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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즈 ]

‘조폭 유튜버’ 잡는 경찰 유튜버… "나는 경찰이 천직”

by조선일보

‘범죄 사냥꾼’ 이대우 경정


“어디로 모셔다드리면 되겠습니까?”


1988년 어느 날, 단정한 사복 차림의 까까머리 스물두 살 청년은 현대차 엑셀 앞좌석에 앉아 운전대를 잡고 있었다. 차 앞 유리에는 ‘공무수행’ 명패가 달려 있고, 뒷좌석에는 형사과장이 앉아 있었다. 이 청년은 서울 북부경찰서 형사과장의 항해사(운전병을 부르는 경찰 은어). 과장을 모시고 강북 곳곳의 사건 현장을 쏘다니는 게 임무였다.


그로부터 32년. 이제는 눈가에 옅은 주름이 파인 이대우(54) 경정은 춘천경찰서 형사 35명을 지휘하는 형사과장이 됐다. 과거와 달리 이제 일선 경찰서 과장에게 운전병은 없다. 그는 검정 SUV를 직접 몰고 현장을 찾는다.

이대우 춘천경찰서 형사과장은 자발적인 '경찰 홍보대사'다. 그가 2000년 개설한 카페 회원수만 2만명. 경찰을 너무 사랑해서 책 제목도 '다시 태어나도 경찰'이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사람들은 이대우를 ‘범죄 사냥꾼’이라고 부른다. 형사 생활 30년간 그가 지금까지 검거한 범죄자만 1000명이 넘는다. 추적 수사 전문 수사관인 그는 경찰 수사연수원에서 수사 기법을 강의했고, 대통령 근정포장까지 받았다.


이대우는 자발적인 ‘경찰 홍보 대사’로도 이름났다. 경찰에 대한 편견을 풀겠다며 2000년 개설한 카페 회원은 2만명이 넘는다. 이후 ‘도시 경찰’ 같은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출연해 형사의 삶을 알렸고, 작년에는 유튜브도 시작했다. 모든 일은 경찰을 너무 사랑하는 데서 비롯했다. 오죽하면 펴낸 책 제목도 ‘다시 태어나도 경찰’이다.


경찰을 보는 눈은 여전히 곱지 않다. 사회 곳곳에서 ‘짭새' ‘견찰’ 같은 말이 일상처럼 쓰인다. 이대우 과장은 “경찰이 잘못한 것도 많지만, 편견도 일부 존재한다. 내 역할은 그 편견을 없애는 것”이라고 했다. 지난 1일 강원 춘천경찰서에서 그를 만났다.


춘천은 서울보다 조용한가요.


“꼭 그렇지만도 않아요. 제가 워낙 일을 많이 벌리는 성격이기도 하고, 사건복도 많아서. 최근 한 달은 전 직원이 의암호 조난사고 수사에 투입돼 있습니다.”


경찰청에 물어보니 “12만 경찰 중 실명을 걸고 유튜브 계정을 운영하는 사람은 아마 이대우 형사가 유일할 것”이라 하더군요.


“방송 장비 준비에만 사비 200만원을 썼어요.(웃음) 유튜브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조폭 유튜버’를 잡기 위해서예요. 요즘은 전과 있는 조폭들이 유튜브로 돈을 번다는 거야. 직접 가보니까 온갖 욕설에, 자기들끼리 세 싸움까지 하면서 후원을 받더라고. 청소년이 그런 영상 보면 뭘 배우겠어요. 조폭도 원래 형사과 관할이니까, 걔들 잡으려고 생각했죠. 유튜브 영상을 통해 시민들에게 조폭 유튜버의 실상을 알리고, 제보를 받고 있습니다.”


전과자라 해도 방송하는 걸 뭐라 할 수 있나요.


“그들이 아직도 범법 행위를 저지르는 게 문제입니다. 조사해보니 유튜브 수익을 차명 계좌로 돌려놓고 본인은 기초생활수급자로 등록해놓은 경우도 있어요. 이렇게 유튜브로 달에 천만원을 벌면서도 추징금은 돈 없다고 미루는 거지. 이런 걸 단죄하려고 기획 수사를 하고 있어요.”

