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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이프 ] 아무튼, 주말

기생충엔 없었다…
반지하의 역습

by조선일보

빈부격차 상징인가, 역발상 기회인가

조선일보

서울 망원동 다가구주택 반지하에 있는 여행용품 매장 ‘포레스트 9’. 배태환 대표가 발판을 밟고 올라서서 창문 틀에 기댔다. 환기 때문에 단 폴딩 창(접어서 활짝 열 수 있는 창) 안으로 샹들리에가 보인다. 지나가는 이들에게 흥미로운 풍경을 선사하려고 단 조명이다. 작은 사진은 개조하기 전 건물 외관. 평범한 반지하 풍경이다. /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포레스트 9

“택배 왔어요!” 지난 18일 서울 망원동 한 양옥집 반지하에 있는 ‘포레스트 9’. 도로에서 택배 기사가 허리 숙여 이 여행용품 편집숍의 열린 창문 틈으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보름 뒤 매장 오픈을 앞두고 분주한 배태환(34) 대표가 위로 손을 뻗어 택배 물건을 건네받았다.


배 대표에게 반지하는 꿈을 키워준 구름판이다. 당초 온라인 판매 제품 전시용 매장을 열려고 했다가 이 공간을 만나 계획을 바꿨다. "99㎡(30평) 남짓한데 전세보증금이 1억원, 주변 지상층 4분의 1 수준이었어요. 전시용 매장 대신 규모를 키워 편집숍을 하게 됐어요." 예산이 부족해 친구와 둘이 4개월간 뚝딱뚝딱 공간을 꾸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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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기생충’ 속 기택(송강호)네 반지하. 진짜 같지만 세트다. / CJ엔터테인먼트

맞은편 ‘반지하 이웃’은 유명 인테리어 디자이너 조희선(52)씨. 조씨는 지난해 직접 리모델링한 주택 반지하에 세 들어 사무실을 냈다. 원래 사무실 이전 계획은 없었지만 6개월 동안 공사하면서 반지하 매력에 빠졌다. “늘 위에서 아래, 혹은 수평으로 바라보는데 여기선 아래에서 위를 보게 돼요. 색다른 앵글을 고민하는 게 일인 제게 신선한 자극이 돼요.” 반창(半窓)을 뜯어내고 설치한 통유리창 밖으로 행인의 다리, 자동차 바퀴가 보였다. 지하 세상에서 잠망경으로 빼꼼 지상을 내다보는 기분이 들었다.


영화 ‘기생충’의 인기로 반지하가 유례없이 조명받고 있다. 온 사회가 고공의 아파트만 쳐다보는 사이 대척점에 있는 반지하는 그간 관심 밖이었다. 여전히 반지하는 궁색한 삶의 이음동의어지만, 한편에선 시선의 전복(顚覆)이 일어나는 개성 있는 공간으로, 도전의 발판으로 진화 중이다. 반지하의 과거와 현재를 살펴봤다.

반지하는 없다?

지표에 걸쳐진 채 절반은 지하에 뿌리내리고 절반은 지상으로 고개 내밀었다. 반지하는 서울 도심을 파고든 뿌리식물 같은 존재다. 2015년 통계청 인구주택 총조사에 따르면 서울에 있는 지하(반지하 포함) 거주 가구 수는 22만8000여 가구. 서울시내 노후 주택가엔 방범창으로 꽁꽁 싸맨 반지하가 널렸지만 막상 건축법엔 ‘반지하’가 없다. 대신 ‘지하층’ 규정이 있는데, 이 중에서 노출된 지하층을 보통 반지하라 부른다.


지하층 개념은 1962년 건축법을 제정하면서 등장했다. 지상층 면적의 일정량을 지하층으로 설치하도록 의무화하고, 지하층 층고 3분의 1 이상을 지하에 파묻게 했다. 1972년에는 층고 3분의 2 이상으로 기준이 강화됐다. 윤혁경 ANU디자인그룹 도시부문 대표는 “건축법엔 지하층 설치 이유가 명시돼 있지 않지만 방공호 개념으로 등장했다고 보면 된다. 1960~1980년대 건축물 대장을 찾아보면 상당수가 지하층 용도를 ‘대피호’로 기재했다. 1999년 지하층 의무 규정이 없어졌다”고 말했다. 윤 대표는 31년간 서울시 공무원으로 도시 경관 계획을 담당했다. 건축 법률 관련 손꼽히는 전문가다.


