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재네 농구 드라마, 작가는 이 여자

'농구 영부인' 이미수씨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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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재의 아내, 허웅과 허훈의 엄마, 이미수./김지호 기자

여배우 글렌 클로즈가 72세 나이로 골든글로브 영화부문 여우주연상을 타고 울먹이며 말했던 수상 소감을 잊지 못한다. 그는 영화 <더 와이프>에서 ‘아내’ 역을 연기했다.


“이 인물을 연기한 건 제게 개인적인 의미가 있는데, 저희 엄마가 생각나거든요. 엄마는 자신의 평생을 아빠를 위해 쏟아부으셨는데 엄마가 80대가 되고 제게 말씀하셨어요. '얘야, 난 아무것도 이뤄낸게 없는 것 같아….' 이런 경험들로부터 제가 배운건, 여성들은 아이나 남편을 돌봐주는 양육자 역할을 당연히 해야한다고 요구받는데 그건 옳지 않다는 겁니다. 우리도 자신만의 성취를 찾고 꿈을 쫓아야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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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에서 '아내'역을 연기한 글렌 클로즈./골든글로브

2019~2020시즌 한국프로농구(KBL)는 ‘농구 대통령’ 허재(55)의 아들들이 휩쓸었다. 장남 허웅(27·DB)이 인기상, 차남 허훈(25·KT)이 4관왕(국내선수 MVP, 베스트5, 시즌 최고플레이, KBL TV 대상)에 등극했다. 특히 허훈은 프로 데뷔 3년만에 아버지도 못 받았던 정규리그 MVP 트로피를 거머쥐는 영광을 누렸다. 많은 언론들이 부자(父子)를 인터뷰하며 “아버지의 농구 DNA가 아들도 훌륭한 농구 선수로 키웠다”는 식으로 전했다. 그러나 내겐 허씨(許氏) 집안 안방마님의 정체가 궁금했다. “어떻게 키웠길래 두 아들이 이토록 잘 컸을까. 얼마나 기쁠까. 헛헛한 마음은 없을까. 자식이나 남편이나 결국 내가 아닌 남인데.”


그래서 만났다. ‘농구 영부인’ 이미수(54)씨를.


축하드립니다. 두 아들이 큰 상을 다 받았어요.

정말 감사한 일이죠. 거실 TV 밑에 트로피 다섯개를 쫙 세워놨는데 애들 아빠가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수시로 가서 들여다보고 셀카 찍고 그래요. 그런데 은근히 형제간 긴장이 있어요. 웅이는 인기상만 받고 나머지 상은 훈이건데 둘째가 형에게 왠지 미안한지 집에선 기쁜 내색을 잘 안해요. 웅이가 시즌 막판에 발목을 다쳐서 수술하고 깁스하고 있거든요. 동생의 트로피를 보며 웅이도 부쩍 자극받은 눈치예요.


운동선수 아내와 엄마 역할은 정말 쉽지 않아보입니다.

1992년 11월 웅이 아빠와 결혼한 뒤 내리 28년을 허씨 남자들을 위해 다 바쳤어요. 내 인생은 없었어요. 웅이가 허니문 베이비였고, 훈이가 두 살 터울로 바로 들어서서 신혼 어쩌고 할 틈도 없었네요. 결혼 전엔 주방 근처도 안 가보고 공주로 살았는데, 결혼하고선 무수리의 삶을 살아요(웃음). 운동선수 엄마는 장거리 운전 달인이 돼야 해요. 남편 때부터 익숙한 원주 경기장은 눈 감고도 가죠. 제 최고 기록은 낮에 작은 아들 경기, 오후에 큰 아들 경기, 저녁에 남편 경기 지켜보고 집에 밤 11시인가 귀가한 것. 운전을 하도 오래 많이해서 허리가 약간 굽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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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이와 훈이가 어릴적 한 컷. 최고의 농구 선수였던 아빠가 늘 바빴던 까닭에 네 식구가 다같이 찍은 사진은 많이 없다고 했다./이미수씨 제공

결혼 스토리가 궁금합니다.

