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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 채지형의 ‘요리조리 시장구경’ No.19

'도쿄의 부엌'
츠키지시장

by채지형

시장은 보물창고다. 한 나라의 문화와 역사, 그 나라 사람들의 사는 모습이 그 안에 오롯하다. 이슬람 시장은 그들의 종교가, 아프리카 시장은 그들의 자연이, 중남미 시장은 그들의 문화가 빛난다. 시장을 둘러보는 것은 단순히 무엇인가 사기 위해서가 아니다. 여행하는 나라의 문화를 만나기 위해서다. 시장에 가면 새로운 풍경이 보인다.

아직 잠에서 깨지 않은 새벽의 도쿄. 환하게 불을 밝히고 서둘러 하루를 시작하는 이들이 있다. 참치 경매를 기다리는 이들이다. 이른 아침부터 참치 사이를 거닐며 매의 눈으로 참치를 살펴본다. 그들의 눈에서는 200kg에 달하는 참치라도 뚫어버릴 것 같은 광선이 나온다. 그렇지 않아도 서늘한 경매장에 팽팽한 긴장감이 흐른다. 여기는 도쿄 시내 한복판에 있는 츠키지시장이다. 

'도쿄의 부엌' 츠키지시장

츠키지 시장 풍경

긴장감 넘치는 참치 경매장

'도쿄의 부엌' 츠키지시장

긴장감 넘치는 참치 경매장

'도쿄의 부엌' 츠키지시장

경매사의 우렁찬 목소리가 경매장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츠키지시장(築地市場)은 세계 최대 규모의 수산시장이다. '중앙도매시장 츠키지시장'이라는 공식 이름을 가지고 있는 이 시장에는 하루 3500톤의 생선과 채소가 모인다. 거래되는 양도 양이지만 세계의 각종 진귀한 생선들이 츠키지시장으로 집합한다. 물건을 사러 오는 사람, 구경하는 사람, 장사하러 오는 사람까지 하루 15만명 이상의 사람이 이곳에 모인다. 400년 이상의 세월동안 일본 국민들의 부엌 역할을 하고 있는 츠키지. 맛으로 보나 재미로 보나, 도쿄를 여행하는 이들에게 츠키지시장은 꼭 들러봐야할 곳이다.

 

츠키지시장은 장내 시장과 장외 시장으로 나뉘는데, 장내 시장에는 참치 경매장과 도매상이 포진하고 있다. 이른 새벽부터 경매가 펼쳐지는 참치 경매장은 츠키지 시장의 특별한 볼거리다. 농구코트만한 크기의 경매장에 거대한 참치 수백 마리가 줄지어 누워 있다. 참치를 사러 온 상인들은 한 손에 손전등을 들고 다니며 참치 속살을 면밀히 살핀다. 살점을 살짝 떼어 엄지와 검지로 문질러보기도 한다. 참치를 보는 그들의 표정은 다이아몬드 감정사의 그것과 비슷하다.

 

경매가 시작되면 사람들은 경매사 주위로 몰려든다. 깊은 배에서 나오는 경매사의 우렁찬 목소리와 알 수 없는 암호, 눈빛이 경매장을 채운다. 007 영화에 나오는 첩보작전을 보는 것 같다. 참치의 주인은 금방 정해진다. 아쉬운 표정으로 돌아서는 이도 있고 원하는 참치를 낙찰 받아 의기양양해진 이도 있다. 경매는 순식간에 마무리되고, 참치들은 리어커에 실려 나간다. 이 참치들은 그날 저녁 도쿄 유명 스시집의 특별 메뉴를 장식하게 될 것이다.  

'도쿄의 부엌' 츠키지시장

낙찰받은 참치를 옮기고 있는 상인

'도쿄의 부엌' 츠키지시장

결에 따라 조심히 참치를 해체하고 있는 모습

행복한 ‘아침 스시’

'도쿄의 부엌' 츠키지시장

다이와스시

경매장을 둘러본 후에는 ‘아침 스시’를 맛보기 위해 다이와스시로 향한다. 이른 아침부터 다이와스시 앞에는 세계 각지에서 날아온 이들로 인산인해다. 스시를 위해서라면 이정도 줄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다들 호기심 어린 눈을 반짝거리며 순서가 돌아오길 기다린다.

 

다이와스시에는 10명 정도 앉을 수 있는 자그마한 두 개의 초밥집이 마주 보고 있다. 한쪽은 아버지가, 다른 한쪽은 아들이 초밥을 쥔다. 자리를 잡고 앉으니 주인장이 ‘오마가세 코스’를 추천한다. 오토로, 주토로 등 초밥 7점에 작은 마키, 달걀말이로 구성돼 있다.

