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주말] 일몰은 ‘차크닉’, 일출은 ‘차박’… 코로나 시대엔 해넘이·해맞이도 ‘드라이브 스루’
아무튼, 주말
2021 일출·일몰
2020년은 ‘드라이브 스루(drive-through·차를 타고 지나가는 방식)’로 시작해 ‘드라이브 스루’로 마무리하는 한 해가 될 것 같다. 코로나 감염증이 본격 확산하던 올 초, 본지(‘아무튼, 주말’ 2월 22일 자)에 언택트(비대면) 여행법의 하나로 ‘드라이브 스루 여행’을 소개한 데 이어 드라이브 스루 선별 진료소 등장, 드라이브 스루 교과서 배부, 드라이브 스루 벚꽃 여행을 즐겼던 봄과 드라이브 스루 단풍 감상을 했던 가을을 지나 이제 힘겹게 연말을 맞았다.
매년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통과의례 같던 해넘이, 해맞이마저 코로나 감염증 재확산세로 망설여지는 상황. 포기할 수 없다는 이들 사이에서 ‘드라이브 스루 해넘이·해맞이’가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인파가 몰리는 연말연시를 피해 이달 초부터 한발 빠르게 움직이는 이들도 있다. 드라이브 스루 하기 좋다는 해넘이·해맞이 명소를 미리 가봤다. 전문가가 추천하는 코스, 팁도 들어봤다.
◇해안가·전망대 1열, 무료 주차장이 명당
이번 연말연시 비대면 방식의 드라이브 스루로라도 해넘이, 해맞이를 하고 싶다면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해안가, 전망대 주차장 1열을 사수하라!’ 해가 잘 보이는 전망을 자랑하는 해안가나 전망대 주차장 1열은 1월 1일 당일은 물론 2~3일 전에도 자리 차지하기 어려울 전망. 올해는 코로나 사태로 차박(차를 베이스캠프로 삼아 여가 문화를 즐기는 레저 문화), 차크닉(차+피크닉·차 트렁크 공간을 활용해 즐기는 피크닉) 인구가 늘면서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네이버 차박 커뮤니티 ‘차박캠핑클럽’ 남후식 매니저에 따르면 “코로나 사태가 터진 올 한해 차박과 차크닉이 언택트 여행법으로 뜨면서 올 한해만 12만명이 가입했다”고 전했다. 일찌감치 드라이브 스루 하는 것도 방법이다.
관심을 반영하듯 차박 커뮤니티 ‘차박캠핑클럽’ ‘순수차박밴드’를 비롯해 자동차 동호인 커뮤니티마다 일몰, 일출 주변 정보에 대한 정보 교류가 한창이다. ‘올 연말엔 조심스럽게 언택트 차크닉으로 해넘이를 감상하려 한다’는 글부터 ‘해맞이할 만 한 차박지를 추천해달라’는 글 등 시기가 시기인 만큼 드라이브 스루 해넘이, 해맞이 여행을 계획하는 이들의 글이 눈에 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12월 초 일몰, 일출 명소 주변 공용주차장은 차크닉·차박 차량들이 심상치 않게 몰려들고 있다. 서울과 비교적 가까운 낙조 포인트인 인천 무의도 ‘광명항 노상주차장’ ‘실미유원지’ 등 해변과 가까이 있거나 일몰 감상하기 좋다고 소문난 ‘오션 뷰 주차장’ 1열은 평일에도 만차에 가깝다.
강원도 동해안 일출 명소도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강릉 사천해변, 양양 물치해변 등 일부 해변 주차장과 노상엔 캠핑카도 보였다. 8일 물치해변 주차장에서 차박을 하던 김재형(40·서울 잠실)씨는 “매년 일출 명소 주변 숙소에서 해맞이했는데 올해는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차박을 택했다”면서 “바다 전망 일등석을 차지하기 위해 아침부터 달려온 보람이 있다”고 했다. 김씨는 오는 길 속초에서 드라이브 스루로 포장해 온 햄버거와 커피로 간단히 저녁을 해결했다. “내일 떠오르는 해를 맞이하며 코로나의 악몽을 훌훌 털어내고 싶습니다.” 김씨가 말했다.