1984년엔 단독주택과 다세대주택에 한해 지하층 층고의 2분의 1 이상이 지하에 위치하도록 기준을 완화했다. 방공호로 설치한 지하층을 주거용으로 쓰는 사람이 늘자 조금이나마 빛이 더 들어오게 지상으로 돌출된 부분을 늘린 것이었다. 서울시 공공 건축가 홍성용씨는 “어차피 의무적으로 만들어야 하는 지하층이 집장사 눈에는 ‘돈’으로 보였다. 그러면서 ‘지하 주택’ 개념이 생긴 것”이라고 했다.


1993년 다세대주택을 지어 38년째 살고 있는 서울 망원동 이성대(77)씨는 이때를 선명히 기억했다. “집 지을 때 집장사들이 반지하를 무조건 넣어야 한다고 했어요. 절반을 지하에 파묻어야 했는데 조금이라도 더 올리려고 했지요. 공무원들이 와서 검사할 때만 밖에다 흙을 부어 깊게 보이게 만들었다가 가면 다시 파냈어요. 눈 가리고 아웅이었죠."

반지하 원조는 서울 외곽

반지하는 다세대·다가구주택의 밑둥치다. 이 주거 형태의 등장을 보면 반지하의 역사가 보인다. 1970~1980년대 주택난이 심각했다. 당시 기술력, 경제력 등을 반영해 볼 때 가장 쉽고 빠르게 주택 공급을 할 수 있는 수단이 다세대주택이었다.


윤 대표는 “1970~80년대 주택 공급이 매우 부족했는데 종로, 중구 등 도심은 이미 시가지가 형성돼 있는 상황이라 손댈 수 없었다. 대신 지금의 송파, 강동, 강서, 도봉 등 서울 외곽 변두리의 빈 땅을 택지 개발해서 공급했다. 논밭을 99㎡(30평)~165㎡(50평) 규모 작은 필지로 잘라 공급했다. 여기에 다세대·다가구주택이 대규모 들어섰다”고 했다. 반지하 집이 그만큼 생겼다.


이 붐이 1980년대 말~1990년대 초 종로, 중구, 마포 등 서울 도심으로까지 불었다. 홍성용 건축가는 “한 필지에 6~8가구가 생기는 거니 재산 증식 수단으로 너도나도 단독주택을 허물고 다세대주택을 지었다. 거기다 88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주택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다세대주택을 많이 공급했다. 1990년대 말 아파트가 대량 공급되며 한풀 꺾였다”고 했다. 2010년대 장마철 침수가 잇따르자 서울시에서 주거용 반지하 금지를 추진한 적도 있지만 현재는 각 구청에서 건축 심의로 허용 여부를 판단한다.


“반지하는 돈이다.” 건축가 정이삭 에이코랩 대표는 간명한 명제로 설명했다. “반지하를 넣으면 조금만 내려가도 1층 같은 집이 있고 조금만 올라가도 1층 같은 집이 있다. 1층 같은 집 두 개를 만든다는 경제 논리에 따라 집장사가 만들어낸 독특한 창작물”이라고 했다. 용적률 계산도 숨어 있다. 정 대표는 “다세대주택의 경우 최고 4층, 다가구주택은 3층으로 층수가 제한돼 있는데 반지하는 지상 층수와 용적률에 포함되지 않는다. 건축주 입장에선 그만큼 임대 수익이 생기는 것이다. 용적률 규제를 피해가며 수익을 최대화하는 합법적인 수단으로 거주에 적합한 층수와 바닥 면적을 추가로 채워넣은 것”이라고 했다.

기회의 공간, 도전의 발판

30~40년의 세월이 흘러 반지하는 늙었다. 상업 공간, 사무 공간 등으로 바뀌며 어떤 이에겐 도전과 실험 무대가 된다.


서울 동교동의 주택을 개조한 건물 반지하에 있는 카페 ‘디저브커피’. 이곳 이지웅(36) 대표는 3년 전 퇴사 후 빠듯한 창업 자금에 맞춰 지금의 33㎡(10평) 남짓한 반지하 공간에 둥지를 틀었다. 반지하라 저렴하고 권리금이 없었다. 이 대표는 “예산 맞춰 어쩔 수 없이 선택했는데 결과적으로 기회의 공간이 됐다”고 했다.


