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으로 떠나는 가을 문학 여행

채지형의 여행살롱 37화

장흥으로 떠나는 가을 문학 여행

억새가 출렁이는 천관산

‘구두가 미리 알고 걸음을 멈추는 곳,

여긴 푸른 밤의 끝인 마량이야.

이곳에 이르니 그리움이 죽고 달도 반쪽으로 죽는구나.

포구는 역시 슬픈 반달이야.

그러나 정말 둥근 것은 바로 여기서부터 출발하는 거고

내 고향도 바로 여기 부근이야.’

- [옥색 바다 이불 삼아 진달래꽃 베고 누워] 중에서

‘옥색 바다 이불 삼아 진달래꽃 베고 누워’는 전라남도 장흥에서 태어난 시인과 소설가, 화가가 함께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 책입니다. 이청준과 김선두, 김영남 작가인데요. 고향의 속살을 더듬으며, 우리에게 고향이란 무엇인가를 돌아보게 만드는 작품이에요.

장흥으로 떠나는 가을 문학 여행

영화 '축제'의 배경지인 소등섬

네. 눈치챘을지 모르겠지만, 이번 여행살롱 주제는 문학 여행으로 잡았습니다. 가을은 책 읽기 좋은 계절이기도 하죠. 바스락거리며 떨어지는 낙엽은 우락부락한 아저씨 마음에도 틈을 만들어줍니다. 오늘 떠나볼 곳은 곽재구 시인이 ‘열애처럼 쏟아지는 끈적한 소설의 비가 내리는 땅’이라고 표현한 전라남도 장흥입니다. 장흥은 이청준의 ‘눈길’과 ‘축제’, 한승원의 '불의 딸', '그 바다 끓며 넘치며', 이승우의 '일식에 대하여' 등 여러 소설의 생생한 배경으로 등장했습니다. 또 가사 문학의 효시인 관서별곡을 지은 기봉 백광홍 선생부터 이청준, 한승원, 송기숙 우리 문학사에 큰 획을 그은 작가들의 고향이기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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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의 여다지 해변에서 바라본 득량만

한승원 작가는 장흥 바다를 보고 ‘마르지 않는 내 문학의 샘’이라고 말씀하시더군요. 그래서 장흥을 여행하다 보면 소설의 한 장면이 펼쳐질 것만 같고, 어디선가 주인공이 나타날 것만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됩니다.

‘마르지 않는 문학의 샘’

지식경제부는 2008년 장흥을 전국 최초로 문학 관광기행 특구로 지정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장흥 곳곳에는 문학에 젖어 들게 하는 여행지들이 무척 많습니다. 대표적으로 이청준 생가와 한승원 문학 산책로, 천관산 문학공원을 들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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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청준 문학자리

이청준 문학 자리로 먼저 가볼까요. 이청준 선생 2주기를 기념해 그의 문학정신을 기리기 위해 만든 곳입니다. 가로세로 7m에 달하는 돌판 위에 넓은 너럭바위가 얹혀 있죠. 돌판 위에는 이청준 선생이 직접 그린 문학 지도가 그려져 있고요. 옆에는 글기둥이 사이좋게 서 있습니다. 고개를 들어 문학자리 앞을 내다보면, '눈길', '선학동 나그네'의 무대가 되었던 드넓은 득량만이 펼쳐져 있어요. 눈도 마음도 포근해진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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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한 이청준 작가의 생가

문학 자리에서 조금만 안쪽으로 들어가면 이청준 선생의 생가가 나옵니다. 진목마을인데요. 소담한 집 안에 이청준 선생의 사진과 유물들을 보실 수 있죠. 이청준 선생의 생가를 둘러본 후에는 영화 '축제'의 배경이 되었던 용산면 남포마을로 발길을 옮겨봅니다. 남포는 고즈넉한 해변 마을인데요, 마을 앞에 소나무 몇 그루가 서 있는 소등 섬이 자리하고 있어요. 썰물 때가 되면 뭍과 이어져요. 정월 대보름날 당제사를 모시는 곳인데요. 달이 뜰 때 묘한 자태를 내뿜곤 하죠. 석화 구이로도 유명해서,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되면 석화 구이를 판매하는 비닐하우스촌이 들어선답니다. 전국의 식도락가들이 싱싱한 석화를 맛보기 위해 모여들고요.

