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만원짜리 표가 650만원에?… 국감 도마에 오른 ‘암표 전쟁’

K팝 콘서트부터 가을야구까지, 티켓값이 수십 배로 뛰는 암표 전쟁. 11만 원짜리 표가 650만 원에 팔린 현실, 국감까지 번진 논란의 중심을 짚어본다.

K팝부터 가을야구까지

암표가 판치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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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NCT 드림 콘서트 현장. 3회 공연 티켓이 전석 매진됐다. 당시 티켓베이와 중고나라 등에서는 암표가 수십만~수백만원대에 거래됐다. NCT의 다른 유닛그룹인 NCT 위시의 이달 말~다음 달 초 콘서트도 암표 거래가 극성이다. 현재 티켓베이에는 정가 15만4000원·19만8000원짜리 티켓이 34만5000~900만원에 올라와 있다. / SM엔터테인먼트

“아이돌 그룹 NCT 위시의 (콘서트) VIP 티켓이 19만8000원이었는데, 무려 40배, 800만원에 팔렸어요. 암표가.”(더불어민주당 양문석 의원)


“야구 전쟁이 티켓 전쟁이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일부 암표상은 한화 경기에서만 1500만원(을 벌었고), 한 달 수익이 2800만원이라 했습니다. 암표상이 버젓이 활개 칠 수밖에 없는 토양이에요.”(국민의힘 정연욱 의원)


여야 의원들이 이례적으로 한목소리를 냈다. 암표에 관해서다. 연말이 다가오면서 K팝 대형 콘서트가 줄줄이 열리고, 가을 야구 열기까지 겹치면서 암표 판매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콘서트, 스포츠 경기, 뮤지컬, 팬미팅 등 티켓이 있는 행사라면 장르를 가리지 않고 웃돈 거래가 횡행하자 국감장까지 들끓은 것. 


문화체육관광위원회는 물론, 기획재정위원회와 행정안전위원회에서도 암표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기재위는 국내 최대 티켓 재판매 플랫폼인 티켓베이 운영사 대표를 증인으로 불렀지만, 그는 국감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일각에선 “암표는 일부 팬덤의 문제가 아니라 민생 문제”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정상적으론 표를 구할 수가 없다”

24일 기준 티켓베이에 올라온 가수 임영웅의 콘서트 티켓값은 23만4000~150만원에 형성돼 있다. 정가는 좌석에 따라 15만4000원, 17만6000원이다. BTS 진의 콘서트 역시 비슷한 상황. 정가는 15만4000원, 19만8000원인데, 티켓베이 호가는 21만~245만원에 달한다. 


야구 티켓도 별반 다르지 않다. 앞서 한화 이글스와 삼성 라이온즈의 플레이오프 경기도 한 경기당 1000장 이상의 티켓 매물이 등록됐다. 정가 7만5000원짜리 표가 80만원까지 뛰었다. 22일 열린 LG 트윈스의 청백전 경기는 무료(예매 수수료 1000원)인데도 티켓베이에서는 8만원에 판다는 사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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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송윤혜

중고나라·당근마켓 등 중고 거래 플랫폼과 네이버 카페 등 인터넷 커뮤니티, X(트위터)·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에서도 이러한 암표 거래가 활발히 진행된다. 중고나라에는 하루 400여 건의 티켓 판매 글이 올라오는데, 상당수가 ‘거래 내역 많음’ ‘물량 다수 보유’ 등을 내세워 사실상 전문 판매자임을 암시하고 있다. 


실제 경찰은 2023년부터 올해 7월까지 프로야구 티켓 1만881장을 암표로 판 혐의로 40대 남성을 검거했는데, 이 남성은 중고 거래 플랫폼을 통해 티켓 약 5억7000만원어치를 팔아 순이익만 3억1200만원을 챙겼다. 4만원짜리 표를 40만원에 파는 등 많게는 정가의 15배에 달하는 가격으로 판매한 것으로 조사됐다.


