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재미가 가득한 ‘공항놀이’

[여행]by 채지형

만약 화성인을 데리고 우리 문명을 관통하는 다양한 주제들을 깔끔하게 포착한 단 하나의 장소에 데려가야 한다면, 우리가 가야할 곳은 공항의 출발과 도착 라운지밖에 없을 것이다. 

- 알랭드 보통의 '공항에서 일주일을'

공항은 만남과 이별의 장소입니다. 새로운 곳으로 들어가는 통로이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목이죠. 여행을 시작하는 설렘과 마무리해야하는 아쉬움, 그리고 약간의 안도감. 진정한 여행자들은 공항에서만 감지할 수 있는 소중한 느낌을 놓치지 않습니다.

 

여행자들이 공항에서 챙겨봐야 할 것이 한 가지 더 있습니다. 독특한 문화입니다. 비행기를 갈아타기 위해 두세 시간 머물렀던 인도 공항에서는 진한 카레향이 느껴지더군요. 홍콩 공항에서는 여러 종류의 딤섬을 맛보았죠. 공항에 있는 맛과 향, 사람들을 통해 그곳에서의 여행을 돌아보았습니다. 문득 공항이 그 도시의 얼굴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벽화가 그려져 있는 네팔의 자낙푸르 공항

문화와 재미가 가득한 ‘공항놀이’

입구부터 자낙푸르 여인들의 벽화가 여행자들을 맞이하는 자낙푸르공항

하얀 설산이 떠오르는 네팔. 그곳에도 넓은 평원이 있습니다. 남부에 위치한 테라이 평원이 그곳입니다.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서 남동쪽으로 약 400km 떨어진 자낙푸르는 테라이 평원에 위치한 작은 도시인데요. 고대 인도의 서사시 라마야나의 무대로, 힌두교인들의 순례가 끊이지 않는 곳이죠.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서 비행기를 타고 1시간쯤 날아가면, 끝없는 평원에 초록색 풀이 넘실거리는 자낙푸르가 나타납니다.

문화와 재미가 가득한 ‘공항놀이’ 문화와 재미가 가득한 ‘공항놀이’

(왼쪽) 자낙푸르 공항 (오른쪽) 자낙푸르 공항 주차장이라고 할 수 있는 들판

자낙푸르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이유는 딱 한 가지였습니다. 자낙푸르 여인들의 벽화를 보기 위해서였죠. 우연히 만난 한 폭의 그림이 서울에서 자낙푸르까지 먼 길을 한달음에 달려가게 만들었습니다. 제 마음을 알았던 것일까요. 공항에 내리자마자 벽화가 떡 하니 서 있더군요. 반가웠습니다. 비록 색이 벗겨지고 현지인들은 눈길 한번 주지 않는 그림이었지만, 벽화들을 보러 온 저에게는 그 어떤 환영 인사보다 큰 기쁨을 안겨주었죠. 한 눈에 다 들어올 정도로 작은 공항에 벽화가 있다니, 역시 공항은 그들의 문화와 자긍심을 나타내주는 곳이구나 싶었습니다.


다음에 자낙푸르 여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드릴 날이 있을 것 같아, 오늘은 그녀들에 대해 간단히 말씀드릴게요. 자낙푸르 사람들은 농사를 지으며 살았습니다. 어느 날 극심한 가뭄이 찾아왔죠. 아무리 기우제를 지내도 비가 내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여인들이 비를 내려달라는 기원을 담아 벽에 그림을 그렸는데 비가 오기 시작한 것이죠. 그때부터 자낙푸르 여인들은 신에게 소원할 일이 있을 때마다, 축제를 열 때마다 벽에 그림을 그렸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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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낙푸르 공항에 그려진 벽화

특이한 것은 그녀들이 그림을 따로 배운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엄마가 그리는 모습, 할머니가 그림을 그리는 것을 보며 어깨 넘어 따라 그려온 것이죠. 그들은 벽에 일상 생활과 축제의 모습을 담았습니다. 독창적인 작품들이었죠. 자낙푸르의 여인들의 작품은 미국과 영국, 독일 등 세계 각국에서 전시될 정도로 예술성을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쓰러져가는 담장에 작은 손수레에 짐을 옮겨야 하는 허름한 공항이었지만, 벽화 덕분에 자낙푸르 공항은 그 어느 공항보다 반짝반짝 빛이 나는 공항으로 가슴 속에 남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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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아담한 자낙푸르 공항 (오른쪽) 짐은 이렇게 간단하게 옮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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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P 출구도 소박한 자낙푸르 공항

공항이야 테마파크야? 태국 코사무이 공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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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에서 노는 것이 이렇게 즐거울 줄이야. 코사무이공항

태국의 아름다운 섬 코사무이. 짐을 찾기 위해 공항 안으로 들어가는데, 마치 입장권을 사들고 테마파크에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때는 코사무이 섬에서 보낼 즐거운 시간 때문에 공항까지 예뻐 보이는 것이라고 생각했었죠. 그런데 코사무이에서의 꿈같은 시간을 마치고 방콕으로 돌아가는 길에 코사무이 공항이 좋아 보였던 진짜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기분 탓이 아니라, 실제로 아름다운 공항이었던 것입니다. 섬에 도착했을 때는 서둘러 호텔로 이동을 하느라 자세히 못 봤는데, 여유 있게 공항을 둘러보니 여느 곳보다도 사랑스러운 공간이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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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쇼핑스트리트를 떠오르게 하는 코사무이공항 입구 (오른쪽) 정원이 반겨주는 코사무이공항

공항에 들어가는 길은 화려한 쇼핑가를 걷는 것 같은 기분을 안겨주었습니다. 고급스러운 물건들을 판매하는 가게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더군요. 공항에 딸린 기념품 가게와는 수준이 달랐습니다. 가게들을 지나니 깔끔하게 정돈된 정원이 여행자를 맞이하더군요. 노련한 정원사가 부지런히 관리한 듯한 초록 정원.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하나가 예뻐 보이면, 다 예뻐 보인다는 것이 이런 것일까요. 표지판의 둥글둥글한 글자들도 좋아 보이더군요. 오색찬란한 색들도 유쾌하고요. 저 너머에 있을 해변의 파도 소리도 아련하게 들릴 것만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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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로비처럼 생긴 공항 대기실

게이트로 들어가서 깜짝 놀랐습니다. 마치 휴양지 리조트 로비에 온 것 같은 공간이 펼쳐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푹신한 소파와 사랑스러운 주황색의 쿠션, 고풍스러운 라탄 테이블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세계 다른 어느 공항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무료 음료와 간식 서비스도 있더군요. 무료 와이파이? 기본입니다. 섬에서 연인과 심하게 다툰 커플이라도 코사무이 공항에 오면 화가 풀릴 것만 같고, 비행기가 얼마든지 지연되어도 기꺼이 참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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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열차를 타고 비행기로 이동하는 코사무이 공항

코사무이 공항에서의 화룡점정은 공항에서 비행기까지 가는 약 300미터. 짐짝이 된 것 같은 셔틀버스가 아니라, 테마파크의 코끼리 열차처럼 생긴 셔틀카를 타고 비행기까지 이동했습니다. 생각하지 못했던 의외의 재미. 코사무이 공항 덕분에 코사무이에서의 시간들이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지더군요. 비행기에 오를 때 마음먹었습니다. 공항을 다시 보기 위해서라도 코사무이에 다시 오리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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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재미가 가득한 ‘공항놀이’
2016.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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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답은 길 위에 있다고 믿는 여행가. '지구별 워커홀릭' 등 다수의 여행책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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