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 가기

[ 비즈 ]

‘유세차~’ 읊는 젊은 여성들...장의업계에 부는 20대 여성 바람

by조선일보

시신 닦고 염하는 20대 여성 증가


지난 6월1일 새벽 1시. 서울 노원구 하계동에 있는 을지대병원 장례식장에 전화가 걸려왔다.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던 60대 남성이 지금 막 숨졌다는 내용이었다. 홀로 당직 근무를 서던 25세 여성 장례지도사 권민서씨는 전화를 받고, 곧바로 중환자실로 올라갈 준비를 했다. 검은색 유니폼에 흰색 가운을 입고, 두 손에는 라텍스 장갑을 꼈다. 마스크를 쓰고, 시신을 덮을 녹색 담요를 챙겼다. 사망한 60대 남성은 180㎝가 넘는 체격. 권씨를 맞이한 유족들은 그에게 “혼자 시신을 옮기러 온 것이 맞느냐”고 물었다. 목례를 한 권씨는 간호사들의 간단한 도움을 받아 시신을 스트레처카(바퀴 달린 침대)에 사뿐히 옮겼다.


장례업계가 젊어지고 있다. 20대 초반 여성이 70대 상주(喪主)를 안내해 장례를 주관한다. 유튜브 방송을 만들어 장례식장 비용을 절약하는 팁을 알려주는 젊은 장례지도사도 등장했다.


장례지도사는 상을 당한 유족의 요청으로 장례 절차를 주관하는 사람. 유가족과 상담하고, 시신을 씻긴 뒤 수의를 갈아 입혀 염포로 묶고, 때로는 제사까지 진행해야 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금기의 세계로 여겨졌던 이 업계에 20대 젊은 여성들은 어떻게 진입했을까.

축문 읽고, 장례 이끄는 20대 여성들

권씨는 대학(을지대) 시절 장례지도학을 전공한 뒤, 지난해부터 서울 노원구 을지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사망자 시신을 알코올로 닦고, 수의를 입힌다. 때로는 축문(祝文)을 읽고 제사도 진행한다. 권씨는 “남들이 하지 않는 무언가를 찾다가 장례지도사를 선택했다”고 했다. 매일 시신을 접하는 게 힘들 법도 하지만 그는 “돌아가신 할아버지·할머니 시신도 어릴 적에 봤다. 거부감은 없다”고 했다.

조선일보

지난 6월4일 오전 8시 서울 하계동 을지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일하는 20대 장례지도사 권민서(오른쪽)씨와 문소진씨. 권씨는 전날 당직을 선 뒤 퇴근을 준비하고 있었고 문씨는 막 출근한 상태였다. 이들은 “장례지도사는 젊은 여성도 도전할 만한 직업”이라고 했다.

을지병원 장례식장에는 모두 8명의 장례지도사가 있는데, 3명이 여성이다. 여성 3명 가운데 권씨를 포함한 2명이 20대, 나머지 1명은 30대다. 2012년부터 올해 5월까지 서울시가 발급한 장례지도사 자격증을 따낸 사람은 모두 5264명인데 이 가운데 20대 여성은 153명이나 된다. 올해 을지대 장례지도학과를 입학한 40명 가운데 여학생 수가 21명으로 남학생(19명)보다 많다. 이필도 을지대 장례지도학과 교수는 “여학생과 남학생 비율이 7대3인 적도 있었다”고 말했다.


20대 젊은 여성들이 장례지도사에 뛰어드는 배경에는 취업난이 자리 잡고 있다. 장례 업종은 경기를 타지 않을뿐더러, 선호 업종이라 보기 힘들어 상대적으로 경쟁이 약하기 때문이다. 을지병원 장례지도사 문소진(24)씨는 “취업이 잘될 거라고 아버지께서 추천해주셨다”며 “비슷한 학력과 경력을 가진 친구들과 비교해보면 연봉이 낮지 않다”고 말했다. 장례지도사의 초봉은 대체로 3000만원대 초반에서 형성된다고 한다. 상조 업체 프리드라이프에서 장례지도사로 일하는 김효숙(36)씨는 8년 전인 28세 때 장례지도사가 됐다. 그 전에는 아동복 매장에서 재고 관리 등을 담당했다. 김씨는 “재고 때문에 늘 스트레스가 많았는데, 평생 할 수 있는 일을 찾다가 이 직업을 선택했다”고 했다. 현재 장례 관련 전공을 마칠 경우 장례식장이나 화장장 혹은 납골당, 대형 상조 회사 등에서 일할 수 있다. 최근에는 반려견과 반려묘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동물 장례 분야에서 일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했다.


여성의 시신은 가급적 동성(同性)이 맡아줬으면 하는 유가족의 바람도 20대 여성 장례지도사에 대한 수요를 높이고 있다. 프리드라이프 최효진 홍보팀장은 “젊은 여성이 사망하면 나이 든 남성보다는 젊은 여성 장례지도사에게 시신을 맡기겠다고 요청하는 유족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김효숙씨는 지난해 17세에 병을 얻어 21세에 사망한 여성의 장례를 치렀다. 김씨는 “부모 눈에는 아직 딸이 17세로 보였던 거 같고, 젊은 딸의 시신을 나이 든 장례지도사에게 보여주기를 꺼렸다”고 했다.