조선일보

/영상미디어 이신영 기자

"경찰 오해 풀려 형사 체험 시켜주기도"

2000년 ‘경찰에 대한 오해를 풀겠다’며 인터넷 카페를 개설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경찰에 대한 인식이 너무 안 좋았어요. 짭새니 뭐니 하는 말이 일상처럼 쓰였죠. ‘나는 국가와 사회를 위해 자부심 갖고 일하는데, 왜 사람들은 경찰을 싫어할까’ 하는 심정이 있었어요. 그래서 카페를 연 거예요. 경찰이 하는 일을 숨김 없이 보여주면 오해가 풀릴까 싶어서.”


카페에선 어떤 활동을 했나요.


“일일 형사 체험을 했어요. 신청을 받아서 시민들이랑 같이 범인 잡으러 다니는 거야. 가식적인 홍보 말고, 진짜 형사의 삶이 뭔지 보여주는 거지. 그게 호응이 엄청났어요. 너무 재밌다면서 일주일 동안 지방 출장까지 따라다니는 사람도 있었죠. 경찰에 대한 편견으로 가득했던 청년이 경찰 지망생으로 변하기도 했고요. 카페가 유명해지면서 범죄 제보도 많이 들어왔어요. 2018년까지 카페 제보로만 489명을 검거했습니다. 이후로는 안 셌고요.”


경찰 보는 눈이 곱지 않은 건 지금도 마찬가지인데요.


“한 해 발생하는 범죄가 약 150만건인데, 그중 97%를 경찰이 담당합니다. 범죄 해결의 최일선에 있다 보니 잘못하는 경우도 많아요. 비리에 연루되거나, 출동 현장에서 부적절하게 대응할 때요. 물론 어느 조직에나 일탈자가 있지만, 경찰은 법을 집행하는 기관이니 더 큰 비판을 받는 건 당연하다고 봐요. 하지만 일부의 일탈을 트집 잡아 모든 경찰을 싸잡아 비난하는 건 섭섭합니다. 경찰 공무원이 12만명 남짓인데, 대다수 경찰은 시민 안전을 위해 지금도 사회 곳곳에서 노력하고 있거든요."(2018년 기준 전체 경찰관은 11만8651명, 이 중 징계를 받은 경찰관은 406명이다)


경찰이 카페 운영에 방송 출연, 유튜브까지. ‘본인의 사익을 위해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들었을 것 같은데요.


“물론 안 좋게 보는 사람도 있죠. 하지만 제가 유명해지려고 시작한 건 아니에요. 저는 경찰에 대한 부정적 시선의 상당 부분은 경찰이 하는 일을 몰라 빚어지는 오해라고 생각해요. 그 오해를 풀기 위해 시민들과 직접 소통하며 경찰이 무슨 일을 하는지 보여주고 싶어요.”

32년 전 형사과장의 운전병은, 이제 형사과장이 됐다

이대우는 1966년 바다가 보이는 전남 강진의 시골 마을에서 7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다. 부모는 자식들을 먹이기 위해 바다 일과 농사를 가리지 않았다. 소년 이대우도 틈날 때마다 일을 도왔다. “새벽에 일어나서 소 여물 주고, 학교 갔다 와서는 밭으로 나가 깔 매고(잡초 뽑고)···. 지금 생각해보면 촌 중의 촌이었지.” ‘얼른 돈 벌어 집안에 도움이 돼야겠다’는 생각에 부모의 만류에도 전남기계공고(지금의 광주공고) 기계과에 진학했다. 그런데 막상 기계공의 꿈은 현장 실습을 갔다 오자마자 접었다.


왜 공장을 그만뒀나요.


“으하하. 큰맘 먹고 공장에 들어갔는데, 딱 한 달 하니까 더 못 하겠더라고. 평생 기름 밥 먹을 생각 하니까 엄두가 안 나서 바로 관뒀죠. ‘군대나 가야겠다’ 생각이 들어 스무 살에 의경으로 입대했어요. 처음에는 방범순찰대에서 근무했어요. 그러다 고참이 되니까 형사기동대 운전병으로 발령을 내주더라고. 형사들과 동고동락하면서 범죄 현장에 자주 갔죠. 마지막엔 형사과장 운전병까지 했습니다.”


