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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이프 ]

10원 동전이 300만원? 마법 같은 수익률에 미국 아재도 뛰어든다

by조선일보

[아무튼,주말]

비트코인 부럽지 않다… 희귀 동전 파는 ‘코인 테크’

조선일보

유튜버 ‘미국아재’ 마이클 패레스씨가 동전 1500개 속에서 1998년 발행된 100원 동전을 발견한 모습. 발행량이 적은 특정 연도 동전은 온라인에서 고가에 판매된다./유튜브

“오늘 다이아몬드 나왔습니다!”


금속탐지기를 들고 한국 산천을 다니며 희귀 동전을 찾는 영상으로 50만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버 ‘미국아재’ 마이클 패레스(35)씨. 동전 더미 속에서 새까만 때가 묻은 100원 주화를 발견하더니 감격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 동전에 입맞춤을 한다. 은행에서 5만원 지폐 3장을 내고 바꾼 100원 동전 1500개를 하나씩 확인한 끝에 1998년 발행 주화 1개를 찾았다.


“현재 시장에서 이거 하나에 1만5000원에 팔리고 있거든요. 4년 전엔 5000원이었는데 세 배 오른 거예요.” 하루 만에 1만5000% 가까운 수익률을 올린 셈. 그는 유창한 한국말로 이렇게 덧붙인다. “여러분, 투자로 볼 수 있는 희귀 동전을 찾고 싶다면 추천합니다. 저금통에서 꼭 찾으세요!”


시중에서 구하기 힘든 희귀 동전을 구해 비싼 값에 되파는 이른바 ‘코인(coin) 테크’가 새로운 투자 수단으로 각광받고 있다. 특정 해에 만들어진 주화가 최근 화폐 수집가들 사이에 고가에 거래되면서 희귀 동전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크게 늘고 있는 것. 희귀 동전이라고 해서 조선시대 상평통보나 오래된 외국 화폐를 말하는 게 아니다. 10원부터 500원까지 일상에서 흔히 쓰는 주화를 거래하는데 발행 연도에 따라 동전 액면가의 수십~수만 배 가격에 팔린다. 수익률만 보면 한때 코인 투자 광풍을 이끌었던 가상화폐 못지않다.

◇1만 배 비싸게 판다

지난 14일 국내외 화폐·주화를 거래하는 사이트 수집뱅크코리아에선 올해 발행된 미사용 1원 동전을 1만원에 구입한다는 게시물이 올라왔다. 온라인 중고 카페에도 희귀 동전을 매매하는 글이 하루에 10~20개씩 올라온다. ‘2018년 50주 관봉 구합니다’라는 식. 2018년 발행된 50원 미사용 주화 50개 세트를 구한다는 뜻이다. 이 게시자는 170만원을 제시했다. 한국조폐공사가 처음 제작한 1966년 10원 주화의 호가는 개당 300만원에 이른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유통되는 동전에 웃돈을 얹어 사고파는 건 사적인 거래 행위에 해당하기 때문에 불법은 아니다”라고 했다.


평범한 동전이 재테크 수단으로 각광받으면서 전문적으로 모으는 수집상들도 늘고 있다. 온라인 카페 ‘화폐수집1090′에는 4만이 넘는 회원이 활동 중. 같은 연도에 발행된 동전이라도 미사용 동전이 4~5배 이상 돈을 더 받을 수 있다. 온라인에선 한국은행이 새 동전을 언제 일반에 지급하는지에 대한 정보를 공유한다. 투자 열기가 높아지면서 위법 행위도 벌어지고 있다. 지난해 한국은행 한 직원이 화폐 수집상으로부터 4000여만원의 뇌물을 받고 2018~19년에 생산된 100원 동전 24만개를 몰래 빼돌리다 걸렸다. 2018년 100원 주화는 물품 거래 사이트에서 최고 196배, 2019년 주화는 64배 가격에 거래된다. 이 직원은 최근 징역형을 받았다.


오래됐다고 무조건 ‘몸값’이 비싼 건 아니다. 발행 연도보다 발행량이 더 중요하기 때문. 적게 만들어져야 희소가치가 올라가 높은 가격이 매겨진다. 1998년 발행된 500원 동전의 거래가는 250만원으로, 1987년 500원(50만원)의 5배다. 1998년에는 외환 위기로 예년의 절반도 안 되는 8000개만 생산됐다. 같은 연도라도 보관 상태에 따라 금액은 천차만별. 제조 과정에서 잘못 만들어져 학의 다리가 없는 500원, 한국은행 글자가 잘못 찍힌 100원 동전 등 ‘에러 동전’도 희소성 때문에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을 받는다.

◇현금 없는 사회, 치솟는 동전 몸값

‘현금 없는 사회’의 가속화도 동전 몸값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동전 발행액은 258억9800만원으로 전년 대비 11.5% 줄었다. 사람들이 동전을 잘 안 쓰다 보니 은행에 동전이 쌓이면서 한은의 동전 발행량도 크게 줄어든 것.


새 동전 유통이 줄어들자 수집가들 사이에선 숨어 있는 동전을 찾는 ‘뒤집기’가 유행하고 있다. 편의점, 은행에서 최대한 동전 물량을 확보해 하나씩 뒤집어 연도를 확인하는 행위를 말한다. 판매 가치가 낮은 건 다시 은행에 가서 지폐나 다른 동전으로 교환하는 ‘방생’을 한다. 최근 100원 동전에 새겨진 충무공 이순신의 도안이 곧 바뀔 것으로 소문이 퍼지면서 100원 주화 거래 가격이 뛰기도 했다. 한 동전 수집가는 “한국은행이 리디노메이션(화폐 단위 변경)을 단행할 거라는 루머가 돌 때마다 구(舊) 도안 동전을 확보하려는 수요가 치솟는다”고 했다.

◇10대들의 코인 투자

높은 수익률을 자랑하지만 희귀 동전 수집으로 대박을 기대하긴 어렵다. 희귀 동전 발행량이 적어서 팔 수 있는 동전 수량도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대부분 주식, 부동산 투자에 실패한 중장년들이 그나마 안정적인 동전 투자로 조금이나마 손실을 메우기 위한 ‘패자들의 부활전’ 성격으로 뛰어들고 있다 . 여기에 올 들어 투자에 관심이 많은 10대 청소년들까지 가세하며 수집 붐이 일고 있는 것.


서울 회현 지하상가에서 희귀 동전 거래소를 운영하는 김모씨는 “늦은 오후가 되면 교복 입은 학생들이 꽉 찬 저금통을 들고 무리 지어 온다”며 “동전을 팔아 3만~4만원 손에 쥐고는 ‘나도 김남국처럼 코인 부자’라고 한 학생들 때문에 쓴웃음이 났다”고 말했다. 한 희귀 동전 거래소 주인은 “요즘 10대 청소년들이 인적이 드문 지방 무인 빨래방을 돌며 동전교환기에서 동전을 수백개씩 교환하는 바람에 동전이 동난다고 하더라”고 했다.


[최인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