◇연말 차크닉, 차박族 몰리는 SNS 일몰·일출 명소
블로그와 인스타그램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엔 12월에 접어들며 일몰, 일출 사진이 실시간 올라오고 있다. 겨울에 접어드니 차박보다는 당일치기 차크닉을 선호하는 분위기다. 인천 무의도는 서울 도심과 가깝고 인천국제공항고속도로 따라 시원하게 드라이브하기 좋아 당일 차크닉, 차박 장소로 인기다. 그중 광명항 노상주차장이 드라이브 스루 일몰 명소로 손꼽힌다. 소무의도, 무의도 사이 서해와 근접 주차는 일단 합격. 하지만 계절마다 일몰 포인트가 달라진다. 요즘 같은 계절엔 산 능선 뒤로 해가 금방 떨어진다. 주차 후 앉은 자리에서 일몰을 오롯이 감상하기엔 광명항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실미유원지가 낫다. 실미도해수욕장 부근 ‘실미자연발생유원지 주민번영회’에서 운영하는 곳이다. 폐기물 처리 수수료 개념의 입장료는 중학생 이상 대인 2000원, 소인 1000원(미취학 무료)에 당일 주차 3000원을 내면 이용할 수 있다. 바다 위 해안목책로가 있는 인근 ‘하나개해수욕장’도 일몰이 아름답기로 유명하지만 역시 드라이브 스루로 일몰을 기대하긴 어렵다. 주차장과 해변 사이가 언덕으로 막혀 있어 주차 후 해수욕장까지 걸어가야 일몰을 만날 수 있다. 무의대교까지만 차로 달리기 좋다. 무의도 안은 요즘 곳곳이 공사 중이라는 것도 알고 가자.
경기도 안산 탄도항은 올해 SNS를 뜨겁게 달군 일몰 명소 중 하나다. 바다에 우뚝 서 바닷바람을 휘휘 가르는 하얀색 풍력발전기가 이국적인 풍경을 자아낸다. 해가 질 즈음 풍력발전기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은 ‘인생 샷’이 되기에 충분하다. 때때로 바다 갈라짐 현상이 생겨 누에섬까지 걸어 들어가 볼 수 있다. 물때만 잘 맞춘다면 일몰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듯한 그림 같은 사진을 얻을 수 있다. 누에섬에선 해양수산부 이달의 등대로 선정된 ‘누에섬 등대’가 볼거리다. 주차는 탄도항 입구 부근 노상주차장에 하면 된다. 단, ‘일몰 맛집’으로 소문나면서 주말이면 탄도항 방면으로 차가 가다 서기를 반복할 정도로 정체가 심하다.
바다 위를 가르며 방조제를 달릴 수 있는 전북 새만금방조제는 아는 사람들만 꾸준히 찾는다. 방조제 중간쯤 있는 ‘새만금방조제 해넘이휴게소’에선 바다 한가운데에서 장엄한 일몰을 만날 수 있다. 타이밍만 잘 맞추면 달리는 차 안에서도 일몰 감상이 가능하다. 방조제를 건너면 고군산군도가 기다린다. 전북 옥도면에 딸린 군도로 선유도, 신시도, 무녀도 등 60여개 섬이 몰려 있다. 노상, 공용주차장이 곳곳에 있다. 어렵지 않게 주차 가능하다. 장자도 대장봉에선 고군산군도 일대 섬과 어우러진 일몰 풍경을 한 폭에 담을 수 있다. 섬으로 진입하는 길들은 일차로라 주말여행이라면 눈치 게임을 잘해야 정체를 피할 수 있다.
강원도 양양 물치해변은 차박 동호인들 사이에서 ‘오션뷰 스위트룸 급’이라고 소문났다. 바다 전망뿐 아니라 주차장 내 공용 화장실이 있어 차박 성지가 됐다. 한겨울에도 해맞이를 감상하려는 차들이 줄을 잇는다. 양양, 속초 주요 여행지와도 가까워 접근성이 좋기로 유명하다. 반면 도로 부근인 데다 늦은 밤 차량 진출입으로 소음이 잦다. 찾는 이가 많아지다 보니 이따금 주차 문제로 분쟁이 발생하기도 한다. ‘SNS 명소’에선 해맞이의 낭만은 기대하기 어려울 수 있단 얘기다.