의경 시절 경험이 형사가 되는 데 영향을 미쳤겠군요.


“당시에는 ‘경찰이 돼야겠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오히려 한참을 방황했죠. 제대하고 안 해본 일이 없어. 염색 공장 영업 사원, 과일 노점상, 꽃집 종업원, 중소기업 사장 운전기사···. 그런데 3개월을 넘겨본 적도 없어요. 뭔가 하나씩 맘에 안 들었어. 그러다 1989년 무도(武道) 경찰 2기 공고가 난 걸 보고 ‘할 일도 없는데 경찰 시험이나 보자’ 하는 심정으로 지원했어요. 붙고 나서야 경찰이 내게 최고 직장인 걸 알았지.”


뭐가 그리 맘에 들었습니까.


“남들은 범인 잡는 게 그렇게 스트레스라는데, 나는 범인 잡을 때가 제일 재밌어. 막내 순경이 뭘 그리 대단한 사건을 하겠어요. 부축빼기, 소매치기 같은 잡범들 잡으러 다닐 땐데도 피곤한 줄 몰랐지. 그러다보니 사건도 많이 했죠. 동기 중 가장 성적이 좋았으니까.”


범인 보는 눈이 남다른가요.


“재능이라기보단, 관심이 많았죠. 쉬는 날 명동 백화점에 쇼핑하러 가서도 무심코 ‘이곳은 소매치기들이 많을텐데’ 생각을 해. 소매치기범의 행동 패턴을 계속 떠올리다보면, 진짜로 소매치기범이 보여요. 출근하다 잡아오고, 퇴근하다 잡아오고. 쉬는날 잡아서 옆 파출소로 넘겨주고(웃음).”

조선일보

2005년 제주도 연쇄 강도 살인 사건 현장 검증에서 이대우 형사. 당시 서대문경찰서 강력계 팀장이었다. /위즈덤하우스

초년병 시절부터 ‘탄탄대로’를 걸었겠군요.


“정반대예요. 당시만 해도 강남경찰서, 서초경찰서처럼 경찰들이 선호하는 ‘1급지’에 가려면 인맥이 필요했어요. 나는 깡촌에서 올라온 지방 촌놈인데, 뭔 연줄이 있겠어. 성적이 제일 좋았는데도 변두리인 서부경찰서로 발령이 났어요. 근데 거기서도 밀려나서 형사가 못 되고 파출소로 갔죠."(웃음)


상심이 컸겠습니다.


“화가 많이 났죠. 그때부터 내가 해결한 사건 기록을 모두 모으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난 연줄도 뭣도 없으니까, 무조건 실적 쌓아 특진 노려야겠다 싶어서. 실제로 특진을 여러 번 했고.”


파출소로 발령 난 다음은 어떡했나요.


“으하하, 어떡하긴. 범인 겁나게 잡아부렀지. 파출소 순경 놈이 하루가 멀다 하고 범인 잡아다 넘기니까, 한 달 만에 형사과로 다시 발령이 나더라고. 당시로선 정말 이례적이었죠.”


그런데 형사 생활 시작 1년 만에 해임됐습니다.


“동네 깡패들이 단란주점 외상 술값을 미루고, 지배인 자리를 요구한다는 첩보를 받고 그 단란주점에 찾아갔어요. 근데 마침 그 깡패들이 술이 거나하게 취해 행패를 부리는 거야. 경찰이라 하니 주먹부터 날리길래, 검거에 들어갔죠. 그러다 깡패 한 명이 팔이 부러졌어. 걔들이 평소 알던 서울청 감찰과 직원에게 우리를 ‘선량한 시민 때린다’고 신고했는데, 그게 와전돼서 일부 언론에는 ‘경찰이 단란주점에서 시민들과 아가씨 쟁탈전을 벌였다’고 났어요. 얼마 안 있어 ‘물의 야기’로 해임됐지.”


심적으로 많이 힘들었겠네요.