제가 고향이 부산이에요. 1992년 7월에 맞선보려고 부산의 어느 호텔 로비에 있었는데 웅이 아빠가 다가와서 자기 삐삐번호를 건네주더라고요. 저는 스포츠를 안봐서 애들 아빠가 그렇게 유명한 농구 선수인 줄 전혀 몰랐어요. 그날 짙은 베이지색 옷에 샌들 차림이었는데, 키도 크고 해서 패션 모델인 줄 알았죠. 그렇게 인연이 시작됐는데, 웅이 아빠가 밀어붙여서 3개월만에 약혼하고 4개월째에 결혼식 올렸다니까요. 우리 형제가 1남4녀인데 다 중매결혼했고 저만 연애결혼했어요. 그랬더니 언니들은 다 잔잔하게 사는데 나만 인생이 농구공으로 쓰는 드라마야. 뭐, 사랑을 선택한 대가죠(웃음). 연애 결혼의 장점이 뭐냐면, 결혼 생활이 힘들어도 부모님이나 남탓을 못하게 돼요. 내가 좋아서 선택한 사람인데 스스로 책임져야지 어쩌겠어.


요리를 정말 잘 하신다고 들었어요.

프랑스 달팽이요리 빼고는 집에서 다 해요. 애들 한창 클땐 매 끼니를 식탁 부러지도록 12첩 반상을 차렸어요. 민어탕과 게찌개, 난자완스 등은 우리집 시그니쳐 메뉴고요. 가끔은 너무 힘들어서 백화점에서 파는 밑반찬을 내놓거나 가정부 부르곤 했는데 그럼 애들이 귀신같이 알아요. “엄마, 이거 아줌마가 한거지. 이건 사온거지?” 어휴. 고기는 하도 먹여서 이제는 고기 색깔만 봐도 저게 신선도가 어떻고 무슨 맛이 날지 저절로 알아요. 애들 중·고등학교 땐 업소용처럼 아주 큰 냉장고를 집에 놓고 온갖 영양을 챙겼죠. 물도 생수 아니고 약초로 달인 물 먹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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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들이 받은 2019~2020 시즌 프로농구 트로피 앞에서 미소짓는 이미수씨./김지호 기자

운동 뒷바라지는 얼마나 힘든지 짐작이 안 됩니다.

아이의 로드 매니저이자 트레이너이자 의사이자 요리사이자 상담사 역할을 부모가 다 해야해요. 아이의 24시간을 부모가 꿰뚫고 있어야하죠. 운동하면 다치는데, 그럴때도 그냥 병원 가는게 아니라 무릎은 여기, 발목은 여기 이런식으로 유명한 곳 찾아다니고요. 피로가 쌓이지 않게 마사지도 수시로 해줘야해요. 집은 무조건 학교 근처로 정하고.


제일 힘든건 운동부 학부모끼리 벌이는 텃세에요. 특히 우리 애들은 허재의 아들들이니 말 다했죠. 한국은 운동부 코치 월급을 학부모가 지원하는 구조라 병폐도 많고요. 그래서 애들 아빠는 모교인 용산중·고에 아예 발걸음 안했고, 대신 제가 나섰어요. 학교 어머니회장하면서 애들 먹이는 급식 메뉴도 일일이 살피고, 운동부 숙소 컨테이너가 개미나오고 곱등이 있길래 그런 것도 항의해서 고쳐나가고. 저더러 치맛바람 센 극성 엄마라 비난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애들을 지키려면 악역을 감수해야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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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그래요. 우리 집은 아빠만 두 사람이 있다고. '집 밖의 아빠'랑 '집 안의 아빠'. 농구로 바빴던 남편 몫까지 맡아 아들 둘 키우느라 저도 거의 남자가 됐어요."/이미수씨 제공

아들들이 농구를 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공부를 아주 잘했다던데.

우리 오빠와 언니네 애들이 법조계와 의료계 쪽으로 진출했어요. 사촌 형제들이 다 공부를 잘해서 우리 애들도 질 수 없다는 분위기같은게 있었죠. 한국의 학교 체육은 애들을 ‘운동 바보’로 만드는 경향이 있는데, 저는 애들을 그렇게 만들고 싶지 않아서 부단히 애를 썼어요. 틈나는대로 미술관과 클래식 공연장을 데리고 다니고, 취미도 다양하게 접하도록 하고요. 애들이 농구 밖 세상도 잘 아니까 스트레스 관리도 비교적 잘하는 것 같아요.


