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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우리 모두가 구멍가게 인생… 하루하루 버텨내야죠"

by조선일보

'구멍가게' 작가 이미경

조선일보

“초기작엔 나무가 거의 없었는데 그림이 점점 밝아졌어요. 황폐했다가 여유로워진 제 마음이 투영된 것 같아요.” 서울 역삼동 이마주갤러리에 걸린 신작 앞에서 이미경 작가가 말했다. /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백일 된 젖먹이 엄마는 새벽에 두세 시간만이라도 눈을 붙이는 게 소원이었다. 하루는 해 질 녘 방전된 몸을 이끌고 세 살배기 첫째, 갓난쟁이 둘째를 데리고 집을 나섰다. 논밭 지나 발길이 닿은 곳은 동네 어귀 초등학교 앞 구멍가게. 지친 심신 탓이었을까, 그날 따라 가게가 달라 보였다. 노을 머금은 석양의 슬레이트 지붕, 건너편 산과 하늘을 담고 연보랏빛으로 물든 유리창….


"쓸모를 잃어가는 나를 닮은 곳이라 생각했는데 그 순간 찬란히 빛나는 거예요. 가슴 저 아래로 꾹꾹 눌러놨던 열정이 발길질했어요. '아, 그리고 싶다!'" 그날 저녁, 아이를 재우고 구석에 뒀던 화구를 꺼내 그 가게를 그렸다. 두 달 꼬물꼬물 그려 완성한 첫 작품이 '퇴촌 관음리 가게'였다.


스물여덟 새댁은 어느덧 쉰의 중년이 됐고, 둘째와 동갑인 구멍가게 작업은 올해로 23년 됐다. '구멍가게 그림 작가' 이미경. 본지 주말 섹션 'why'에 연재한 그림을 포함해 3년간 작품을 담은 그녀의 책 '구멍가게, 오늘도 문 열었습니다'가 최근 발간됐다. 때맞춰 개인전(11일까지)이 열리고 있는 서울 역삼동 이마주 갤러리에서 그녀를 만났다.

아이 엄마 작가의 자구책, 펜화

직접 본 그녀의 그림엔 디지털 픽셀은 담지 못하는 정교함이 있었다. 붓과 물감을 전혀 쓰지 않고, 펜에 잉크를 묻혀 점 수만 개를 겹겹이 찍어 그린 그림. 한 땀 한 땀 수놓은 자수 같았다. "세상에 보여줄 생각은 한 줌도 없는 그림이었어요. 서양화(홍익대) 전공하고, 포스트모던이다 신표현주의다 해서 현대미술 배운 애가 시대착오적인 그림 그린다고 비웃을 것만 같았거든요." 이씨가 구멍가게 그림 속 목련처럼 해사하게 웃었다.


왜 캔버스, 유화 물감과 절연했나요.


"펜화는 두 아이 엄마인 제 상황에 최적화된 그림이었어요. 첫아이 임신하고 유화 물감 성분이 태아에게 안 좋을 수 있다고 해서 안 썼어요. 이후 아이 둘 키우며 완전히 붓을 놨다가 다시 그리자니 아이들이 엎지를까 봐 물감을 둘 수도, 그림을 펼쳐놓고 말릴 수도 없었어요. 좁은 공간에서 그나마 그릴 수 있는 그림이 펜화였어요. 재봉틀, 자투리 천 널려 있는 옷방 구석에서 밤마다 화판을 펴놓고 그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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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으로 수만 개의 점을 찍어 그리는 이미경 작가 /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작업의 출발점이 된 구멍가게가 경기도 광주 퇴촌에 있던데요.


"쭉 서울에서 살았는데 1997년 둘째 갖고 입덧이 정말 심했어요. 냄새, 공기, 소리가 갑자기 낯설어지며 익숙한 공간이 나를 공격하는 것만 같았어요. 만삭에 송파동 열여덟 평 아파트를 팔고 퇴촌의 연립주택으로 이사했어요."


임신, 출산을 거치며 소위 경력 단절녀가 된 거군요.


"친구들은 졸업하고 막 활동 시작할 시기에 저는 아이 둘 낳아 기르느라 경력이 끊겼어요. 그림을 못 그려 답답해 죽겠는데 아무도 답답해하지 않는 거예요. 세상과 단절됐다는 고독감, 나만 뒤처졌다는 우울감에 시달렸을 때, 구멍가게를 만났어요. 여건이 완벽히 갖춰져야만 그릴 수 있다고 생각하던 저에게 작고 허름한 구멍가게가 나무라는 것 같았어요. 그런 걸 왜 따져, 그냥 그리면 되잖아라고. 그날 이후 밥 차리다가도 그리고, 아이 옷 빨래하다가도 짬 나는 대로 그렸어요. 멀티 플레이어 주부 작가의 삶이 시작됐죠."


'82년생 김지영'이 아니라 '70년생 이미경'이었네요(웃음).


"안 그래도 그 영화, 소설 다 봤는데 아이 키우던 시절이 떠올랐어요. 지금도 육아에 지치고 하던 일을 멈췄다는 생각에 힘겨워하는 애 엄마가 많을 거예요. 터널을 지나는 동안에는 힘들지만 자신을 놓치지는 마시길요. 저처럼 붙들고 있으면 언젠가 기회가 와요."


구멍가게가 왜 그리 끌렸던 걸까요.