청주에 사는 한화 팬 이모(44)씨는 18일 대전에서 열린 플레이오프 1차전을 보기 위해 티켓값만 35만원을 썼다. “공식 사이트에서 예매가 시작되자마자 클릭했는데, 대기 순번이 9만번째였다”는 이씨는 “정상적인 방식으로는 도저히 표를 구할 수가 없어 어쩔 수 없이 암표를 샀다”고 했다.


직장인 신모(34)씨는 부모님을 위해 임영웅 콘서트 ‘피케팅(피가 튈 정도로 치열한 티케팅)’에 나섰지만 실패했다. 신씨는 “작년에 중고나라에서 암표를 사려다가 사기를 당해 돈만 날렸다”면서 “온라인에서 암표 판다는 게시물이 보이는 족족 신고하고 있다”고 했다.


문체부에 따르면, 야구·축구 등 프로스포츠 온라인 암표 의심 사례 건수는 2021년 1만8422건에서 올해 1~8월 25만9334건으로 급증했다. 실제 암표 신고 건수로 보면 지난해 9월부터 올해 8월까지 1년간 4만건의 신고가 접수됐는데, 단속 건수는 단 4건에 불과했다고 국민의힘 진종오 의원은 전했다. 


공연 암표 신고 건수도 2020년 359건에서 지난해 2224건으로 대폭 늘었다. 티켓베이의 지난해 거래 건수는 29만8253건, 연간 거래 규모는 1000억원 이상으로 추산된다. 지난 3월 가수 지드래곤 콘서트 티켓은 티켓베이에서 680만원(정가 22만원)에, 같은 달 열린 가수 세븐틴 콘서트 티켓은 650만원(정가 11만원)에 거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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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송윤혜

스포츠와 공연에만 암표가 있는 것은 아니다. 예능 프로그램 ‘흑백요리사’에 출연한 권성준·윤남노 셰프는 자신들의 레스토랑 예약권이 암표로 거래되고 있다며 불쾌감을 드러낸 바 있다. 지난달 27일 열린 여의도 세계불꽃축제 때 불꽃이 잘 보이는 ‘명당’ 입장권은 무료임에도 암표 시장에서 30만원에 팔렸다. KTX 등 열차 승차권 암표 의심 사례도 최근 5년간 꾸준히 늘고 있다.

◇50년 만에 온라인 암표 규제법 생겼지만…

우리나라에서 암표를 규제하는 가장 오래된 법은 1973년 제정된 경범죄처벌법이다. 경기장·나루터 등에서 입장권을 웃돈 받고 팔면 2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는 내용인데, 오프라인 거래만 해당하기에 오늘날 온라인 기반 암표 거래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공연법과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으로 지난해부터 온라인 암표 거래도 일정 부분 법 테두리 안으로 들어왔다.


다만 매크로(반복 작업을 자동으로 수행하는 프로그램)를 이용해 정가보다 비싸게 파는 경우만 처벌이 가능한데, 매크로를 잡아내기가 쉽지 않아 법이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KTX 등 열차 승차권의 경우 2011년 개정된 철도사업법에 암표 판매 처벌 규정이 있지만, 지난 추석 연휴에도 중고 거래 플랫폼과 오픈 채팅방 등을 통해 암표 거래가 여전히 성행했다. 


암표상들은 매크로뿐 아니라 ‘댈티(대리 티케팅)’ ‘아옮(아이디 옮기기)’ 등 각종 편법으로 법망을 피하고 있다. 댈티는 업자가 의뢰인의 아이디로 대신 예매하는 것, 아옮은 업자가 미리 잡은 표를 취소하자마자 의뢰인의 계정으로 재예매하는 방식이다. 


X에서 활동하는 한 댈티 전문 판매자는 “예매 난도에 따라 성공 보수가 다른데, 보통 10만~30만원 선에서 받는다”며 “의뢰인이 원하는 좌석을 최대한 맞춰 잡아드린다”고 했다. 매크로 등 각종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이 판매자는 ‘불법인 것을 아느냐’는 질문에 “안타깝게 표를 못 구하는 분들을 위해 하는 일”이라고 했다.


