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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즈 ]

"난 '흙수저' 중에서도 잡토… 달리 사니 블랙박스가 보였다"

by조선일보

20년간 교통사고 한 우물 '블랙박스 변호사' 한문철


"저는 사전 질문지 필요 없어요. 미리 답 준비해서 말하는 거 체질에 안 맞아요."


말을 꺼내지도 않았는데 질문지를 미리 보낼 필요가 없다고 했다. 인터뷰 요청 전화에 수화기 너머 한문철(59·스스로닷컴 대표) 변호사가 한 대답이다. 질문지 달라고 채근하는 사람은 봤어도 이런 사람은 처음 봤다. 이 자신감은 뭘까.


'블랙박스 몇 대~ 몇!' 한문철 하면 자동 음성 지원되는 말이다. 전문 방송인, 보험사 직원으로 오해하는 사람도 있지만, 본업은 변호사. 국내 처음으로 '교통사고 전문 변호사' 타이틀을 내건 인물이다.


'으이쿠! 쾅!' 귀에 쏙쏙 꽂히는 말투, 호통과 오버 액션 버무린 생생한 방송 진행으로 팬층이 두껍다. 요즘은 파워 유튜버. 2년 전 개설한 유튜브 채널(한문철 TV) 구독자가 78만명이나 된다. 틈새 영역을 개척해 20년 동안 한길을 걷고 있는 그를 만났다.

돈 없어 쓴 교통사고 책, 인생을 바꾸다

조선일보

“남들 다 하는 거 하면 1등 해도 소용없습니다. 나만 하는 1등을 해야지요.” 교통사고라는 틈새시장을 개척해 20년 동안 한 우물 판 한문철 변호사. 방송에서 ‘몇 대 몇’ 할 때 하는 특유의 자세를 취했다. 그는 “남들 안 하는 거 하니 친구들은 은퇴해 ‘삼식이’ 됐는데 난 점점 바빠진다”며 웃었다.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지루한 장마가 이어지던 8월 중순, 서초동 법조타운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 들어섰다. 초록색 크로마키 스크린(배경 합성용 스크린), 촬영 장비, 60인치 대형 모니터 한 대, 데스크톱용 모니터 세 대가 눈에 들어왔다. 변호사 사무실이라기보다 촬영 스튜디오에 가까웠다.


점심 직후, 그는 유튜브 방송을 준비 중이었다. 오전 10시, 오후 4시 하루 두 차례 한 시간 반씩 유튜브 라이브를 진행한다. "무단 횡단 사고자 모자이크 처리." 방송할 영상을 보면서 직원에게 메신저로 편집을 부탁했다. "끔찍한 장면도 있고 프라이버시도 보장해야 해서 모자이크가 중요해요. 모자이크 담당 직원만 둘이에요." 에어컨 아래서 땀을 뻘뻘 흘리며 그가 말했다.


인터뷰 질문지가 필요 없다고 먼저 말하는 사람은 처음 봤습니다. 자신감인가요?


"기자가 오니 지금부터 내 인생을 생각해 보자, 이런 게 아니잖아요. 평소 생각하는 거, 꿈꾸는 거 얘기하는데 폼 잡을 이유가 없잖아요? 또 전문가는 자기 분야에 대해 뭘 물어봐도 거침없이 즉답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교통사고 전문 변호사의 길은 어떻게 시작했습니까.


"1988년 사법연수원(17기) 수료 후 공군 법무관으로 입대했어요. 중위 때 월급이 50만~60만원 정도. 경제적으로 어려워 생활비 벌려면 뭐든 해야 했어요. 출판 관련 일을 하던 아내가 다리를 놔줘 '청림출판'이라고 당시 법률 서적 많이 내던 출판사를 찾아갔어요. 사장님이 어떤 책을 쓰고 싶으냐고 하셔서 책꽂이를 쓱 보니 금전 소비 대차 법률 지식, 부동산 거래 법률 지식 책 등이 있었어요. 갑자기 그때 자동차가 늘고 있는데 교통사고 법률 지식 책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국내 등록 자동차 수가 200만대 정도일 때였거든요."


일본 책 번역서만 있던 시절이라 사장도 좋다고 했다. 대법원 판례를 뒤져 1989년 '교통사고의 법률 지식'이란 책을 냈는데 인기를 끌었다.


책 한 권이 운명을 바꾼 건가요?


