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째로 갖고 싶은 시장, 과테말라 치치카스테낭고

[여행]by 채지형

채지형의 ‘요리조리 시장구경’ No.8

시장은 보물창고다. 한 나라의 문화와 역사, 그 나라 사람들의 사는 모습이 그 안에 오롯하다. 이슬람 시장은 그들의 종교가, 아프리카 시장은 그들의 자연이, 중남미 시장은 그들의 문화가 빛난다. 시장을 둘러보는 것은 단순히 무엇인가 사기 위해서가 아니다. 여행하는 나라의 문화를 만나기 위해서다. 시장에 가면 새로운 풍경이 보인다.

통째로 갖고 싶은 시장, 과테말라 치

성큼성큼 장을 보러 다니는 과테말라 아저씨. 왼쪽 뒤 'Alto'는 '일단 멈춤'이라는 표지판이다

통째로 갖고 싶은 시장, 과테말라 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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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치카스테낭고시장 풍경

일주일에 두 번 180도 바뀌는 마을이 있다. 매주 목요일과 일요일만 되면 고요하던 작은 마을이 온 세상을 들썩일 만큼 활기찬 시장으로 변신한다. 그리고 그곳에서는 멋진 색과 신실한 마음이 소통하는 항연이 펼쳐진다. 라틴아메리카를 여행하는 이라면 꼭 들러야 하는 곳, 바로 과테말라의 치치카스테낭고다.

 

치치카스테낭고(Chichicastenango)는 과테말라에서 두 번째로 큰 종족인 마야 키체족이 사는 마을로, 해발 1600m의 높은 지대에 위치한 아담한 마을이다. 이 작은 마을이 유명한 이유는 매주 두 번씩 큰 시장이 들어서기 때문이다. 시장 규모도 크지만 솜씨 좋기로 유명한 마야 여인들이 만든 옷과 소품들은 아무리 두툼하게 준비한 지갑이라도 금세 날씬하게 만든다. 시장을 통째로 가방에 담아 오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이다.


장이 열리기 하루 전날부터 시골 구석구석에서 사람들이 모여든다. 장이 열리는 당일에는 삼삼오오 짝을 지은 인디오와 여행자들이 우르르 몰려든다. 어떤 이는 시장에 내다 팔 옥수수를, 어떤 이는 친구와 나눌 소식을 안고 터질 것 같은 ‘치킨버스(닭장차처럼 사람들이 빼곡히 탄다고 해서 붙여진 애칭. 실제로 닭이 타기도 한다)’에 오른다.


스페인어를 배우기 위해 머물렀던 안티구아에서 치치카스테낭고까지 가는 데 3시간 정도가 걸렸다. 겨우 3시간 거리를 가는데 치킨버스를 세 번이나 갈아타야 했다. 하지만 가는 내내 설레는 마음은 손톱만큼도 줄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중동을 여행하며 만났던 독일친구 피터도, 미국에서 만난 친구 로라도, 시장 이야기만 나오면 마른침을 삼켜가며 “치치카스테낭고가 최고”라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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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치킨버스라고 불리는 과테말라의 버스

(우) 치킨버스 모양을 한 귀여운 기념품

사랑스러운 시장 ‘치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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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있기에 그토록 매력적일까? 눈앞에 나타난 시장은 먼저 좁디 좁은 길로 이어져 있었다. 좁은 길에 빼곡하게 들어서 있는 물건들, 전통 의상을 입은 작고 까만 마야 여인들, 그리고 그 여인들이 입고 있는 현란한 옷들이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있는 노점상은 털모자, 스카프, 화려한 색의 수공예품으로 가득 차 있었다. 마야문명 신의 얼굴 모양의 가면과 목각제품도 걸려 있었다. 

 

조금 더 들어가니 두세 평 될까 싶은 정도의 작은 가게들이 촘촘하게 나타났다. 짧게 줄여서 ‘치치’라고 부르는 이 시장은 배낭 여행자들에게 특히 유명하다. 그래서 원주민 시장이기는 하지만 여행자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과테말라에 온 여행자들은 빠짐없이 들르는 관광지답게 스페인어 수업을 함께 듣는 학원 친구들을 네 명이나 마주쳤다. 그렇게 마야인과 여행자들이 붉은 물결을 이루며 시장을 흘러 다니고 있었다.

