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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즈 ]

여자가 남자보다 멘털 약해 정신과 진료? 아닙니다

by조선일보

'어쩌다 정신과의사' 펴낸 전문의 김지용

"정신 질환의 최악인 부분은 남들에게 아닌 척을 해야 한다는 것이지."

지난해 개봉한 영화 '조커'의 주인공이 일기장에 이렇게 쓴다. 정신 질환에 대한 사회 인식이 바뀌었다고 하나 편견이 남아있는 건 여전하다. 최근 '사이코지만 괜찮아'라는 드라마가 나오고 인기를 끌었다는 것은 오히려 '정신 질환은 괜찮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회 분위기를 보여준다. '위암이지만 괜찮아'라거나 '허리 디스크지만 괜찮아'라고 하는 드라마는 없지 않은가. 애당초 '사이코지만 괜찮다'는 사회였다면 대중이 여기에 공감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조선일보

정신과 전문의 김지용씨에게 “환자의 우울한 얘기만 들으면 힘들지 않으냐”고 물었다. 그는 “모든 사람이 다른 얘기를 해서 흥미롭다. 그리고 언젠가는 좋아지리란 희망이 있다”고 답했다.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뇌부자들'도 그래서 성공했다. 같은 대학에서 같은 전공을 공부한 김지용·오동훈·손정현·윤희우·허규형 등 정신과 전문의 다섯 명이 2017년 3월부터 만든 이 팟캐스트는 청취자들의 사연을 받아 정신 질환에 대한 전문적 분석을 하고, 진료 현장의 경험을 들려줬다. 정신과의 문을 차마 못 연 사람, 정신 질환이 있어도 아닌 척해야 했던 사람 모두 열광했다. '뇌부자들'은 그해 아이튠스 출시작 중 최다 다운로드 6위를 기록했고, 현재 구독자가 5만명이다. 동명 채널도 유튜브에서 운영 중이다. 2018년 다섯 명이 공동 집필한 책 '어쩐지 도망치고 싶더라니'에 이어 최근 김지용(37)씨는 '어쩌다 정신과 의사'(푸른숲 刊)를 출간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정신과 의사를 다룬 이 책은 완벽하지 않은 자신의 한계를 고백하면서도 평범한 인간이 치열하고도 절박하게 환자를 만나면서 어쩌다 정신과 의사가 돼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마음 챙김, 불안한 시대의 생존법

어쩌다 정신과 의사가 됐나.


"재밌었다. 나는 그 재미를 '객관식 세계에서 만난 주관식 나라'라고 말한다. 다른 과에선 병의 원인과 치료 방법이 정해져 있다. 정신과에선 같은 진단이라고 해도, 환자의 특질이나 성장 과정에 따라 병의 원인도 치료 방법도 다를 수 있다."


뇌부자들을 시작한 계기가 뭔가.


"병을 키우고 오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발병 초기에 병원을 찾았으면 치료가 잘됐을 경우가 너무 많아서 안타까웠다. 정신 질환과 정신과에 대한 편견을 없애야 했다."


최근 몇 년 새 정신과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 자신의 우울증이나 공황장애를 이야기한 공인(公人)도 나왔다.


"우리 팟캐스트 덕분에?(웃음) 마음 건강, 정신 건강을 챙기는 게 한 트렌드가 된 것 같다. 요즘 학생들이 공부하는 거나 취직하는 거 보면 너무 지치고 불안해 보인다. 비단 젊은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연령대에서 이런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사회가 심리적으로 불안해지면 생존하기 위해서 마음 챙김과 정신 건강을 찾게 된다. 연예인의 도움도 컸다. 예를 들어 김구라씨가 방송에서 공황장애 이야기를 했을 때 '혹시 나도?' 하면서 병원을 찾는 사람이 늘어났다."


예전에 비해 젊은 사람이 병원을 많이 찾겠다.


"그렇다. 우리끼리 이렇게 얘기한다. 20대가 이렇게 불안해하는 건 얘네한테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사회에 문제가 있는 거라고. 취직도 안 되는데, 취직을 해서 아무리 돈을 벌어도 집 하나 장만하기 어려우니까 엄청나게 불안하고 한번 뒤처지면 끝이란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요즘 정신과 관련 책을 보면 하나같이 현재에 머물러 있으라고 강조한다. 미래가 안 보이니까 차라리 현재에 머무는 게 덜 힘든 것이다. 살아남기 위한 정신 승리이자, 버텨내기 위한 방식을 또 하나 찾아낸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좀 불편하기도 하다."

