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영혼이 숨 쉬는 땅, 티벳 라싸
채지형의 여행살롱 19화
영혼이 맑은 티벳 사람들 |
티벳을 생각하면 저 깊은 곳에서 마음이 아려옵니다. 법 없이도 살 수 있을 정도로 착하고 순한 티벳 사람들을 가만두지 않는 세상 때문이지요. 티벳 사람들은 뭐랄까. 한 사람 한 사람이 도를 닦는 이들 같습니다. 신에 대한 끊임없는 경배와 욕심 부리지 않는 생활, 뭐든지 너무 순한 눈으로 바로 보는 그 눈빛. 그야말로 맑은 영혼의 땅이라는 생각이 든답니다.
과거에는 '금단의 땅'처럼 알려지기도 했었지만, 요즘은 티벳을 여행하는 것이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중국 성도에 가면 라싸로 들어가는 항공편이 있고 북경과 라싸를 이어주는 칭짱철도를 탈 수도 있죠. '라싸 익스프레스'라고 불리는 칭짱철도는 평균 해발 4500m의 티벳 고원을 달린다고 해서 하늘열차이라고도 부른답니다. 북경에서 라싸까지 46시간 30분이 걸리는데, 시간만 허락한다면 한번쯤 기차를 타보는 것도 멋진 경험이 되겠죠.
라싸의 공가공항에 발을 디디면 살을 파고 들것 같은 자외선에 피부가 먼저 놀랍니다. 구름은 손에 닿을 것처럼 가깝게 떠 있고 공기도 사뭇 다르게 느껴집니다. 시내에 들어가면 한번 더 놀라게 될 겁니다. 영혼의 도시, 티벳이라는 이미지와는 다르게 중국의 어느 소도시에 온 듯한 풍경이 펼쳐지거든요. 싸구려 플라스틱 제품들이 뒹굴고 메가폰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시끄럽게 흘러 다닙니다. 처음 티벳에 도착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기가 티벳 맞아?'라고 반문하기도 한답니다. 그러나 실망하긴 이르죠. 우리는 아직 라싸의 심장에 도착하지 않았으니까요.
티베탄들의 마음이 모인 포탈라궁
밤에 본 포탈라궁 |
라싸에서 꼭 가봐야 할 곳은 포탈라궁과 조캉사원, 바코르, 그리고 세라사원입니다. 보고 싶은 곳이 많다고 해서 절대로 서두르면 안 됩니다. 티벳은 빨리 돌아보겠다고 하면 몸도 마음도 힘들어지는 곳이거든요. 산소가 부족해서 고산증에 걸릴 위험이 높습니다. 물을 많이 마시고 천천히 움직이는 것, 충분한 휴식을 취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그리고 선글라스와 함께 입술에 바를 립크림도 꼭 준비해야하죠. 자외선이 세고 건조해서 립크림을 바르지 않으면 계속 거칠어지는 입술 때문에 괴로워질 지도 모른답니다.
(왼쪽) 포탈라궁 앞에서 오체투지하고 있는 티베탄 (오른쪽) 오체투지하는 이들에게 주기 위해 사람들은 작은 돈을 준비한다 |
사원에 꼽힌 시주돈들 |
라싸에서 가장 먼저 갈 곳은 라싸의 상징인 포탈라궁입니다. 비범한 자태가 압도적이죠. 그 앞에 서면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게 됩니다. 포탈라궁은 7세기에 처음 지어지기 시작해서 17세기 중엽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13층 건물로 높이는 110m가 넘습니다. 포탈라궁은 홍궁과 백궁으로 나뉘어져 있는데요, 홍궁은 전 달라이라마의 영전탑과 불상이 모셔져 있고 백궁은 달라이라마의 겨울궁전으로 사용되던 곳입니다. 라싸에 머물면서 오전, 오후, 저녁 시도 때도 없이 포탈라궁에 갔었는데요, 그때마다 포탈라궁 주변의 티베탄들은 다른 모습들을 보여주더군요. 아침 이른 시간부터 포탈라궁 앞에서 끝도 없이 절을 하는 모습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월요일 7시쯤 되었을까나. 부지런히 출근 준비를 하고 있을 서울의 친구들과 거친 손을 하늘 높이 치켜들면서 절을 하는 아주머니의 모습이 오버랩 되더라고요. 이들이 바라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무엇이기에 이렇게 끊임없이 비는 것일까. 역시 티벳은 끊임없는 질문이 이어지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옴마니밧메홈, 바코르를 도는 마음
조캉사원 |
조캉사원은 포탈라궁과 함께 티베탄들 마음 한 가운데 자리하고 있는 중요한 곳입니다. '대조사'라고도 불리는 이 사원은 1년 내내 향불과 향연기가 끊이지 않죠. 티벳의 시골마을에서 척박하고 광활한 땅을 오체투지를 하면서 닿고자 하는 첫 번째 사원이 바로 조캉사원이라고 해요. 티베탄들의 소원 중 하나가 죽기 전에 조캉사원에 오는 것이라고 할 정도랍니다.
