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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이프 ]

"암환자들이 붙잡을 지푸라기가 되고 싶다"

by조선일보

암수술 후 암환자 위로하는 김동호 목사

12만명 구독 유튜브 '날기새' 300회 맞아

조선일보

지난해 5월 암수술 후 1개월만에 암환자를 위로하는 유튜브 '날마다 기막힌 새벽'을 시작해 최근 300회를 넘긴 김동호 목사.

김동호(69) 목사는 면티셔츠, 면바지에 운동화 차림으로 나타났다. 그는 “이게 원래 제가 하고 싶었던 모습”이라고 했다. 정장에 넥타이가 일상이던 일선 목회 때보다 그의 표정은 훨씬 편안해 보였다.


그는 40대 동안교회 담임목사 시절에는 청년부흥과 교회개혁운동에 앞장섰고 50대에는 ‘높은뜻숭의교회’를 시작으로 교회 건물을 갖지 않고 교인이 일정 인원을 넘어서면 분립(分立)하는 운동을 벌였으며 60대에는 개신교 NGO운동을 폈다.


그러다 지난해 4월 덜컥 폐암 진단을 받았다. 수술 후 항암치료를 받던 그는 지난해 6월 유튜브 방송 ‘날마다 기막힌 새벽(날기새)’과 오프라인 모임 CMP(Comfort my people·내 백성을 위로하라)를 시작해 암환자들을 위로하고 있다. 매일 새벽 6시, 20분 안팎 분량의 동영상을 올리는 ‘날기새’는 최근 300회를 맞았다. CMP는 코로나 사태 전까지 평균 500~600명이 참석하는 행사를 여섯 차례 가졌다. 암 투병 과정 페이스북 글을 모은 책 ‘패스 오버’(홍성사)도 펴냈다. 책의 부제는 ‘아픈 목사가 아픈 사람들에게’. 목회 일선을 떠나 유튜브, 오프라인 모임, 책을 통해 동병상련의 심정으로 암 환자를 위로하고 돕는 새 사역을 펴고 있는 김 목사를 만났다.

암 진단 후 첫 느낌 “왜 나지?”

-처음 암 진단을 받았을 때 어떤 느낌이었나.

“당황했다. 그러나 무섭지는 않았다. 죽음을 정면으로 대하게 됐다. 목회자로서 수많은 임종과 장례를 치렀지만 죽음과 나 사이엔 거리가 있었다. 남의 일, 객관적으로 보던 죽음이 나의 일, 주관적으로 코 앞에 다가오니 당황스러웠다. ‘왜 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내 ‘너는 왜 안 되는데?’라고 생각을 고쳐 먹었다. 누구나 자기는 뭔가 특별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 또한 똑 같은 사람이다.”


-항암치료 과정이 고통스러웠다고 들었다.

“사실 수술은 힘들지 않았다. 4시간 예정했다가 3시간만에 끝났다. 흉강경으로 2.6㎝정도의 암을 떼어냈다. 그런데 수술 과정에서 임파선에 일부 전이된 것이 발견됐다. 그래서 4차례에 걸쳐 항암치료를 받았다. 그 과정이 너무나 힘들었다. 3주 간격으로 받았는데, 2주는 구토 때문에 먹지도 못하고 마지막 1주에 겨우 조금 먹어 체력 회복해서 다시 항암 받는 식이었다. 항암 받으러 갈 땐 도살장 끌려가는 심정이었다. 겪기 전엔 머리로만 ‘힘들겠지’ 싶었는데 몸으로 겪으니 생각했던 것보다 100배는 힘들었다. 먹지 못하니 기운이 없어 눕지도, 잠도 못 잤다. 앉고 눕는 것도 힘이 있어야 할 수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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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6월 김동호 목사의 유튜브 '날마다 기막힌 새벽'의 첫 방송 장면. 항암치료를 시작한 직후라 수척한 모습이다. 혼자 셀프카메라 찍듯이 촬영하는 바람에 처음 3회분 촬영과 전송에 18시간이 걸렸다.

“암 묵상하면 갇히지만 하나님 묵상하면 풀려난다”

-암 환자를 위로하는 유튜브 ‘날마다 기막힌 새벽’과 오프라인 위로집회 CMP를 항암 치료 중에 시작했다.

“수술 후 병실에 돌아왔는데 ‘내 백성을 위로하라’는 이사야서 말씀이 들려왔다. 처음엔 ‘내가 죽게 생겼는데 누굴 위로하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네가 죽게 생겼으니 그 마음으로 위로하라’는 말씀이 들렸다. 수술 후 수도권의 한 요양시설에서 3개월 정도 지냈다. 암 환자들이 있는 곳이었다. 때때로 비명 소리가 들렸다. 얼마 후 앰뷸런스가 도착하고…. 그 무렵 요양하던 곳 주변 풍경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렸더니 사진만 보고도 용케 거길 찾아오는 분들이 있었다.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간절한 심정들이었다. ‘그래, 내가 저 분들에게 지푸라기라도 돼 드리자’ ‘암을 좋은 의미의 도구로 삼자’고 마음 먹었다. 그렇게 ‘날기새’와 CMP를 시작했다. CMP 1회 모임 때는 서있기 힘들었다. 그런데 나보다 더 힘든 상태의 환자들이 오시더라. 내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서 환자들이 위로받고 용기를 내더라.”


-유튜브 방송은 처음인데 어려움은 없었나.

