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들이 다 병력 자원?” 힙해서 입는 ‘대한 육군’ 티셔츠
군인 전용이던 ROKA 티셔츠, 이제는 국민 인싸템. 10대 반티·커플티부터 해외 팬덤까지 확산된 군대 패션 열풍.
남녀노소 국민 인싸템
로카(R.O.K.A)티 열풍
![]() 물놀이장에서 군대 티셔츠인 로카티를 맞춰입은 가족. /인터넷 커뮤니티 |
휴가 나온 군인이 부쩍 많이 보인다 싶었다. 등산로에서, 헬스장에서. 앞뒤로 선명한 ‘R.O.K.A(대한민국 육군)’와 ‘KOREA ARMY’ 로고에 팔뚝의 태극기가 선명한 검정 티셔츠. 반바지까지 맞춰 입고 운동하는 젊은 남녀를 볼 때마다 50대 K씨 부부는 감탄했다.
“우리 땐 군인이란 티를 내기 싫었는데, 요즘은 휴가 때도 당당히 군복 입고 체력 단련을 하네.” “그러게. 병력 자원이 부족하다던데 여군도 저렇게 많아졌네. 든든하다~.”
이들은 동남아 여행지에서도 그 티셔츠를 맞춰 입은 한국 가족을 몇 팀이나 만났다. “군인 가족들인가? 근데 아들들은 못 왔나 봐.”
그러나 워터파크에서 초·중·고교생까지 그걸 입은 걸 보곤, 뭔가 크게 착각했다는 걸 깨달았다. “학생, 그 옷 어디서 났어?” “유행이라 인터넷에서 샀어요.”
![]() 한 고등학교 남녀 학생들이 '반티'로 로카티를 맞춰입은 모습. 때 안 타는 검정색에다 브랜드도 없어 특정한 정체성을 드러내기 싫어하는 10대들에게, 로카티는 '가성비 인싸템'이다. /인터넷 커뮤니티 |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에 전례 없는 패션이 유행 중이다. 군대 티셔츠, 일명 ‘로카티’ 열풍이다. 로카는 ‘R.O.K.A’를 소리 나는 대로 적은 것.
20~30대 MZ들이 운동복이나 잠옷, 커플티로 입는다. 중년들도 가족·동창 모임에 단체로 맞춰 입는다.
특히 10대 중·고교생의 ‘인싸템(유행을 선도하는 인사이더의 패션 아이템)’이다. 교복 안에 받쳐입거나 반(班)티로도 맞춘다. 그 인기가 초등생까지 내려왔다.
검정·흰색·디지털 무늬 등 다양한 색의 반팔·긴팔 티셔츠에 후드티, 플리스 집업티, 반바지와 기모 바지까지 다양하게 출시돼 사계절 내내 ‘로카 옷’만 돌려 입는다는 이도 있다.
![]() 다양한 로카티 상하복을 입은 유아 모델들. /인터넷 커뮤니티 |
육군뿐만 아니라 ‘R.O.K.A.F(대한민국 공군)’나 ‘R.O.K.N(해군)’ 티셔츠, 빨간 바탕에 노란 글씨의 해병대티, UDT(수중폭파대)티도 덩달아 유행이다.
정작 군인들 사이에선 “이제 로카티 입으면 군인같이 안 보인다” “대체 미필자들은 왜 입는지 모르겠다”는 말도 나온다.
로카티 유행은 약 10년 전 군대 간 애인을 기다리는 여성을 뜻하는 ‘곰신’ 온라인 모임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PX에서 파는 군인 활동복을 남자친구에게서 선물받아 커플 사진을 찍는 유행이 인 것.
![]() ‘대한민국 육군’ 티셔츠를 입은 커플. 두명 다, 혹은 둘중 하나가 현직 군인이나 예비역일 수 있다. 둘다 아니어도 상관 없다, 힙하니까. /인터넷 커뮤니티 |
군인 부모들도 아들의 군 복무 기간 함께하겠다는 의미로 구해 입기 시작했다. 수요가 늘자 시중에서 ‘짝퉁 로카티’도 우후죽순 생겼지만, 여전히 ‘PX 정품’에 대한 수요가 많다. 각 부대 PX에서 매출 1위가 로카티라고.
특히 BTS·샤이니 등 K팝 남자 가수들이 군 복무를 마치고 돌아오자, 해외 팬들 사이에서 세계 어디에도 없는 ‘K 군필 아이돌’에 대한 환상이 커지며 그 인기가 세계로 퍼지고 있다. 마침 BTS 팬클럽 이름이 ‘아미(ARMY)’여서, 로카티는 BTS 팬들에겐 필수템이라고 한다.
![]() 군 복무 중인 그룹 샤이니 멤버가 로카티를 입은 모습. BTS 멤버가 전원 군 복무를 마치는 등, 세계 유일한 분단 국가의 희귀한 'K 군필 아이돌'이 해외 팬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있다. /인터넷 커뮤니티 |
로카티 입는 이들은 “싸고 편하다” “한번 입으면 못 벗겠다”고 말한다. 신축성과 통기성이 좋은 데다 가격도 1만원 안팎. 젊은 여성들은 혼자 운동할 때 ‘센 척’하기 위해 입기도 한다.
10대들은 브랜드 없이 지역·학력·나이·성별 등을 떠나 한국 국민이란 정체성만 뽐낼 수 있는 로카티의 ‘무심하면서도 힙한 감성’을 꼽는다.
뭐니 뭐니 해도 로카티 열풍의 진짜 이유는 한국이라는 이름이 자랑스러워진 덕, 누군가 이 나라를 지켜온 덕이다.
정시행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