내 자식 자랑이지만 웅이와 훈이는 공부는 물론 성격도 좋아서 학교 임원을 매년 도맡아가며 했어요. 특히 웅이는 공부를 정말 잘해서 한 학기에 상을 9개씩 받아왔어요. 영어, 미술, 웅변 등등. 그런데 웅이 초등학교 5학년 때 남편이 은퇴하고 미국 연수를 가게 된거에요. 미국에선 LA 부촌 베버리힐즈에 살았는데 애들이 선행학습을 2년치를 더 해놨어서 거기가서도 아주 잘했어요. 특히 웅이는 그 학교에서 제일 잘한다는 유태인 아이들보다도 성적이 좋아서 수학 천재 소리 들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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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화가 수북한 현관에서 포즈를 취한 어린 마이클(허웅)과 제임스(허훈)./이미수씨 제공

미국에서 무슨 일이 있었길래 농구 선수가 되겠다고 한건가요.

농구로 인종차별을 극복한거에요. 농구의 힘이자 매력을 애들이 알아버린거죠. 우린 베버리힐즈 초입에 사는 동양인이고, 나머지 애들은 그야말로 언덕 위 성 같은 대저택에 사는데 처음엔 무시 많이 당했죠. 애들 영어 이름을 웅이는 마이클(조던), 훈이는 제임스(르브론)로 했는데 그야말로 농구로 동네를 휩쓸었어요. 애들끼리 “너 나랑 한번 붙자”식으로 했는데 전교생을 얘네 둘이 다 이겼으니까. ‘한국의 마이클 조던 아들’이란걸 증명한거지.


주말엔 UCLA 대학 농구팀 코치까지 와서 지켜보는 농구 게임이 있는데 여기서도 발군이었어요. 특히 훈이 하는걸 보고선 그 코치가 “오른쪽 드리블은 굉장히 잘하니까 왼쪽 드리블도 가르쳐라”고 진지하게 조언해주더라고요. 아무튼 농구로 친구들을 쉽게 사귀게 되면서 세계적인 부잣집에도 주말마다 초대받아 실컷 놀다오고하면서 농구에 푹 빠졌어요. 그러고선 정말 선수가 되겠다길래, 웅이 중학교 입학 앞두고 한국으로 왔죠. 애들 아빠 모교인 용산중·고를 가려고.


위계질서 강한 한국 문화에 다시 적응하기 어려웠을 텐데요.

미국에서 우리가 살던 동네가 워낙 좋았어요. 공립이었는데도 스위치 하나 누르면 수영장이 농구장으로 변하는 체육관이 있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런데 한국오니 숙소는 지저분하고, 지도 방식은 막무가내이고, 폭력도 있고하니까 처음엔 웅이가 농구 못하겠다고 했어요. 그래도 다시 적응해서 잘 해왔지만.


웅이는 또래보다 농구를 늦게 시작한 편이라 따라잡으려고 무지하게 애를 많이 썼어요. 새벽에 일어나 남산 뛰고, 체육관 가서 혼자 슛 연습 몇천개씩 하고나서 학교 훈련을 시작했으니까요. 혼자 새벽 훈련하면 물에 빠진 사람처럼 옷이 땀으로 젖는데 그걸 옆에서 보고있자면 “내가 왜 애한테 이런걸 시키고 있나” 괴롭더라고요. 웅이는 성격이 섬세하고 진중한데 그 덕분에 슛을 정확하게 쏴요. 훈이도 늘 싱글싱글 웃지만 남몰래 노력을 독하게 정말 많이하는 아이예요. 그런 기질은 아빠닮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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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씨 집안 남자 셋이 농구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때 엄마는 항상 뒤에 있었다./오종찬 기자

지금까지 직접 본 농구가 몇 경기 될까요.

짐작도 안되네요. 프로농구만 1년 정규리그 54경기인데, 그걸 우리집 아들 셋(허웅·허훈과 남편 허재)이 다 하는걸 28년을 보면서 살았으니까 이게 다 얼마야. 결혼할 땐 농구를 전혀 몰랐는데 지금은 저도 농구 눈이 트였어요. 그냥 보면 알아. 여기선 슛 쏴야하고 여기선 저렇게 패스해야한다는 걸.


이제는 둥지가 비었는데 허전할 것 같아요.