정신과 의사도 '부족한 사람'

'나의 내밀한 얘기를 했지만 나와 친하지 않은, 정체가 떠오르지 않는 어떤 인물. 가깝지도 않고 멀지도 않고, 하지만 힘들 때마다 약을 주는 사람. 이상한 속내까지 다 늘어놓아도 얼굴을 찌푸리지 않는 사람. 나를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기 위해 객관적으로 노력하느라 힘들 사람.' 김지용씨는 '뇌부자들' 유튜브 댓글에서 발견한 이 문장을 저장했다. 그는 "읽는 순간 내 마음을 똑같이 표현했다고 느꼈다. 정신과 의사와 환자는 가깝지만 한계가 많은, 허전한 관계"라고 했다.


정신과 전문의가 쓴 책이 꽤 있다. 그런데도 이 책을 쓴 이유가 무엇인가.


"내가 얘기를 잘 들어줘서 고맙다고 하는 환자가 있는 반면에 내가 차갑거나 무섭다고 생각하는 환자도 있다. 어쨌거나 정신과 진료실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곳인데, 여기서 한계를 많이 느낀다. 나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은 채 환자의 이야기를 들어주다 보니 환자들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거나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환자뿐만 아니라 정신과에 와본 적 없는 이들에게 정신과 의사에 대해 좀 알리고 싶었다."


책에서 '좋은 직업을 택했다는 생각이 들 때가 못 해먹겠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보다 잦다'고 했다. 못 해먹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힘들 때가 있단 말인가.


"환자를 잃었을 때. 다른 과에도 그런 일이 있겠지만, 우리는 그걸 좀 다르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 위험한 상황이 생길 것 같은 환자 몇 명에게 내 연락처를 알려줬다. 어젯밤 9시쯤 진료가 끝나고 나서 보니 그중 한 명에게 부재중 전화가 와 있었고, 자기 가족이 찾아가도 진료 기록을 보여주지 말란 문자도 남겼더라. 다시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아서 지금도 걱정이 많이 되는데, 다음 진료 때 꼭 뵐 수 있길 바라고 있다."


환자 때문에 의사가 목숨을 잃는 과도 신경정신과밖에 없다. 최근에도 그런 사례가 있었다.


"전공 특성상, 맞는 것 정도는 언제나 각오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죽을 수도 있단 생각이 들긴 한다. 폐쇄 병동에 강제로 입원시키는 경우, 입원 결정을 환자 가족과 의사가 한다. 그래서 입원장을 쓰는 의사에게 죽여버리겠단 협박을 하는 환자도 종종 있다. 병세가 좋아져도 이때 품은 앙심은 계속 가더라. 그래서 국가에서 공적 기구를 만들어 강제 입원을 판단하는 사법 입원제 얘기가 나오는 것이다. 가족과 의사에게만 맡기는 건 무책임하지 않은가."

정신과, 남자보다 여자가 더 많이 간다?

팟캐스트와 유튜브, 출간, 강연을 통해 김지용씨와 동료들은 자신이 뜻하는 바를 얻었을까. 그는 "국내 대학의 한 심리학 교수가 조현병은 정신과 의사들이 만들어낸 질병이고, 약을 먹을 필요가 없다는 주장을 실은 책을 낸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좌절과 분노를 느꼈다"며 "예전에 비하면 나아지긴 했어도 정신 질환에 대한 인식은 아직도 개선해야 할 부분이 많다"고 했다.


정신과의 문턱이 더 낮아져야 한다는 얘기인가.


"지금도 병원을 처음 찾는 사람 중에서 '대기실의 다른 환자들이 너무 멀쩡해 보여서 놀랐다'는 얘길 한다. 사람들은 '내과 질환에 걸렸어. 내과 약을 복용해'라고 하지 않으면서 '정신 질환에 걸렸어. 정신과 약 먹어'라고 한다. 여전히 정신과와 비(非)정신과라는 이분법이 있다. 아무래도 이해할 수 없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것을 한데 묶어두려는 것 같다."


정신 질환에 걸린 사람에게 '멘털(정신력)이 약하다'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젊은 나이에 갑상샘암에 걸리면 주변에서 '열심히 일하다가 그런 병에 걸리다니 안됐다'고 위로한다. 그런데 우울증에 걸렸다고 하면 '관리를 안 하더니 저렇게 됐다' '멘털이 약하다'고 비난한다. 멘털이 약한 사람? 많다. 멘털이 강해 보이는 사람 중에도 많다. 부부 갈등이 생기면 아내는 병원을 찾아오는데 남편은 끝까지 안 오는 경우가 많다. 남자들은 정신력이 강해서 괜찮다고 한다. 그래서 정신과를 찾는 남자가 여자보다 훨씬 적은데, 정신 질환 발병률이 남성에게 더 낮게 나타나는 건 아니다. 강한 척 하는 건 진짜 강해서가 아니라 약한 걸 인정 못하는 것 뿐이다."


변희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