“닭똥 같은 눈물이 뭔지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너무 억울해서 경찰 때려치우려 했어요. 근데 다른 직장 알아봐도 성에 안 차더라고. ‘꼭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에 소청심사위원회까지 간 끝에 3개월 만에 복직됐죠.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 해직될 때였고, 가장 기뻤던 순간이 경찰로 다시 돌아올 때였습니다.”

"전화번호 공개하는 이유? 억울하면 전화하라고"

수사할 때 그는 집요하게 범인을 쫓는다. 그래서 한때 그의 별명은 탱크였다. 그러나 평소 그는 유쾌하고 호탕한 ‘동네 아저씨’다. 그는 자기 휴대전화 번호를 카페에 올려놨다. 끝자리가 ’0112′로 끝나는, 20년 쓴 번호다. 힘든 일이 있으면 누구나 찾아달란 뜻이다. 범죄자들이 도움을 청하면 그들을 찾는다. 1990년대 후반 자동차 수천 대를 훔쳐 해외로 넘겼던 국내 최대 자동차 절도 조직 두목은 “한때는 출소하면 제일 먼저 이대우를 죽이려 했다. 그런데 이 형사가 자꾸 면회를 오는 바람에 정이 들어버렸다. 지금은 힘든 일이 있으면 가장 먼저 이 형사를 찾는다”고 했다. 왕년의 두목은 5년 전 출소 후 아무 연고도 없는 시골로 들어가 택배 기사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왜 범죄자들을 챙기시나요.


“내가 6년형을 살게 한 강도상해범에게 편지가 온 적 있어요. ‘감옥에서 너무 힘들다, 도와달라’는 내용이었는데 답장을 안 했지. 그랬더니 다음 편지에서 그럽디다. ‘야 이대우, 잡아넣기만 하면 다냐. 내가 갱생의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보살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머리가 띵 하더라고요. 그 길로 찾아가 프로파일러와 심리 상담을 주선하고, 연락이 끊긴 가족들도 찾아줬어요. 그랬더니 감옥 안에서 자격증을 따고, 검정고시도 보더라고요. 범죄자가 변화하려는 의지가 있으면 돕는 것도 경찰의 일이라 생각해요.”


휴대폰 번호를 공개하는 이유는 뭡니까.


“내가 ‘경찰에 대한 오해를 풀겠습니다’라면서 인터넷 카페까지 운영하는데, 막상 내 신원을 숨기는 건 좀 아닌 것 같더라고. ‘억울한 일 있으면 언제든 전화하라’는 생각에 핸드폰 번호를 올렸죠.”


실제 전화가 오기도 하나요.


“꽤 오죠. 사연도 다양해. 술 마시다 난동 부려 파출소에 잡혀간 사람부터 금전 사기 피해자까지. 먼저 사연을 들어보고, 내가 해결할 수 있는 건은 직접 수사합니다. 그렇지 않은 경우는 관련 기관에 전달하거나 잘 타일러 보내고요. 경찰이라 그런지 장난 전화는 없습니다."(웃음)


모든 민원을 해결할 수는 없을 텐데요.


“물론 그렇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범죄자가 법의 처벌을 받도록 검거하는 데까지예요. 그 밖의 것들은 제 권한 밖입니다. 그래서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에만 집중하려 합니다. 책임질 수 없는 일을 맡을 수는 없으니까요.”

춘천경찰서 옥상에서 환히 웃고 있는 이대우 형사.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올해 54세인 그는 인생의 절반 이상을 경찰로 살았다. 정년까지 남은 시간은 6년 남짓. 관리직인 과장이 된 지금도 수사 현장이 그립다는 그는 “아무래도 형사는 내게 천직(天職)인 모양”이라고 말한다.


경찰의 매력은 뭔가요.


“국가에 충성하지, 사회에 봉사하지, ‘범죄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자아 실현까지 할 수 있지. 또 굶어 죽지 않도록 봉급도 주지. 적성만 맞으면 이만한 직장은 없다고 생각해요. 난 다시 태어나도 형사 하고 싶어.”


32년 전 형사과장 운전병이 형사과장이 됐습니다. 과거의 운전병은 지금의 이대우에게 뭐라 할 것 같은가요.


“경찰 한번 잘했네. 행복한 인생이다, 야.”


유종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