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바바 "새우 껍질 대신 까줄 직원 모집합니다"

[비즈]by 조선일보

[중국, 게으름뱅이 경제 뜬다]

까기 귀찮아 안 먹는 손님 잡으려 150개 매장 참을성 많은 직원 모집

4시간 2만~3만원… 회사원 몰려

'껍질만 발라내고 먹지는 않을 수 있나요? 바오샤스(剝蝦師·새우 껍질 발라내는 사람)를 찾습니다.'

중국에서 신(新)유통 신선매장으로 인기가 높은 '허마셴성(盒馬鮮生)'이 최근 흥미로운 직원 모집 공고를 냈다. 베이징·상하이·창사·우한 지역 매장에서 일할 바오샤스, 즉 '새우 껍질 발라내는 사람'을 찾는다는 내용이었다. 자격 요건은 간단했다. 10초에 한 마리, 30분 안에 최소 1.5㎏의 샤오룽샤(小龍蝦·민물새우) 껍질을 발라낼 수 있으면 된다. 또 하나 필요한 건 껍질을 발라낸 샤오룽샤를 입으로 가져가고 싶은 유혹을 참아내는 능력. 일당은 하루 4시간 기준 150~200위안(2만5800~3만4400원). 주말을 껴서 한 달 일할 경우 중국의 웬만한 월급쟁이 봉급인 1만 위안 수준까지 벌 수 있다.


중국 해산물 식당에선 손님들이 비닐장갑 낀 손으로 시뻘건 마라(麻辣) 소스로 양념 된 새우를 열심히 까먹는 풍경을 볼 수 있다. 그게 샤오룽샤다. 크기가 작아 양껏 먹으려면 껍질이 수북이 쌓일 때까지 까야 한다. 그게 귀찮아 '차라리 안 먹고 만다'는 란런(懶人·게으름뱅이) 손님도 적잖다. 일부 식당이 그런 손님을 위해 껍질 발라내는 서비스를 제공해왔지만, 알리바바가 운영하는 허마셴성이 아예 전국적으로 바오샤스 모집 공고를 낸 것이다. 중국 매체들은 "란런경제(懶人經濟·게으름뱅이 경제)가 바오샤스라는 신흥 직업을 창출했다"고 전했다.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업체 알리바바가 운영하는 신선 매장 '허마셴성'이 샤오룽샤(小龍蝦·민물새우) 껍질을 대신 발라내는 직원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냈다. 일일이 새우 껍질을 까야 하는 수고를 덜어주는 식으로 란런(게으름뱅이) 손님 맞춤형 전략을 편 것이다. /블룸버그

중국에서 게으름뱅이의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신산업, 란런경제가 뜨고 있다. 진짜 게으름뱅이가 아니라, 갈수록 속도가 빨라지는 사회 환경 속에서 루틴한 일상생활에 드는 시간과 품을 최소화하려는 소비자들을 뜻한다. 게으름뱅이 경제의 핵심은 시간을 사는 것, 즉 시간 절약이다. 일과 학업, 휴식과 여가를 위한 시간을 남기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지갑을 여는 란런 소비자가 늘어나면서 바오샤스와 같은 시간 절약형 서비스 직종이 새로 생기고 란런들을 위한 신유통 매장과 앱 서비스가 인기를 끌고 있다.

란런 소비자의 성지, 허마셴성

조선일보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업체 알리바바가 운영하는 허마셴성은 란런 소비자를 겨냥한 혁신적 서비스로 최근 중국 유통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온라인·오프라인을 결합한 신개념 신선마트인 허마셴성 매장의 최대 특징은 반경 5㎞ 내 소비자는 단 한 건의 물건이라도 30분 내 배달하는 시스템이다.

 

허마셴성 매장은 물류센터가 합쳐진 구조다. 매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게 고객들 머리 위로 돌아가는 컨베이어 벨트다. 허마셴성 앱으로 물건을 주문한 고객을 대신해 직원들이 쇼핑한 물건들을 담은 작은 바구니들을 배송센터로 보내는 것이다. 오토바이를 탄 전속 배달원들이 총알같이 움직인다.


