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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 채지형의 여행살롱 3화

책 읽는 호텔,
라이브러리에서의 하루

by채지형

여행지를 선택하는 기준은 다양합니다. 바다나 산, 음식, 사람, 축제 같은 기준들이죠. 가끔은 공간이 궁금해서 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럴 때는 살짝 걱정도 됩니다. 금쪽같은 시간과 지갑을 털어 가는 여행인데, 기대했던 그곳이 실망스럽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죠.

 

태국 남쪽에 있는 섬, 코사무이에 있는 호텔 라이브러리에 갈 때도 그랬습니다. 섬보다는 이 공간에 대한 호기심이 일었습니다. 누군가 추천을 해준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라이브러리’라는 이름에 매혹당한 터라, 책 한권 없는 무미건조한 호텔이 나타나도 저는 어디에 투정을 부릴 수 없는 입장이었거든요. 다행스럽게도, 호텔 라이브러리는 저의 걱정을 기우로 만들어줬습니다. 그래서 제가 여행살롱에 이 호텔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겠지요?

Life is short, Live it

책 읽는 호텔, 라이브러리에서의 하루
책 읽는 호텔, 라이브러리에서의 하루

이름에 끌려 간 곳이라 그런지, 여기저기 호텔의 작명 센스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호텔 로비 이름은 ‘인덱스(Index)'고 방은 ’페이지(Page)'입니다. 이 공간에서 푹 쉬면서 자신이 주인공이 되는 책의 한 페이지를 만들라는 의미라고 하더군요. 방 열쇠고리마저 앙증맞은 까만색 연필이었습니다.

 

방에는 커다란 나무들이 시원하게 보이는 유리창이 있었는데요. 그 위에 ‘Life is short, Live it'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더군요. 그때 ‘제대로 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음 속에서 뭔가가 꿈틀거렸거든요. 길지 않은 인생을 왜 그리 헉헉거리고 찡그리고 살아왔나 반성도 되고 말입니다. 저에게 ‘Live it'은 더 많이 웃고, 더 자주 여행하는 것. 이 문구를 잊지 않기 위해 일기장에 폰트 40정도 크기로 적어놓았습니다.

 

인테리어는 의외로 단순했습니다. 높은 천정에 방은 새하얗게 칠해져 있었고 그 가운데 빨간 소파가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방보다는 초록이 가득한 창 밖으로 눈길이 자연스럽게 흐르더군요. 베란다에는 초록 속에서 편안하게 책을 읽을 수 있는 의자도 있었습니다. 

수영장에서도 책 한권

책 읽는 호텔, 라이브러리에서의 하루

책 읽는 호텔, 라이브러리에서의 하루

라이브러리에서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도서관이었습니다. 한쪽 벽면을 차지하고 있는 서가에는 수백 권의 책들이 빼곡히 채워져 있었는데요. 평소에 사서 보기 힘든 디자인 책들이 많았습니다. 태국과 섬에 대한 책이 다양해, 고르는 즐거움을 더해주더군요. 책은 꼭 도서관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곳에 머무는 동안 자유롭게 책을 가져다 볼 수 있었는데요.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다큐멘터리부터 최신 영화까지 여러 종류의 DVD도 갖추고 있더군요. 안타깝게도 한국어로 된 책은 없더군요. 그래서 슬그머니 제가 가져 간 책을 한 권 꽂아놓고 왔습니다. 혹시 이곳에 가신다면 찾아봐주세요.


라이브러리 호텔의 마스코스 이야기도 빠트릴 수 없습니다. 호텔 구석구석에 책을 읽고 있는 하얀 상들을 볼 수 있는데, 바로 그 아이입니다. 나무 아래에서 다소곳하게 책을 읽는 친구, 선 채로 나무에 기대서, 또는 엎어져서 책을 읽고 있는 친구까지 다양한 자세로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어찌나 귀여운지, 저도 슬그머니 옆에 가서 책을 펼쳤죠.

 

호텔 이름 때문인지, 수영장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책을 하나씩 들고 있었습니다. 선탠 오일을 등에 바르고 파라솔 아래에서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기는 모습이 더 없이 여유로워 보이더군요.

 

라이브러리의 수영장은 오렌지색과 빨간색 타일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책을 읽다가 땀이 흐르면 수영장으로 퐁당. 넘실거리는 푸른 바다가 더 마음에 든다면, 눈앞에 펼쳐진 에메랄드빛 바다 속으로 들어가면 됩니다. 그곳에서의 시간은 왜 그리도 빨리 흐르던지요.

책 읽는 호텔, 라이브러리에서의 하루
책 읽는 호텔, 라이브러리에서의 하루

모래사장에서 맛 보는 아침식사

책 읽는 호텔, 라이브러리에서의 하루
책 읽는 호텔, 라이브러리에서의 하루

마지막으로 다른 곳에서 경험해보지 못한 아침식사 이야기를 해드릴게요. 방에 있는 브로셔를 보니, 모래사장에서 해변을 바라보며 식사를 할 수 있더군요. 벌떡 일어나, 특별한 아침식사를 예약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해가 뜨기 전 산책을 하러 가니, 스텝들이 일찍 일어나 흰 모래사장을 평평하게 고르고 있더군요. 그리고 해변에서 식사를 할 수 있도록 선베드와 쿠션, 재미있는 잡지를 올려놓았습니다. 푹신푹신한 선베드에 앉으니 긴 메뉴판을 가져다주더군요. 골라야 할 것이 많았습니다. 달걀 익히는 정도, 과일 주스의 종류, 커피의 취향, 치즈 종류. 긴 리스트를 채우고 눈을 감았습니다. 아침의 에너지가 밀려오는 것이 느껴지더군요.

 

잠시 후, 신선한 열대과일을 갈아서 만든 주스부터, 앙증맞은 그릇에 정성이 가득 담긴 접시가 하나씩 등장했습니다. 빵은 따끈했고, 달걀은 부드러웠습니다. 아스파라거스도 적당하게 구워졌고요. 눈도 즐겁고 혀도 행복했습니다. 도시의 소음과 매연에 시달리던 귀와 코는 말할 것도 없고요. 밀려드는 파도를 바라보며 하는 아침식사. 결코 잊을 수 없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책 읽는 호텔, 라이브러리에서의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