◇명소보단 한적한 곳, 프라이빗 일출·일몰 노려야
‘핫플’도 좋지만, 여행 전문가들이 몰래 다녀가는 곳이 힌트가 될 수 있다. ‘자동차 주말여행 코스북’ 공저자 중 한명인 여행작가 권현지(58)씨는 강화도 동검도와 강원도 강릉 사천해변, 영진해변 그리고 태안의 작은 해변들이 드라이브 스루로 해를 보기가 좋다고 꼽았다. 동검도는 진출입로가 외길이라는 게 아쉽지만 시커먼 펄과 붉게 물드는 일몰이 대비되는 풍광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사천해변은 ‘강릉 카페’로 유명한 ‘보헤미안 박이추커피’ 분기점에서 해변으로 나란히 난 도로가 특히 좋다. 이른 아침 도로에 잠시 차를 세우고 솔향기를 맡으며 해맞이할 수 있다. 잠깐으론 성에 안 찰 땐 인근 해변 캠핑장을 이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권씨는 “경포호는 일몰도 아름답다”고 귀띔했다. 일몰 포인트는 경포호 강릉방해정 정자. 정자에서 경포호 너머 태백산을 바라보면 저녁 풍경이 경포호에 담긴다. 권씨는 “눈 내린 후 태백산 설산 풍경에 노을까지 더해지는 날엔 경포호는 한 폭의 그림이 따로 없다”고 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오늘부터 차박캠핑’을 펴낸 여행작가 홍유진(47)씨는 “해와는 좀 거리가 멀어지더라도 한적한 해변을 찾는다면 강원도 북쪽, 고성으로 가라”고 조언했다. 공현진해변이 홍씨가 꼽는 해맞이 명소다. “매년 연말마다 해넘이·해맞이 여행으로 한 해를 마무리한다”는 홍씨는 얼마 전 공현진해변에서 차박하며 미리 송구영신(送舊迎新)했다고. 공현진해변 노상주차장에 차를 수뭇개바위 방향으로 주차하면 눈을 떴을 때 수뭇개바위 위로 떠오르는 해를 만날 수 있다.
코로나 사태가 어느 정도 진정된 후 방문한다면 인근 ‘송지호둘레길’과 한옥 마을인 ‘왕곡마을’ 등도 둘러볼 만하다. 경북 울진 구산해수욕장은 캠핑장이 가까이 있다. 해변 주차장이 넓어 차 트렁크 문을 열고 트렁크에 기대 앉으면 ‘트렁크 뷰 일출’을 맞이할 수 있다. “무엇보다 찾는 이들이 많지 않아 언택트 해맞이 장소로 딱 좋습니다.”
차를 타고 편히 올라 산 일출을 감상하고 싶다면 경북 군위 화산산성 전망대에 가볼 것. 홍씨는 “화산산성 전망대는 별이 아름답기로 소문난 곳이다. 운이 좋으면 운해 사이로 뜨는 일출, 일몰을 다 목격할 수 있다”고 했다. 다만 산 정상부는 해가 늦게 뜨고 빨리 지기 때문에 일출·일몰 시각보다 최소 1시간 전에는 도착해야 안심이다.
‘경주 바람의 언덕’이라 불리는 경주 풍력발전소 전망대나 강원도 매봉산 태백 바람의 언덕에선 일몰·일출을 모두 감상할 수 있다. 두 곳 모두 풍력발전단지를 배경으로 해맞이할 수 있는 곳이다. 이름처럼 바람이 세차게 불어 오래 버티기는 어렵다.
드라이브 스루가 가능한 강원도 강릉 안반데기나 횡성 태기산 전망대 등은 아는 사람만 아는 명불허전 일출·일몰 명소였는데 최근 탐방객이 늘어 몸살을 앓고 있다. 안반데기처럼 고원지대에서 풍력발전기 사이로 떠오르는 해를 볼 수 있는 강원도 평창 삼양대관령목장에선 1월 1일 단 하루 ‘드라이브 스루 해맞이' 관람객을 받을 예정(입장료 별도)이었으나 김성민 홍보 과장은 “12월 31일 오전 현재 거리두기 상향에 따라 동해안 해맞이 행사가 전면 취소되며 드라이브 스루 해맞이 행사도 취소하게 됐다”고 전했다.
드라이브 스루 여행에도 매너가 있다. 불법 주차는 금물. 운 좋게 전망 좋은 주차 구역을 선점했다 하더라도 차크닉이나 차박을 할 때 허가되지 않은 구역에선 텐트나 그늘막, 불 사용은 절대 금한다. 홍유진씨는 “차에서 비화식(불을 쓰지 않는 음식)하는 게 차크닉·차박의 기본 매너”라며 “추워서 히터를 튼다고 시동을 오래 켜두는 것도 삼가야 한다”고 했다. 시동을 오래 켜둘 수 없을 땐 옷을 여러 겹 껴입고, 핫팩이나 손 난로 등을 준비한다. 홍씨는 “침낭 등 동계 장비들이 준비되지 않았다면 해맞이하다가 극한의 추위를 경험할 수 있다”며 “초보라면 올해는 먼 곳보다 집과 가까운 해맞이 명소를 드라이브 스루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인천·태안·평창=박근희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