“무리하지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선을 지키자고 생각했다. 나 스스로 환자이기도 했고. 내 능력의 30%만 쓰자고 마음 먹었다. 일선 목회할 때 제일 좋았던 것이 새벽기도회였다. 주일 설교는 준비도 많이 해야하지만 새벽기도회는 성경 말씀 읽고 짧게 설교하고 찬송하는 형식이었다. 그림으로 치면 주일예배가 꼼꼼히 그리는 그림이라면 새벽기도는 한번에 휙 그리는 드로잉 같은 느낌이다. 그렇지만 은혜는 특별했다. ‘날기새’는 새벽기도를 온라인으로 옮겨온 것이다. 처음엔 3회분 촬영하는 데 18시간이 걸렸다.”


-첫 회에서 ‘걸리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내가 겪어보니 암은 ‘걸린다’는 말이 맞더라. 그물에 걸리듯 원망, 걱정, 좌절, 우울에 걸려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몸도 문제이지만 마음이 더 문제였다. 걸린 데서 빠져나와 숨을 틔워야 겠다고 생각했다. 하나님이 진흙으로 우리를 빚은 후 숨을 불어넣었지 않았나. 암을 묵상하면 빠져나오지 못한다. 하나님을 묵상하면 풀려난다.”

“암환자와 가족들이 붙잡을 지푸라기 될 것”

-댓글 사연이 절절하다. 특별히 기억나는 댓글은.

“지난 2월 6일 별세한 분이 계신다. 포천에 살던 분인데 딸, 부인과 함께 PMC 모임에도 왔다. 마지막엔 어떤 진통제도 안 들을 정도로 고통을 겪으셨다고 한다. 그런데 그 따님이 ‘아버지가 마지막엔 날기새 덕분에 천국처럼 지내다 가셨다’고 했다. 천국이라니, 말이 되나? 그 이야기를 듣고 ‘단 한 사람이라도 날기새를 보면서 천국처럼 느낄 수 있다면 내 시간을 안 아끼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 이후로는 내 능력의 70%는 쏟아야겠다고 마음을 고쳐 먹었다.”


-1년만에 구독자가 12만명에 이른다.

“처음엔 자막도 없이 시작했다. 아파트 거실 소파에 앉아 스마트폰에 마이크만 설치해서 혼자 셀프로 찍었다. 한 청각장애인 암 환자가 ‘자막이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나 나 혼자 만드는 동영상이어서 불가능했다. 그런데 시간이 좀 흐르니 자막을 넣어주겠다는 전문가가 나타났다. 이후로는 중국어, 영어, 일본어, 스페인어까지 자원봉사자들이 자막을 넣어주신다. 기적이다. 구독자가 늘면서 광고료도 받아 선교사 지원에 쓰고 잇다. 요즘은 날기새의 콘텐츠를 좀더 다양화하려고 생각 중이다. 바리스타 교육도 받고 있다.”


-바리스타 교육은 왜 받나?

“카페를 만들어 오프라인에서 환자들을 만나서 이야기 들어드리고 등도 두드려 드리고 싶어서다. 옛날 주막의 주모처럼.”


-과거엔 교인들과도 사적인 만남은 자제하지 않았나.

“내성적이어서 낯을 많이 가린다. 일선 목회 시절에도 약속 없이 오는 사람은 잘 안 만났다. 그런데 아프고 나서 그런 성격이 꺾였다. 수술 후 과거 목회하던 교회의 교인들의 찾아와 위로해주셨다. 나는 목회하던 때에 교인 중에 환자가 있어도 찾아가면 힘들까봐 잘 안 갔다. 그런데 내가 아파보니 찾아와 주는 사람이 그렇게 고맙더라. ‘날기새’와 CMP가 그런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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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투병 후 김동호 목사는 여러모로 여유로워진 모습이었다. 김 목사는 "목회인생의 모든 순간이 만족스러웠지만 암투병 후 지금이 최고이고, 행복하다"며 "마지막 순간까지 유튜브 '날기새'를 진행하고 싶다"고 했다.

“기운 없으면 누워서라도 유튜브 하겠다”

-앞으로 계획은.

“‘날기새’를 끝까지 하고 싶다. 앉기 힘들면 침대에 누워서라도 하고 싶다. 그처럼 힘든 분들에겐 그게 위로가 될 테니까. 목회자로 살면서 내 나름대로 은퇴 준비는 철저히 해왔다. 그러나 암을 겪으며 죽음에 대한 준비는 안 했다는 걸 깨달았다. 과거엔 ‘소프트 랜딩’을 생각했는데, 이제는 ‘뷰티풀 랜딩’ 즉 ‘이쁘게 죽자’고 마음 먹었다. 암을 겪고 나니 그동안 못 만났던 분들을 알게 됐다. 암 전문의, 신경정신과 전문의 등이다. 이런 전문가들과 개그맨 등 웃음을 주는 분들까지 ‘드림팀’을 만들어 암 환자와 가족들에게 좋은 정보도 드리고, 위로하고 싶다.”


-암은 일반적으로 5년이 지나야 완치 판정을 내리지 않나.

“그렇다. 지금도 정기적으로 검사를 받고 있다. 육체적으로는 거의 회복했지만 ‘재발할 수 있다’는 마음의 준비는 늘 하고 있다. ‘예상문제’는 풀고 있어야지. 재발하면 그런대로, 재발하지 않으면 그런대로 암에게 당하지 말고 잘 이용할 생각이다. 목회자로 살아오면서 시기별로 필요한 일을 했고, 다 만족스러웠다. 그렇지만 육신이 최악의 상태였던 작년이 최고 행복했다. 지금 최고로 좋은 일을 만나서 만족하며 하고 있다. 목회자들의 꿈이 강단에서 마지막을 맞고 싶다는 거다. 나는 마지막까지 ‘날기새’를 할 작정이다. 무리하지 않고 살살 오래오래 ‘날기새’를 하고 싶다.”


[김한수 종교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