낮은 층고, 어두컴컴한 실내 등 반지하의 단점을 개선하기 위해 낸 커다란 통창 덕에 인테리어 명소가 됐다. 네모 프레임을 통해 지면과 같은 눈높이에서 바깥 풍경을 바라볼 수 있다는 점이 손님을 이끌었다. “주말엔 반지하를 흥미로워하는 외국 손님이 절반 가까울 정도”란다. 반지하 매장이 잘돼 1층까지 매장을 넓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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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동교동의 반지하 카페 ‘디저브커피’. 컴컴한 반지하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쓴 커다란 통유리창이 지면과 같은 눈높이로 바깥 풍경을 들여다볼 수 있는 사각 프레임이 됐다. / 장은주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여기에 반지하 화장실이 있었어요. ‘기생충’에서 높이 있는 화장실 변기에 올라가 와이파이를 잡잖아요. 1980년대만 해도 방공호 쓸 창고로 생각해 정화조를 깊게 안 팠거든요. 하수가 정화조로 흘러가려면 변기가 천장 가까이 있을 수밖에 없었어요. 1980년대 다가구주택을 대변하는 공간이죠."


건축가 이승택(건축사사무소 에스티피엠제이 공동대표)씨가 반지하 사무실 구석 높이 올라온 부분을 보고 설명했다. 그는 2년 전 서울 구의동에 있는 30년 된 다가구주택을 리모델링해 주택 겸 사무실로 쓰고 있다. 과거 주인집이던 1층과 두 세대가 세 들어 있던 반지하 공간을 개조해 사무실로, 세 주던 2층은 집으로 쓴다. ‘구의 살롱’으로 이름 붙인 이 건축물로 지난해 한국건축문화대상 우수상을 탔다.


“육아 문제 등으로 지금은 ‘직주 초근접(직장과 주거가 매우 가까운 형태)’ 방식으로 살아야 할 시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대출 다 받아도 신축하기는 무리가 있어 기존 주택을 리모델링해 주택 겸 사무실로 쓰는 방법을 선택했어요. 고치기 전엔 건물 상황이 너무 안 좋아 꼭 여기에 들어와야 하나 싶더군요(웃음)."


일과 삶의 균형이 중요해지고, 재택을 기반으로 한 소규모 스타트업이 늘어나는 추세를 감안할 때 직주 초근접형 주거는 늘어날 전망이다. 신축할 여력이 없는 이들에겐 구의 살롱 같은 주택 리모델링이 대안이 될 수 있다. 이 대표는 “예산을 타이트하게 하면 신축 비용의 3분의 1 정도로 20~30년 된 주택을 고쳐 쓸 수 있다”고 했다. “반지하에 항온 기능이 있어 의외로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따뜻하다. 반지하의 고질적 문제가 곰팡이인데 요즘은 에어컨이 있고, 지하 벽체를 다 걷어내고 사무실로 쓰니 환기·통풍이 잘돼 곰팡이는 거의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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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이승택씨가 서울 구의동의 다가구주택을 주택 겸 사무실로 리모델링한 ‘구의 살롱’. 직원이 반지하 사무실에서 건축 모형을 들고 올라오고 있다. 사무실 바닥이 창밖으로 보이는 지면보다 낮다.(왼쪽 /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건축가 이승택씨가 리모델링한 '구의 살롱'. 서울 구의동의 다가구주택을 주택 겸 사무실로 바꿨다. 반지하와 1층을 사무실로, 2층을 주거 공간으로 쓴다. '직주 초근접형' 모델이다(오른쪽 / 사진작가 배지훈)

서울 ‘연희동 카페거리’를 만든 재생 건축 전문가 김종석 쿠움파트너스 대표는 “반지하는 내게 축복 같은 존재”라고 했다. 2010년부터 연희동을 시작으로 연남동, 합정동까지 10년간 70여 채 건물을 리모델링했다. 숨어 있던 반지하가 열쇠였다.


“1970년대 지어진 연희동 2층 단독 주택은 차고를 두고 땅을 돋워 도로보다 높은 정원을 만들었어요. 1.5층 같은 1층이 있고, 정원보다 낮은 반지하 공간이 있었죠. 창고나 보일러실, 기사·식모방으로 쓰던 공간이지요. 리모델링 핵심이 이 반지하 공간을 개방해 활용하는 것이었어요."


닫혔던 공간을 여니 의외의 장점이 보였다. 시선이었다. 반지하는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시선보다 낮은 곳에 있어 행인들이 가게 주인과 시선을 마주치지 않고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부담 없이 거리를 걸으며 가게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는 “습기, 하수구 냄새 등 반지하의 단점에도 공간 활용도나 수익성이 높아 선호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연희동에선 반지하의 가치가 높아지고 임대료도 상승했다”고 했다. 서울 서교동 하늘부동산 김순금 대표도 “연남동, 서교동, 동교동 등 홍대 인근 반지하 매장 임대료는 1층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비싸기도 하다. 내부가 훤히 보이는 경우는 특히 1층보다 비싸다”고 했다.

