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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슈 ]

규칙 어기면 스스로 벌칙 이행… “정직, 성실, 배려가 세일링 정신”

by조선일보

[아무튼, 주말]

꿈의 대회에 처음 초청된

‘팀 레이디스’ 여성 요트팀

조선일보

국내 최초로 미국 ‘레이디 리버티 레가타’에 초청된 여성 요트팀 ‘팀 레이디스’를 김포 아라마리나에서 만났다. 왼쪽부터 옥주현·김은진·이지연·조윤서씨. 이들은 주말마다 훈련하며 국내 해양 스포츠의 수준을 끌어올리고 있다. /임화승 영상미디어 기자

지난달 10일 미국 뉴욕 자유의여신상 앞. 미국·캐나다 국기를 단 요트 옆으로 태극기를 단 요트가 물살을 가르며 나아갔다. 세계 여성 세일러들에게 꿈의 대회로 불리는 ‘레이디 리버티 레가타’에 한국 최초로 참가한 ‘팀 레이디스’였다.


팀 레이디스는 현재 11명이 활동하는 여성 아마추어 요트 팀. 2015년 창단 첫해부터 새만금컵 국제요트대회에서 우승하는 등 높은 성적을 거뒀다. 크루즈 요트 대회는 남자부, 여자부 구분이 없다. 팀 레이디스는 2018년 전일본요트대회, 2019년 중국 상하이 세계여자매치레이스 등 세계 대회에도 출전했다. 국내 최초·최다 입상 기록을 보유한 여성 세일링 팀이다. 미국 대회를 마치고 돌아온 김은진(46)·이지연(41)·옥주현(50)·조윤서(26)씨를 최근 김포 아라마리나에서 만났다.

◇정직과 약자 배려가 최우선

-‘레이디 리버티 레가타’ 출전도 한국 팀 최초의 기록입니다.


김은진(김): “뉴욕 항만에서 펼쳐지는 대회로 여성 세일러들의 꿈이에요. 출전권을 땄을 때 정말 기뻤어요. 9국 11팀과 세일링을 할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이거든요.”


-출전권은 어떻게 받나요.


김: “신청하면 주최 측이 경력과 평판을 심사한 후 이 팀과 경기할 수 있는지 여부를 판단합니다. 그 기준은 ‘정직함’이에요. 요트 대회에는 심판이 있더라도 넓은 강 혹은 바다에 떠 있는 모든 것을 다 볼 수는 없어요. 따라서 각 배가 스스로 규칙을 지켜야 합니다. 요트 선수들은 자신이 규칙을 어겼다고 생각하면 스스로 페널티 턴을 해요. 사실 한 바퀴라도 도는 순간 지는 거예요. 누가 계속 감시하지도 않는데 벌칙을 이행한다는 건 팀 전체가 정직해야 가능합니다. 그것이 세일링 정신이고, 스포츠맨십이고, 진정한 매너죠.”


조윤선(조): “약자도 배려할 수 있어야 해요. 룰에 ‘약자 우선 권한’이 있거든요. 두 요트가 만났는데 러더(핸들)를 잡은 사람이 한 배는 오른손잡이고 다른 배는 왼손잡이라고 칩시다. 그 상황에서 왼손잡이 배가 움직이기 더 어렵다고 판단되면, 오른손잡이 배가 비켜줘요. 그런 규칙을 지킬 수 있는 팀이라야 초청받을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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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0일 미국 뉴욕 허드슨강에서 태극기를 달고 미국·호주·일본 팀과 함께 세일링 중인 ‘팀 레이디스’. /팀 레이디스

-뉴욕 대회에 출전해 본 감회라면.


이지연(이): “허드슨강의 조류가 한강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 세더라고요. 뒤로 가는 에스컬레이터를 탄 느낌이었어요.”


-인상적인 팀이 있었나요.


김: “미국 팀요. 소셜미디어로 알게 돼 응원하던 팀인데 실제로 만난 거예요. 저희가 미국은 처음이라 세일링 환경도, 배 세팅도 어색해하니 적극적으로 알려줘 큰 도움이 됐어요.”


옥주현(옥): “1등을 한 프랑스 팀과 꼴찌 모나코 팀이 인상적이었어요. 프랑스 팀은 올림픽도 나갔던 선수들이고, 체격도 우락부락해요. 모나코 팀은 그런 느낌은 아닌데 뭐 하나만 성공해도 매우 기뻐하는 거예요. 세일 하나만 올려도 박수를 치면서 ‘우리가 해냈다’고 즐거워하고(웃음).”


