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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슈 ]

뉴질랜드서 성추행 한국외교관 실명·얼굴 공개, 국제망신 코리아

by조선일보

외교 문제로 비화 조짐

뉴질랜드 한국 부정 여론 확산

조선일보

A 외교관 혐의에 대한 뉴스허브 보도 장면. /Conor Whitten, Newshub

외교부가 2년 전 감봉 1개월이라는 ‘솜방망이 징계’로 자체 종결한 뉴질랜드 주재 한국 고위 외교관 A씨에 대한 성범죄 사건이 최근 현지 주요 방송에 대대적으로 보도되는 등 큰 논란이 되고 있다.


현지 방송은 A 외교관 실명과 얼굴까지 공개하며 “한국 정부가 성범죄 혐의 외교관을 부당하게 비호하고 있다”는 취지로 강력 비판도 했다.


외교 소식통은 27일 “외교부와 뉴질랜드 주재 한국 대사관이 뉴질랜드 당국의 수사 협조 요청을 계속 거부하면서 단순 성범죄 사건이 외교 문제로 비화하는 모양새”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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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방송 '뉴스 허브'가 성범죄 혐의를 받는 한국 외교관 A씨에 대해 보도하는 장면. /Conor Whitten, Newshub

뉴질랜드 방송 ‘뉴스허브’는 지난 25일(현지 시각) “A 외교관은 최대 징역 7년형의 성추행 행위를 총 3차례 저지른 혐의를 받고 있다”면서 “하지만 한국은 뉴질랜드 법원이 발부한 A씨에 대한 구속영장 집행, 사건 발생 당시가 촬영된 한국 대사관 CCTV 영상 자료 제공을 거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로버트 패트만 교수는 “한국 정부의 수사 협조 거부는 성추행 피해자인 뉴질랜드 국민에게 ‘정의에 대한 거부’로 여겨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뉴스허브도 “‘키위(Kiwi·뉴질랜드인의 별명)’ 시민은 여전히 정의를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A씨는 2017년 말 뉴질랜드 근무 당시 뉴질랜드 국적 직원의 엉덩이 등 민감한 신체 부위를 만진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피해자가 문제 제기를 했지만, 그 이후에도 대사관 소재 빌딩의 엘리베이터에서 피해자의 사타구니, 허리 벨트 주변, 손 등을 만졌다. 피해자는 “대사관에 A씨에 대해 문제 제기했지만, 별도의 조치가 없어 이후 또 한 차례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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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추행 혐의 받는 한국 고위 외교관 A씨의 모습. /Conor Whitten, Newshub

A씨는 신체 접촉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성추행 의도는 전혀 없었다며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외교부는 2018년 귀국한 A씨를 자체 조사해 1개월 감봉 처분을 내렸다.


A씨는 현재 아시아 주요국 총영사로 근무 중이다. 외교부는 면책특권을 내세워 뉴질랜드의 수사 협조 요청에 응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상진 주뉴질랜드 한국대사는 뉴스허브 인터뷰 요청에 A씨에게 유죄가 입증될 때까지 무죄로 추정 받을 권리가 있다고 했다. 이 대사는 그러면서 A씨가 언제 뉴질랜드로 들어와 조사를 받을 것이냐는 질문에는 “그가 뉴질랜드로 들어와 조사를 받을 것인지는 스스로 결정할 문제”라고 했다. 이 대사는 또 A 외교관이 징계 처분을 받고도 아시아 주요국 총영사로 발령나 현재 근무하는 데 대해서도 자신의 개인 의견임을 전제로 “승진 인사로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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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진 뉴질랜드 주재 한국 대사. /Conor Whitten, Newshub

하지만 외교부가 사건의 실체를 밝히려는 뉴질랜드 당국의 각종 수사 협조 요청을 거부하면서, 그에 대한 혐의와 관련한 피해자 측의 주장과 언론 보도에 대해선 ‘무죄 추정의 원칙’을 거론하는 대응 방식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다. 자칫 이번 사건을 ‘무죄 추정 가능’상태로 남겨두려는 인상을 뉴질랜드 측에 심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외교부는 2018년 A 외교관의 부적절한 언행 사실을 자체 조사로 확인까지 하고 ‘문제가 있다’고 판단, 징계 처분을 내리기도 했다.


또 외교부가 A씨에 대한 뉴질랜드 법원의 구속 영장 집행 협조를 ‘외교관 면책 특권’을 들어 거부했으면서 A씨의 조사 여부는 스스로 결정할 문제라고 하는 것도 책임을 회피하려는 태도로 비칠 수 있다. 뉴질랜드에서 한국에 대한 부정 여론을 부추길 우려도 있다.


일각에선 A씨에 대한 외교부의 감봉 1개월 징계 처분이 사건 발생 CCTV 영상 등 구체적 증거 자료도 살펴보지 않는 등 제대로 된 조사 과정도 거치지 않고 내려진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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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김인철(오른쪽) 외교부 대변인. /연합뉴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취임 초 전 직원들에게 '성(性) 비위 감사 보고서'까지 공개하는 등 '성 비위 근절'을 강조해왔다. 하지만 강 장관 임기 내내 해외 여러 공관에서 성 범죄 사건이 끊이지 않아 기강해이 문제가 불거지기도 했다.


[노석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