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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슈 ]

카톡 성적인 대화 그대로 베낀 김봉곤, 결국 젊은작가상 반납

by조선일보

조선일보

사적 대화를 소설에 그대로 인용했다는 논란에 휩싸인 김봉곤 소설가. /문학동네

소설가 김봉곤이 지인과 나눈 소셜미디어 메시지를 소설에 무단 인용한 것과 관련, 자신이 수상한 작가상을 반납하겠다고 21일 밝혔다. 개인적으로 나눈 대화를 소설에 허락 없이 인용해 사생활을 침해했다는 폭로가 나온 지 11일 만이다.


김 작가는 이날 트위터를 통해 “제 소설로 인해 고통받은 독자 여러분, 출판 관계자분, 동료 작가분들께도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무단 인용 의혹이 제기된 작품) ‘그런 생활’에 주어진 문학동네 젊은작가상을 반납하겠다”라고 했다. 젊은작가상을 제정하고 시상하는 출판사 문학동네의 염현숙 대표는 작가상 반납 규정과 절차를 묻는 본지 질문에 “입장문을 정리하는 중으로 나오는 대로 발표하겠다”라고 했다. 김 작가는 2019년과 2020년 두 차례(제10회, 제11회) 문학동네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는데, 인용 시비가 인 것은 ‘그런 생활’이 실린 제11회다.

“토씨 하나 바꾸지 않고 그대로 베껴…성적수치심 느껴”

인용 논란이 불거진 것은 지난 10일 트위터에서였다. 자신을 김 작가의 작품 ‘그런 생활’에 등장하는 ‘C누나’라고 밝힌 트위터리언 ‘다이섹슈얼’은 ‘김봉곤 작가에게 보낸 카카오톡 메시지가 단 한 글자도 바뀌지 않고 소설에 그대로 쓰였다’고 폭로했다.


그는 “김 작가의 문학동네 젊은작가상 수상작 ‘그런 생활’에는 주인공 ‘봉곤’과 카카오톡으로 성적인 대화를 가감 없이 나누고 조언을 하는 ‘C누나’라는 인물이 나온다”며 “독자들은 이 사람을 가상 인물이나, 소설적으로 변형된 인물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제가 바로 그 ‘C누나’”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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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김봉곤 작가의 작품 ‘그런 생활’에 등장하는 ‘C누나’라고 밝힌 트위터리언 ‘다이섹슈얼’이 김 작가가 자신과 나눈 소셜미디어 대화를 무단 인용했다고 주장하는 트윗. /트위터

그러면서 “C는 제 이름의 이니셜이고, ‘그런 생활’에 실린 ‘C누나’의 말은 제가 김 작가에게 보낸 카카오톡을 단 한 글자도 바꾸지 않고 그대로 옮겨 쓴 것”이라며 “제 말을 토씨 하나 바꾸지 않고 그대로 베껴 쓴 것, 우리가 했던 많은 대화 중 성적 수치심과 자기혐오를 불러일으키는 부분을 그대로 쓴 것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김 작가가 ‘그런 생활’을 공식 발표하기 전 보내온 원고에서 이런 내용을 발견하고 삭제해달라고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소설은 수정 없이 문학과지성사에서 내는 계간지 ‘문학과사회 2019년 여름호’에 그대로 실렸다. 이 작품으로 같은 해 ‘문학동네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 올해 5월에 창비에서 출간된 김봉곤 작가의 소설집 ‘시절과 기분’에도 수록됐다.


김 작가의 ‘무단 인용’에 대한 항의는 소설이 처음 공개된 이후 계속 이어져왔지만 문단(文壇)과 출판업계선 묵인했다고 한다. 폭로자는 이런 문제를 제기하면서 김 작가에게 시상된 문학상을 취소해달라고 요청했지만 문학동네로부터 “(문학상) 심사위원들은 해당 내용이 심사결과에 영향이 없다는 데에 일치된 의견”이라는 답변을 받았다는 것이다. 창비 측은 “작가와 당사자의 의견 교환과 협의가 우선되어야 할 것이라고 판단”이라는 입장이었다고 한다.


폭로자는 그러면서 “작가가 자기 자신으로 살기 위해 글을 쓰듯, 평범한 사람 또한 나 자신으로 살기 위해서 함부로 다뤄지지 말아야 할 삶이 있다. 알려지지 않아 마땅한 장면이 있다”라며 “저는 목표점에 제대로 닿지 못한 소설에 바닥 깔개로 이용된 기분, 강제로 출현 당해 김봉곤 작가의 밑에 엎드려 깔린 기분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했다.

“김봉곤에 보낸 메시지 소설 적시… 동성애자 ‘아우팅’ 당해”

지난 17일엔 김 작가의 대표작인 ‘여름, 스피드’가 또 한 번 무단 인용 논란에 휩싸였다. 자신을 ‘여름, 스피드’에 등장하는 인물 '영우‘라고 밝힌 한 남성은 17일 트위터에서 “제가 김봉곤 작가에게 수년 만에 연락하기 위해 전달한 페이스북 메시지 역시 동일한 내용과 맥락으로 책 속의 도입부가 됐다”고 폭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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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김봉곤 작가 '여름, 스피드'에 나오는 영우라고 밝힌 한 트위터리언이 김 작가가 자신과 나눈 페이스북 메시지를 소설에 인용해 '아웃팅' 피해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글. /뉴시스

그는 “대부분의 요소가 소설 속에 사실로 적시”됐으며 “그것이 아우팅으로 이어져 가해가 되고, 그것을 당사자가 심히 불쾌히 여김에도 소설의 모습을 하고 있으니 문학일 수 있는 것인가”라며 문제 제기를 했다. 소설로 인해 원치 않게 동성애자인 사실이 알려지는 ‘아우팅’을 당했다는 것이다.


동성애자로 커밍아웃한 소설가인 김봉곤은 자전적 소설로 문단의 주목을 받아왔다. ‘그런 생활’에는 주인공 ‘봉곤’이 ‘C 누나’와 연애 상담을 하는 대목이 나온다. 누나는 성적(性的)인 대화를 가감 없이 나누고 조언하는 인물로 묘사된다. ‘여름, 스피드’는 과거 자신이 사랑을 고백했지만 받아주지 않았던 ‘영우’라는 인물에게서 페이스북 메시지를 받고 나서 재회하는 내용이다.


논란이 커지자 문제가 제기된 소설집 ‘여름, 스피드’와 ‘시절과 기분’을 각각 출판한 문학동네와 창비는 해당 소설집의 판매를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두 출판사는 “피해자분들께 사과드린다”며 후속 조치를 약속했다.


김 작가는 “부주의한 글쓰기가 가져온 폭력과 피해에 다시 한번 사죄드린다”며 “고유의 삶과 아픔을 헤아리지 못한 채 타인을 들여놓은 제 글쓰기의 문제점을 뒤늦게 깨닫고 이를 깊이 반성한다”고 밝혔다.


[김명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