허마셴성 매장은 주방도 대신한다. 꽃게, 바닷가재, 맛조개, 굴, 전복, 광어, 우럭 등 중국과 해외에서 갓 들여온 신선한 해산물을 구입한 뒤 매장에서 바로 조리해 먹을 수 있다. 요리사들이 배치된 조리센터에서 고객들이 직접 선택한 조리법으로 실비만 받고 요리를 해준다. 해산물 요리가 먹고 싶지만 식당에선 너무 비싸고, 집에서 해 먹자니 귀찮은 란런들에게 폭발적 인기다. 조리한 해산물 요리는 배달도 된다. 허마셴성의 원칙은 그날 팔지 못한 해산물은 무조건 당일 폐기한다는 것. 하지만 폐기할 일이 없다. 식사시간 란런들로 북적거리는 해산물 코너는 초저녁이 되면 예외 없이 품절되기 때문이다. 란런 소비자들의 열성적인 지지 덕분에 허마셴성은 전국 대도시의 핵심 상권에 매장 150개를 내며 급속히 세를 불리고 있다.

란런경제가 낳은 신흥 직업들

바오샤스는 대개 외식 손님들이 몰리는 토·일요일만 일한다. 한 달 근무일이 8일 안팎으로 짧다. 하지만 손에 쥐는 월급은 주 5일 내내 일하는 웬만한 월급쟁이 못잖다. 중국에선 법정 휴일의 시간당 임금이 평일의 3배에 이르기 때문이다. 8일만 일해도 24일을 내내 일하는 만큼의 벌이를 얻을 수 있는 셈이다. 이 때문에 허마셴성의 모집 공고에 학비를 벌려는 대학생들뿐만 아니라, 투잡 넥타이족(회사원)들도 몰려들었다고 한다.


란런경제가 탄생시킨 또 다른 신흥 직업은 류거우스(遛狗師·애완견 산책시켜주는 사람)다. 미국·유럽 등 서구 선진국에선 이미 보편화한 직업이지만, 란런경제 바람을 타고 드디어 중국에도 등장한 것이다. 개를 데리고 산책할 시간이 없는 고객들을 대신해 개 산책을 시켜주고 시간당 80~100위안(1만3800~1만7200원)의 쏠쏠한 시급을 받는다. 수입이 가장 큰 란런경제 신흥 직업은 옷장 정리사다. 옷장을 미처 정리할 여유가 없는 고객들을 위해 옷장 정리부터 옷장 개조까지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옷장 1m당 600위안(10만3200원)을 받을 수 있는데, 대개 중국 일반 가정의 옷장이 2m 안팎이어서 옷장 하나를 정리하면 1000위안(17만2000원)이 훌쩍 넘는 보수를 받는다.

란런들의 지갑을 터는 O2O 앱들

란런 소비자들은 O2O(온·오프라인 결합) 서비스의 주력 소비층이다. 이들은 출퇴근 시간에 길거리에서 언제 올지 모를 택시를 기다리지 않는다. 그보다 비싼 돈을 내는 대신 중국판 우버인 디디다처(滴滴打車)로 미리 차를 불러놓고 출퇴근 준비가 끝나면 대기 중인 승용차를 타러 간다. 식당 앞에서 줄 서는 대신 메이퇀(美團) 등 음식 배달 앱으로 원하는 시각에 음식을 시켜 먹는다. 즉석 훠궈 등 간편식, 로봇 청소기와 양말 세탁기 등 시간 절약형 가전은 란런족 가정의 필수품이다.


배달 앱, 차량 호출 앱들은 1분1초를 다투는 란런 고객들을 위한 부가 서비스도 제공한다. 메이퇀 등에선 채 1위안(172원)이 안 되는 보험료를 추가로 내면, 예정된 배달 시각에서 5분을 넘기면 배달료를 돌려주고, 15분이 지나면 결제액의 30% 선, 25분이 지나면 50%를 돌려주는 등의 '정시보험(準時保)' 서비스를 누릴 수 있다. 배달료를 지키려는 배달원들은 목숨을 걸고 달려온다. 디디다처는 경매 방식의 요금호가제가 있다. 차를 잡기 어려운 출퇴근 시간이나, 심야에 평소의 정가에 비해 가격을 더 불러서 차를 바로바로 잡을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다.


란런경제의 또 다른 인기 앱은 오디오북 서비스다. 3억4000만명이 다운로드받은 중국 1위의 오디오북 앱 서비스는 이름부터가 란런팅수(懶人聽書·게으름뱅이 책 듣기)다. 오디오북 시장은 매년 30~40%씩 초고속 성장 중이다. 알리바바의 온라인 쇼핑몰 타오바오에 따르면, 2018년 타오바오에서 팔린 란런 상품은 전년보다 무려 70%가 늘어난 160억위안(2조7500억원) 규모였다. 란런경제가 기회 요소만 있는 건 아니다. 서비스 제공 과정에서 개인 정보 유출, 방문 서비스의 안전성, 서비스 전문성 부족의 문제들이 언제든 시장을 뒤흔들 위험이 있다.


베이징=이길성 특파원

2019.05.16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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