반지하의 기억을 덧댄 실험

영화 ‘기생충’ 이후 ‘반지하 고해성사’가 줄을 잇는다. 조희선씨도 그렇다. “어렸을 때 아버지 사업이 어려워져 반지하 산 기억이 있어요. 반지하는 망해서 가는 곳, 루저가 사는 곳이란 선입견이 강했어요. 어렸을 땐 망해서 들어왔던 곳이지만 지금은 뜻이 있어서 제 발로 들어온 거예요.” 그는 “인생을 리셋해 새로운 도전을 하는 무대가 반지하”라며 “사무실 자체가 내 스타일을 유니크하게 보여주는 공간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반지하 외부 벽면에 고급 이탈리아 빈티지 타일을 넣고, 콩 자갈로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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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테리어 디자이너 조희선씨의 서울 망원동 반지하 사무실. 지면 위까지만 있던 반창을 걷어내고 통창을 달아 개방감을 줬다. 아래에서 위, 색다른 각도로 행인들의 모습을 올려다 볼 수 있다.(왼쪽) / 유명 인테리어 디자이너 조희선씨의 서울 망원동 반지하 사무실. 리모델링 전 있던 담장(작은 사진)을 허물고 안이 들여다보이는 통유리창을 넣어 시야를 틔웠다. 골목 풍경이 달라졌다.(오른쪽) /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건축가 정이삭 대표가 서울 성산동에 설계한 다중주택 ‘아츠스테이 성산’은 신축 건물인데 사무실 공간으로 반지하를 넣었다. 이미 지어진 반지하를 리모델링하는 경우는 종종 있지만 신축 건물에 일부러 반지하를 넣는 경우는 많지 않다. 정 대표는 “사무실 개업 초반 반지하에 살며 보니 부정적인 공간만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도시 안의 다양한 니즈를 반영해 만들어진 공간이었다. 우울하고 가난한 이미지를 벗은 ‘밝은 분위기 반지하’를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한층의 최대 층고가 4.5m인 마포구 규정을 활용해 절반인 2.25m를 지하로, 나머지 절반 2.25m를 지상으로 뺐다. 마무리 공사 중인 현장에 갔더니 반지하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로 환했다.

도시의 새로운 표정 vs 여전히 삶은 고달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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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삭 건축가가 설계한 다중주택 ‘아츠스테이 성산’의 단면 투시도. 신축 건물인데 사무실용으로 반지하를 넣었다. / 에이코랩

“기생충을 보다가 깜짝 놀랐어요. 고치기 전 우리 건물하고 비슷한 거예요. 여기에 기택(송강호)네 집처럼 지면에 거의 붙어 있는 창이 있었어요. 빗물이 안 들어오게 차양이 달려 있었고요. 서울 시내에 반지하가 많은데 낡았다고 홀대하지 말고 색다른 공간으로 탈바꿈시켰으면 좋겠어요. 도시의 표정을 다양하게 해줄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망원동 골목에서 우연히 마주친 개그맨 박성호씨가 ‘반지하 예찬’을 했다. 그는 조희선씨가 입주한 반지하 사무실의 건물주. 3년 전 반지하가 딸린 지상 2층 양옥 건물을 사서 리모델링했다. 건물을 신축하기보다 정감 있는 동네에서 옛 분위기를 살리고 싶었다. “할머니가 사시던 오래된 건물이었어요. 담이 있었는데 무너뜨리고 시야를 틔우면 오히려 지상과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되겠다 싶었어요. 실제로 해보니 사무 공간으로 쓰기에 충분히 매력적이에요."


상업 공간이나 사무실로는 매력을 품었지만 주거용 반지하는 여전히 선호도가 낮다. 서울 서대문구의 반지하 원룸에 사는 동영상 크리에이터 홍윤정(28)씨는 반지하의 단점을 감추고 조금이라도 더 살고 싶은 집으로 꾸미고 싶어 반지하 인테리어에 빠졌다. 반지하 같지 않은 인테리어로 소셜미디어에서도 알음알음 이름났다. “가끔은 이 집이 제 집인지 벌레네 집인지 모를 정도로 반지하 단점은 100개가 넘어요. 그래도 해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는 말처럼 지금은 어두운 공간에 살지만 언젠가 빛을 볼 기회를 노리는 거죠.” 지하에 뿌리내린 채 지상에서 꽃 피울 날을 열망한다. 미생(未生)의 꿈이 꿈틀대는 곳 역시 반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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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크리에이터 홍윤정(28)씨의 원룸. 반지하지만 셀프 인테리어로 아늑한 공간으로 변신했다./홍윤정

[김미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