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떠난 3박 4일 제주 자전거 일주
채지형의 여행살롱 10화
제주에서 한 게스트하우스에 묵을 때였습니다. 부산에서 자전거를 배에 싣고 온 친구와 우연히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제주를 여행하는 모습이 참 부럽더군요. 마감해야 한다며 제주까지 와서 모니터와 씨름하는 저와는 참 달라보였죠.
그때 마음먹었습니다. 언젠가, 언젠가는 한번쯤 자전거를 타고 제주를 돌아 보리라고요. 시간은 흐르고, 어수선하고 시끄러운 마음은 여전했습니다. 밤샘은 계속 되고 주말로 이어지는 일들은 도대체 짬을 내주지 않았던 날들이었죠. '여행의 힘'을 강조하며 틈이 나지 않으면 내서라도 여행을 떠나라고 주장하던 사람이 저였는데 말입니다.
결국 가방을 챙겼습니다. 그리고 너무 어렵지 않으면서 해낼 수 있는, 작지만 스스로에게 뿌듯함을 줄 수 있는 뭔가 없을까 궁리했습니다. 잊고 있었던 부산 청년이 그때 떠오르더군요.
‘그래, 자전거로 제주 일주를 해보자. 쌓여있던 것들을 다 바람에 실려 보내고 안 좋은 기운들을 모두 태워버리는 거야!’
자리를 오래 비울 수는 없는 일. 3박4일 길지 않은 시간동안 스스로에게 도전정신을 불어넣기에 제주 자전거 일주만한 것이 없어보였습니다.
주변 반응은 빨간색이었습니다. 제주도가 고향인 후배는 “선배, 그런 건 고등학교 때나 하는 거예요”라며 왜 사서 고생하느냐는 눈빛을 보냈습니다. 움찔했지만 그렇다고 좌절할 저는 아니죠. 사서 고생하는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까요.
초등학교 이후 몇 번이나 자전거를 타봤을까 세다보니, 다섯 손가락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자전거에 기어가 있다는 것은 알지만, 기어 바꾸는 방법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었고 그저 페달을 밟으면 나가고 손으로 브레이크를 쥐면 선다는 것 하나만 알고 있는 수준이었습니다. 물론 차가 다니는 거리에서는 자전거를 거의 타본 적이 없고요.
수십 번 제주를 드나들었지만, 자전거를 타는 것은 처음이라 출발할 때부터 마음가짐이 달랐습니다. 전혀 새로운,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마음이라고나 할까요. 여러(약 다섯 명) 사십대의 지지와 수많은(약 열 명) 삼십대의 부러움과 이십대의 우려를 한 몸에 안고 제주도 자전거 일주에 덤벼들었습니다.
Scene #1. 첫날 아침, 끝없이 내리는 비
화창하다는 예보를 어디에서 들었던 것일까요. 3박4일 뽀송뽀송한 봄 햇살을 받으며 광합성을 마음껏 하겠구나 생각했는데, 첫날 아침부터 비가 내렸습니다. 제주 날씨는 믿을게 못 된다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야속하더군요. 큰마음 먹고 왔는데, 제 마음도 몰라주고 말입니다. 세상사 새옹지마. 좋은 일이 있겠지 하며 탑동을 탑돌이 하듯 돌았습니다(자전거를 타겠다는 것 외에는 아무 계획이 없었으니까요).
