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택근무 지겨워 떠난다, 몰디브 리조트까지 ‘워캉스’

[자동차]by 조선일보

With Corona: 대체 오피스의 진화


인도양 몰디브섬의 고급 리조트 ‘바카루 몰디브스’는 지난해 10월부터 ‘워크 웰(Work Well)’이라는 패키지 상품을 내놨다. 휴양지에서 웬 ‘일(work)’이냐 싶지만, 이 패키지는 업무에 자주 쓰이는 프린터 기기와 각종 사무용품은 물론 개인 비서 역할을 하는 전속 직원까지 지원한다. 바닷가에 마련된 야외 사무실에선 초고속 와이파이(WIFI) 접속이 가능하고, 백사장에 맨발로 이용할 수 있는 회의실 ‘비치 보드룸(Beach Boardroom)’도 갖췄다. 아예 휴양을 겸해 장기 체류하며 일할 수 있도록 만든 ‘오션 오피스(Ocean Office)’다. 리조트 측은 “재택근무에 질린, 여유 있는(affluent) 직장인들이 많이 찾고 있다”고 했다.


집이 아닌 휴양지나 호텔이 이른바 대체 사무실(alternative offices)로 부상하고 있다. 원격·재택근무의 보편화로 업무와 주거 공간의 구분이 사라진 것에서 한발 더 나가, 업무와 휴양 공간의 구분마저 무너지는 것이다. 세계 어디서든 “일만 제대로 굴러가면 된다”는 발상과 함께, 리조트와 고급 호텔의 이용료가 크게 싸진 것이 영향을 미쳤다. 영국의 여행 트렌드 분석기관 ‘글로브트렌더’는 “2021년에는 ‘홈 오피스’를 ‘오션 오피스’로 바꾸는 사람들이 더 많이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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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김영석

사무실로 변한 리조트

ILO(국제노동기구)에 따르면 신종 코로나 대유행 이후 전 세계 노동자 5명 중 1명(20%)에 달하는 6억6000만명이 재택·원격 근무를 하고 있다. 2019년의 7.9%(2억6000만명)에서 1년 새 2배 이상 불어났다. 이로 인해 재택근무에 피로감을 호소하는 사람도 늘어났다. 출퇴근의 불편은 줄여줬지만, 집안일과 육아 등으로 업무 효율은 오히려 떨어진다는 말도 나온다.


이런 이들을 겨냥해 호텔과 리조트가 ‘홈 오피스'의 대체재로 등장했다. 급(級)을 가리지 않고 호텔 업계 전체가 주중 업무시간을 겨냥한 대실(貸室) 상품을 쏟아내고 있다. 이른바 ‘워캉스(Work+Vacance)’ 또는 ‘워케이션(Work+Vacation)’ 패키지다. 예전에는 격을 떨어뜨린다는 이유로 터부시했던 서비스가 지금은 평일 공실률을 떨어뜨려주는 효자 상품이 됐다.


미국의 대형 호텔 체인 하이엇은 작년 12월부터 ‘오늘의 사무실(Office for the day)’이라는 데이유즈(day-use·당일치기) 패키지를 출시했다. 하루 65달러(약 7만2000원)에 책상과 고속 WIFI, 프린터와 스캐너를 갖춘 방을 오전 7시부터 오후 7시까지 12시간 동안 이용 가능하다.


국내에서도 5성급 호텔 ‘인터컨티넨탈 서울 코엑스’가 국내 특급 호텔 중 처음으로 오전 8시부터 당일 오후 8시까지 반나절 동안 머물 수 있는 ‘하프 데이 스페셜’ 패키지를 내놨다. 인터컨티넨탈 호텔 측은 “워캉스 패키지 상품의 인기가 계속 높아지고 있다”며 “올해 1월 워캉스 패키지 투숙률은 전달의 두 배 수준”이라고 밝혔다. 밀레니엄 힐튼과 롯데시티호텔, 글래드 호텔 등도 비슷한 패키지를 운영했다.


숙박 공유 서비스 에어비앤비도 집 근처의 다른 집을 빌려 사무실로 일하는 ‘대체 사무실’ 트렌드의 효과를 봤다. 작년 상반기 9억3000만달러(약 1조400억원) 순손실을 기록했지만, 3분기 들어 2억1900만달러(약 2447억원) 흑자로 전환했다. 해외 숙박 매출은 반 토막 났지만, 국내 여행객의 숙박 수요가 작년 6월 이후 매달 두 자릿수 성장률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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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노마드' 확산 도와

대체 사무실의 등장은 ‘디지털 노마드’의 등장과 확산을 촉진하고 있다. 디지털 노마드는 유목민(nomad)처럼 세계 어디든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이동하며 일하는 사람을 뜻한다. 지금까지는 특정 회사에 소속되지 않는 프리랜서들의 전유물이었지만, 코로나 팬데믹을 계기로 기업의 정규 직원도 시도해 볼 수 있는 삶의 방식이 됐다.


미국의 인력 소개 업체 ‘MBO파트너스’ 조사에 따르면, 미국의 디지털 노마드는 2019년 730만명에서 작년 1090만명으로 1년 새 49% 급증했다. 이 중 상당수는 미국 실리콘밸리의 테크 기업에 고용된 사람들로 파악된다.


실리콘밸리가 있는 샌프란시스코 베이에리어(Bay Area)는 높은 월세와 물가로 악명이 높았다. 원격 근무가 확산하자, 저렴하고 쾌적한 미국 내 다른 지역이나 휴양지로 탈출을 감행하는 기술 기업 직원들이 늘어난 것이다. 인구 유출이 늘면서 이 지역의 월세가 20여년 만에 10% 이상 떨어졌을 정도다.


크로아티아와 에스토니아, 조지아 등 국가들은 이들을 유치하기 위해 지난해 디지털 노마드 전용 비자까지 신설했다. 여권과 함께 원격 근무를 통한 꾸준한 수입을 증명하면 최대 1년간 장기 체류할 수 있게 해준다. 디지털 노마드를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신(新)관광 수요이자, 인재 유입의 방법으로 보고 적극 활용하는 것이다. 이훈 한양대 국제관광대학원 원장은 “디지털 노마드는 코로나 종식 이후에도 폭발하는 해외여행 수요와 맞물려 크게 늘 것”이라고 전망했다.


[안상현 기자]

2021.02.08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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