왜 이렇게 암표가 성행할까. 전문가들은 폭발적인 인기 콘텐츠 수요와 제한된 공급, 그리고 허술한 제도가 맞물린 결과라고 분석한다. 


한국벤처학회는 지난달 발표한 보고서에서 “무형성·동시성·소멸성을 특성으로 하는 공연 예술·스포츠 산업 서비스재의 경우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는 현상이 빈번하다”면서 “공연장·경기장은 물리적으로 좌석 수가 한정돼 있고, 주최 측이 이미지 관리나 매진 연출 등을 위해 티켓값을 의도적으로 시장균형보다 낮은 가격으로 책정하며, 스폰서나 팬클럽에 티켓의 상당 물량을 선배정하는 관행 등 1차 시장의 구조적 한계로 인해 정가로 티켓을 구하기 어려운 구조가 고착됐다”고 했다.


이은희 인하대 교수(소비자학)는 “우리 사회의 강한 경쟁심과 희소성에 대한 욕구, 집단적 인기 행사 쏠림 현상이 암표 시장을 키우고 있다”며 “암표 구매는 얼핏 개인의 만족을 위한 소비처럼 보일 수 있지만, 결국 시장 질서를 왜곡하는 비합리적 소비 행태”라고 말했다.

◇한국에도 ‘스위프트법’ 필요할까

암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많은 K팝 엔터테인먼트는 몇 해 전부터 콘서트 예매자와 입장자가 동일인임을 입증하는 ‘본인 확인’ 절차를 강화했다. 아이유·성시경 등 일부 가수는 불법 거래를 적발해 해당 티켓을 취소했고, 가수 장범준은 공연 이틀 전에 “암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며 예매분 전체를 취소하기도 했다. 하지만 본인 확인 절차는 과도한 개인 정보 요구로 논란이 끊이지 않고, 가수 측의 불법 티켓 예매 취소 역시 무고한 팬이 피해를 본 사례가 잇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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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켓 재판매 플랫폼 ‘티켓베이’에 등록된 NCT 위시의 콘서트 가격. /인터넷 캡처

아예 2차 거래를 원천 차단하자는 의견도 적지 않다. 공식 예매 사이트에서만 티켓을 판매할 수 있게 하자는 주장이 일부 아이돌 팬덤에서 나온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작년 9월 매크로 이용 여부와 관계없이, 공연·스포츠 표를 정가보다 비싸게 되팔면 처벌하자는 권고안을 냈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한정판 굿즈 등은 ‘리셀 문화’로 용인되는데, 티켓만 유독 불법으로 취급하는 게 형평에 맞느냐는 지적이 나온다. 또 강한 규제가 거래를 소셜미디어 등 비공식 채널로 밀어내 오히려 사기 피해를 키운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미국·캐나다 등 많은 나라에서는 티켓 재판매를 허용하되, 제도권 안에서 통제하려는 흐름을 보인다. 티켓 브로커 면허 제도를 둬 등록된 사업자만 합법적으로 티켓을 재판매할 수 있도록 규정하거나, 재판매 가격에 일정한 상한선을 두는 식이다.


미 미네소타주는 올해부터 일명 ‘스위프트법’을 시행해 재판매자가 붙이는 수수료를 사전에 공개하고 동일 공연 티켓은 1장만 판매할 수 있게 했다. 이 법은 2022년 암표상 난립으로 가수 테일러 스위프트의 공연표가 3만5000달러(약 5000만원)까지 치솟은 사태를 계기로 발의됐다.


국내에서도 근본적인 암표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한국스포츠엔터테인먼트법학회는 올해 초 ‘티켓 재판매 특별법’을 제정할 것을 제언했다. 합법적 재판매를 인정하되, 강력한 불법 취득 및 판매 행위 규제를 병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은희 교수는 “상습 암표상을 추적할 수 있는 상시 단속 체계를 구축하고, 법을 개정해 처벌 수위를 높일 필요가 있다”며 “티켓 재판매를 제도권으로 끌어들이는 방안도 검토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이옥진 기자

2025.10.29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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