Scene #2. 첫날 오후, 흐린 봄 하늘 라이딩 시작
(왼쪽) 천정에 걸려있는 자전거. (오른쪽 위) 벽이며 티셔츠며, 곳곳에 그려져 있는 자전거. (오른쪽 아래) 자전거를 빌리면 빨간펜으로 자전거 일주 코스를 상세하게 설명해준다. |
그칠 것 같지 않은 비가 조금씩 물러가기 시작했습니다. 자전거를 빌릴 수 있는 곳으로 달려갔죠. 오전에 골라놓은 자이언트 자전거를 앞에 두고 자전거 일주에 대한 설명을 들었습니다. 제주 자전거 일주는 주로 해안도로를 따라 가게 되는데, 시간이 없을 경우에는 일주도로라고 불리는 1132번과 번갈아 라이딩을 하게 된다고 설명해주더군요. 1132번만을 따라 갈 경우 180km, 해안도로를 타고 갈 경우에는 240~50km정도 된다고 하더라고요. 물론 대부분은 해안도로를 타고 가고요. 1132번 도로보다 살짝 안쪽에 보면 1139번 도로가 있는데, 더 보고 싶더라도 1139번 도로 내륙까지는 안 들어가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조언도 잊지 않았습니다. 안쪽으로 들어가면 ‘제.주.자.전.거.일.주.’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힘들 수도 있다고 말이죠. 한마디로 시간 조절 잘하라는 말씀이더군요.
어쩜 그리 친절하게 잘도 설명해주는지, 하루에도 수십 번 똑같은 이야기를 할 텐데 말입니다. 빨간색으로 꼭 가봐야 할 곳까지 콕콕 집어주면서 제주 한 바퀴를 입으로 일주하시더군요.
하루 자전거 대여료는 1만 5000원. 3박4일이니 6만원. 여기에 스마트폰 거치대 대여비 3천원. 삼다수도 한 병 꼽아주고 안장에 푹신한 커버도 깔아줬습니다. 제주는 아직 살기 좋아서 쓸 일은 별로 없을 것이라고 하면서도, 자전거 자물쇠도 챙겨주더군요. 배낭을 자전거 뒤에 꽁꽁 동여매고 드디어 출발!
신나게 페달을 밟고 나갔는데, 방향을 잘못 잡아서 라마다 르네상스와 탑동을 또 한 번 돌았습니다. 도로 한복판이라 어찌나 겁나던지요. ‘진정하자, 진정하자’ 스스로 위로하며 다시 페달을 밟았습니다. 처음인데, 이 정도 쯤이야. 으랏차차!
Scene #3. 바람을 가르며 달리는 기분이라니
해안을 따라 제주의 바람을 맞는 즐거움이 제주 자전거 일주의 최고 매력. |
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기분이라니. 제주에서 자전거를 타는 것은 이런 것이로구나 싶었습니다. 잔뜩 흐린 하늘이었지만 그마저도 감사할 따름이었죠. 오른쪽에서는 파도가 울렁대고 있고 사방에는 바람이 함께 하고 있고 저 앞에는 유채가 흔들리고 있으며 어디에선가 제주의 내음이 살랑거리고 있었습니다. 아, 이 맛을 지금까지 모르고 살았다니 억울할 지경이더군요.
Scene #4. 그렇지, 어디에나 난관은 있게 마련이야
인생이 장밋빛만으로 채워져 있다고 결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이미 장마 같은 오전의 비로 오늘의 액땜은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저의 희망일 뿐이었습니다. 첫날 목표 지점인 협재 해수욕장을 10km 정도 남기고 부상을 입었거든요. 일반 도로에서 자전거도로로 올라가다가 자전거가 미끌어져버렸습니다. 그 바람에 무릎에서는 피가 철철 흘렀습니다. 장갑을 꼈음에도 불구하고 손바닥이 쓸려서 고통스러웠고요. 부상을 입은 것은 저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자전거의 앞바퀴는 자신이 풍선이라도 된 듯, 터져버렸죠. 바람 빠진 앞바퀴를 보니, 오늘 제 신세를 보는 것 같아서 불쌍하기도 하고 허탈하기도 하더군요.
그렇지 않아도 흐린 하늘, 5시가 넘어가면서 어둑어둑해지고 있는데 바람 빠진 자전거와 갑작스러운 충격으로 움직이지도 않을 것 같은 발을 끌고 어딘가 갈 수 있을 것 같지 않았습니다. SOS. 자전거를 빌린 곳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GPS로 위치를 확인하고 바람이 빠졌다고 말했습니다.
