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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이프 ]

밥퍼 관두고 방황할 때, 한 할아버지가 밥 주며 "청량리 최목사에게 가!"

by조선일보

'밥퍼 30년' 최일도 목사

밥퍼 관두고 방황할 때, 한 할아버지

최일도 목사가 서울 청량리 밥퍼나눔운동본부에서 큰 밥솥들 틈에 서 있다. 밥솥 하나가 50인분이다. 이날은 687명이 백미 밥과 호박 두부 된장국, 안심 장조림, 콩나물 무침, 김치와 귤을 먹었다. /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밥퍼'를 시작한 지 30년이 넘었다.


최일도(62) 목사가 펴낸 책 '밥짓는 시인 퍼주는 사랑'은 120만부가 팔린 밀리언셀러다. 지난달 28일 오전 서울 청량리역 근처 이른바 쌍굴다리를 지날 때 '밥퍼'라는 이정표가 보였다. 이날도 밥퍼나눔운동본부는 무의탁 노인과 노숙인으로 북적였다. 요즘도 매일 500~1000명이 여기서 무료로 밥을 먹는다. 1층 입구에 '이 땅에 밥 굶는 이 없을 때까지'라고 적혀 있었다.


최 목사를 오늘로 이끈 사람은 두 할아버지였다. 서로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다. 1988년 11월 청량리역 광장에서 만난 함경도 할아버지, 그리고 밥퍼에 환멸을 느낀 1993년에 경기도 양평에서 마주친 용문산 할아버지다. 함경도 할아버지는 베스트셀러에 등장하지만 용문산 할아버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철근도 안 들어간 가건물 2층에 마주앉으니 기차가 지날 때마다 쿨렁쿨렁 땅이 흔들렸다. 덜덜덜 몸이 떨렸다.

함경도 할아버지가 터닝 포인트

목사님은 의심이나 불안 한 점 없이 확신으로 걸어온 것 아닌지요.


"그럴 리가 있겠어요?"


30년 전에 청량리역에서 사흘간 굶어 쓰러져 있는 무의탁 노인을 본 게 시작입니다만.


"함경도 할아버지였어요. 아침에 모른 척하고 춘천에 갔다가 저녁에 돌아왔는데 여전히 그 자리에 계신 겁니다. 독일 유학을 준비하던 시절이에요. 설렁탕을 사드리고 다음 날 가보니 다른 할아버지 여섯 분이 보였어요."


그러고 나서 매표소 앞에 퍼질러 앉아 라면 배식을 시작했는데.


"며칠 지나 형사들이 왔어요. 올림픽도 치른 나라인데 북한에 알려지면 '남조선은 아직도 거지 ××들이 저런다'며 이적행위이니 치우라는 거예요. 청량리 야채 시장으로 밀려났다가 비가 오는 바람에 쌍굴다리 밑으로 옮겼습니다."


당시 노숙인 중에 철학과를 중퇴한 알코올중독자가 끼어 있었다면서요?


"네. 그가 물었지요. 과연 삶이란 무엇이냐? 옆에 있던 할아버지가 '너는 왜 먹고도 묻냐. 삶은 라면이잖아!' 했어요. 집에 돌아왔는데 그 말이 귀에 쟁쟁거렸습니다. 아, 내가 신학교에서 배운 건 말짱 도루묵이구나."


어떤 결심을 하셨나요.


"집 앞에 굶주린 노숙인이 떨고 있다면 당장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는 게 사랑이지요. 외국 가서 신학 배워 떠드는 게 종교인가? 그렇게 자문하며 다짐했어요. 입으로는 말하지 않겠다. 오로지 삶으로 생활로 살아가는 방법밖에 없다."

탈옥수 신창원

최일도 목사는 자신을 '죄인의 친구'라고 했다. 여기서 신창원(52) 이야기가 나왔다. 지난 20년 동안 편지를 주고받았다고 했다. 신창원은 쇠창살을 끊고 나온 탈옥수, 도망자로 유명하다. 2년 반에 걸쳐 4만여㎞를 도피하는 동안 경찰서 높은 분들의 목이 날아갔다. 1999년에 다시 붙잡혔다.


신창원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전주교도소에서 광주교도소로 갔어요."


편지로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요.


"창원이 요즘 꿈이 캄보디아에 가서 목수로 사는 겁니다."


왜요?


"캄보디아에서 심장병으로 죽어가는 빈민촌 소년이 있었는데, 창원이가 저희 다일공동체 회보를 읽었나 봐요. 수술비(3000만원)에 보태라며 영치금을 보내왔어요. 데려와 수술을 했고 그 아이는 '생명의 은인'이라며 창원이를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그렇게 국경을 뛰어넘은 아버지와 아들이 혹시 만났나요?