조캉사원은 4층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건물 지붕이 황금색이라 아주 화려합니다. 안에 들어가면 문성공주가 가져온 석가모니 도금 불상이 있고 티벳식 벽화들이 걸려 있습니다. 사원 꼭대기나 법륜 속을 보면 고개를 쳐든 사슴 조각을 볼 수 있어요. 사슴은 소리에 민감한 동물로, 사슴을 새겨 넣는 것은 붓다의 가르침을 항상 잘 들으라는 뜻이라고 해요.
(왼쪽) 이른아침부터 마니차를 돌리고 있는 할머니 (오른쪽) 틈만 나면 기도를 올린다 |
조캉사원에 가면 자연스럽게 가게 되는 곳이 바코르입니다. 바코르는 티벳에서 가장 신령스러운 순례의 길로, 조캉사원을 팔각형 모양으로 에워싸고 있습니다. 조캉사원과 바코르는 꼭 새벽에 가보세요. 어스름한 새벽에 향불이 피어오르고 하나둘 모여드는 순례자들을 보면 경건함이 절로 생기거든요. 한 손에는 마니 차나 염주가 들려 있고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햇살에 그을린 새까만 얼굴을 하고 있지만 표정만은 한없이 편안하죠. 아, 나는 언제 저런 표정을 지어봤을까 새삼스럽게 뒤돌아보게 되더군요.
조캉사원을 둘러싸고 있는 바코르 |
토론의 정원, 세라사원
(왼쪽) 불심가득한 티벳의 승려들 (오른쪽) 세라사원에 있는 토론의 정원 |
라싸에 있다 보면 시간이 참 빨리 흐릅니다. 어쩌면 사차원의 세계에 들어온 것 같은 느낌도 들죠. 그렇지만 세라사원에 갈 시간은 잘 챙기는 게 좋습니다. 세라사원에서는 지혜를 얻는 방식의 색다른 모습을 볼 수 있거든요.
세라사원은 라싸 시내에서 북쪽으로 3km 떨어진 곳에 있는데, 전성기 때는 5500여명의 승려들이 불공을 드렸을 정도로 규모가 큰 사원입니다. 토론의 정원이 어디인지 몰라 헤매고 있는데, 갑자기 여기저기에서 튀어나온 학승들이 빨간 방석을 하나씩 들고 총총걸음으로 어딘가로 향하고 있더군요. 혹시나 하고 따라간 그곳은 역시나 토론의 정원이었습니다. 수백 명의 학승들이 서로 짝을 이뤄 손뼉을 쳐가며 토론을 벌이기 시작하더군요. 토론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갔다면, 싸우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그들의 목소리와 몸짓은 과격했습니다. 서로 토론을 통해 얻은 깨달음이야말로 진정한 진리라고 믿는 티베트 불교. 그 수업 방식의 독특함과 힘찬 에너지에 또 한 번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티벳의 시골길 |
티벳은 사람으로 태어나서 살아간다는 것, 그리고 어떤 생각을 가지고 순간을 맞이해야겠다는 것을 생각하게 해주는 영혼의 땅인 것 같습니다. 티벳 여행 마지막 날 아침, 최소한의 물질을 가지고 풍요로운 영혼을 간직한 채 살아가는 티베트 사람들의 모습이 하나하나 눈앞을 스쳐 지나가더군요. 이제 저도 저만을 위한 기도가 아닌 다른 사람들을 위한 기도를 드릴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옴마니밧메훔.(연꽃 속의 보석이여, 영원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