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표 뒤통수까지 파헤치며 최고의 하모니 만들고 싶다

[지휘자로 첫 내한하는 장한나]

내달 트론헤임 심포니와 공연

단원 100명이 나만 보고 있으니 악보를 밥처럼 물처럼 삼켰죠


'비상(飛上)'은 어디까지일까. 1994년 열두 살에 로스트로포비치 첼로 콩쿠르에서 우승, 신동(神童)으로 이름 날렸던 장한나(37)가 자신의 악단을 이끌고 서울에 온다. 지휘자로선 처음이다. 2007년부터 지휘 겸업에 나서서 불과 10년 만에 트론헤임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예술감독이 된 그가 첫 내한인 트론헤임과 함께 다음 달 13일부터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과 부산, 대구, 전북 익산을 돈다. 110년 역사의 트론헤임 심포니는 대니얼 하딩 등 젊고 재능 있는 지휘자들이 거쳐간 노르웨이 악단. 곡목도 노르웨이 대표 작곡가인 그리그의 페르귄트 모음곡 1번과 피아노 협주곡(협연 임동혁),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비창'이다. 지난 13일 뉴욕 집에서 전화를 받은 그는 "페르귄트 모음곡 1번은 어려서부터 맨날 듣던 나의 음악적 고향, '비창'은 트론헤임의 자랑거리"라며 뿌듯해했다.

조선일보

지휘자가 된 뒤 처음으로 자신이 수장인 악단을 이끌고 한국에 오는 장한나. "지휘만 하면 땀으로 범벅이 돼서 옷도 물빨래할 수 있는 것만 입는다"고 투덜댔지만 말끝엔 웃음꽃이 피었다. /크레디아

1982년 경기도 수원에서 태어나 열한 살 때부터 뉴욕에서 자랐다. 명(名)첼리스트 미샤 마이스키가 꼽은 단 한 명의 제자. 2001년 하버드대에 입학해 철학을 공부했고, 2007년 성남아트센터에서 열린 국제청소년관현악축제에서 생애 첫 지휘를 했다. "첼로는 내 인생에서 떼어낼 수 없는 첫 동반자. 하지만 연주할 수 있는 곡은 드보르자크, 차이콥스키, 생상스 등 한정돼 있죠." 어떻게 하면 우물을 더 깊이 팔 수 있을까 늘 목말랐다. 스무 살 무렵 첼로 협주곡을 하나도 안 쓴 베토벤의 교향곡 악보를 들여다보면서 신세계가 열렸다. "음표의 뒤통수까지 낱낱이 파악해 생각대로 펼치고 싶은 열망"이 솟구쳤다.


2013년 카타르 필하모닉의 음악감독이 됐고, 이듬해 BBC 프롬스에 데뷔했다. 2013년부터 트론헤임의 수석 객원지휘를 맡았고 2017년 수장(首長) 자리를 꿰찼다. 첼로는 그리울 때에만 가끔 켠다.


14년 전 "'10대는 신동, 20대는 젊은 거장, 30대는 거장, 40대는 중견 연주자, 50대는 마에스트로'라고 나이와 수식어를 무조건 연관 짓는 게 마음에 들진 않는다"고 똑 부러지게 말했던 스물셋 아가씨는 "첼로 신동으로 주목받았던 10대의 나 또한 소중한 나"라며 둥글게 웃었다. "악기를 연주할 땐 내가 나의 가장 열렬한 팬인 동시에 가장 혹독한 평론가가 돼야" 했다. 지휘는 달랐다. "단원들 100명이 나만 보고 있고 그들 마음을 얻어야 소리를 낼 수 있으니 악보를 밥처럼 물처럼 삼켰죠."


2009년 예능 프로그램 '무릎팍 도사'에 출연해 "지휘를 하려면 300곡을 외워야 한다"고 토로했던 그는 "빙산의 일각이었다. 뼈대만 있는 악보에 살을 입히고 피가 돌게 하려면 작곡가의 편지와 일기, 학자들 분석, 그 시대 역사까지 시간 날 때마다 백 번, 천 번 봐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낼모레 사십이지만, 하하! 남자도 이상형도 생각해본 적 없다"고 했다. "'성공'은 연습실에서 맨날 하는 '실패'에서 나와요. 어린 여자에다 동양인…. 넘어지고 깨진 순간을 말하자면 끝이 없는데, 음악이 요구하는 대로 나아가는 거죠. 솔직히 말러가 자기 음악이 성공할 줄 알았겠어요? 그는 매번 실패했죠. 근데 오늘날 음악가들은 말러 없인 못 살거든요. 카라얀도 죽기 전 빈 필과 브루크너 교향곡 7번을 연주할 땐 허리 수술을 받아 부축을 받았고 한창때처럼 지휘하지도 못했어요. 그런데 거기서 나온 음악은 그가 평생 한 음악보다 감동적이죠." 장한나는 "2022년 9월까지 스케줄이 잡혀있지만 3년 뒤 잘하려면 지금 이 순간을 빈틈없이 살아야 하기에 난 오늘만 본다"고 했다. "차곡차곡 경험을 쌓아서 죽기 전 최고의 연주를 들려줄 수만 있다면 그때가 내 삶의 전성기인 거예요."


외국서 20년 넘게 살았지만 집에만 오면 삼시세끼 흰 쌀밥에 김치찌개만 먹는다. "가슴을 찌르르 울리는 우리말은 '김치찌개'"라고 말한 그는 "5년 만의 귀국인데 TV 켜면 한국말 나오고 길 가면 한국말 들릴 게 생각만 해도 좋다. 나 진짜 한국 사람이구나!" 감탄하며 까르르 웃었다.


[김경은 기자]

2019.10.19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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