이청준과 한승원의 세계를 엿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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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닫이 해변에 있는 한승원 문학 산책로

장흥을 대표하는 문학인으로 이청준 선생과 함께 한승원 작가를 들 수 있습니다. 한승원 작가는 '아제아제 바라아제'를 비롯해 생명력 넘치는 문학세계를 보여준 소설가로, 한국인 최초로 맨부커 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아버지기도 하죠. 장흥에는 한승원 작가의 ‘해산토굴’이라는 집필실이 있어요. ‘해산’은 한승원 작가의 호이고요. ‘토굴’은 집을 낮춰서 부르는 말로, 이곳에 칩거해 작품에 몰두하겠다는 그의 의지가 담겨있습니다. 집필실은 개인적인 공간이라 직접 볼 수 없지만, 득량만 여닫이 해변에 가시면 작가의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한승원 문학 산책로가 꾸며져 있거든요. 바다를 주제로 한 그의 글들이 비석에 새겨져 있습니다. 600m 되는 산책로에 약 20m마다 비석이 하나씩 서 있답니다. 아름다운 갯벌이 숨 쉬는 바다를 따라 이어져 있어, 정취가 남다릅니다. 작가가 바다에서 건져 올린 글들을 더듬으며 걷다 보면 마음이 차분해지시는 것을 느끼실 거예요.

찬란한 억새가 흩날리는 천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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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암괴석이 눈길을 끄는 천관산

천관산도 빠트리면 안 됩니다. 천관산은 문인들에게 '큰 산'이라고 불린다고 해요. 힘들 때마다 어깨를 두드려주는 넉넉한 품을 가진 어머니 역할을 해왔는데요. 천관은 '천자의 면류관'이라는 뜻으로, 산줄기의 기암괴석이 왕관 같다고 해서 붙은 이름입니다. 천관산을 오르다 보면 일부러 바윗돌을 쌓아놓은 것 같은 아육왕탑을 비롯해 아홉 마리의 용이 모여 있는 모양의 구룡봉 등 기이하고 웅장한 바위들의 향연도 만나실 수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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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새가 출렁이는 천관산

가을이면 굽이굽이 능선을 따라 은빛 찬란한 억새가 흩날리죠. 정상인 연대봉에 서면 다도해가 한눈에 보여요. 날이 좋으면 제주도 한라산까지 굽어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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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작품으로 수놓아진 천관산 문학공원

천관산 중턱에 있는 탑산사 아래에는 천관산 문학공원도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청준을 비롯해 박범신, 양귀자 등 여러 작가의 주옥같은 글들을 바위에 새겨놓았어요. 맑은 공기를 마시면서 문인들이 각자의 연금술로 만들어놓은 글을 읽다 보면 마음이 절로 뭉클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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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작품으로 수놓아진 천관산 문학공원

높이 15m, 폭 9m에 달하는 문탑이 있는데요. 아래에는 작가의 원고를 넣은 캡슐이 묻혀 있습니다. 주변에는 주민들이 쌓은 100여 개의 돌탑도 이어져 있고요. 문학공원 아래에는 장흥 출신 문인들을 소개하고 그들의 작품을 전시해 놓은 천관 문학관도 자리하고 있어서, 문학의 향기에 푹 빠져보실 수 있답니다.

흥겨움과 별미가 어우러진 토요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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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장흥토요시장의 한우거리 (오른쪽) 흥겨움이 넘실거리는 장흥토요시장

장흥 문학 여행을 마무리한 후에는 정남진 장흥 토요시장도 들러보세요. 저렴하게 한우를 맛볼 수 있는 한우 거리가 있거든요. 또 한우와 키조개, 버섯으로 구성된 장흥삼합도 별미로 유명합니다. 토요일마다 신나는 공연도 열려, 어깨춤을 덩실거리는 흥겨운 모습을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달에는 시장 안에 청년상인 점포들이 문을 열어서, 전통시장에 새로운 활력도 불어넣고 있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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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백향이 진하게 풍기는 편백숲, 우드랜드

시간이 허락한다면, 우드랜드라고 불리는 편백숲도 들러보세요. 편백 사이에 톱밥을 가지런히 깔아놓은 산책로가 일품입니다. 건강한 피톤치드가 사방에서 쏙쏙 들어오는 기분이 들거든요. 장흥의 특별한 모습을 보고 싶다면 매생이 마을에 가보시는 것도 좋습니다. 매생이를 채취하기 위해 바다에 깔아놓은 수많은 대나무 대와 발을 볼 수 있어요. 11월~3월 사이에만 볼 수 있는 독특한 광경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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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생이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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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외에도 장흥에는 탐진강의 생태계를 볼 수 있는 물 문화관, 천년고찰인 보림사 등 역사와 삶이 묻어있는 여행지들이 다양하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더 추워지기 전에 소설책 한 권 들고 장흥으로 문학 여행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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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괴암석이 눈길을 끄는 천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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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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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답은 길 위에 있다고 믿는 여행가. '지구별 워커홀릭' 등 다수의 여행책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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