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 가기

[ 컬처 ]

뉴욕 빌딩숲에 가려진
군계일학같은 '달팽이 건물'

by조선일보

초고층 빌딩숲 뉴욕 한복판의 ‘달팽이 건물’

뉴욕 빌딩숲에 가려진 군계일학같은 '

미국 뉴욕 고층 빌딩숲 한복판에 있는 달팽이 모양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telegraph.co.uk

박스형 빌딩이 가득한 미국 뉴욕 한복판에 달팽이집처럼 돌돌 말린 건물이 있다. 바로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초고층 빌딩 숲에 파묻힌 낮은 건축물이지만 독특한 외관 탓에 지나가는 이들의 눈길을 끈다.

뉴욕 빌딩숲에 가려진 군계일학같은 '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을 만든 솔로몬 구겐하임. /구겐하임 미술관 홈페이지

이 미술관의 원래 이름은 ‘비구상회화 미술관(Museum of Non Objective Painting)’. 근대 미술 작품 수집이 취미인 미국의 광산·철강업계 재벌이자 자선사업가 솔로몬 구겐하임(Solomon R. Guggenheim)이 지었다. 집에 현대 미술품 몇 가지를 전시하는데서 시작한 취미가 여러 도시에 소규모 임대 전시를 제공할 정도로 커졌기 때문이다. 구겐하임은 소장품 보관을 위해 1937년 솔로몬 R. 구겐하임 재단을 세운 후 뉴욕 시의회와 협의해 미술관을 설립하기로 했다.

뉴욕 빌딩숲에 가려진 군계일학같은 '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모형을 보고 있는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www.nytimes.com

당시 현대 건축의 거장이라고 불리던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가 미술관 설계를 맡았다. 그는 1943~1945년 3년에 걸쳐 나선형 외관을 고안했다. 독특한 외형이 탄생한 배경에는 ‘살아있는 유기체로서의 빌딩(building as a living organism)’을 강조하는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건축 철학이 깔려 있다. 미술관을 통해 자연과 인공, 사람이 하나되기를 원했던 그의 바람이 430m의 나선형 벽이 돌돌 말려있는 형태의 설계안을 만든 것이다.


하지만 1990년대 초반부터 뉴욕을 지배했던 ‘마천루 빌딩 트렌드’를 역행하는 디자인은 조롱거리가 됐다. 더군다나 1949년 라이트의 설계를 지지하던 구겐하임이 사망하자 급진적인 외관에 대한 재단 후원자들의 반발은 더욱 거세졌다.

뉴욕 빌딩숲에 가려진 군계일학같은 '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설계를 맡은 후 16년 만에 개관한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codylee.co

하지만 ‘미술관을 꼭 완공하라’는 구겐하임의 유언에 따라 미술관은 1957년 착공해 1959년 10월 21일 문을 열었다. 설계부터 개관까지 무려 16년이 걸린 것이다. 지상 6층, 연면적 7664㎡ (약 2318평) 규모의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을 짓는 데 들어간 건축 비용은 300만달러(약 33억원). 결국 건축가는 완공을 보지 못하고 개관 6개월 전 사망했지만 건물은 전 세계인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뉴욕 빌딩숲에 가려진 군계일학같은 '

고층부로 올라갈수록 지름이 넓은 원형 형태를 띠는 미술관. /TripSavvy

뉴욕 빌딩숲에 가려진 군계일학같은 '

유리로 덮인 건물 중정 천장. /newyork.co.kr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은 철골 구조에 콘크리트와 유리를 덧씌우는 방식으로 건축됐다. 고층으로 올라갈수록 각 층에 해당되는 원형의 지름이 넓어지는 형태여서 팽이처럼 보이기도 한다. 건물 중정( 中庭) 천장은 유리로 덮여있다. 이 유리창을 통해 로비 바닥까지 햇빛이 내려와 건물 내부가 은은하게 빛난다.

뉴욕 빌딩숲에 가려진 군계일학같은 '

나선형 구조로 설계해 건물 어디에서나 미술 작품이 보인다. /Artsy

건물 내부를 보면 경사로와 연결된 벽면이 작품을 떠받치는 이젤처럼 사용되고 있다. 미술 작품들이 나선형 벽을 따라 줄줄이 전시되기 때문에 건물 어디에서나 미술품을 볼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관람객들은 건물 복도를 따라 걸으며 전시물을 감상하게 된다. 건물에는 계단이 없어 엘리베이터를 타고 꼭대기층인 6층으로 올라간 후 걸어서 내려와야 한다.

뉴욕 빌딩숲에 가려진 군계일학같은 '

미술관 방문객이 많아지자 1992년 구겐하임 재단은 격자 무늬 외관을 가진 10층 빌딩을 증축했다. /www.boomsbeat.com

구겐하임 재단은1992년 미술관 바로 옆에 지상 10층짜리 새 건물을 세웠다. 미술관 방문객이 많아지자 추가 전시 공간과 입장료 수익을 관리하는 사무실이 필요했던 것. 새 건물은 기존 미술관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평범한 박스형으로 지었다. 대신 외관에 격자무늬 패턴을 넣어 주변 건물과 차별화했다. 이 증축으로 재단은 전시 공간 4738㎡(약 1433평)와 오피스·레스토랑·창고 용도 공간 139㎡(약 42평)을 확보했다.

뉴욕 빌딩숲에 가려진 군계일학같은 '

외관 유지 보수 공사 중인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구겐하임 미술관 홈페이지

이어 미술관은 2005~2008년 유지 보수 기간을 거쳤다. 6층 길이의 곡선 벽면을 한 면처럼 보이게끔 마감한 구조여서 외벽 콘크리트에 금이 갔고, 철골이 일부 부식됐다. 미술관 측은 외관 보수 비용이 2900만달러(약 325억원)로 최초 건축비보다 비쌌다고 밝혔다.

뉴욕 빌딩숲에 가려진 군계일학같은 '

독특한 미술관 내부 구조로 인해 전시회를 여는 예술가들은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구겐하임 미술관 홈페이지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전시회를 여는 예술가들은 “사람들이 지나치게 독특한 건물 내부를 둘러보느라 작품에 덜 집중한다”며 건물 구조에 불만을 갖기도 한다. 경사진 회랑(回廊)이 감상자들의 균형감을 잃게 하고, 작품과 관람객 사이에 ‘적정 거리’가 보장되지 않아 제대로 된 감상이 어렵다는 이유도 있다. 층고가 낮아 큰 캔버스는 애초에 걸 수도 없다.

뉴욕 빌딩숲에 가려진 군계일학같은 '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의 독특한 외관은 한 시계 디자인의 모티프가 되기도 했다. /MIDO

하지만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이 창의적 랜드마크라는 사실에 반기를 드는 이는 없다. 독특한 외관은 후대에 다양한 영감을 주기도 했다. 스위스의 한 시계 브랜드는 2017년 ‘건축물에서 영감을 받다(Be Inspired By Architecture)’라는 프로젝트로 미술관 외형을 딴 시계를 출시하기도 했다.


이지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