"단지 뭘 파는 곳이 아니라 우리 부모님 세대의 고단한 삶이 담긴 초상 같았어요. 어린 시절 난곡동, 거여동, 노량진, 신월동 등 달동네를 전전했어요. 배움이 어느 수준이면 인생이 흔들리지 않는데 저희 부모님은 그렇질 못해 삶의 기복이 심했어요. 어머니는 의상실 하다가 봉제 공장 재봉틀 기술자로 일했고, 아버지는 부동산 하셨다가 액세서리 하청 공장도 했어요. 두 분 일이 바뀔 때마다 이사했는데 동네마다 사랑방처럼 구멍가게가 있었어요. 구멍가게를 보니 어렵던 시절 안간힘 쓰고 살기 위해 발버둥쳤던 우리 부모님, 그 시대 어르신의 삶이 떠올랐어요."


혼자 보려 했던 그림이 어떻게 세상에 나왔나요.


"재미 삼아 하나씩 그려 블로그에 올렸어요. 전시 한번 하는 게 꿈이었는데 10년 정도 그림이 쌓였을 때 한 출판사 편집자가 혼자 보기엔 아깝다면서 제 일처럼 팔 걷어붙이고 전시를 추진해 줬어요. 골방에서 그린 그림이 세상에 첫선을 보이게 됐는데 어찌나 부끄럽던지요. 반응이 예상 밖이었어요. 궁여지책으로 선택한 컬러 펜화가 독특하다면서 주목받았어요."


스스로도 미술에 대한 선입견을 깨는 계기가 됐다. "그때 깨달았어요. 무슨 사조니 해서 거창한 유행을 따르는 것보다 자기 삶을 녹여 자기 것을 키우고 소화해 그리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메이저 화랑들은 지금도 저를 작가로 보지 않을 수도 있어요. 소수에 의해 그들만의 리그인 양 미술판이 굴러가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봐요. 그림도 음악처럼 많은 사람이 편하게 즐길 수 있어야 해요."

하루 벌이 전부인 모두가 구멍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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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적으로 이름을 알린 건 2017년 첫 책 '동전 하나로도 행복했던 구멍가게의 날들'을 펴내면서였다. "전시 꼬박꼬박 하면서 그림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만 좀 알려졌을 때였어요. 경남 통영에서 출판사 겸 동네 서점 '남해의 봄날'을 운영하는 정은영 대표가 제 안에 있는 글을 끄집어 내게 했어요."


그림 그리고 10년 만에 그림을 끌어내 준 인연이 있었고, 20년 만에 글을 끌어내 준 인연이 나왔네요.


"누가 보든 안 보든 묵묵히 내 길을 걸어가다 보니 인생의 이정표마다 고마운 사람들이 등장했어요. 요즘은 SNS로 예기치 못한 인연도 많이 만나요. 3년 전 그림에 넣을 매화를 찍으러 광양에 내려갔는데 낯선 다섯 자리 번호가 떴어요. 보이스피싱인가 싶어 망설였다가 받아보니 영어로 말을 하더라고요. 세상에, BBC 기자였어요. 얼마 뒤 영국 사는 친구한테 연락이 왔더라고요. BBC에서 제 그림이 나왔다고. 기적 같은 일이었죠."


구멍가게를 몇 점이나 그렸나요?


"이번 책엔 2017년부터 3년간 그린 80점이 들어갔는데 다 합치면 300여 점 돼요. 이 중 열려 있는 가게가 40여 군데고요. 이미 문 닫은 가게를 보고 상상으로 다시 살려 그린 곳도 있어요. 이름 없는 가게에 간판을 달아 그린 곳도 있고, 꽃나무를 넣어 그리기도 합니다. 우리 동네 빌라에 있는 잘생긴 벚나무를 찍어 근처 50년 된 구멍가게에 넣은 적도 있어요. 번듯한 나무 한 그루 심어 드리고 싶은 마음이 생기곤 합니다."


20년 넘게 전국의 구멍가게를 찾아다녔을 텐데 이야기도 많이 쌓였겠어요.


"해남 '우리슈퍼'에 갔더니 주인 아주머니가 저를 보며 눈시울 붉히시는 거예요. 20대에 교통사고로 저세상 가서 가슴에 묻은 딸이 저랑 동갑이라면서요. 가게 나서는 길, 기어이 뛰어오셔서 캔커피를 손에 꼭 쥐여주셨어요. 누추한 곳 그려 뭐 하나, 자식에게 폐 끼치면 안 된다며 사양하는 분들도 계세요. 그분들에게 말씀드립니다. 어르신, 이 공간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아세요, 어르신들 삶은 더 아름답고 대단하답니다."


요즘 세상에서 구멍가게가 지닌 의미가 뭘까요.


"동네 수퍼는 구멍가게 대표 선수예요. 포장마차, 동네 책방 등 하루 벌이가 전부인, 그래서 오늘 하루를 열심히 버텨내면서 내일을 꿈꾸는 모든 사람이 구멍가게 주인이라고 생각해요. 제 그림이 그들에게 응원가가 됐으면 해요."


신간을 내면서 민트색 동네 책방 한정판을 제작했다고요?


"동네 책방이 '책방의 구멍가게'잖아요. 월세도 못 내는 동네 책방이 참 많아요. 구멍가게로 받은 과분한 사랑을 구멍가게에 돌려주고 싶은 마음으로 출판사와 의기 투합해 기획했어요. 제가 쓰고 그렸지만, 제 손을 떠난 책은 희망을 주는 또 하나의 인격체가 됐으면 좋겠어요. 얼마 전 부산의 동네 책방 '낭독서점 시집'대표가 폐업하려다가 제 책을 보니 가슴이 다시 뛰더라며 '동네 책방, 오늘도 문 열었습니다'라고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봤어요. 제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


작가님에게 구멍가게란.


"내 안의 작은 꿈. 전시 한번 해보는 게 꿈이었던 '경단녀' 작가가 세상을 향해 한 발짝 나설 기회를 줬으니까요. 모든 사람의 마음엔 자기만의 구멍가게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 꿈이 조금씩 성장해 수퍼가 될 수도, 마트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김미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