-한국 팀을 만난 그들 반응은?


이 : “신기해했어요. ‘한국에도 요트 팀이, 여자들로만 이뤄진 팀이 있구나’ 하는 표정. 그리고 물어봐요. ‘한국의 세일링 환경은 어때?’라고. 그러면 저희는 한강의 아름다움에 대해, 해운대에서 세일링을 할 때의 짜릿함에 대해 들려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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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세일러들에게 꿈의 대회로 불리는 ‘레이디 리버티 레가타’

◇물 위를 나는 기분

-어떻게 요트를 시작했나요?


이: “부산 휴가에서 ‘요트 체험 프로그램’에 참가했는데, 물 위를 나는 느낌이 신기했어요.”


김: “저는 동아대 요트부에서 시작했어요. 학교 운동장에 배가 세워져 있는데 요트부 선배가 ‘한번 타보라’고 권해서. 그때 수영만은 허허벌판 같을 때인데, 우리는 항상 해변에서 바다를 보잖아요? 그런데 요트를 타면 바다에서 해변을 보게 돼요. 다른 시야를 갖게 된 그때 그 장면이 기억에 남을 만큼 멋졌어요.”


옥: “2020년 지인이 여의도에서 마리나 사업을 한다고 해서 ‘매출이나 좀 올려주자’며 갔어요. 그해에 코로나가 유행했잖아요. ‘어디 가지 마라, 누구 만나지 마라’ 해서 답답하던 차에 요트를 알게 된 거죠. 혼자 마스크 벗고 한강에서 요트를 타는데, 여의도 쪽 한강에서 보면 북한산과 관악산에 둘러싸인 느낌이거든요? ‘한강이 이렇게 아름답구나’를 그때 느꼈어요. 물멍, 바람멍도 즐길 수 있고. 배가 지나갈 때 뒤에서 나는 물소리도 듣기 좋고요.”


조: “아버지가 경희대 요트부 출신이라 어릴 때부터 많이 접했어요. 저도 경희대에 진학하자마자 요트부에 들어갔죠.”


-요트를 경험하면서 삶이 어떻게 바뀌었나요?


옥: “제가 올해 50세예요. ‘중년 여성’이 이렇게 도전할 수 있다는 것, 새로운 세상과 재미를 알고, 새로운 나를 만들어 갈 수 있다는 게 너무 좋아요. 나이라는 편견에 갇혀 망설이지 말고, 하고 싶은 게 있다면 도전하세요.”


조: “덤으로 국내를 돌아다니며 다양한 지역의 아름다움을 만나게 됐어요. 여수 바다가 얼마나 파랗고 예쁜지 요트를 타면서 처음 느꼈어요.”


이: “지구의 70%가 바다잖아요. 요트를 타면 육상과는 다른 넓은 세계가 열리는 거예요.”


김: “저는 대학 때 열심히 타고, 부산시 대표로도 나가다가, 졸업·취직·결혼·출산을 하면서 10년 동안 전혀 못 탔거든요. 아이가 셋이라 그리울 새도 없었어요. 그런데 13년 전 갑자기 지인이 ‘대회 좀 출전해 달라’고 하는 거예요. 선수층이 너무 얇아 인원이 모자랐거든요. 처음엔 ‘절대 못 타겠다’ 싶었는데, 다시 타는 순간 이른바 세일링 세포가 되살아난 느낌이었어요. ‘몸이 전부 기억하고 있구나!’ 그리고 엄마로서의 삶에서 나의 삶으로 돌아온 셈이에요. 그걸 느끼고는 다시 주말마다 애들 데리고 나가 요트를 탔죠. 그리고 8년 전 경기 요트 학교로 오면서 ‘여성 요트 팀을 만들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았어요. 무조건 ‘예스!’를 외쳤지요. 새로운 기회니까.”

“요트를 탄다고 하면 주변에서 ‘오~’라는 탄성부터 나옵니다. 아직도 ‘요트=럭셔리’로 인식하는 거예요. 선주가 아니어도 요트를 탈 방법은 많아요. 크루들은 배 없이도 요트를 즐겨요. 회비를 내 운영하기도 합니다. 네댓 명이 배를 공유하기도 하고요. 요트는 그렇게 비싼 취미는 아닙니다.” /임화승 영상미디어 기자

◇바다 위의 체스

-팀원 선정할 때 기준이 있나요.