"제가 특별면회를 요청해 감옥에서 어렵게 만났어요. 4년쯤 됐네요. 창원이가 그날 참 많이 울었어요. 아이 소원은 아버지가 석방되면 캄보디아로 모셔가는 거예요."


신창원은 죗값을 다 치렀다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죄인의 친구입니다. 경찰을 농락한 괘씸죄로 무기징역을 받았을 뿐이지요."


다일천사병원은 노숙자들이 죽기 전에 무료로 진료받는 곳인데.


"가족도 사회도 다 버린 사람들입니다. 죽으러 왔다가 살아나는 사람도 더러 있어요. 오직 사랑 때문입니다. 남은 생을 남 탓과 원망으로 살지 말라고 해요. 극소수지만 사는 의미를 찾아요. 감사하니 행복한 거지, 행복해서 감사한 게 아녜요."


다일공동체 자원봉사자는 30년간 50만명에 이른다. 라면으로 시작해 밥으로 바뀐 무료 배식은 2017년 1000만 그릇을 돌파했다. 찌그러지고 땜질한 라면 냄비가 보였다. 그는 "이게 내 초심"이라며 "냄비를 보면서 교만해지지 말아야지 다짐하곤 한다"고 말했다. '다일'이라는 공동체 이름에는 '다시 한 번 일어서게 하는 곳'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밥퍼 관두고 방황할 때, 한 할아버지

최 목사(왼쪽)가 1990년 배식용 수레를 밀고 가는 모습. / 다일공동체

정신적 지주는 용문산 할아버지

최 목사도 한때 방황했다. 1993년의 일이다. 선배 목사의 도움으로 예배당을 열었는데 아수라장이 됐다. 똥 싸고 누운 사람, 음식 토하는 사람, 소주병 깨고 싸우는 사람, 패싸움…. 그도 한계에 부딪혔다. 청량리경찰서 형사에게 뒷수습을 부탁하고 외쳤다. "청춘 다 바쳤는데 난 이제 안 합니다! 청량리 쪽으로는 오줌도 안 눌 거예요."


그 형사가 뭐라고 하던가요.


"밭을 보고 씨를 뿌려야지. 거기는 씨 뿌릴 데가 아니야."


격려를 받았군요.


"무작정 뛰어 경춘선을 탔어요. 춘천 가서 머리 좀 식히려고요. 그런데 잘못 타 태백 가는 열차였어요. 또 수중에 돈 한 푼이 없는 겁니다. 검표원에게 쫓겨나 양평 용문역에 내렸지요."


그래서요?


"용문 계곡을 터벅터벅 걸었어요. 사람들이 비난하는 것 같아 얼굴을 못 들겠더라고요. 사흘째 아침에 밥 냄새가 납니다. 굶으면 그렇게 개코가 돼요. 가보니 할아버지가 텐트를 치고 아침밥을 짓고 있다가 '너 도둑놈이지?' 해요. 마음을 들킨 것 같아 돌아서는데 할아버지가 불렀어요."


뭐라 했습니까.


"내가 인심이 야박한 놈은 아닌데 세상에 공짜는 없다. 너 이 밥 먹고 당장 청량리로 가라."


청량리요?


"거기 가면 최일도라는 목사가 밥을 줄 거다. 인생 새로 시작해라! 소름이 돋고 눈물이 펑펑 쏟아졌어요."


믿기 어렵네요. 굶주려 정신착란에 빠지거나 꿈을 꾼 것 아닌가요.


"전혀요. 그 용문산 할아버지를 찾으러 몇 번 더 갔는데 못 만났습니다. 세상을 변화시키기보다 나부터 달라져야 한다는, 통렬한 사건이었어요."


며칠 만에 청량리로 돌아갔겠군요.


"역광장에 무의탁 노인들과 노숙인들이 모여 있다가 저를 보더니 일제히 소리쳤어요. '너 때문에 사흘 굶었다! 너 도망갔다는 소문 들리더라!' 그날 처절하게 울었어요."


그가 수녀와 결혼한 이야기도 책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집에서 별명은 '대책 없음'이었다. 최 목사는 "인간적으로 대책을 세우고 계산을 하고 그랬다면 기성 교회와 똑같아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책이 없기는 이 나이 먹어도 마찬가지"라며 그가 덧붙였다. "내 대책 없음이 하나님 대책이니까."


요즘은 밥퍼나눔운동본부 건물을 재건축해 고독사 예방센터를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그는 "이젠 배고파 죽는 게 아니라 외로워 죽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밥퍼 30년에 가장 고마운 사람은 경제적으로 무능한 가장을 견딘 아내라고 했다. 바가지를 긁었다면 인간 최일도도 별수 없었다는 얘기다.


박돈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