아직도 기억나요. 둘째까지 연세대 입학시키고 혼자 침대에 누웠는데 마음이 텅 비어버린 느낌. 애들은 대학교 농구부 합숙, 남편은 당시 KCC 감독이라 집에 없었는데 이제 이렇게 혼자 계속 지내야한다는 현실이 무섭게 확 다가왔달까요. 병원 검진받아보니 혈압도 높고 신경성 위장병이 있대요. 매일 새벽 5시반에 일어나 식사 준비하고, 두 아이에 애들 아빠 경기 성적까지 노심초사하며 살다보니 살이 찔수가 없었던거죠. 처녀 때 몸무게가 46㎏였는데, 지금은 52㎏ 정도. 종교가 불교라 절에 다니면서 마음을 많이 다스리게 됐어요. 조계사를 열심히 다니고 있고, 기회닿는대로 지방의 고찰도 찾아가보고요. 최근엔 구례 화엄사를 다녀왔는데 심신 치유가 많이 됐어요.


딸이 있었다면 좋았겠어요.

딸 생각나죠. 둘째 훈이가 그나마 딸 같은 아들인데, 그래도 아들은 아들이예요. 남편이 미국에서 딸 낳자고 했는데, 제가 사주에 아들만 여섯이래요. 지금 있는 셋도 벅찬데 어떻게 아들을 또 키워(웃음). 아니구나, 아들이 넷이네. 집에 다섯살짜리 말티즈 강아지가 있는데 걔도 수컷이에요. 이름은 ‘코코’. 원래 코커(‘허씨 남자들은 코가 커’라는 뜻이라고 한다)였는데 발음하기 어려워서 코코가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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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어버이날이 되면 아이들이 저한테만 선물을 줘요. '엄마가 진짜 고생했다'는 뜻이라나. 남편도 '하루 세번 절해도 모자라다'고 고마워해요."/이미수씨 제공

허씨 남자들 뒷바라지한 만큼 본인의 인생을 위해 투자했다면 어땠을까하는 아쉬움은 없나요.

인생에 공짜가 어딨어요. ‘노 페인 노 게인(No pain, no gain)’ 이지. 제가 몸 바쳐 정성을 쏟았으니까 우리 아들들이 죽순이 대나무되듯 쭉쭉 잘 자라준거죠. 오히려 부모가 헌신해도 애들이 잘 못 따라주는 안타까운 경우가 많은데, 우리 애들한텐 그저 고마워요. 한 가지 바람은 좋은 아내를 얻었으면 하는 것. 나처럼 헌신할 아내는 이제 아마 없을테고(웃음), 똑똑하고 현명한 아내 만나서 앞으로의 긴 인생을 풍요롭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네요.


남편이 요즘 대중들에게서 많은 사랑을 받는 것도 정말 감사해요. 친구들 남편들은 이제 명예퇴직하고 설 자리 없어 고민인데, 웅이 아빠는 농구 감독조차 그만뒀는데도 오라하는 곳이 많으니까요. 애들 아빠가 예능 프로그램하면서 시야도 더 넓어지고 삶이 풍성해진 것 같아요. 농구는 100점 만점에 120점을 했지만 나머지는 꽝인게 많은 사람이었는데, 많이 달라졌어요(웃음).


농구선수 허재가 100점이라면, 허웅과 허훈은 몇 점일까요?

후하게 쳐서 80점? 농구는 아빠가 정말 최고였고, 아들들은 아직 노력해야할게 많죠. 키도 둘 다 아빠보다 작고. 그래도 농구는 신장이 아니라 심장으로 하는거예요. 훈이가 형보다 키가 5㎝가량 작은데, 지난 여름 독하게 몸 관리 하더니 이번 시즌 아주 잘했잖아요. 웅이도 요새 ‘끓는 뚝배기’에요. 동생의 선전에 자극받고 있으니 재활 잘하고 기량을 펼쳐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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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수씨가 땀으로 빚은 살아있는 작품으로 여기는 세 아들./신현종 기자

앞으로의 꿈이 있다면.

제가 미대 조소과를 나왔어요. 전공을 살려 애들과 남편을 모델로 작품 한 번 만들어보고 싶었는데 지금까지 살림하느라 겨를이 전혀 없었네요. 아이들 어릴 때 작품용 스케치 사진은 다 찍어놨는데. 그래도 남편이랑 아이들이 잘 살고 있는 것, 그게 내 살아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내 눈물과 땀으로 정성껏 빚은 작품들. 아이들 태어났을 때부터 입은 옷과 일기장, 상장과 남편의 숱한 트로피 등도 모아놨는데, 언젠가 ‘허씨 박물관’을 만들어 팬들에게 보여드리고 싶어요.


[양지혜 기자]

2022.09.22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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