오색찬란한 위필

사람과 색, 소리가 하나로 뒤섞인 혼란 속에서 눈을 사로잡은 것은 역시 ‘위필’이다. 위필은 마야 여인들이 입고, 매달고, 쓰는 알록달록한 색동천. 마야 여인들은 위필로 옷을 만들어 입거나 물건 혹은 아기를 담는 보자기로 쓴다. 어린 학생들은 책보로, 할머니들은 시장바구니로 위필을 사용한다. 같은 듯 다른 위필에는 마야 여러 부족들의 고유 문양이 들어 있어 더욱 아름답다.


여행자들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위필과 토산품을 바라보는 것과 달리 과테말라 사람들은 옥수수나 쌀, 토마토, 야채 등 생필품을 사고파는 데 열심이다. 작은 체구의 그들이 산처럼 커다란 등짐을 메고 시장을 누비는 모습은 치치를 더욱 활기차게 만들었다.

 

장을 보러 온 이들이 사랑하는 것 중 하나는 치치카스테낭고 표 아이스크림. 앞니가 몽땅 빠진 할머니부터, 이제 세상에 나온 지 몇 해 안 되어 보이는 꼬마, 예쁜 위필을 입은 수줍은 아가씨까지 모두가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손에 들고 행복해했다.


‘아로스 콘 레체(arroz con leche)’도 아이스크림만큼이나 인기 있는 길거리 음식이다. 아로스는 밥, 레체는 우유라는 뜻이다. 풀이하자면 우유에 밥을 만 음식이다. 과테말라 ‘비법’으로 만든 아로스 콘 레체의 달콤함과 든든함은 다른 나라 음식에선 결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맛을 선물한다.

통째로 갖고 싶은 시장, 과테말라 치 통째로 갖고 싶은 시장, 과테말라 치

(좌) 위필의 다양한 사용법

(우) 무엇이든 녹일 것 같은 달콤한 아이스크림

마야인의 영혼을 어루만져 주는 산토 토마스 성당

치치카스테낭고를 특별하게 만들어 주는 것으로 산토 토마스 성당을 빼놓을 수 없다. 1540년에 지어진 이 아름다운 성당은 시장 한가운데 자리 잡고 오랫동안 마야사람들의 영혼을 어루만져 줬다.


성당 입구 제단에는 언제나 향이 피워져 있어, 향냄새와 아득한 연기가 자욱하다. 성당과 향, 이 어울리지 않는 조합 안에 과테말라사람들의 역사가 담겨 있다. 과테말라를 점령한 스페인은 인디오들을 일방적으로 개종시키려 했다. 그러다 인디오 부족의 거센 반발에 부딪치면서 현재와 같이 가톨릭과 토착종교가 혼합된 양식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단 한 번도 본적 없는 ‘오묘한’ 성당 분위기에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다.


성당 앞은 사람을 구경하기 좋은 곳이다. 시장을 돌다 기운이 빠진 사람부터 기도하고 있는 사람, 그들에게 꽃을 팔려는 할머니…. 늦은 오후가 되니 사람들이 성당 앞 계단으로 모여들었다. 옆에 앉은 여행자는 하루의 ‘전리품’을 하나하나 살펴보고 있었고, 그 옆의 젊은 마야인 엄마는 갓난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있었다. 기다란 머리를 풀어헤치고 머리를 다듬는 아가씨들에게는 순박함과 수줍음이, 할머니의 깊은 주름 사이에는 고단한 시간의 흔적들이 그대로 묻어 나왔다. 색의 찬란함에 빠져 돌아다녔던, 정신없는 치치 시장 여행은 사람들 안에 숨은 모습을 그렇게 훔쳐보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통째로 갖고 싶은 시장, 과테말라 치

마야인의 영혼을 어루만져주는 산토토마스성당

통째로 갖고 싶은 시장, 과테말라 치

성당 앞에서 바느질을 하고 계신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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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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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답은 길 위에 있다고 믿는 여행가. '지구별 워커홀릭' 등 다수의 여행책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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