"돌이켜 보면 지금의 한문철을 만든 결정적 순간 같습니다. 그 덕에 한문철 하면 교통사고 전문가라는 인식이 조금 생겼어요. 그냥 판결 쫙 모아 유형별로 나눠 정리했을 뿐인데. 다만 제가 어려운 법률 용어를 많이 안 쓰고 쉽게 풀어 쓰는 경향이 있어요. 방송에서도 그래요."


생계가 어려워 책을 썼다고요? 요즘 말로 '흙수저'인가요?


"흙도 그냥 흙이 아니고 잡토(雜土)입니다(웃음). 형편이 정말 어려웠어요. 서울 살다가 고등학교 때 마산으로 갔는데 아버지 사업이 망했습니다. 고등학생 때 중학생 과외해서 동생 4명 학비를 댔어요. 대학(서울대 법대) 들어가서도 시장에서 책 장사, 샌들 장사까지 했다니까. 시장통에서 '어, 당겨도 안 빠져~' 하고 샌들 끈을 확 잡아당겼는데 쑥 빠져버린 거야. 하하."


그는 "고생했던 기억 때문에 교통사고 피해자에게 측은지심을 느끼는 것 같다"고 했다. 수임료의 1%를 교통사고로 부모를 잃은 학생에게 지원하기도 했다.


변호사라 놀라고, 서울대 법대 출신이라 두 번 놀랐다는 사람이 꽤 있습니다.


"전혀 서울대 출신 안 같다는 얘기 많이 들었어요. 모범생도 아니고 건들건들하는 친구들하고 어울렸죠. 머리 좋단 얘기보다 특이하다, 분위기 메이커란 말을 더 많이 들었어요."


'블박' 한문철. 블랙박스가 아호처럼 됐습니다. 인생 아이템은 어떻게 골랐습니까.


"2011년쯤 몇몇 방송사에서 블랙박스 영상을 보여주며 의견을 묻기 시작했어요. 이게 방송용 아이템이 되겠다 싶었어요. 출연 중이던 MBN에 얘기했더니 2012년 '한문철의 블랙박스'란 코너를 만들어줬습니다. 자체적으로 제보받으면 앞으로도 아이템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아서 그해 7월 제 홈페이지에 '블랙박스 제보 코너'를 만들었어요. 그게 지금 '한문철 TV'를 있게 한 거고요."


다 계획이 있었던 건가요?


“시대 변화에 남보다 한발 빠른 것 같긴 해요.”


영상을 하루에 몇 건 보여줍니까.


“게시판에 제보가 하루에 30~50건씩 올라옵니다. 그중 서른 건쯤 골라 오전·오후 라이브 방송 때 편집해서 방송해요. 지금까지 유튜브에 6900여 건을 올렸어요.”

형사 사건 싫어 눈 돌린 게 교통사고

조선일보

한문철 변호사는 하루 두 번 한 시간 반씩 유튜브 라이브를 한다. 스케줄에 맞춰 최대한 규칙적으로 산단다. “골프도, 바둑도 이만큼 재미있지 않아요. 한 건 한 건 답 달고 데이터 쌓는 게 즐겁습니다.”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1991년 제대 후 서울지방검찰청 검사를 거쳐 1993년 변호사 사무실을 열었다. 처음엔 형사 사건을 주로 맡았다.


왜 교통사고 쪽으로 틀었나요.


“형사 사건을 다루니 만나는 사람이 조폭, 도둑놈, 소매치기, 뽕쟁이, 사기꾼. 사회에선 안 만날 사람들과 구치소에서 매일 접견했어요. 돈은 쉽게 들어왔는데 뭔가 찜찜했어요. 소매치기 일당이 수임료 가져오면 어디서 훔친 돈 아닌가 별별 생각이 다 들었어요. 2~3년 하니 더는 내키지 않았습니다.”


1995년 지인 부탁으로 버스공제조합 고문 변호사를 맡았다. 버스 기사가 사고 냈을 때 보험사를 대리해 피해자에게 주는 손해배상액을 최대한 줄이는 역할이었다.


“그때만 해도 변호사들이 보험사가 만든 준비 서면과 답변서에 이름만 쓸 때였는데 저는 공부해서 직접 다 썼습니다. 장애 진단서를 읽어야 하는데 의학 용어가 어려워 무슨 말인지 못 알아먹겠더라고요. 의학 서적 사서 뼈 이름부터 달달 외웠지요. 한 건 한 건 하다 보니 눈이 뜨였습니다. 처음엔 경기 지부만 맡았는데 나중엔 서울 빼고 전국 버스 조합을 다 맡았어요.”


교통사고 법률 사이트 ‘스스로닷컴’은 왜 열었나요.


