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샷] 17년만에 찾아온 매미, 알고보니 좀비!

[테크]by 조선일보

균류 감염된 수컷이 암컷 행동 모방해 포자 퍼뜨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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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맛비가 잠깐 그치면 어김없이 매미가 짝을 찾느라 요란하게 울어댄다. 몇 년씩 땅속에서 유충으로 있다가 성충이 되고 겨우 한 달여 사는 매미로선 한순간도 허투루 보낼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순간 방심하면 그 짧은 삶이 허사가 될 수 있다. 겨우 찾은 짝이 좀비일지 모르기 때문이다. 올여름 영화 ‘#살아있다’와 ‘반도’가 잇따라 개봉하면서 국내에 좀비 바람이 불고 있지만, 자연에는 이미 다양한 좀비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암컷 짝짓기 행동 모방해 수컷 불러


미국 웨스트버지니아대의 매튜 카슨 교수 연구진은 지난달 국제 학술지 ‘플로스 병원체’에 “기생 균류(菌類)가 숙주인 매미 수컷이 암컷의 짝짓기 행동을 모방하도록 조종해 포자를 퍼뜨린다”고 밝혔다.


버섯과 같은 균류는 종종 곤충의 몸에서 자란다. 동충하초(冬蟲夏草)가 대표적이다. 겨울에는 곤충이었지만 몸 안에서 자란 버섯이 곤충의 몸을 뚫고 나와 여름에는 식물 같은 모양이 된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매소스포라(Massospora)라는 균류는 13~17년 주기로 세상에 나오는 주기매미를 골라 감염된다. 붉은 눈에 검은 몸통을 가진 주기매미는 13~17년간 땅속에서 유충으로 살다가 허물을 벗고 성충이 되고 수 주 동안 짝짓기를 해서 자손을 퍼뜨린다. 하지만 버섯 포자에 감염되면 땅 위의 삶이 완전히 달라진다,



매소스포라 포자는 매미에 감염돼 생식기와 배를 먹어치우며 자란다. 나중에 매미 하복부는 연필 지우개 모양으로 노란 포자로 채워진다. 매미는 그래도 죽지 않고 날아다니며 포자를 퍼뜨린다. 균류를 위해 죽어도 죽지 않는 좀비가 된 것이다.


심지어 수컷이 암컷이 짝을 부를 때처럼 날개를 튕기기까지 한다. 수컷 매미들이 암컷으로 착각하고 짝짓기를 시도하면 포자가 더 많은 매미에게 퍼진다.


◇마법 버섯의 환각성분으로 행동 조종 포자는 일종의 환각제로 매미의 행동을 조종한다. 연구진은 매소스포라 포자에서 마법 버섯에 있는 환각 성분인 실로시빈이라는 화합물을 발견했다.


이번 논문의 제1 저자인 브라이언 로벳 박사는 “생물활성 화합물이 매미가 계속 산채로 병원체를 더 오래 퍼뜨리도록 조종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지금까지 주기매미는 성충만 포자에 감염된다고 알려졌다. 이번 연구진은 땅속에 있는 유충도 17년 동안 나무 수액을 먹는 과정에서 포자에 노출될 수 있다고 밝혔다.


감염된 매미 성충이 죽어 나무에서 떨어지면 포자가 땅속으로 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경우 포자는 매미가 땅 위로 나와 성충이 되기까지 일종의 잠복 상태로 있을 것이라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꽃 물고 異性 유혹하는 좀비 딱정벌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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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에는 다양한 좀비 곤충들이 있다. 지난 2017년 미국 아칸소대 연구진은 “북미(北美) 대륙에 사는 딱정벌레인 미역취 병대벌레가 에리니옵시스란 균류가 조종하는 대로 꽃을 물고 죽는다”고 발표했다.


병대벌레는 죽은 지 15~20시간 지나 갑자기 날개를 펼쳤다. 다른 병대벌레가 짝짓기하러 오도록 유인해 포자를 퍼뜨리는 행동이라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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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의 개미도 병대벌레와 비슷한 죽음을 맞는다. 열대우림에 사는 왕개미가 오피오코디셉스라는 버섯에 감염되면 나무 위로 올라가 잎맥에 턱을 박고 죽는다.


밤이 되면 버섯이 개미 머리를 뚫고 나온다. 다음날 낮에는 잎 아래를 지나가는 다른 개미들의 머리 위로 버섯 포자가 뿌려졌다. 버섯이 포자를 더 잘 퍼뜨리기 위해 좀비 개미를 조종해 나무 위까지 올라가도록 조종한 것이다.


[이영완 과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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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20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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