"아, 출장 가야할 것 같은데요"
"네. 감사합니다. 방법이 있군요. 부디 와 주세요."
"그 정도 거리면 출장비가 3만원 정도 나와요."
"네네(이렇게나 비싸다니). 괜찮습니다. 와 주세요."
주변을 둘러보니 다행히 편의점에 눈에 들어오더군요. 다리와 자전거를 겨우 끌고 가서, 커피를 한잔 마셨습니다. 무릎은 욱신거리는데 커피 맛은 왜 이리 좋은지요. 앞만 보고 달리다가 멍하니 제주 바람을 바라보는 맛도 달달했습니다. 이십분쯤 기다리니 귀여운 녹색 마티즈가 앞에 서더군요. 휠 하나를 어깨에 멘 아저씨가 나타났습니다.
"운이 안 좋으셨네요. 여자 분들은 펑크 나는 일이 거의 없거든요. 아, 범인이 여기 있네요. 바로 이 녀석 때문이었어요."
이 녀석이라고 보여준 것은 눈에 보일까 말까한 유리조각이었습니다. 이 작은 유리조각이 이런 재앙을 가져오다니 놀랍더군요. 차들이 달리면서 돌멩이나 조각들이 길 가장자리로 흘러가기 때문에 자전거에 펑크가 날 수 있다고요. '너 때문이야! 책임져!'라고 하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작은 유리조각. 잠시 쳐다보고 '그래, 네 덕분에 잠시 여유로운 커피타임을 가졌구나. 고맙다.'라고 마음을 돌려먹었습니다. 그렇게 제주 라이더로서의 첫 번째 날이 저물어 갔습니다.
출발하자마자 펑크난 자전거를 고치기 위해 출장나온 초록색 마티즈. |
Scene #5. 안장에 송곳이 박혔나
다음날 눈을 뜨니 제주가 활짝 웃고 있더군요. 화창했습니다. 드디어 제가 바라던 바로 그 날이었죠. 들뜬 마음을 안고 자전거 위에 올라타는 순간. 저도 모르게 터져 나온 외마디 비명소리, 으악. 안장에 송곳이 박혀있나, 엉덩이에 밤 사이에 뿔이 돋았나 안장과 엉덩이를 번갈아 살폈습니다.
엉덩이가 아플 거라는 이야기는 수없이 들었지만, 그 아픔이 이 정도일 줄 몰랐습니다. 첫날 생각만큼 고통스럽지 않아서 '내가 자전거를 좀 타나?'라고 혼자 실실거렸는데, 혼자만의 착각이자 오만이었습니다. 전날 다친 무릎이 더 아파서, 엉덩이의 아픔이 강하게 다가오지 않았던 것이었지요.
엉덩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엄지손가락과 집게손가락 사이는 찢어질 것 같더군요.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모든 게 작지만 특히 더 작은 손과 발. 브레이크를 언제든지 잡을 수 있도록 대기 상태에 계속 있었더니, 평균 치수에 맞춰진 브레이크 간격이 제게는 너무나 넓었고 손가락들은 불평을 호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미안하다, 손가락들아. 그래도 어찌하겠니, 시작했으니 우리는 달려야지.
Scene #6. 우리는 인연인가봐요
둘째 날 라이딩을 위한 준비 타임이었습니다. 엉덩이를 하늘로 올리고 바지 밑단을 양말 속으로 넣고 있었습니다. 바지가 방해가 되면 안 되니까요. 갑자기 뒤에서 들리는 소리.
"아줌마, 같이 가요!"