“버스 조합 변호사로 5년 동안 소송 1000여 건을 맡아 거의 승소했어요. 피해자 처지에선 나쁜 변호사였던 거죠. 제가 상대 측 변호사로 배상금을 깎은 셈이니까요. 피해자 측 변호사는 전문 변호사가 아니라 브로커가 데려온 이가 많았어요. 피해자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2000년 9월 ‘스스로닷컴’ 사이트를 오픈했어요. 딱 20주년이 됐네요.”


스스로닷컴, 이름부터 특이합니다.


“한마디로 교통사고 피해자를 위한 놀이 공간입니다. 제가 맡았던 사례 정보를 인터넷에 올려놨으니 참고해서 ‘스스로’ 직접 소송을 해보라는 거였습니다. 계산기 두드려 보니 유료 회원제로 1인당 회비 1만원을 받으면, 1년에 교통사고에 휘말리는 사람이 100만명 정도라 치면 100억원을 벌 수 있겠더군요. 떼돈 벌 생각에 신나서 6~7개월 동안 사건도 하나 안 맡고 사이트 만드는 일만 했어요. 친구들이 미쳤다고 했어요.”


그런데 유료화는 아니었죠?


“애초엔 소송은 이제 안 맡고 사이트 유료화로 돈을 벌려고 했어요. 하루는 모 의대 외과 교수가 장모님이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면서 찾아왔습니다. 홈페이지 보고 소장은 다 썼는데 막상 제출하려고 했더니 안 되더라, 도와달라면서 말합디다. ‘제가 외과 의사입니다. 맹장 수술이 제일 간단한 수술이에요. 배를 짼다, 맹장을 찾는다, 잘라낸다, 지진다, 다시 담는다, 꿰맨다. 인터넷에 이렇게 올려둔다고 혼자 수술할 수 있겠습니까?’ 그때 알았어요. 소송 방법을 알아도 일반인이 직접 하기는 정말 어렵다는 것을. 유료화 모델은 포기하고 소송이 진짜 필요한 건만 맡기로 했어요.”


수임 건수가 점점 늘어 2006년엔 한 달에 60건까지 갔다. 이후엔 매달 10건 정도로 줄여 지금까지 20년간 총 6000여 건을 맡았다.


법률 사이트를 비교적 일찍 열었는데 디지털에 빨리 눈떴나요?


“1998년 말, 어떤 사람 명함을 받았는데 영어로 쓴 주소가 있었어요. 미국에 사느냐, 왜 미국 주소가 있느냐 했더니 이메일 주소라더군요. 이메일? 처음 들어본 말이었어요. 그때 천리안, 하이텔 등 PC 통신을 알게 됐습니다. 인터넷에 들어가 교통사고 관련 자료를 보니 보험사에 유리한 자료뿐이었어요. 제 자료를 나눠야 한다는 사명감이 더 들었습니다.”

국민 정서법에도 전문가는 할 말 해야

조선일보

지난달 응급 환자 태운 구급차를 막은 택시 이야기를 유튜브로 방송한 장면. /한문철 TV

유튜브는 왜 시작했나요.


“제 직업은 변호사지 유튜버가 아니에요. 직업으로 유튜버를 하면 안 됩니다. 절대 말려야 해요. 개인 유튜버는 한계가 있어요. 아무리 유명한 유튜버도 아이템 고갈될까 봐 고민하잖아요. ‘먹방’ 유튜버도 수박 몇 통 계속 먹을 수도, 자장면 열 그릇 연거푸 먹을 수도 없어요. 저는 운이 좋고 특이한 경우예요. 제보 영상이 끊임없이 올라오니 유튜브에 최적화된 콘텐츠죠.”


그의 유튜브를 통해 사건이 공론화될 때도 종종 있다. 얼마 전 구급차를 막은 택시 영상이 공개돼 공분을 일으켰고, ‘민식이법 놀이(민식이법을 악용해 스쿨존에 차량이 진입할 때 학생들이 몰래 따라가 운전자를 겁주는 놀이)’를 올려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그만큼 비판에 직면하기도 한다.


얼마 전 한 전직 경찰 유튜버가 “웹상에서 누군가가 전해주는 사연에 양념을 쳐서 다시 전해주는데, 억울함을 이야기할 때는 과장해서 말하는 게 사람 심리”라며 “그렇게 해서 특정 국가기관과 그 구성원을 비난하는 방송을 멈춰달라”고 호소했지요.