김: “열정을 봐요. 잘하고 못하고는 중요하지 않아요. 그리고 인턴 과정 6개월 동안 성실한지 봅니다. 80% 이상 출석해야 하고, 기존 팀원들이 만장일치로 찬성해야 뽑혀요.”


이: “저는 30대 후반에 요트를 시작해 팀에 누가 되지 않으려고 무던히 애를 썼어요. ‘나는 나이가 많아서 힘이 없어’ ‘내 나이에는 반응 속도가 느려’ 같은 핑계를 대지 않으려고 평일에 부지런히 체력을 단련했습니다. 주말에는 정기 훈련에 빠짐없이 참여했죠. 처음엔 힘쓰는 법을 몰라 손바닥에 굳은살이 박이고 살갗이 터지고 손가락 마디마디가 퉁퉁 부었어요. 훈련이 끝나면 손가락, 등, 목 등에 파스를 붙일 정도로 근육통을 달고 살았죠.”


-위기가 닥치면 어떻게 대응하나요?


조: “침착해야 해요. 집중하면서 시시각각 판단을 합니다. 포항에서 혼자 요트를 타다 물에 빠진 적이 있어요. 배가 뒤집히면서, 그 안에 갇혔어요. 산소도 부족하고 ‘이제 죽겠구나’ 했는데 코치님이 와서 구해주셨지요. 침착하게 물속으로 더 깊게 수영하면 나올 수 있었는데 패닉에 빠져 아무 생각도 못 한 거예요.”


김: “팀 요트는 서로 간의 소통도 중요해요. 요트를 타는 동안은 한시도 가만히 있을 수 없어요. 바람이 저쪽으로 부는 것 같다고 하면 바꾸고, 장애물이 있는 것 같다고 하면 또 바꾸고. 그래서 요트 경기를 ‘바다 위의 체스’라고 해요. 전략을 짜고, 상황에 따라 전술도 바꿔야 하거든요.”


-팀원이 2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한데.


김: “요트를 탈 때 나이는 중요하지 않아요. 저희는 배 위에서 급할 땐 20대가 50대에게 반말도 하고, 소리도 질러요(웃음). 급박하게 돌아가니 생략할 건 생략하고 효율적으로 진행하지요.”


옥: “직장 생활과 닮았어요. 다양한 팀원이 같은 하나의 목표를 향해 가잖아요.”


이: “요트는 방향 하나도 혼자 힘으로는 바꿀 수 없어요. 속도를 내는 것도 마찬가지고요.”


-팀워크를 해치는 팀원이 있으면 어떻게 하나요?


김: “누군가를 어떻게 하겠다는 생각보다, 제가 무엇을 해야 될까를 더 생각해요. 누군가를 바꾼다는 건 쉽지 않잖아요.”


옥: “팀장이 항상 솔선수범해요. 행동으로 보여주니까, 다른 사람이 사고를 칠 수가 없어요.”


이: “저희 팀장은 되게 열려 있어요. 배에서는 선장이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게 룰인데, 모두의 의견을 경청하고 반영하려 애씁니다.”


조: “그래서 세대 차이를 느낀 적이 없어요. 누군가를 ‘꼰대’라고 느끼는 건 ‘내가 나이가 많은데 네가 왜 안 해?’ 이럴 때잖아요.”


-대회 참가하면서 힘든 적은 없나요.


김: “비용이 문제죠. 저희가 좋아서 자비로 하고 있지만, 팀복을 맞추려고 해도 돈이 드니깐. 간혹 ‘여자 선수들이 거친 바다 위에서 포기하지 않는 모습이 정말 멋있다’며 후원금을 보내주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팀 레이디스’는 오는 11월 경남 통영 한산 해역에서 열리는 제17회 이순신장군배 국제요트대회에 출전해 메달에 도전한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대회로 일본 팀들과 러시아 팀들도 참가한다. 팀 레이디스가 다시 세일링 훈련에 돌입하며 외쳤다. “순수한 열정! 끊임없는 도전!”

팀 레이디스 /임화승 영상미디어 기자

[이혜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