허리를 들었더니, 어느 새 선수용 복장을 한 자전거 부대가 스치듯 지나가고 사라지더군요. 아니, 이 분들이 나를 언제 봤다고 아줌마라고 하는 것인가?(아줌마 맞지만). 조금 언짢았지만 그 한 마디에 기쁜 아침을 망칠 순 없지 싶었습니다. 신나게 페달을 밟으며(엉덩이는 아팠지만) 제주 라이딩의 즐거움에 다시 빠져들었습니다. 월령을 지나니, 온통 선인장인 밭이 나타나고 또 바다가 등장하더군요. 얼마가지 않아, 그 자전거 부대를 또 만나게 되었습니다.
"아줌마, 같이 가요!"
그러다가 잠시 후 "아가씨잖아, 너 왜 아줌마라고 그랬어." 자전거 부대 사이에서 서로를 탓하는 소리가 들려오더군요. 그 소리를 유유히 뒤로 하고 대답 없이 페달을 열심히 밟았습니다. 세 번째 만남은 차귀도 입구였습니다.
"미안해요, 아가씨. 저 녀석이 실수를 했어요. 저희랑 같이 가요."
자전거로 전진밖에 할 수 없는 상황인데, 자꾸 가까이 오면서 말을 걸어대는 아저씨들.
"아, 네. 제가 자전거를 잘 못 타서요. 감사합니다. 그런데 혼자 갈게요."
여섯 번이나 마주친 자전거 부대 아저씨들. 옆에서는 한치가 일광욕중이다. |
이후로 이 아저씨들과 여섯 번을 마주쳤습니다. 무려 다음 날까지. 아무 약속도 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요. 여섯 번째 마주칠 때 한 아저씨(모두 비슷한 복장을 하고 있어서 거의 구분이 되지 않는 상황)는 "우리 진짜 인연인가 봐요. 필연인가?"라고 말하며 지나가더군요. 재미있게도 인연이 있다고 믿기 시작할 때 인연은 끝이 났습니다. 그 말을 들은 후, 자전거 부대 아저씨들과는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했거든요. 어쩌면, 모든 인연은 인연이라고 믿기 시작하면서부터 조금씩 멀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Scene #7. 4월의 제주는 유채꽃 나라
목마름을 해소하기 위해 산 한라봉 한봉지. |
유채꽃과 돌담이 아름다워 잠시 멈췄다. |
"선배, 나 유채 보고 싶어"라고 제주에 사는 선배에게 말했더니 선배는 이렇게 답하더군요. "원 없이 유채를 보게 될 거야"라고요. 선배의 말처럼 자전거 일주의 출발부터 끝까지 유채꽃이 이어졌습니다.
송악산 아래에서는 깜찍한 이동카페도 만났습니다. 커피 맛은 어찌되었든 눈감기로 했습니다. 멋진 자리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제 감성지수를 높여줬으니 말입니다. 왼쪽에는 몇 마리 말들이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있고 조금 앞으로 눈을 들면 산방산이 편안하게 자리하고 있고 거기에서 조금 오른쪽으로 눈길을 옮기면 제주의 푸른 바다가 와락 달려들고 있었습니다. 유채꽃은 어찌나 그리 명랑하던지요. 자전거를 세워두고 한참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산방산과 푸른 바다, 평화롭게 풀을 뜯는 말까지 한폭의 그림이 펼쳐져 있었다. |
귀엽게 생긴 커피트럭. |
Scene #8. 오르막과 내리막
쉬운 길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아름다운 해안도로가 모두 연결되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해안도로가 끊겨 있는 곳에서는 1132 일주도로로 나와야했습니다. 쌩쌩 달리는 차들이 무서웠습니다. 오르막길을 오르는 것은 또 어찌나 힘들 던지요. 내리막이 나타나도 그다지 반갑지 않더라고요. 바로 또 오르막이 나타날 테니 말입니다.