“저는 경찰 개인이 아니라 현실에 맞지 않는 경찰의 관행과 지침이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에 말한 건데, 제 톤이 심한 건 인정합니다. ‘이건 아니죠!’라면서 세게 말하곤 했죠. 그 전직 경찰관분께서 눈물까지 훔치면서 말씀하실 때 마음이 많이 불편했습니다. 이제 누구를 가르치려 하지도 않고, 설득하려 하지도 않고, 야단치려 하지도 않고, 안타까워하지도 않으면서 둥글게, 그러나 언젠가는 낙숫물에 처마밑 고임돌이 패 물이 고일 거라는 맘으로 진행하려 합니다.”


최근 경주 스쿨존 사고에서 가해자에게 유리한 해석을 하는 등 종종 여론과 다른 해석으로 비난받기도 합니다만.


“전문가는 국민 정서법과 상관없이 자기 소신을 밝힐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댓글이 여론을 반드시 반영한다고 보지는 않아요. 한번 댓글 방향이 형성되면 나머지 의견은 발붙일 데가 없어요. 다수는 싫어하지만, 한쪽이 억울한 사안도 있을 수 있어요.”


전문가가 틀릴 때도 있지 않나요?


“내 말이 정답이라는 게 아닙니다. 저는 전문가 시점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말입니다. 전문가는 여기는 이렇게 말하고 저기는 이렇게 말한다, 그런데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해요. 자기 의견과 다르다고 해서 떼로 몰려와서 인신공격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최근 댓글 창을 닫기도 했다). 그럼 법관이 왜 필요한가요, 다수결로 하면 되지요.”


그는 “굳이 세게 말해 내가 논란 대상이 되면 뭐 하나 싶기도 하다. 이젠 내가 98%까지만 얘기하고 나머지 2%는 시청자들 판단에 맡기려고 한다”고 했다.

교통사고 브리태니커 만드는 게 꿈

유튜브 수익은 어느 정도인가요?


“수익 조사하는 데서 한 달에 내가 2억원 번다고 했던데 4분의 1수준, 5000만원 정도입니다. 방송팀 직원 7명 봉급 줄 정도 나와요. 돈벌이보다는 ‘성취감을 위한 내 취미 생활’이라고 생각해요. 골프보다도, 바둑보다도 이게 훨씬 더 재미있어요.”


‘덕업일치(좋아하는 것과 일이 일치)’네요.


“그렇네요.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분야인데 일이기도 한 것, 그러면서 돈도 되는 것.”


운전은 합니까.


“블랙박스 방송 하고는 운전대를 안 잡아요. 하도 사고 영상을 보니 차가 무서워졌습니다. 게다가 제가 사고 내면 난리 날 거 아니겠어요. 아무리 조심해도 피할 수 없는 사고가 있어요. 나는 정상으로 가는데 오토바이가 신호 위반해서 중앙선을 갑자기 넘어와서 내 차하고 부딪쳤다 해 봐요. 그 자리에서 ‘갑작스러운 중앙선 침범이기 때문에 피해자와 유족에겐 안타깝지만 이건 100대 0입니다’ 말하면 먹히겠어요? ‘야, 이 ○○야 사람이 죽었는데 뭔 소리냐’ 이러지 않겠어요. 운전 안 하는 게 낫지.”


꿈이 뭔가요.


“제보로 가진 블랙박스 영상이 4만여 건 됩니다. 아마 전 세계에서 제일 많이 갖고 있을 거예요. 여기에 유튜브로 1년에 1만건씩 더해져요. 건강이 허락되면 10년 뒤쯤 이 데이터로 ‘교통사고의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만들고 싶어요. 인공지능 자동차 빅데이터로도 쓸 수 있지 않을까요? 구글, 테슬라에 인공지능 자동차 기술이 있다면, 저한테는 세계 최다 사고 유형이 있는 거잖아요. ‘너희하고 나 동급이야’ 이렇게 말하고 싶다면 너무 큰 희망인가요?”(웃음)


결국 남들과 달리 산 덕분인가요.


“남들과 똑같이 하면 1등을 해도 온전한 1등이 아니에요. 남과 나누는 1등은 의미가 없습니다. 혼자 하는 1등이 진짜 1등입니다.”


주민등록상 생일이 늦어 실제 나이로는 올해가 환갑이란다.


“변호사 하는 친구들은 슬슬 일손 놓는데 저는 점점 바빠지네요. 집사람이 친구들 남편은 삼식이(삼시 세끼 집에서 차려 먹는 백수)라는데 저만 바쁘다고 좋아합니다. 달리 보면 길~게 갑니다.”

김미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