 

내공 탄탄한 명인이 건네주는 초밥을 눈이 먼저 알아본다. 오징어의 표면이 강물 위로 떨어지는 햇살처럼 반짝인다. 성게알은 토실토실한 토끼 엉덩이처럼 실하다. 오토로를 입에 넣으니 지방층이 눈처럼 사르르 녹아내린다. 입 안에 쏙 미끄러져 들어오는 횟감과 적당한 온기의 밥알 앞에서 혀는 판단정지다.

형형색색의 수산물

'도쿄의 부엌' 츠키지시장 '도쿄의 부엌' 츠키지시장

(좌) 신선한 생와사비 (우) 형형색색의 수산물을 파는 츠키지 시장

다이와스시에서 행복한 아침을 맛본 뒤에는 츠키지 장외시장을 둘러볼 차례다. 장외에는 생선뿐만 아니라 갖가지 식재료와 음식들을 파는 가게가 늘어서 있다. 형형색색의 수산물들을 구경하다 보면, 횟감을 꼼꼼히 살펴보는 ‘미스터 초밥왕’의 주인공 쇼타가 나타날 것만 같다.

'도쿄의 부엌' 츠키지시장

츠키지 시장 풍경

시장을 돌아볼 때 조심해야 할 것은 난로처럼 생긴 운반차인 ‘타레트럭’. 타레트럭은 좁은 골목길과 교차로 사이를 쉽게 지날 수 있도록 고안된 운반차로, 황야의 무법자처럼 시장을 거침없이 달린다. 산처럼 쌓인 수산물을 빨리 옮기기 위해서는 타레트럭 같은 운반수단이 꼭 있어야 할 것도 같지만 여행자에겐 위험천만이다. 관광객이라고 인정사정 봐주는 법이 없으니 재주껏 피해 다니는 수밖에 없다.

 

장외시장에는 츠키지만의 풋풋하고 털털한 사람 향기도 느껴진다. 툭툭 내뱉는 것처럼 들리는 말이지만, 이야기를 하다 보면 이것저것 묻지 않은 것까지 챙겨 말해 준다. ‘우오가시 요코초’에는 아기자기한 재미가 있다. 이 골목에는 초밥용 예쁜 그릇부터 콩을 직접 갈아 만든 두유, 일본의 달걀 요리, 회를 뜰 때 쓰는 칼, 시장을 신고 돌아다닐 장화를 비롯해, 전문가들이 사용하는 도구를 파는 다양한 가게들이 모여 있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보면 시간이 후딱 지나간다.

'도쿄의 부엌' 츠키지시장

각종 칼들을 볼 수 있다

놓치면 안되는 다마코야키

'도쿄의 부엌' 츠키지시장

츠키지시장의 인기아이템중 하나인 달걀말이

츠키지의 또 다른 독특한 풍경은 거리에 서서 라멘을 먹는 이들이다. 음식점 주방은 코딱지만 하다. 자리는 길거리에 덩그렇게 놓여 있는 키 큰 탁자가 전부다. 길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라멘을 먹는 이도 있지만 대부분은 상자로 만든 간이 탁자에 올려놓고 서서 먹는다. 수십 개의 라멘 집 중에서도 ‘이노우에’ 라멘의 명성이 자자하다. 느끼한 라멘에 놀란 적이 있다면 이곳에서 꼭 간장라멘을 먹어 보라. 일본 라멘의 시원한 맛을 만날 수 있다.

 

츠키지에서 놓치면 아쉬운 것이 일본식 달걀말이인 ‘다마코야키’. 케이크처럼 예쁘장한 다마코야키는 생긴 것만큼이나 달콤하다. 시장을 기웃거리다 보면 정성을 다해 다마코야키를 만드는 요리사들을 볼 수 있다.

 

츠키지의 재미는 머무는 시간과 비례한다. 말린 가다랑어를 대패로 밀어 만드는 가쓰오부시, 질 좋은 다시마, 일본의 각 지역에서 나오는 여러 종류의 멸치, 색깔 고운 일본 장아찌, 감칠맛 나는 녹차, 어시장의 추위를 녹여 주는 향 좋은 커피까지 발품을 팔수록 재미와 즐거움은 퐁퐁 쏟아진다.

'도쿄의 부엌' 츠키지시장 '도쿄의 부엌' 츠키지시장

가쯔오부시

'도쿄의 부엌' 츠키지시장

깜찍한 그릇과 술병

안타까운 소식이지만, 앞으로 이런 감칠맛 나는 시장 탐험을 계속 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츠키지 시장이 너무 낡아져, 2016년 도요스로 이전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츠키지의 운명이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지만, ‘메이드 인 츠키지’의 맛과 멋이 그대로 유지되기를 바랄 뿐이다.

* 일요일과 공휴일은 쉰다. 이 외에도 임시 휴무일이 있다. 꼭 휴일을 체크하고 가자. 참조 사이트 http://www.tsukiji-market.or.jp

* 연말연시 성수기를 맞아, 2016년 1월 16일까지 참치 경매장의 견학자 구역이 폐쇄된다.

'도쿄의 부엌' 츠키지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