그런데 몇 번을 그렇게 하다 보니, 마음을 바꿔야 할 것 같더군요. 그냥 둘 다 즐기기로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둘 다 힘들 것 같았습니다. 오르막을 갈 때는 아예 천천히 가면서 길가의 꽃들도 보고 한라봉도 사먹었습니다. 내리막을 갈 때는 아주 시원하게, 마음 속 모든 것들을 다 날려버릴 수 있도록 달렸습니다. 역시 모든 일은 하다보면, 내가 즐겁게 할 수 있는 방식을 찾게 되는구나 하는 생각. 어디에 있든지 방법을 찾는 것은 내 몫이라는 생각이 다시금 들었습니다.
Scene #9. 가장 큰 적은 제주의 바람
동쪽 바람은 무서울 정도로 셌다. 아무리 페달을 밟아도 제자리를 맴도는 것 같아 과연 일주를 마칠 수 있을까 의심이 들었다. |
서울에 온 제주소년의 인상 깊었던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서울에서는 가로수들이 흔들리지 않는 것이 정말 신기했어요."
가로수가 흔들리지 않은 것은 바람의 나라에서 온 제주소년이 처음 알게 된 서울의 가장 큰 특징이었습니다.
바람을 좋아했습니다. 바람 따라 세상 이곳저곳을 떠도는 것을 사랑했죠. 그런데 제주 자전거 일주에서 바람은 참 얄미운 나비였습니다. 내리막길인데 자전거가 내려가지 않더군요. 페달을 밟았습니다. 앞으로 나가지 않았습니다. 또 밟았습니다. 허벅지의 근육이 뜨거워지더군요.
사진 찍으러 차를 몰고 다닐 때는 행원리 부근에 있는 수많은 풍력발전기들을 보며 그림이 된다고 얼마나 좋아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곳이 마의 삼각지대일 줄이야. 기어를 아무리 낮춰도 바퀴는 굴러가지 않았고 자전거는 사정없이 흔들렸습니다. 저 앞에 있는 풍력발전기를 향해 페달을 밟고 있는 제 모습이 풍차를 향해 로시난테를 타고 달려가는 돈키호테같았습니다. 제주의 바람에 먹혀버릴 것만 같던 그 순간들. 제주의 바람, 이정도일 줄은 정말 몰랐는데 말입니다.
Scene #10. 멀리 있지만, 한 바퀴씩 굴리다 보면 결국 그 곳
동네를 지날 때는 천천히. |
닿지 않을 것처럼 멀리 보여도 페달을 굴리다 보면 눈 앞에 나타나곤 했다. |
자전거를 타면서 신기한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이호 해수욕장의 등대가 저 멀리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멀었습니다. 페달을 계속 밟았더니, 어느새 그 등대 옆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다음에는 산방산이 손톱만 하게 보였습니다. 한참 달렸습니다. 산방산이 주먹만 해지더니, 어느새 산방산 아래 레이지박스 카페를 기웃거리고 있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그렇게나 멀리 보이던 것들이 손으로 닿을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워지는 그 기분. 그곳까지 언제 갈 수 있을까 한숨이 푹푹 나오던 그 시간들. 그러나 결국, 그렇게 오래지 않아 그 곳에 있게 되어 놀라웠던 시간들.
시작할 때는 제주를 정말 한 바퀴 돌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어느새 제주 자전거 일주가 끝나가고 있었습니다. 세상살이가 떠오르더군요. 그 곳에 닿을 수 있을까 의심스럽던 수많은 일들이 조금씩 다가가다 보니 어느새 다가가 있었던 여러 경험들 말입니다.
기자 생활을 할 때도, 세계일주를 할 때도, 독립을 할 때도,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도. 제가 뭔가 새로운 것을 하는 것은 결코 손에 닿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이렇게 하다보면 언젠가 그곳에 닿을 수 있으리라는 믿음 때문이 아니었나 싶었습니다.
포기하려고 했던 일들, 자신 없었던 일들. 한 번 더 시작해봐야지 싶었습니다.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일이라면 말입니다.
한라봉으로 충전하며, 페달을 한번 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