물론 ‘네가 뭘 알겠느냐’는 시선도 존재한다. 특히 상주(喪主)가 70대인 경우다. 권민서씨는 “제사 진행을 위해 축문을 읽은 후 태우면 ‘나이 어린 여자가 이런 것도 할 수 있느냐’는 식으로 의아해하는 유가족이 있다”고 말했다. 이 밖에 무거운 관을 들거나, 새벽이라도 출동해서 장례 절차를 진행해야 하는 점 등은 아무래도 젊은 여성 장례지도사에게 부담이다. 문소진씨는 “시신에 대한 거부감이 있으면 이 일을 하기는 어렵다”며 “슬퍼하는 유가족을 상대하기 때문에 감정 노동의 스트레스도 적지 않다”고 했다.

2010년대 들어 증가하는 젊은 장례지도사

과거 장례업계 종사자는 40대 이상 남성이 대부분이었다. ‘장의사(葬儀師)’ ‘염장이’ ‘염사’ 등으로 불렸다. 주로 노련한 장의사가 도제(徒弟)식으로 가르쳐 후배를 길러내는 경우가 많았다.

조선일보

지난 6월2일 오전 인천광역시 쉴낙원장례식장에서 프리드라이프 소속 김효숙(36) 장례지도사가 제단에 있는 꽃을 정리하고 있다.

20~30대 젊은 장례지도사들이 증가하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들면서다. 1999년 을지대학교가 국내 처음으로 장례지도학과를 개설한 것을 시작으로, 2000년대 들어 대전보건대·서라벌대 등 국내 대학 5곳이 장례와 관련된 학과를 개설했다. 2012년에는 정부가 장례지도사 국가자격증 제도를 만들었다. 각 지방자치단체가 지정한 교육단체에서 300시간 교육을 받아야 장례지도사 자격증을 줬다. 물론 자격증이나 장례 관련 학과를 나와야만 장례지도사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필도 교수는 “장례 관련 학과나 자격증이 없으면, 장례지도사가 되기 어려운 게 현실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의사나 간호사처럼 자격증을 의무적으로 가지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2009년에는 배우 하지원씨가 장례지도사로 등장한 영화 ‘내사랑 내곁에’가 나오면서, 젊은 사람들의 거부감이 줄어들기 시작했다는 해석도 있다. 하씨는 극 중에서 단발을 하고 반듯한 검은색 정장 차림으로 등장해 염을 하는 모습 등을 연기했다.


젊은 장례지도사가 많아지면서 장례업 전반에도 적잖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노잣돈이다. 노잣돈이란 고인(故人)의 영면을 빌며 상여(喪輿) 등에 꽂아 넣는 돈. 장례지도사 견하늘(33)씨는 “주로 상여를 메거나 장례 절차를 대신해 준 사람들이 수고비 명목으로 가져가는 관례가 있었지만, 젊은 장례지도사가 많아지면서 노잣돈이 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만약 노잣돈을 반드시 줘야 하는 분위기라면, 소액을 봉투에 담아 장례 절차 전에 미리 주면 비용을 줄일 수 있다고 젊은 장례지도사들은 조언한다.


지난 5월에는 이 업계에 불미스러운 사건이 있었다. 30대 장례지도사가 부산의 한 병원 장례식장 안치실에 몰래 들어가 시신 3구에서 금니 10개를 뽑았다가 적발됐다. 그는 “금니를 팔아 돈을 벌기 위해 훔쳤다”고 경찰에서 진술했다.


젊은 장례지도사들은 국민들의 편견이나 인식 개선을 위해 유튜브 방송을 하기도 한다. 충청 지역에서 장례지도사로 일하는 황희용(32)·원부귀(33)씨는 지난해 ‘장(葬)스토리TV’라는 유튜브 방송을 시작했다. 이들은 후드티 차림으로 등장해 ‘장례 비용 깎기’ ‘화장 비용 아끼는 법’ ‘장례지도사가 되는 법’ ‘상조 회사 선택 방법’ 등을 알려주고 있다. ▲화장(火葬)하면 비싼 수의를 살 필요가 전혀 없고 ▲장례식을 치르는 비용 가운데 절반 이상은 음식값인데, 이를 아끼기 위해서는 주방에서 일하는 도우미에게 택시비 등을 쥐여주며 최대한 잘 봐달라고 말해 음식값을 아껴야 하며 ▲50만원이 넘는 유골함은 거품이 끼어 있으니 절대 사지 마라고 조언한다. 황씨와 원씨는 “장례업이라고 하면 폭리가 많다는 등의 인식이 있는데 이를 조금이라도 개선하고 싶은 마음에 방송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곽창렬 기자