들이 지어준 것으로, 이후에 네덜란드의 장인들이 보수공사를 했다고 해요. 규모가 그리 크진 않지만, 안에 들어가면 놀라운 벽화들을 보실 수 있답니다. 힌두 신화를 담고 있어 이야기를 모두 이해하긴 힘들지만, 500년이라는 시간을 뛰어넘는 세련된 색감과 선, 긴 이야기들은 감동을 주기에 충분하더군요.
진한 인도의 향이 솔솔 ‘스파이스 마켓’
유대인이 살았던 유대인 마을. 지금은 골동품 거리로 유명하다 |
마탄체리 궁전을 돌아보고 나오면 유대인 마을이 시작됩니다. 코치에 유대인이 자리 잡게 된 연유는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지만, 한때 유대인들이 마을을 형성할 정도로 살았다고 해요. 이 안에는 빠르데쉬 시나고규라는 유대교 회당이 있는데요. 안에 들어가니, 예루살렘에 와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더군요.
유대인 마을의 골동품들 |
유대인 마을은 유대인들이 살았던 역사뿐만 아니라 골동품점이 모여 있는 곳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어요. 힌두교 신을 형상화한 것부터 성당에 있어야 할 것 같은 성모상, 더 이상 작동하지 않을 것 같은 전화기, 무엇에 사용했던 물건인지 물음표를 떠오르게 하는 것들까지 작은 가게 안에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물건들이 쌓여있더군요.
(왼쪽)원색이 찬란한 인도 (오른쪽)코치의 구석구석에 향을 진하게 풍기는 향신료 |
골동품들을 둘러보며 어슬렁거리다 보면, 코를 자극하는 곳이 나타납니다. 각종 향신료가 가득한 스파이스 마켓. 클로브와 카르다몬, 시나몬, 정향 등 귀한 향신료들이 널려 있답니다. 색도 향도 모양도 다양한 향신료들. 향신료들이 내뿜는 향에 흠뻑 취해 있다 보니, ‘아, 인도구나’하는 느낌이 온몸에 퍼지더군요.
시간과 문화, 자연이 만들어 낸 한 폭의 그림
중국식 어망으로 고기를 잡는 사람들 |
코치의 아이콘 중 하나는 중국식 어망입니다. 아라비아 해 위에 거대한 그물망이 줄줄이 처져 있죠. 뜨거운 햇살에 검게 그을린 건강한 팔뚝을 한 장정들이 거대한 그물을 내린 후, 고기들이 모이기를 기다렸다가 그물을 건져 올립니다. 잡히는 고기가 그다지 많지는 않지만, 고기가 올라오는 것만으로도 신기하더군요. 작은 어망을 사서 저도 한번 고기를 잡아보고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한폭의 그림을 연출하는 코치항의 일몰 |
여행자들에게는 어망이 늘어서 있는 곳이 일몰을 보는 포인트입니다. 오렌지빛으로 물들어가는 하늘과 삼각형 모양으로 이어져 있는 어망은 더없이 찬란한 풍광을 연출하거든요. 이곳에 와서 새로운 삶을 일궈 간 사람들의 삶이 어망에 묻어 있는 것 같아서일까요. 단순히 아름다운 곳에서 일몰을 보는 것과는 다른 기분이었습니다.
파스텔 톤으로 젖어 드는 하늘처럼, 제 마음속에도 코치가 진하게 들어오기 시작하더군요. 리틀 인디아 2회에서는 코치의 다른 모습을 소개해드릴게요. 남인도의 문화와 예술, 그리고 멋진 카페들로 가득 찬 코치. 기대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